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112화 (11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12화>

교외의 어느 동네. 오가는 사람조차 드문 이곳에 박기혁이 발을 내딛고 있었다.

꼬리를 뜯어 버리고 몸통을 잡으러 온 길. 기다란 철조망을 따라가다 걷는데, 저 앞에 문이 보인다.

‘에드빌 펜션’이란 명패가 걸린 문.

흡사 귀신의 집처럼 보이는 저곳이 펜션이란다.

박기혁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허술하게 걸려 있는 명패가 경고하듯 ‘끼익, 끼익’거렸다.

뚜벅뚜벅.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빛이라고는 전혀 없다.

인간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보이는 것은 어둠, 느껴지는 것은 스산한 밤바람뿐.

흉가? 폐가? 어쨌든, 목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절대 찾을 리 없는 곳처럼 보였다.

박기혁의 기억 속에, 정확히는 박기혁이 ‘빼낸’ 두칠의 기억 속에서 이곳은 불쾌하고 오기 싫은 공포스러운 장소처럼 그려진다.

발가벗겨져 벌레에 휩쓸린 것 같은 기분…….

그리고 이는 사실이었다.

이곳은 ‘주술’로 만들어진 은신처.

인간의 감정 중 공포를 자극하는 상위 주술진이 펼쳐진 곳이었다.

즉, 이 앞에는 무엇이 있다는 말.

“…….”

박기혁의 걸음이 빨라진다.

빨라지고, 빨라지며.

종국에는 달려갔다.

빠른 속도로 길을 주파하는 박기혁.

그리고 순간, 허공을 향해 주먹을 뻗는데.

빠각-!

“……!”

둔탁한 타격음과 동시에 튀어나온 복면인?!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인간이 나와?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박기혁은 다시 손을 뻗어 이번에는 허공을 쥐고는 땅에 내팽개쳤다.

콰앙-!

“…….”

바닥에 메다꽂힌 복면인.

“너희들 뭐야?”

“…….”

대답은 없다.

대신 박기혁의 뒤를 노리고 쏘아지는 단검 세례.

인사 한번 과격하네. 박기혁이 피식 웃으며 복면인을 들어 뒤를 막았다.

파파파파파팍!

빛살처럼 쏘아지던 단검들이 복면인의 몸에 박힌다. 벌집이 되어 가는 복면인. 경련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시 뒤 경련이 멎고, 한때 인간이었던 무언가가 땅으로 허물어졌다.

박기혁은 허물어진 시체의 입을 벌려 봤다.

“역시…….”

없다.

비명을 안 지른다 싶더니 혀를 포함한 발성 기관 대부분이 없었다.

전문가다. 야만족이나, 사막 도시에서나 보던 전문 암살자를 여기서 볼 줄이야.

이로써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얘들은 동네 양아치가 아니다.

이 순간, 박기혁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

바로 쇄도해 발로 허공을 그었다. 파직,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며 복면인이 땅을 구르고 있다.

동시에 날아오는 검을 손으로 튕겨 내며, 팔꿈치로 허공을 때렸다.

파앙-!

파공성이 들리며 한 걸음 뒤에 있던 복면인이 뒤로 넘어지고, 박기혁은 한달음에 달려가 머리를 부수려고 발을 드는데.

순간, 싸늘한 감각.

위험하다.

“……!”

박기혁이 어깨를 틀어 피하자.

쐐액-!

코앞을 스쳐 가는 검광.

방금 전 박기혁이 서 있던 자리에 검흔이 새겨졌다.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또 다른 복면인. 그를 시작으로 복면인들이 하나둘 어둠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벽 위에도, 전봇대 중간에도, 전선 위에도…… 하다못해 지붕 위까지.

검은 무복을 입은 복면인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들고는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박기혁은 흥미롭다는 것처럼 입꼬리를 올리며 복면인들을 훑어봤다.

기묘하게 흐르는 침묵.

사방에서 옥죄어 오는 살기.

그리고 이 혼잡한 상황에서 먼저 손을 쓴 것은…….

복면인들 쪽이었다.

휙-!

신호용 피리가 불리고.

