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08화>
몸소 시범을 보여 주며 간략한 설명을 마친 연수지는.
“첫날은 편하게 둘러보세요.”
이 말을 남기고 한발 뒤로 빠졌고, 박기혁과 일행은 행인이 되어 도심을 돌아다녀 봤다.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보이고, 커플도 보인다. 직장인 무리도 보이고, 벌써부터 술을 마시는 손님도 보였다.
밤에는 조금 달랐는데, 일단 시끄러워졌다.
왜 낯보다 밤이 시끄러울까 보니, 취객들이 많았다. 술이 얼큰하게 된 사람들이 ‘나 술 취했소!’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광고를 해 댔다.
그래서 감상은?
“별거 없는데?”
“맞아요. 일반적인데요.”
더도 말고 늘 보는 일상이었다.
뭘 보라는 거지? 모르겠다. 모두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때, 연수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하죠? 맞아요. 이게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도시죠.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당히 북적대는. 이 모습 잘 기억해 두세요. 내일부터는 보기 힘들 거니까요. 훗. 이제 해산합니다. 푹 쉬어 두세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뒤돌아서는 연수지.
다음 날. 각자 찢어져 경찰들과 행동했다.
그리고 경찰서를 나서는 모두에게 연수지의 당부가 날아드는데.
“이제부터 다를 거예요.”
결과적으로, 연수지의 말은 맞았다.
경찰서 문이 닫히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 울리는 무전.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시끄럽다.
단지 우리가 모를 뿐.
* * *
달리는 한준우와 경찰들.
“준우 씨.”
“알았습니다.”
경찰관이 가리키는 골목을 따라 한준우가 질주했다.
- 제길, 여기는 1조. 놓쳤다. 위치 추적 바람.
- 일당 현재 3번가로 도주 중. 다시 말한다. 3번가로……
‘3번가…….’
한준우의 머리에 지도가 그려진다.
박기혁은 자신에게 항상 ‘전장을 입체적으로’ 봐야 된다고 했고, 한준우는 그와의 오랜 훈련 끝에 시야를 넓힐 수 있었다.
여기서 3번가까지 최단 거리는?
‘여기.’
판단과 동시에 몸이 움직였다.
벽을 타듯 밟고 뒤돌아 안착. 담벼락 위를 따라 달려갔다.
그러다 담벼락이 끊어지는 부분에서 몸을 날려 건물의 벽을 밟았다. 그러고는 마나를 일으켜 벽을 타고 달렸다.
체조 선수 같은 유려한 움직임. 그러나 속도는 단거리 육상 선수만큼이나 빠르다.
단숨에 옥상으로 오른 한준우는 이제는 육상 선수에서 멀리 뛰기 선수가 되어 건물들 위를 뛰어넘었다.
그렇게 막 다섯 번째 건물에 안착할 때, 들려오는 소리.
“헉헉! 졸라 끈질겨 시X.”
“너가 쉽다매! 그냥 들고 오기만 하면 된다 했잖아.”
“개X발. 나도 이럴 줄 알았냐. 말할 여유 있으면 더 달려. ‘타운’까지만 가면 돼.”
보석상을 턴 3인조 강도단.
주인을 ‘슬립(Sleep)’으로 재운 뒤 보석을 싹 쓸어 가는 방식.
하지만 이 어설픈 강도단은 보석상에 ‘마나 센서’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보석상 내에서 마나가 사용되면 센서가 발동되고, 주인이 일정 시간 안에 이상 없음을 확인해 주지 않으면 바로 신고가 들어가는 장치.
현재 그들이 쫓기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안 되겠어. 뚫자. 너랑 내가 나서면 돼.”
“그래도 사람이 다치는…….”
“씨이X아알! 야! 이대로 잡히면 X돼.”
“무, 물건만 놔두고 가면, 되지 않을까?”
“말이라고 하냐. 상납금 못 내면 X되는 건 마찬가지야.”
“젠장! 괜히 들어간다 해서.”
투덕투덕하던 3인조가 결심한 듯, 정면으로 질주했다.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다면 그냥 부숴 버리겠다는 의지가 사뭇 느껴졌고, 잠자코 정보를 캐내려던 한준우도 마음을 바꿨다.
“동작 그만.”
한준우가 옥상에서 떨어졌다.
