<검술 명가의 마왕님 116화>
“미…… 국요??
“그래, 미국.”
대표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대뜸 미국에 가라니.
의문이 들었지만 잠시 접어 둔다. 일단 어머니 앞에 주섬주섬 앉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엄청 화나신 것 같은데…….
똑똑, 손가락으로 팔걸이를 두드리는 어머니. 완전히 비즈니스 모드다. 잘못 걸리면 아주 작살난다는 뜻이다.
안경 너머로 비즈니스 모드 눈빛이 사납게 쏘아진다.
“박기혁.”
“넵!”
“전에 엄마가 뭐라고 했지?”
“…….”
우물쭈물. 답을 못 한다.
워낙 하셨던 말씀이 많아서.
“엄마가 그랬어. 사고치지 말라고. 하다못해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그 전에 전화를 하라고 했어, 안 했어?”
“……했습니다.”
“그런데 왜, 기억하면서 행동은 전혀 달라지는 게 없을까?”
“…….”
“이번 일도 봐. 네가 무슨 정의의 사도야? 왜 계속 혼자 해결하려고만 해. 왜? 스타가 되고 싶어? 너도 요즘 SNS에 나오는 애들처럼 막 셀럽이 되고 싶은 거야? 말만 해. 엄마가 당장 만들어 줄게.”
“아…… 아니에요.”
“하아…… 네가 일찌감치 엄마한테 말했으면, 봐. 괜히 경찰청장한테 아쉬운 소리 하지 않아도 됐고, 집행부랑 다이렉트로 협상도 가능했고, 미라클 에이전트하고의 거래도 더 섬세하게 조율했을 수도 있고. 봐봐. 당장에 놓친 게 몇 개니?”
“…….”
“일만 요란하게 키워서…… 처음부터 엄마가 나섰으면 이렇게 시끄러워질 일도 없었을 건데…….”
“그게요, 엄마. 급했어요.”
“왜? 꾸물대다가 놓칠까 봐? 하, 얘 봐라. 너 엄마 못 믿니?”
“절대 아니에요! 믿죠. 무조건 믿죠. 엄마를 못 믿으면 누굴 믿어요.”
“글쎄, 우리 아들 하는 걸 보면 엄마 못 믿는 거 같은데…….”
“아니에요.”
“…….”
“…….”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잔뜩 노려보는 어머니. 바짝 쫄은 난 어머니의 눈치만 살핀다.
“기혁아.”
“네.”
“잘못했어? 안 했어?”
“잘못했어요.”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다를 거야?”
“다를…….”
쓰읍.
생각 없이 답하려다가 멈췄다.
다음에도 이러면…… 아마도 나설 것 같다. 아니, 틀림없이 나선다. 나란 인간이 그런 인간이니까.
차마 어머니 앞에서 거짓말은 못 하겠고, 답을 주저하자 우리 어머니는 또 이 모습이 웃기신 모양. 피식, 웃으시며 ‘으이구, 널 어쩌냐.’라시고는 고개를 저으셨다.
“하긴, 네 아빠 피가 어디 가겠어…… 그래도 거짓말하지 않는 건 마음에 드네.”
“…….”
“기혁아.”
“네.”
“솔직히 엄마는 ‘네가 사고 치지 않는다.’라고 말했으면 실망했을 거야. 안 되는 거 알거든. 기대도 하지 않고.”
사고 칠 수 있다.
내 안에 ‘검호’라는 피가 흐르는 이상, 평생 전투가 끊이지 않을 거다.
박건도 그랬고, 박수혁도 그랬고, 박민지도 그랬으니까.
이 ‘검호’라는 혈족의 숙명 같은 거니까.
“단, 연락을 하란 말이야. 전화를 하라고. 선 조치 후 보고가 아니라 ‘엄마, 내가 지금 사고 칠 것 같아요.’라는 선 보고 후 행동!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네에…….”
“대답 똑바로 안 해?”
“네!”
“그래, 가슴 펴. 사내자식이 혼 좀 났다고 어깨 처지는 거 좋지 않아.”
그래도 어머니, 한바탕 쏟아 내고 나니 많이 풀리신 모양.
사나운 눈매가 많이 누그러지셨다. 타이밍에 맞춰 아까부터 궁금한 걸 묻는다.