박기혁 근처에 있던 복면인들이 일제히 검을 들었다. 그들 뒤로 서 있던 다른 복면인들은 도끼를 들고, 다시 그 뒤로 창을 든 복면인들이 틈을 채웠다.

이후로도 활, 투창, 쌍도, 방패 등 익숙한 무기부터 도리깨, 철편, 유성추 등 흔히 볼 수 없는 무기 등등.

다양한 무기를 든 복면인들이 사방을 막아섰다.

모든 방위를 봉쇄한 채로, 서서히 상대를 말려 죽이는 삼합회의 합격진.

십팔반무예(十八般武藝)

만방진(萬方陳)

두 번째 호루라기가 불리는 순간.

휘이익!

만방진이 발동된다.

사방에서 검이 찔러 들어간다. 피하는 길목으로 도끼가 벽을 세웠고, 창은 아군을 지켜 줌과 동시에 적의 공간까지 갉아먹었다.

이전에 날아들던 공격은 그저 탐색전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노도처럼 몰아치는 복면인들의 공세.

무기의 파도가 박기혁을 덮쳤다.

하지만 박기혁은 파도 속에서도 침착했는데.

“후우.”

박기혁은 호흡을 정돈하고는 턱 끝까지 다가온 칼날을 손가락으로 튕겨 냈다. 그리고 맨몸으로 모든 공세를 쳐 낸다.

손, 발, 팔꿈치, 어깨, 무릎 등, 신들린 듯 움직이는 박기혁의 신체들. 제각각 자신이 갈 길을 찾아 무기들을 쳐 내 갔다.

모두 마나가 담긴 공격들인데.

합격진으로 강화된 공격들인데.

지금 힘없이 쳐 내진 저 칼날은 바위를 벨 수 있고, 허무하게 튕겨져 나간 화살은 철도 꿰뚫을 수 있다.

박기혁은 맨몸으로 막아서고 있었다.

검도, 마법도 없이, 순수한 육체만으로 말이다.

거인의 육체니까. 질서를 벗어난 힘이니까.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진다. 겉으로 보기에는 복면인 무리의 공세에 박기혁이 일방적으로 버티는 것 같지만.

실상은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다급한 건 복면인 쪽.

독은 통하지 않고, 암수에는 흔들리지 않는다. 차륜전으로 체력을 깎아먹는 것 또한 저 기괴한 몸집을 보니 불가능할 것 같다.

만방진 속에 숨겨 둔 무기들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혀 갔다.

허무했다.

가족도, 이름도, 인격마저 버리고 얻은 무공이다. 이 무공에 모든 것을 바쳤는데, 겨우 한 명을 못 잡다니.

그래서일까…… 시간이 갈수록 복면인 무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반면 박기혁의 표정은 갈수록 밝아지는데.

‘생각보다 괜찮은데.’

다급하면 마법부터 찾는 버릇을 고치려고 일부러 육체만 고집하고 있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손맛이 괜찮다. 검과는 또 다른 맛이 있다고나 할까.

‘여기에 검까지 잡으면 끝내주겠는데.’

씨익, 웃으며 박기혁이 발을 힘껏 내리찍었다.

쿠우웅-!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리는 지축.

그 순간 사라지는 박기혁?

“……?!”

모두의 시야에서 벗어난 박기혁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벽 위. 투창으로 그를 괴롭혔던 적의 뒤였다.

“……!!”

놀란 복면인이 몸을 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늦었다.

푸쉭-!

이미 주먹이 심장을 꿰뚫었으니까.

박기혁은 쓰러지는 시체에서 단창을 뺏어 날렸다. 그리고 다시 사라짐과 동시에 이번에는 전선 위. 집요하게 머리만 노리던 복면인 뒤에 나타났다.

손날을 세워, 머리를 자르려 했다.

힘을 집중해서, 칼날을 다루듯 섬세하게 자른…….

우득?

……응?

뜯겨 나가는 머리.

“쩝, 안 되네.”

아직 섬세하지는 못한가 보다.

또다시 사라지고, 이번에도 건너편 지붕에서 비명이 들렸다.

만방진이 급히 포위망을 조정해 상대를 가두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농락하듯 달아나는 박기혁.