사뿐, 한 톨의 먼지도 일으키지 않을 만큼 깃털 같은 착지.
3인조에게 검을 겨눴다.
“마지막 기회다. 지금 자수하면 다치지 않는다.”
불안하게 떨리는 3인조의 눈빛.
핏발 선 눈으로 한준우를 뚫어지게 보던 놈들은 결국, 최악의 선택을 하는데.
“죽어어어!!”
강화계 초인으로 보이는 녀석이 돌진해 오고, 이에 맞춰 ‘슬립’이 걸려 온다. 나머지 한 놈은 투창을 꺼내 한준우를 겨냥했다.
순식간에 이뤄진 합격. 아마추어치곤 제법 깔끔한 합격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수준.
한준우의 검이 느릿하게 움직인다.
스릉.
“어?”
일격에 선두에서 달려오던 놈의 손목이 날아가고.
스릉.
이격에 ‘슬립’의 영역을 벗어남과 동시에, 마법을 쏜 녀석의 손목도 날린다.
그리고 삼격으로 날린 단검은……
“커헉.”
쏘아진 단창을 정확히 반등분하며 놈의 어깨에 박혔다.
바닥에서 꿈틀대는 녀석들. 살려 달라 눈물 콧물을 다 짜고 있다.
“쯧, 그 실력으로 무슨.”
간단하다. ‘춤’을 출 가치도 없을 만큼 손쉬운 놈들. 너무 손쉬워 맥이 빠졌다.
한준우는 무전을 들었다.
“한준우입니다. 3인조 강도단 검거했습니다.”
- 수,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거기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숨을 돌리기를 잠시.
무전이 또 울렸다.
- 한준우 씨, 사건 발생했습니다. 초인 두 사람이 싸우고…….
쉴 틈이 없네.
한준우가 골목 사이로 뛰어갔다.
* * *
같은 시간, 메르헴과 진유리도 뛰고 있었는데.
“왜 날 수 없냐고!”
“유리가 비행 허가서 없잖아요.”
“내 말은, 피해만 안 주면 된다며! 난다고 내가 누구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잖아. 안 그래?”
“기운 넘치네요. 빨리 준비나 하세요.”
“알았어.”
대기 중이던 경찰 병력에게 눈인사를 하며 두 사람이 바로 현장으로 들어갔다.
담당 경찰관 한 명이 따라붙는다.
“빨리 도착하셨습니다.”
“저기인가요?”
“네, 저기가 마약을 제조하는 곳입니다.”
“공장이라 해서 진짜 공장일 줄 알았는데.”
공장은커녕 진유리 눈에 보이는 건 흔한 오피스텔이다.
당장 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원룸이나 투룸이 있을 것 같은 규모의 오피스텔.
마약 제조업자 일당은 저기서 마약을 제조해 클럽과 술집, 유흥업소에 넘겼다고 한다.
쓰레기네, 진유리의 눈이 사납게 물든다.
“저항 중이라고 했죠?”
“네, 차단막 안으로 들어가시면 총성이 들릴 겁니다.”
소리 차단 마법진 안으로 발을 내딛자 경찰관의 말대로 총성이 들렸다.
탕탕-!!
“쏴, 쏴!!”
“오지 마! 오면 터트린다!! 다 같이 죽는 거야!!”
꽤 격렬히 저항하는 일당들. 생각 이상으로 규모도 컸다.
“터트린다는 말은 뭐예요?”
“현재 저들은 심어 놓은 폭탄을 터트리겠다고 주장하는 중입니다. 인질도 확보됐다면서요.”
“인질요?”
“근처에서 자취하는 학생들로 보입니다.”
“아…….”
상황 파악 끝.
진유리가 메르헴을 본다.
“메리.”
“이미 시작했어요.”
메르헴의 주술이 은밀하게 건물을 뒤덮었다.
현재 공장은 일당들이 펼친 실드로 둘러싸인 상태.
하지만 그건 마법이고, 메르헴은 주술사다. 주술과 마법은 엄연히 궤를 달리하는 능력. 메르헴의 주술이 실드를 무시한 채 건물을 잠식해 나갔다.
그리고.
“준비됐어요?”
“응.”
메르헴의 안광이 녹색으로 빛나는 순간.
주술 순환(循環)
무장 해제
무장해제.
범위 내의 마나를 해제시킨다.
