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11화>
나는 말이다.
절대 착하지 않다.
선과 악,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분명히 악일 것이다.
원망을 들었고, 피를 밟았다. 그들은 내게 복수를 부르짖었고, 나는 그들의 숨을 거뒀다.
무수한 시체로 쌓인 왕좌.
마왕이란 이런 자리였다.
그런데.
이런 나조차도 절대 넘지 않는 선이 있다.
그중 하나가 아이다.
미래를 건들지 않는 것.
전쟁도, 싸움도, 온갖 추악한 짓거리도 우리 어른들 사이에서 끝내야 한다.
아이를, 미래를 끌어들이는 순간, 복수를 강요하며 분노를 키우는 순간.
고통의 굴레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과거’에 얽매여 자신들이 왜 싸우는지도 모르는 ‘미래’.
그 처참한 광경을 아는 나로서는 이게 몸서리치게 싫다.
이래서다.
내가 아이를 건들지 않는 것이. 악인에게도 악인의 품격이 있으니까.
“근데, 이 새끼들이 애들한테 이딴 걸 뿌려?”
용준이네 학교에서 꼬리를 잡은 나는 곧바로 움직였다.
그리고 마주한 건, 영혼이 추출된 아이들.
고등학생에서 중학생. 심지어 초등학생 몇몇까지 손댔더라.
그래, 고등학생이야 다 큰 성인이지. 뭐, 중학생도 발육이 좋아졌다니까 그렇다 치고.
그런데 초등학생은 좀 심했잖아. 건들 게 없어서 그 쪼꼬미들을 건드려?
머리에서 뭔가 톡 뽑히는 느낌이 들었다.
안전핀이었다. 가족과 봄이 때문에 많이 길어졌던 안전핀이 간만에 풀린 것이다.
난 그 즉시 애들이 말하는 ‘진짜 질 나쁜 선배’를 족쳤다.
“그거 아냐? 인간은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마나를 쌓아. 이렇게 마나를 쌓는 곳을 ‘마나 홀’이라고 하거든? 여기가 깨지면 마나를 못 쓰겠지?”
“응, 이제부터 내가 직접 너희의 마나 홀을 깨트릴 거야. 걱정 마. 일상생활에는 전혀 무리 없으니까. 마나만 못 쓸 뿐이야. 마나만.”
여기서 한 놈을 잡아 연락시켰다.
녀석의 말로는 ‘진짜 진짜 질 나쁜 선배’에게.
“안녕? 만나서 반가워. 너희 참 더러운 영혼을 가졌구나.”
이번에도 마나 홀을 깨트렸다. 여기까지가 딱 자비가 통하는 구간.
이후에 불러온 놈들은 정말 답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
“안 되겠다. 너희들은 답이 없다.”
죽이지는 않았다. 대신 깡그리 모아서 영혼을 추출했다.
“너희도 당해 봐야 알지. 역지사지. 아…… 너희는 이거 마약인 줄 알겠구나.”
녀석들이 하는 방식으로.
물론 사용되는 영혼 추출제는 내가 손을 본, 몇 배는 강력한 놈이었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대신 그들 앞에 기다리는 건, 죽음보다 더한 굴욕적인 삶이리라.
뭐, 뿌린 대로 거두는 법 아니겠나.
여기서도 한 놈을 잡아 윗선을 불렀다.
또 오는 한 무리들. 얘들도 영혼 상태가 심히 구렸다.
답 없음.
바로 영혼을 뽑았다.
그렇게 또 한 무리를 부르고 뽑고, 무리를 부르고 뽑고…… 이렇게 몇 번의 사이클을 돌렸다.
당연하게도 올라갈수록 강해졌고, 반항하는 이도 나왔지만, 친히 사지를 접어서 영혼 추출제 가장 코앞에 앉혀 놨다.
“울지 마. 억울해? 뭐가 억울한데. 억울한 건 저기 밖에서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지, 너희 같은 쓰레기 놈들이랑 공기를 나눠 마신다는 게 얼마나 억울하겠어?”
“원래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거야. 너희는 그 벌을 오늘 받는 거고.”
그렇게 신나게 영혼을 뽑아내는 사이, 드디어 나는 본부장이라는 녀석까지 다다른다.
* * *
“비켜!”
우당탕탕!
눈에 핏발이 선 남자가 앞을 가로막은 자전거를 옆으로 밀치며 달려갔다.
“헉. 헉.”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마나를 쓰고 있음에도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멈출 수 없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방금 본 괴물에게 잡히면, 죽는다고. 무조건 뒤진다고 말이다.
“씨…… 씨발.”
명색이 본부장인 내가 이렇게 쫓기게 될 줄이야.