그는 주장하고 있었다.

합격진? 만방진?

그게 뭔데. 어쩌라고.

쥐새끼는 모여 봤자 쥐새끼다. 쥐새끼가 모인다고 해서 호랑이를 이길 수는 없다.

체내의 에너지를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우득, 우득.

박기혁이 양옆으로 목을 풀자, 근육들이 시동을 거는 것처럼 맥동하며 들썩였다.

부풀고, 우그러들고, 핏줄들이 부득부득 돋아나며 근육의 결이 사정없이 갈라져 갔다.

흠칫.

그 모습에 긴장하는 복면인들.

가뜩이나 큰 박기혁의 몸이 더 거대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진짜로 커진 건 아니다. 실제 사이즈는 똑같다. 그럼에도 복면인들의 피부로 느껴지는 위압감의 수준은 이전과는 전혀 달랐다.

단순히 강한 게 아닌 격을 뛰어넘는, 인간이 아닌 느낌.

그래서일까? 압박을 견디다 못해 한 녀석이 몸을 들썩이다 끝내 무기를 뽑아 들었다.

돌발 행동이다.

만방진에서 벗어나는 행동이었고, 그 결과…… 날아드는 박기혁의 발에.

펑-!!

터졌다.

부서진 것도 아니고, 산 채로 터졌다.

물 풍선이 터지듯 허공에서 피가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

박기혁은 떨어지는 살점을 맞으며 주위를 둘러보다 말한다.

“아직 많네.”

한 명만 남기면 되니까.

박기혁이 섬뜩한 웃음을 지으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밤은 길다.

충분히 즐길 수 있겠어.

*   *   *

한편 박기혁이 거침없이 조직을 깨부수던 가운데, 그만큼이나 바쁜 사람이 있었으니.

여기 바쁘게 통화 중인 김연희, 박기혁의 어머니였다.

“……알죠. 잘 알죠. 청장님 말씀 다 이해합니다. 아무리 초인이라도 함부로 사적 제재를 하면 안 되죠.”

지금은 21세기다. 엄연히 제도가 있고 법이 존재한다.

그런데 힘이 있다고, 설령 그것이 정의롭다고 사적 제재를 한다? 이건 엄연히 불법이고 범죄다.

초인도 이 사회의 구성원인 이상 이 법과 제도에서 벗어날 수 없고, 당연히 함부로 타인을 징벌할 수 없다.

나이트가 왜 그토록 많은 서류 작업을 하겠나. 다 이걸 인정받기 위해서지.

즉, 다시 말해.

지금 박기혁이 하는 행동은 문제가 될 소지가 꽤 크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번 경우는 다르지 않습니까. 마약을 유통, 그것도 미성년자한테 했어요. 그것도 정예화된 초인 집단이 그랬습니다. 이건 엄연히 ‘빌런’으로 볼 수 있지 않나요?”

다만 그 대상이 일반적인 범죄자가 아니라, ‘빌런’이라고 판정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량 학살이나 그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른, 혹은 저질렀던 빌런은 발견 즉시 처리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에서 적극 권장할 정도였다.

김연희가 현재 ‘빌런’을 운운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만약 박기혁이 처리하는 범죄자들이 ‘빌런’이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었다.

“마약도 일반 마약이 아닌 마법적으로 가공된 약이던데요? 영혼을 손상시켜서 나중에는 ‘인격’을 부수는, 정신계 마약이었어요. 정신계 마법을 왜 엄격히 처벌하나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기 때문이 아닌가요. 이 약이 그래요. 이거 극독이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조건은 나쁘지 않다.

일단 마약이 주요했다. 지금 김연희 손에 들려 있는 유리병. 아들 말로는 ‘영혼 추출제’라고 부르는 이 약 말이다.

“미성년자에게 정신계 마약이 풀렸다는 게 알려지면…… 이거, 청장님 입장에서도 곤란하지 않나요?”

아들의 일탈을 허락한 것도 이 ‘영혼 추출제’가 주요했다. 만약에 이거라도 없었으면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집에 데려왔을 거다.

