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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10화 (11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10화>

돌아온 월요일.

오늘 난 아카데미로 향하는 대신 용준이와의 약속을 지키러 강백 고등학교로 향할 계획이다.

“그래도 나름 후견인으로 가는데…….”

용준이 얼굴도 있고 하니, 좋은 모습을 보여 줘야겠지?

늘 입던 트레이닝복 대신 전에 어머니께서 사 주신 남색 슈트를 집어 들었다. 100퍼센트 장인의 손길로 이뤄진 맞춤 슈트.

기성 사이즈는 입을 수 없는 몸이라 어쩔 수 없이 선택했는데, 이렇게 처음으로 입게 됐다.

“좀 끼네.”

이놈의 몸뚱아리는 아직도 성장 중인가 보다. 누가 ‘거인’ 아니랄까 봐 한계가 없다니까.

꽉 끼는 게, 농담으로도 편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늘 입던 트레이닝복 대신 슈트를 입어서일까. 아침부터 우리 봄이가 자지러진다.

“우와! 아빠 뭐야?! 아빠 변신했어! 넘넘 멋있다아! 최고로 멋있어!! 버찌야, 아빠 봐. 변신했어! 최고야!”

방방 뛰며 아빠 ‘최고! 최고!’라 하는 봄이.

버찌도 그 옆에서 ‘에오오옹!’거리며 흥분 상태다.

가족들의 반응도 말해 뭐해.

“기혁이 왔어? 얼른 밥 머…… 어머, 어머. 세상에…… 이게 뭐야. 아들 뭐야?! 우리 아들 맞아? 무슨 일인데 이렇게 차려입었어! 옷 전에 엄마가 사 준 거 맞지? 와…… 미쳤어! 어쩜 이렇게 잘 어울려!!”

요리하다 말고 다가온 어머니는 한참을 내 주위를 맴돌며 흥분하시더니, ‘몇 개 더 사야겠어.’라며 다른 슈트를 사 줄 계획을 잡으셨고.

“오오오-! 역시 우리 아들 건장하구나! 아주 가슴이 탄탄해! 이 아빠 못지않아.”

아버지는 옷보다는 나의 발달된 흉근을 칭찬해 주셨다.

“보기 좋네. 자주 그렇게 입어.”

수혁 형은 엄지를 치켜세워 줬고.

“후아아암…… 어, 기혁이 너 옷? 어색…… (짝!) 아!!”

잠이 덜 깬 모습으로 내려오던 민지 누나는 내 옷을 품평하다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어머니에게 등짝을 맞았다.

“그런데 왜? 무슨 일인데 우리 아들이 이렇게 차려입은 거야.”

“아, 학교에 가 봐야 해서요.”

“학교? 무슨 학교? 아카데미?”

“고등학교요.”

“고등학교? 거길 왜?”

“용준이라고, 보육원에 동생 있거든요. 걔 선생님 좀 보려고요.”

“할머니! 용준이 오빠, 강백 고등학교 다녀요!”

“그렇구나. 이를테면 학부모 상담이네?”

“그런 셈이죠.”

동그랑땡을 먹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한 답인데, 결과적으로는 실수였다.

순간 어머니의 눈이 날카로워지시더니.

“아냐, 아냐. 아니야.”

불과 1분 전만 해도 만족스럽게 웃으셨으면서, 이제는 성에 안 찬다는 표정을 지으셨다.

“이리 와. 아무래도 안 되겠어.”

“자, 잠깐만요. 동그랑땡.”

“지금 동그랑땡이 넘어가?”

결국 나는 밥을 먹다 말고 다시 드레스 룸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나왔을 때, 나는 내가 평소 절대 하지 않는 것들을 하고 있었다.

시계, 벨트, 이름도 모를 기초화장. 마지막으로 머리에 바르는 모든 것들.

솔직히 내가 보기에는 똑같다. 이상한 가르마만 타고, 오히려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대체 이런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따지기에는 어머니가 너무 좋아하셨다. 요 근래 본 표정 중 제일 밝으시더라.