디스펠과 비슷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한 가지. 이걸 당한 술자는 모른다. 마법이 해체됐는지를 말이다.
위력을 줄이는 대신해 은밀함을 추가한 주술적 디스펠이었다.
곧바로 진유리가 달려간다.
달려가는 그녀의 위로 워 아머 ‘드래고니안 모델-2’가 입혀졌고, 제조업자 일당의 눈을 피해 은밀하게 벽을 뚫고 건물로 진입.
일단 인질들을 확보한다.
청 테이프로 포박되어 있는 일단의 민간인들.
“많이 놀랐죠? 이젠 괜찮아요.”
다들 안도의 눈빛으로 진유리를 보는데 한 명이 웁웁웁, 말을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테이프를 때주자.
“푸하……! 제 친구들이 끌려갔어요!”
끌려가?
진유리가 조용히 문을 나와, 건물 내부로 향했다. 천천히 어둠에 동화돼 가는 진유리. 잠시 뒤, 빛이 보이고 그곳에 다다랐는데.
그녀 앞에 보인 광경.
발가벗겨진 남녀. 약에 취한 여자 한 명은 이미 피를 뽑히고 있었고, 여자의 피가 똑똑 떨어지는 비커에는 각종 유리관들이 이어져 무언가 만들어지고 있다.
“음, 안 되겠네.”
적당히 하려 했는데.
너희는 안 되겠어.
“드래고니안, 락 온.”
진유리의 시야에 3D 평면도가 펼쳐지고, 적들의 위치를 추적. 목표 지정.
지정된 적을…… 처리한다.
시스템 드래고니안
용각
龍角
드래고니안의 해치가 오픈. 용의 뿔이 쏟아졌다.
진도하의 ‘용각’을 진유리식으로 재해석한 기술.
“사냥 시작!”
용각이 적을 노리고 쏘아지고 있었다.
……
…
잠시 뒤.
“잠깐만요, 진유리 씨! 죽이면 안 됩니다!! 그 손 놓으세요.”
달려오는 경찰관과 손에 들린 두목을 번갈아 보던 진유리는.
“……쩝. 아쉬워라.”
아쉬워하며 손을 놓는다.
목이 잡혀 있던 남자가 스르르 내려와 바닥에 쓰러졌다.
이미 눈알이 반쯤 까뒤집힌 상태. 일부 경찰관들이 남자에게 달라붙어 수갑을 채우고 응급 처치를 한다.
“진유리 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제가 주의도 줬잖습니까.”
“그래서 한 명도 안 죽였잖아요.”
“네, 죽이진 않았죠. 대신 전부 구멍이 뚫렸잖아요.”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애들이 너무 약한걸요.”
“여튼, 손속이 과해요! 잘못하면 과잉 진압으로 골치 아파질 수 있습니다. 아셨어요?”
“네, 네. 알았습니다.”
진유리가 경찰관을 지나쳐 메르헴에게로 향했다.
“나이트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유리한테 맞는 게 있긴 한가요?”
“있을걸? 아마도 있을 거…… 음, 이 말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아…….”
“그건 그렇고, 걱정이에요.”
“뭐가.”
메르헴이 현장을 둘러보고는.
“기혁이 이 꼴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 하고요.”
“죽일 것 같아?”
“아마도요.”
“풋.”
얘가 아직 기혁이를 모르네.
진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기혁이는 절대 안 죽여.”
누구 좋으라고 죽이나.
“오히려 이렇게 말할걸.”
이 아까운 걸 왜 죽이냐고.
* * *
“이 아까운 걸 왜 죽여요.”
질질질.
살려 달라며 몸부림치는 녀석의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중이다.
다소 과격한 모습인가.
담당 경찰관이 바짝 얼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러엄…….”
“그냥 확인차예요. 확인차. 대질 심문 같은 거죠.”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인천에서도 외곽. 지나가는 사람도 적은 변두리의 어느 건물이다.
나와 여기 있는 경찰관은 여기서 마약. 그러니까, 요즘 유행하는 ‘통킹콩’이 제작된다는 제보를 듣고 수사차 나온 거다.
그런데 왜, 수사차 나왔는데 이놈은 나한테 잡혀 살려 달라 외치고, 주위는 엉망진창이 됐을까.
맞아. 온 김에 정리해 버렸다.
약할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더 약하더라고.