“그런데 엄마, 갑자기 미국은…….”
“벌이야.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잖니. 바쁜 엄마를 괴롭혔으면 너도 엄마의 일을 도와야지.”
품에서 종이를 내미신다.
일단 보는데, 종이 최상단에 ‘스타 히어로’라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스타 히어로? 여기 옵티멈이랑 같은.”
“맞아. 5대 에이전트. 파이브 시스터즈의 한 축이야.”
전통적으로 옵티멈과 사이가 좋은 스타 히어로.
덕분에 여러모로 협력하는 관계였고, 사업도 같이 많이 한단다.
어머니는 지금 내게 이 협력 사업에 도움을 주고 오라 하셨다.
“혹시 몇 년 전에 너희 아빠하고 형이 한 일 알고 있니? 그때 파견 나갔을 때.”
“대충요? 게이트에 전진 기지 세웠다면서요.”
“맞아. 근데 그 게이트가 지금 ‘붕괴 현상’ 탓에 여러모로 골치 아파졌거든, 전진 기지도 위험하고. 그래서 네가 가서 좀 도와줘.”
“알겠습니다. 근데 어머니, 아카데미는.”
“벌써 이야기해 놨지. 오히려 좋아하던데? 마침 미국 갈 일 있다면서 너 보내면 된다고.”
“네에?”
……잠깐.
순간, 윌리엄의 재수 없는 얼굴이 스쳐 간다. 녀석, 뭐라고 했더라. 미국 같이 가자고 했던가.
똥 씹은 표정을 하자, 어머니의 말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말은 안 했지만 여러모로 국내가 시끄러운 거 알지? 집행부 쪽에서 널 계속 주목하고 있어. 한 3개월 정도만 한국 벗어나서 있다 와. 그러면 좀 잠잠해질 거야.”
“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너 벌받는 거다? 근신이라 생각하고 행동 조심해. 알았어?”
“사고 치기 전에 전화할게요.”
“말이나 못 하면…… 일어나.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나의 미국행이 정해진 것이다.
* * *
며칠 뒤. 공항 게이트.
전용기 게이트 앞이라 사람이 별로 없다. 덕분에 봄이가 엉엉 울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빠, 잘 갔다 와.”
뭐지…… 왜 안 울지.
당연히 울 줄 알고 손수건도 챙겨 뒀는데, 봄이는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의젓하게 인사하는 봄이의 모습이 낯설다.
“그, 그래. 봄이도 양치 잘하고, 유치원 잘 가고.”
“친구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초콜릿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숙제도 잘하고, 모르는 사람 따라가지 말고!”
“오오, 봄이 대단해.”
“봄이도 다 컸어.”
에헴! 우쭐해하는 봄이.
하긴, 우는 것보다 이렇게 웃는 게 훨씬 좋지. 나도 환하게 웃으며 봄이를 안았다.
“무슨 일 생기면 아빠한테 바로 연락해.”
“응! 아빠도 무슨 일 생기면 봄이한테 연락해.”
“알았어. 든든한데?”
“헤헤.”
“아, 그리고.”
봄이를 품에 안고 소곤소곤 모드로 속삭인다.
“아빠가 준 ‘캡틴 타이거 인형’ 챙겨 놨지?”
“응, 여기 호주머니에 넣어 놨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거 꺼내 버려. 알았지?”
“응! 걱정 마! 봄이도 할 수 있어.”
“어이쿠, 누구 딸내미기에 이렇게 똑 부러질까아.”
“꺄아아악-!”
빵빵한 볼따구니에 필살 부비부비를 시전하자 좋아 죽는 우리 딸내미.
뽀뽀도 하고, 머리도 쓰다듬고…… 한동안 못 본다고 생각하니 최대한 많이 만지고 느끼고 있었다.
그러자 뒤에서 날아오는 한마디.
“닳겠다.”
한준우였고.
“기혁, 좀 적당히 하세요.”
이건 메르헴.
“매정한 녀석들.”
“잠깐 갔다 올 거 아닌가.”
“맞아요. 금방 올 거면서.”
“기간이 중요한 게 아니야. 떨어진다는 게 중요하지. 그치, 진유리?”