그러며.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포마드야. 햐~ 취한다. 우리 기혁이 누구 새끼야. 왜 이렇게 멋져! 엄마 혼절하겠어, 정말.”

그래, 나 하나 희생해서 만족하셨으면 됐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이 의외의 사람도 만족시켰는데, 바로 나의 사랑스러운 딸내미였다.

“봐봐! 우리 아빠야. 어때 멋지지?”

우와아아-!!

유치원 앞에서 인사하는 애들을 마구 모으더니, 막 아빠 자랑을 하더라.

나는 우리 딸의 코가 그렇게 높은 줄 처음 알았다. ‘우리 아빠가 이 정도라구!’ 할 때는 코가 하늘을 뚫을 기세였다.

그래도 내 모습이 봐줄 만한 모양인지,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비교적 나를 자주 본 현지도.

“우와아아! 기혁이 아저씨 짱 멋있어. 연예인 같아!”

현지 엄마도.

“어머머머머, 기혁 씨. 너무 잘 어울려요. 평소에도 이렇게 입고 다니세요.”

오가며 인사하던 엄마들까지 합세하며 아침부터 인파에 묻혔다. 하마터면 사인까지 할 뻔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괜찮나?

물론 나도 내가 괜찮은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좀 기대 이상인데?

괜히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들뜬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닌가 보다. 마왕도 들뜨니까 말이다.

“……흠.”

찰칵.

사진을 찍어서 코코아톡에 올린다.

기다렸다는 듯이 빗발치는 톡들. 안 봐도 뻔하다. 태반이 진유리겠지.

나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운전대를 잡고 강백 고등학교로 향했다.

변신. 칭찬. 관심.

성공적.

* * *

용준이의 담인 선생님과 만나는 자리.

처음에 깜짝 놀랐다. 담임 선생님이 생각 외로 젊은 분이어서.

그래서일까. 목소리가 굉장히 쾌활하고 톤도 높았다.

무엇보다 말이 많았다.

“용준이는요. 착하고 성실하고 정말로 우수한 학생이에요. 제가 교사 생활 중에서도 단연 최고랍니다? 후훗.”

“한눈에 알아봤답니다. 아, 쟤는 뭘 해도 되겠구나. 성적도 우수해요. 사교성도 좋아요. 리더십은 또 얼마나 있게요. 친구들이 따르는 아이였죠. 사실 저도 용준이가 반장이 되길 내심 바랐었는데, 글쎄 반장은 다른 친구가 낫다며 양보까지 하더라고요. 어쩜, 아이가 겸손하기까지 하더라니까요.”

예상대로 칭찬 일색이다.

당연하지. 용준이는 내가 봐도 바른 아이니까.

알고 있음에도 칭찬받으니까 좋다. 뭐가 가슴 언저리가 간질간질. 입꼬리가 슬금슬금하며 뿌듯하고 대견하고.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부모님도 없이 힘든 환경인데도 구김살 없이 자란 걸 보면 기특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다 이게 기혁 씨 같은 좋은 형이 있어서겠죠. 개인적으로 감사해요.”

“아닙니다. 다 용준이가 바른 거죠.”

사실 많은 게 의문이긴 하다.

일단 저분이 왜 나한테 감사한지 의문이고.

입학한 지 얼마나 됐다고 용준이에 대해 저렇게 확신하는지도 의문이며.

또 나랑 눈을 마주칠 때마다 왜 얼굴을 붉히는지 의문이기도 했다.

하나, 저분은 선생님.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나. 일단은 묵묵히 듣자.

그런데.

“글쎄 용준이가요, 얼마나 착하던지…….”

“성적을 보면 아까워요. 용준이 지금 성적이라면 한국대도…….”

“동생들도 그렇게 잘 챙긴다면서요? 몇 번 봤어요. 형 보러 오던데요? 정말 예쁜 아이ㄷ…….”

……대체 언제까지 들어야 하지?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맥락도, 전개도, 왜 비슷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을까. 술을 먹은 것 같진 않은데.

안 되겠다. 나는 시계를 보고는 화제를 돌렸다.