“네, 집행부는 걱정 마세요. 제가 바로 수습할게요. 어머, 청장님. 저 김연희예요. 제가 일을 허투루 처리한 적 있나요? 저만 믿으세요. 그럼요.”

한참을 설득한 김연희가 전화를 끊는다.

하지만 아직 그녀의 일은 끝나지 않았는데.

때맞춰 멈춰 선 차량.

“도착했습니다.”

“현장, 바로 가죠.”

문을 열고 나섰다.

순간, 달라지는 표정. 방금 전, 낮은 자세로 청장과 통화했던 김연희는 없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옵티멈의 마녀, 김연희였다.

옵티멈의 마크가 새겨진 코트를 걸친 그녀가 지나가자, 주변을 막고 있던 경찰들이 길을 터 줬다.

건물을 지나 방 앞으로 다가가는데, 악취가 들끓는다. 시체나 피비린내가 아닌, 진짜 악취. 대소변 냄새였다.

역시나 방으로 들어서자, 수십 명의 인간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다.

“영혼이 추출된 인간은 짐승이 된다더니.”

단순히 표현이 아니라 진짜 짐승이 되는 거였다. 이지를 상실하고 오직 본능으로만 살아가는 짐승.

헥헥대며 서로를 탐하는 꼴을 봐라.

저게 어딜 봐서 지성을 갖춘 인간이라고 보여지는가.

멍하니 그 모습을 보던 김연희 뒤로 비서실장이 코를 막으며 다가왔다.

“이 정도면 집행부도 뭐라 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게요. 생각보다 훨씬 심하네요.”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런 물건이 미성년자를 상대로 풀리고 있다고?

방금 전까지 김연희의 머리를 아프게 했던 고민이 말끔히 사라졌다.

빌런이고 뭐고가 문제가 아니라, 당장 이 약부터 어떻게 해야 할 판이었으니까.

“청장님, 저 김연희예요. 저희,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은데요.”

*   *   *

인천항.

차량에서 내린 왕차이가 배에 올랐다.

“오랜만입니다, 형님.”

“오…… 오랜만이다.”

“모시겠습니다.”

앞장서는 후배의 등을 보는데, 입맛이 쓰다. 왠지 임무에 실패한 자신을 비웃는 것 같다.

‘젠장.’

아이들한테 뜯으려고 했던 게 과욕이었을까? 지하 조직을 끌어들인 게 잘못인 걸까? 애초에 이걸 계획했던 건 회의 상부잖아. 그렇다면 내 잘못이 아니라 그들의 잘못이잖아.

머리가 복잡했지만, 그렇다고 입 밖으로 낼 수는 없다.

삼합회가 본래 그런 곳이니까.

잘잘못을 떠나, 임무에 실패했단 이유만으로도 죄다. 반대로 임무에 성공만 한다면 무슨 수를 써도, 설사 잘못을 저질러도 상관없는 게 삼합회였다.

“형님이 이끄는 아이들이 많이 죽었다면서요. 안타깝게 됐습니다.”

“어, 응.”

사실 모른다. 왕차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으니까.

이틀째 연락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살해됐다고 지레짐작하는 거였다.

솔직히 이제는 살아 돌아오면 안 된다. 본회에 귀환을 요청한 것도 이 행동대가 전멸됐다는 구실로 한 거니까.

“잠시 뒤에 출발할 겁니다. 그때까지 쉬고 계시지요.”

후배가 나가자마자 왕차이는 털썩, 침대에 누워 한숨을 쉬었다.

“하…….”

죽어 나간 동생들이 생각난다.

인간적으로 미안해서?

아니다. 아까워서.

“들인 돈이 얼만데.”

얼마나 많은 자금을 들여 키웠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잃다니.

다시 채울 생각을 하니 앞날이 캄캄한 왕차이였다.

그렇게 눈을 감고 있는데.

지지직, 소음이 들리더니 방송이 들린다.

- 아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웬 방송이지 싶다가, 순간 몸이 굳는 왕차이.

밀항하는 배가 방송이라고?

- 여기 ‘대부’라는 애 있나? 왕차이라고 하면 알려나? 어쨌든.

조타실 내부. 박기혁이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넌 못 가, 새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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