“응? 응…….”
진유리가 보기 드문 낮은 텐션으로 답한다.
“얘는 또 왜 이러냐.”
“그냐앙…….”
“……쩝. 여튼, 봄이 좀 잘 부탁한다.”
“걱정…… 큽.”
순간, 입을 막는 진유리.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더니, 갑자기 얼굴을 찡그린다.
“웁? 흡, 흐끅, 흐끅…….”
눈이 움찔움찔, 코가 씰룩씰룩. 앙다문 입술이 찌르르 울리고, 눈동자는 벌써부터 붉다.
누가 봐도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진유리. 툭 치면 당장이라도 울음보가 터질 것 같다.
“……딸기 언니 울 것 같아.”
“그러게.”
“봄이는 이제 안 우는데.”
“그러니까.”
봄이가 ‘나 내려죠.’를 하더니, 진유리한테 가서 안긴다. 그러고는 진유리의 등을 토닥이며.
“괜찮아, 딸기 언니. 아빠가 그러는데, 원래 아이는 우는 거래.”
“으아아아앙.”
진유리가 봄이를 부여안고 대성통곡을 한다.
20살 다 큰 애가, 제 허리도 안 되는 아이를 잡고 우는 꼴이라니.
“참나.”
어이가 없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진유리 같아 마음이 놓인다.
손을 흔들며 뒤돌아섰다.
“갔다 올게.”
“아빠, 다녀와아.”
“갔다 와라.”
“다녀오세요, 기혁.”
“흡, 기혁아아아아!!”
나는 그렇게 평소처럼 모두의 인사를 받으며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리고 도착해서 본 익숙한 얼굴.
“네가 거기서 왜 나오냐?”
“……너 때문에 다시 왔다.”
크리스토퍼 윌리엄. 내 새로운 노…… 아니, 친구였다.
친구. 그래, 친구 말이다.
* * *
미국.
북아메리카 대륙에 위치한 국가.
넘치는 자원과 많은 인구, 풍부한 산업적 역량을 앞세워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한때 미국은 경제, 복지, 문화, 각 분야의 중심지로 세계의 방향성을 결정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밝음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
이런 눈부신 성장의 뒤편에는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었는데.
인종 차별과 이주민 사건 사고, 테러, 마약…… 그리고 총기 사건.
마피아부터 갱스터들까지 온갖 불법 조직들이 판을 치는 등, 매년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경제 성장률만큼이나 범죄율도 가파르게 치솟게 된다.
국민의 생활 수준은 올라가는데, 정작 국민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나라.
첨단 과학 기술의 본고장으로 불리지만, 정작 한쪽에서는 극심한 문맹률에 허덕이고.
많은 이주민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비행기를 타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하루에도 몇 명씩 총에 맞아 사망하는 불균형에 시달린 나라.
그리고 이런 불균형의 폭탄이 터진 사건이 세계 현대사의 수치, 혹은 오점이라 불리는 ‘동서 내전’이었다.
단순히 동서 내전을 서부의 ‘레드 드래곤’과 동부의 ‘기간트’ 두 수호령의 싸움으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그 내면을 살펴보면 이런 불균형의 고름이 쌓이고 쌓여 터진 사건인 것이다.
동서 내전으로 인해 미국의 성장은 한풀 꺾이게 된다. 아니, 단순히 경제 성장을 벗어나 세계의 경찰이라는 무력적 권위마저도 흔들리게 된다.
물론 이렇게 흔들리는 와중에도 초강대국이라는 위치 자체는 나름대로 유지 중이니, 과연 부자는 망해도 삼 대는 간다는 말의 산 증인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돌아와, 동서 내전 이후 미국은 이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한 가지 대안을 꺼내 든다.
국가가 임명한 초인에게 수사권과 즉결 처분권을 동시에 주는 강력한 제도.
히어로(Hero).
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히어로는 이렇게 탄생하게 된 것이다.
……
…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이 뉴욕의 빽빽한 마천루들 사이에서도, 가장 우람하고 압도적으로 솟은 타워가 있었으니.
통칭 T.O.S.
Tower of Star(별의 탑).
파이브 시스터즈의 한 축인 스타 히어로의 본사였다.