“아시다시피 용준이는 내년에 아카데미 시험을 볼 예정입니다.”

“아! 알고 있어요! 저희 학교에서도 미리미리 준비 중이랍니다.”

“준비라는 게…….”

“추천서 같은 거요. 이를테면 저희 교장 선생님 추천…….”

아카데미 입학은 18살부터다.

18살. 마나를 각성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지원 가능했다.

지원서를 내는 것도 무료. 시험비도 무료. 심지어 지방에서 오는 수험생에게는 교통편이나 숙소까지, 전부 아카데미에서 제공한다.

다만 합격률이 극악이라 문제지.

여담이지만 나이 제한도 있다. 18살 이상 20살 이하. 3수까지 가능하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원자들이 고등학교에 다니며 아카데미 시험을 치르는 게 보통이었고, 그래서인지 학교는 합격률을 높이려고 이것저것 준비한다고는 들었다.

무슨 명문대에 입학시키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저들은 알까…… 그렇게 준비하는 서류들을 위그드라실은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로 부른다는 것을.

이런 내 생각도 모르고 선생님은, 여전히 학교가 준비하고 있는 것을 열심히 설명 중이시다.

끊자. 이분은 안 끊으면 안 된다.

“저희 용준이 때문에 고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편하게, 뭐든지 말씀해 주세요, 기혁 씨.”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편하게 말하겠습니다. 혹시, 용준이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에 대해 아십니까?”

“아…… 그게요…….”

곤란한 표정으로 말하는 선생님.

사족이 길어지니 요약하자면, 알고 있단다. 그리고 이런 경우가 용준이뿐만이 아니란다.

“매년 있는 일이에요. 신생 에이전트나, 파티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에이전트도 학생들에게 접촉해요. 마나를 각성한 학생들에게 말이죠.”

일단 아카데미 소속이 되는 순간 ‘사전 접촉’은 엄격히 제한된다. 아카데미 학생을 영입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축제 기간에 열리는 ‘영입 시장’뿐.

이게 에이전트 업계의 룰이다.

이를 어기고 몰래 접촉한다? 모든 에이전트의 몰매를 맞고 당장 간판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어디든지 얄팍한 수를 쓰는 사람은 있기 마련.

아예 입학시험을 치르기 전에 접촉하는 것은 룰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니기에, 이처럼 미리미리 주워 담는 에이전트도 많았다.

“설마, 용준이도…….”

“아닙니다. 아무래도 걱정이 돼서.”

하나, 내가 걱정하는 건 이런 것들이 아니다.

분명히 용준이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설마 계약하자고 접근한 에이전트가 협박을 동반한 계약을 강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아는 용준이는 권유와 협박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진 않다.

고로.

‘이 선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거지.’

슬슬 일어나야겠다.

나는 대화를 마무리하며 몸을 일으켰다.

선생님의 얼굴에서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이는데, 이만큼 말하고도 직성이 안 풀리다니. 다른 의미로 놀랍다.

“맞다! 깜빡할 뻔했네.”

“혹시 할 말이 있으신가요?”

“아닙니다. 별건 아니고, 애들 먹을 군것질거리를 좀 준비해서요. 나눠 줘도 될까요?”

“아…… 오히려 저희가 감사하죠.”

“다행이네요. 급식 때문에 안 될까 싶었거든요.”

“에이, 간식인데요. 그 정도는 괜찮아요.”

“그쵸. 간식이죠. 하하. 선생님들 것도 주문해 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아, 그러시지 않으셔도 되는데.”

잠시 뒤. 애들 먹일 군것질거리들이 도착했다.

운동장을 가득 채우는 트럭. 닭이 닭다리를 들고 엄지를 세우는 로고가 박힌 트럭이었다.

1인 1닭. 전교생에게 돌아가는 치킨.

다들 간식으로 닭 한 마리쯤 먹잖아? 나만 그래?

“상담도 했고, 간식도 줬고.”

이제 남은 건 협박한 놈을 찾는 건데.

나는 답답한 슈트를 벗으며 감각을 펼쳤다.