사실 확인만 하려고 왔는데 본의 아니게 본거지를 털어 버린 것이다.
방을 열고 툭 던졌다. 이미 와 있던 놈들이 사이좋게 신입을 받아 한쪽 구석에 새워 뒀다.
딱, 손가락을 튕기자 뼈 의자 하나가 생성된…… 아, 나만 있는 거 아니지.
딱!
하나 더 생성해 냈다.
“앉으세요.”
“고, 고맙습니다.”
뼈 의자에 앉은 우리와 무릎을 꿇고 있는 마약 제조업자 일당.
기묘한 대치 구도에서 내가 가장 먼저 뱉은 질문은.
“마약 이름이 왜 ‘통킹콩’이야?”
솔직히 아까부터 궁금했어. 통킹콩. 뭔가 웃기잖아.
저들도 이 질문이 어이가 없는지 답은 않고 멍청하게 보는 중. 그래도 한 놈이 충실하게 내 질문에 답했다.
“그, 그…… 킹콩처럼 날뛴다 해서…….”
“이해했어. 심플하네. 너 나와서 저 옆으로 가.”
내 행동에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는지 녀석들이 뒤룩뒤룩 눈깔을 굴렸다.
“이제부터 간단해. 여기 있는 경찰관님이 질문하면, 너희는 답한다. 답이 만족스러우면 저기로. 마지막까지 이쪽에 있는 놈들은.”
손가락으로 한 놈을 콕 찍었다.
이 구린내 나는 영혼 속에서도 독보적인 악취를 풍기는 영혼. 이 공장의 대가리였다.
손가락을 튕기자 허공에 뜬 놈. 허공에서 허우적허우적 발버둥 치는데.
내가 손을 올리는 순간.
콰앙!
“커억!!”
천장에 부딪쳤다.
다시 내리는 순간.
콰앙-!
“크어어어억!”
이번에는 바닥에 부딪친다.
이렇게 왕복 다섯 바퀴를 돌리고.
콰앙! 콰앙-! 콰앙!! 콰앙-!!
내려왔을 때, 사지가 부러진 상태로 축 늘어진 대가리 녀석이 보인다.
“저기, 박기혁 씨. 죽이시면…….”
“걱정 마세요. 사람 쉽게 안 죽어요.”
딱, 손가락을 튕기자.
육망성 마법진이 뒤집히며 하얀색 육망성으로 변하더니 우득우득! 부서진 뼈를 맞춰 갔다.
살덩이가 인간이 되어 가는 기적.
신체들이 제자리를 잡아 간다. 물론 이에 따른 고통도 있을 거지만.
내 알 바인가?
우득우득.
“아아악!!”
뚝뚝, 허공에서 물이 떨어진다. 눈물에, 콧물에, 소변까지…… 물이란 물은 죄다 흘려 댔다.
곧이어 뼈가 맞춰지며 정상이 된 대가리 녀석이 제 오물 위로 철퍼덕 쓰러졌다.
“자, 이렇게 된다. 알기 쉽지? 시작하시죠.”
경찰관이 꿀꺽, 침을 삼키더니 패드를 들고 하나씩 물었다.
질문을 받을 때마다 빗발치는 손들. 마치 아이돌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제발 나를 찍어 달라며 애절하게 소리쳤다.
그리고 모든 질문이 끝났을 때.
약속은 약속이다.
“경찰관님, 여기 이쪽은 수갑 채워 데려가세요.”
“저기,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인데, 죽이시면 안 됩니다. 진짜로 죽이시면 안 돼요!”
“걱정 마세요. 죽으려 해도 살려 둘 테니까.”
끼익, 문이 닫히고.
정적이 흐른다.
아까부터 내심 걸리는 것이 있었다. 생선 가시처럼 목구멍을 찌르며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
품에서 병을 던졌다. 바닥에서 깨지는 유리병. 이 녀석들이 만들고 있던 마약이었다.
“너희들이 왜 ‘영혼 추출제’를 만들고 있냐?”
영혼 추출제.
신체에서 영혼을 강제로 추출하는 물약.
그리고 이건.
흑마법의 ‘제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말 안 해? 몰라? 모르면 하는 수 없지.”
쿵! 쿵!! 쿵!!!
“걱정 마. 깨끗하게 치료해 줄 테니까.”
이렇게 우리의 현장 수업 1주차가 끝나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