비참한 기분을 곱씹으며 남자는 생각해 봤다.
대체 왜 이 꼴이 됐을까.
그래, 그 전화.
모든 일의 시작은 한 통의 전화 때문이었다.
……
…
쫓기기 2시간 전.
오늘도 남자는 사무실에서 담배를 피우며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다이.”
“흐흐. 그럼 잘 먹겠습니다.”
“잠시만요, 본부장님. 패부터 까 봐요. 대체 뭔데요?”
“하트 7. 스페이스 7.”
“원 페어?”
“원 페어?!”
“허, 겨우 원 페어로 이걸 가져간다고요?”
“미쳤네. 본부장님 깡은 알아줘야 한다니까.”
“인마, 내가 그래서 이름이 대인이야. 크게 살아야지, 크으게~ 크크크. 패 돌려. 빨리.”
남자의 이름은 전대인. 큰 인물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지어진 이름이었다.
전대인은 큰 인물이 되라는 이름을 따라 항상 꿈을 좇았다.
아카데미 삼수를 해 불합격. 대학도 나가리. 에이전트는 탈락.
결국 중소 파티에서 빌빌대는 하찮은 인생을 살게 됐다.
뭐, 인생이 좀 안 풀렸다고 나쁜 건 아니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플러쉬.”
“와! 이게 뜨네.”
“헤헤. 잘 가져가겠습니다.”
“잠깐.”
“……?!”
“풀 하우스. 미안해~.”
“아, 지인짜!! 본부장님, 이러기예요?”
“흐흐흐. 오늘따라 짝짝 붙네 뭐 해. 빨리 패 돌리자. 막내야, 넌 이걸로 커피 좀 사 와. 잔돈은 너 가지고.”
내리 다섯 판을 쓸어 가는 전대인
전대인의 인생이 이랬다. 내내 빌빌대다가 한번에 따는 이런 상황 말이다.
아는 형님한테 온 연락. 같이 일해 볼 생각 없냐는 제의였다. 한창 파티장이랑 충돌 중이던 전대인은 감정적으로 그 제의에 동의했다.
솔직히 당시만 해도 전대인은 후회했다. 참을걸. 괜히 쓸데없는 자존심에 이게 뭔 꼴이람.
그렇게 들어가게 된 조직.
이름도 촌스럽다. 불곰파라나.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촌스러운 이름의 조직이 자신에게는 기회가 될 줄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대인은 시작과 동시에 본부장에 오르게 된다. 자신을 끌어 준 형님을 비롯해 중간 간부 전원이 ‘진화단’과 엮이며 감옥에 처박힌 거다.
그렇게 남은 건, 보스와 나뿐이네?
더군다나 하는 일마다 잘 풀렸다. 낸 아이디어마다 대박을 쳤다.
그렇게 거듭된 성공으로 전대인은 보스 두칠의 오른팔이자 불곰파의 이인자가 된다.
이때부터였다. 전대인이 진짜로 이름을 따라 대인으로 살아가게 된 게.
“후우, 그런데 본부장님. 이번에 애들 스카우트하면 커미션 주는 거 진짜입니까?”
“액수 상당하던데.”
“10명만 채워도 1억이던가……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전대인이 픽 웃으며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럼 진짜지 가짜겠냐. 일단 할당량만 맞춰 봐. 바로 통장으로 꽂아 줄 테니까.”
“우와아아!”
“너희들한테만 말하는 건데, 이거 진짜 한철 장사야. 계속 이렇게는 안 될 거야. 땡길 수 있을 때 땡겨 둬라. 나도 지금 땡기고 있으니까. 전에 ‘솔 드러그’ 있지? 적당히 맛보게 해서 사인부터 시켜. 애들 그거 한 번 마시고 나면 정신을 못 차리니까. 알겠냐?”
솔직히 말하면 커미션은 2억이다.
그것도 다섯 명당 2억. 10명이면 4억.
10명당 1억을 준다는 말과는 완전히 다른 액수. 당연히 이 차액은 전대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노동은 짧게, 성과는 많이.
굳이 진창에 손 버리지 않고도 달콤한 과실을 챙기는 것.
이게 권력자, 대인(大人)의 삶 아니겠나.
전대인이 흡족하게 웃으며 막내가 사 온 커피를 마셨다.
그때.
띠리리리리-!
문제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 본부장님, 저 영태입니다. 전에 작업 걸던 애 있잖습니까. 권용준이라는 아이, 본부장님이 눈여겨보시던 애 말입니다. 아무래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저쪽에서 먼저 연락 왔습니다. 그런데…….
권용준.