냄새가 난다. 코끝을 찌르는 냄새. 나는 뒤돌아서 걸어갔다.

담배 냄새가 나는 곳으로.

* * *

당연한 말이지만,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내부 관계자다.

자, 그러면 학교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

교사? 아니다.

교사도 학교라는 집단의 내부 관계자가 맞지만, 지금 내가 찾는 건 학생들에게 벌어지는 문제.

학생의 사정은 학생들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다.

그리고 내 오랜 경험상, 이런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이들은 소위 말하는 ‘노는 놈’들이다.

“맞아! 이 오빠 진짜 검호야! 여기 사진 봐봐.”

“지인짜네? 헐…… 오빠, 사진보다 실물이 훨씬 나은데요? 사진 완전 에반데?”

“형, 옵티멈은 어떻게 들어가요?”

“오빠, 여친 있어요?”

“너 뭐야아아~ 내가 먼저 말하려 했는데에!!”

조금 전까지 담배로 너구리굴을 만들던 아이들이, 폰으로 나를 확인하더니 소란스러워졌다.

일단 개인적으로 저쪽에는 볼일 없다.

나는 몸을 돌려 머리를 박고 있는 애들을 내려다봤다.

“기상.”

후다닥!

머리를 박고 있던 놈들이 번개같이 일어선다.

내가 물어볼 게 있다는데 대뜸 욕부터 박은 놈들이다.

“얘들아, 하나 물어보자. 내가 니들 담배 피운다고 뭐라 했니, 아니면 너희한테 시비를 걸었어? 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욕을 해. 응?”

“…….”

“대답.”

“아니요…….”

“크게.”

“아닙니다!!”

잔뜩 얼어 있는 놈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난 말이야. 너희들이 담배를 피우든, 수업을 째든 간에 상관 안 해. 너희랑 나랑 무슨 사이야? 막말로 너희 몸, 너희가 버리겠다는데 내가 왜 신경 써. 무슨 의리로. 다만.”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꽉 쥐며.

“사람 봐 가면서 덤벼라. 오늘은 학교라 넘어가는데, 밖에서 이렇게 개기면 그땐 정말 맞을 수도 있단다. 마나 따위 안 써도 내 주먹이 꽤 아파요.”

꿀꺽, 침을 삼키는 녀석들.

난 피식 웃으며 마법으로 뼈 의자를 생성했다.

또다시 호들갑을 떠는 여자애들. 저게 소녀 감성인가. 이 분위기에서도 시끌시끌했다.

“혹시 담배 피우고 싶은 놈은 마음대로 해. 괜찮으니까.”

“아, 아닙니다.”

“좋아, 너희가 알아서 하고. 내가 물어볼 게 있어…….”

대충 설명했다. 용준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모른다고 말하지 마라. 특히 너희 둘이랑, 거기 여자애들 중에 너. 그래, 너 말이야. 너희들 마나 각성한 거 다 알아. 그런데 너희들이 모른다고 말하면, 내가 화가 날 수도 있어요.”

“그, 그게…….”

“편하게 말해. 너희들한테 뭔가 피해가 오지는 않게 할 테니까. 내가 누구라고?”

“거, 검호요.”

내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눈치를 보던 애들이 하나둘 말하는데.

“요즘 선배들이 찾아와요. 돈 많이 버는 일이 있다고요.…….”

“저는 작년에 아카데미 시험 한 번 떨어졌거든요. 올해 다시 볼 건데, 이것저것 훈련 비용도 대 준다고 하고…….”

“만약에 협박했다면 그 선배들일 거예요. 저희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 선배들은 진짜 질이 나쁘거든요. 소문도 좋지 않고요.”

정확히 예상대로였다.

그래, 정식 에이전트라면 협박 같은, 3류 양아치나 하는 수법을 쓸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질이 나쁜, 정상이 아닌, 구린내가 나는 조직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맞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아공간을 열어 병을 꺼낸다.

영혼 추출제. 여기서는 마약처럼 쓰이는 물건이었다.

“이거 아는 사람?”

몸을 떠는 몇몇들.

잡았다, 요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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