“에브리헴, 미스 스마트의 아들은 출발했다고 했지?”
카우보이 복장의 남자가 책상에 다리를 걸친 채 묻는다. 책상 앞에 서 있던 정장을 입은 신사는 계획표를 보고는 이에 답했다.
“약 9시간 뒤, JFK 공항에 도착.”
“흐흐. 검호답지 않게 마법에도 조예가 깊다던데. 그, 그…… 첫째 이름이 뭐더라.”
“박수혁.”
“맞다. 박수혁. 첫째인 박수혁과는 다르게 미스터 타이거보다는 미스 스마트를 닮은 건가.”
“정보 확인.”
신사가 수첩을 열었다. 그러고는 휘리리릭- 넘긴다.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 애들이 장난을 하는 것처럼 수첩을 넘기더니, 마지막 장을 넘기는 순간.
“독자적인 마법 체계 구축. 명칭은 ‘아포칼립스’. 4대 원소를 비롯해 다양한 마법의 사용 확인. 주요 사항. 소환 분야에 일가견이 있음. 스켈레톤 같지 않은 스켈레톤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짐…….”
신사는 꽉 막힌 차림새만큼이나 기계처럼 말했고, 카우보이 남자는 책상에 올린 발을 까딱이며 익숙하다는 듯이 설명을 음미했다.
“……이상. 총평, 최상급 주요 인물.”
“이햐, 그 정도야? 오랜만이네. 네가 이 정도로 고평가하는 인물 말이야. 박수혁도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박수혁은 정통 검사. 스타 히어로의 스타일과는 불일치. 미스터 타이거, 박건도 같은 이유.”
“그렇지, 그렇지. 우리는 우리만의 스톼~ 일이 있으니까.”
앞주머니에서 시가를 꺼내 문 카우보이가 총구로 불을 붙인다.
폐가 터질 듯 들이마신 남자가 후~ 연기를 뱉어 내자 귀, 코, 입으로 연기가 신기하게 뿜어져 나왔다.
“좋아, 결정했으. 마중 나가야겠다. 에브리헴이 이렇게 고평가하는 사람이라면 마중 나갈 가치가 있겠지.”
“약 9시간 뒤, JFK 공항에 도착.”
“식당이나 예약해 둬. 저번에 간 그 스테이크 집. 텍사스 시즈닝이 괜찮더만.”
“텍사코, 예약.”
“그럼 그 전에 바람이나 쐬러 갈까? 웃차.”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는 카우보이 남자의 이름은.
존 C. 타일러.
그의 칭호 앞에 언제나 따라오는 수식어 ‘G.O.A.T’.
The Greatest Of All Time.
미국 역사상 가장 강한, 살아 있는 최강의 히어로.
‘무법자’ 존 C. 타일러였다.
* * *
한편, 같은 시간. 대륙 너머의 어느 폐건물에서는 수상한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는데.
폐건물 바닥에 가득 눕혀져 있는 ‘시체’들과, 유리병 속에 반짝이는 ‘영혼’들.
모두 흑마법에서 사용되는 ‘제물’들이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물량을 구할 수 없다니요. 이건 계약 위반 아닌가요? 삼합회는 이런 식으로 거래합니까?”
“큼, 미안하게 됐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주요 공급처가 막혔소. 어떻게든 물량을 맞추겠지만 지금 속도로는 안 될 것 같구려.”
“하…… 계속 모자라는 겁니까?”
“아무래도…….”
“만약 대가를 더 지불한다면요.”
“…….”
“괜히 줄다리기하지 맙시다. 원한다면 대가를 더 드리죠. 무조건 물량을 맞춰 주세요.”
“……구체적으로 얼마나?”
“기존의 물량을 맞추면 2할을 더 드리죠. 그리고.”
로브를 입은 남자가 주위를 보고는 속삭이며.
“물량을 초과하면 당신에게 따로 챙겨 드리죠. 이건 개인적인 선물입니다.”
두툼한 주머니를 건넨다.
“크흠, 알겠소. 노력해 보겠소.”
“잘 부탁드립니다.”
환하게 웃는 로브 남자.
찰랑이는 로브 사이로 새하얀 이가 보인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는 역십자 귀걸이가 반짝이고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