현재 그가 관리하는 구역에서는 최고의 유망주다.
거의 아카데미 입학이 확실시되는 재능. 아마 각 잡고 마나만 훈련해도 한 달 안에 조직 상위권에 오를 거다. 1년이면 전대인도 이긴다고 장담 못 하겠지.
이런 애를 영입해서 자신의 오른팔로 둔다면…….
이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전대인을 움직였다. 간단하게 포커 치던 애들만 데리고 장소로 향하는데.
근처에 왔을 때 뭔가 이상했다.
“쓰읍, 아…… 점심에 먹은 게 잘못됐나. 화장실 좀 갔다가 갈게.”
이때는 몰랐다. 이 화장실 하나가 자신을 살렸을 줄은.
화장실에서 볼일을 마치고 장소로 가는 전대인.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마주하게 되는데.
“……!!”
그건, 인간의 형체를 한 크고 거대한 괴물이었다.
“응?”
“으아아아악!!”
눈을 마주치는 순간.
튀었다.
저 괴물한테 잡히면 죽는다.
틀림없이 죽는다.
전대인은 몸을 돌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리고 있었다.
……
…
끼익-!!
전대인이 어딘가에서 훔친 오토바이를 내팽개치고는 한 건물로 달려갔다.
“젠장, 젠장! 빨리! 빨리!!”
다리를 재촉해 건물로 들어간 그는 복도를 걷다, 어느 지점에서 벽을 밀었다.
움푹 들어가는 벽. 그 순간, 벽이 열리며 비밀 통로가 보였다.
불곰파에서도 보스인 두칠과 본부장인 전대인밖에 모르는 은신처였다.
‘일단 여기에 들어가면 보스한테 연락할 수 있어. 그럼 어떻게든 될 거야.’
미로 같은 길을 지나, 비밀번호를 누르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은신처에 도착.
어느 오피스텔의 벽장을 뚫고 나오는 전대인이었다.
“하, 살았다.”
긴장이 풀리며 쓰러진다.
“크, 큭. 오히려 잘됐어.”
그 괴물이 처음부터 근거지로 쳐들어왔다면 막을 수 없었을 거다. 이렇게 도망칠 타이밍이나 잡을 수 있었을까.
이걸 전화위복이라 하던가.
“크큭크.”
전대인이 텅 빈 거실에서 혼자 한참을 웃다가 몸을 일으킨다.
“후, 이럴 때가 아니야. 일단 보스한테 연락을.”
오피스텔 한편에 마련된 방으로 가, 한쪽 서랍 위에 비치된 장식을 뜯어 앞에 놓는다.
장식은 사실 마법 수정. 도청도 녹음도 불가능한 마법 통신 기구였다.
보스는 이 마법 수정만으로 연락을 취했고, 이런 용의주도함이 수차례 이뤄진 단속을 피한 비결이기도 했다.
마나를 불어넣었다. 수정구가 색색의 빛을 내며 신호를 거는 중.
잠깐 눈을 감고 할 이야기를 생각한다. 최대한 자신의 실책이 드러나지 않게, 적당히 포장하고 적을 부풀렸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쓰고 눈을 떴는데.
“……!!”
시나리오가 눈에 보여?
농담이 아니다. 진짜 있다.
바로 코앞에서 선명하게 보이는 종이. 시야 가득 종이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들려오는 목소리.
“뒤돌아보지 마.”
꿀꺽.
“종이에 대사 보이지? 이제부터 네가 할 대사다.”
얼어붙은 전대인이 힘겹게 입을 뗐다.
“……누…… 누구세요. 왜…… 이러시는 건데요.”
“그건 네가 더 잘 알 건데?”
“…….”
순간 전대인의 머리로 수많은 악행들이 스쳐 간다.
이 중에서 무엇이 이 괴물과 연관돼 있을까. 너무 많아서 세기가 힘들었다.
“왜, 너무 많아서 모르겠어?”
“……!!”
“내가 너 같은 놈들을 얼마나 많이 상대했는데. 척 보면 알지.”
“…….”
“됐고, 이제부터 넌, 너희 보스를 이쪽으로 불러오는 거다. 이해했어?”
“…….”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어쭙잖은 충성심에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딱.
공간이 열리며 감옥이 보인다.
절규하는 영혼들.
영혼들은 죽여 달라며 창살 너머로 손을 뻗고 있다.
“저렇게 되는 거야.”
“사, 살려 주세요.”
“너 하는 거 봐서. 신호 왔다. 자, 자. 긴장 풀고. 한번에 가자. 피차 피곤하게 하지 말고.”
전대인은 필사적으로 목소리를 뽑아냈다.
살기 위해서.
“보스, 저 대인입니다. 이쪽에 꽤 똘똘한 유망주들이 있어서요. 얘들이 보스를 뵙고 싶답니다. 이전에 보고드린 용준이라는, 그 친굽니다.”
수정구에 비치지 않게 몸을 숨긴 박기혁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 * *
까앙-!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다.
“죽어!”
까각, 가각!!
이건 반대로도 해석된다.
“시펄! 개 같은!!”
하나도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괜찮아서 놀라운. 뭐, 그런 경우.
지금 이 두칠이란 놈이 꼭 그랬다.
확실히 얘는 이제껏 상대한 놈들과는 다르게, 싸울 줄 안다.
그것도 꽤 지저분하게.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는데 녀석이 체중을 실어 어깨를 들이밀었다.
쿵-! 묵직하게 전해져 오는 일격. 생각 이상으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바로 내 얼굴로 유리병을 던졌다.
뭔지 몰라도 위험한 건 알겠다. 그래서 손으로 쳐 내려고 하는데.
터지는 유리병.
파아아앙-!!
“즉발탄이다, 개새꺄!”
이미 몸을 빼낸 녀석이 연기에 휩쓸린 나를 향해 중지를 치켜든다.
연기를 마시자 아주 조금 어지럽다.
독? 꽤 강한 독이었다.
두칠은 독에 휩싸인 나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이 독약과 연계되는 마법인지 화력이 제법이었다.
하지만 이도 모자라다고 여겼는지 가죽 포대 몇 개가 더 날아왔다.
기름이었다. 불꽃을 더욱 활활 태울 기름. 특수한 마법 처리가 돼 있는지 불꽃은 더욱 거세졌다.
곧이어 품에서 마석들을 쏟아 내는데.
“나왓!!”
곧이어 등장하는 ‘스톤 골렘’ 무리들. 완성된 스톤 골렘이 나를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
두칠은 이것도 모자라, 총을 꺼내 나를 향해 쐈다.
투다다다다!
당연한 말이지만 총알은 내게 통하지 않는…… 어?
뜨끔, 하는 감촉에 내려다보니, 총알 몇 발이 내 복근에 박혀 있다.
뭐지? 잠깐 생각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와…….”
이 녀석, 총알 사이에 ‘마탄’을 숨겨 놨구나.
천잰대?
거구의 체구에 더러운 인상.
누가 봐도 정면 승부를 좋아할 것 같은 외형인데, 싸우는 건 닳고 닳은 용병처럼 싸운다. 이 정도로 더럽게 싸우면 이것도 나름 경지라고 봐야 한다.
아주 바람직한 태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무작정 돌격하는 머저리보다는 훨씬 낫다.
저렇게 야비하게 싸운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뜻이니까.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 움직이자.
쿵!
진각을 밟자, 내 몸을 휘감던 불꽃이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스톤 골렘의 하체를 향해 다리를 뻗으니, 파그작! 스톤 골렘의 다리들이 부서졌다.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총알은, 그냥 맨몸으로 견뎌 냈다.
녀석의 수준이 생각보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보다, 라는 거지 진짜 괜찮은 건 아니다.
애초에 이 싸움은 성립될 수준이 아니란 말이다.
“이거나 먹어라-!”
아공간에서 또 뭔가를 꺼내려는 놈.
난 곧장 달려들었다.
그리고 코앞까지 다가가, 머리를 잡아 바닥에 찍어 눌렀다.
쿠웅!
“커억!”
버둥거리는 녀석을 내려다보며.
“재롱은 잘 봤어.”
이제 끝낼 시간이다.
공간이 깨진다.
마치 심연의 문이 열리듯, 깨지는 공간.
절규하는 영혼들 사이로 네 마리의 ‘신체’들이 이쪽을 보고 있다.
정확히는 내 밑에 깔린 녀석을 보며 입맛을 다시는 중.
“먹어.”
기다렸다는 듯이 덮치는 녀석들.
아그작, 아그작.
두칠의 신체가 사라져 간다.
그럴수록 불쾌한 느낌이 엄습했다.
타인의 기억이 들어오는 느낌은 정말 최악이다. 특히나 더러운 기억들이라 그런지, 당장에라도 토할 것 같다.
사실 이 더러운 느낌이 싫어 웬만하면 기억을 뽑지 않는 것도 있다.
그래도 수고한 보람은 있었다.
“……대부? 이 자식은 뭐지.”
이제 꼬리에서 몸통을 잡았다.
나는 아공간에서 새 옷을 꺼내 입고는 자리를 떴다.
닫혀 가는 공간.
절규하는 무리 속에는 두칠과 전대인이 섞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