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05화>
별 시답잖은 놈들 때문에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봄이와의 힐링 여행 첫날은 아주 순조로웠다.
고운 모래를 밟으며 백사장도 걷고, 봄이 팔뚝만 한 생선도 먹고.
봄이도 어지간히 만족스러운지 호텔에 가는 동안에도 연신 ‘아빠, 좋아. 아빠, 행복해.’라며 까르륵 웃어 댔다.
그러고는 호텔에서 까무룩 잠이 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천사 같던지.
완벽한 여행의 시작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근처의 아쿠아리움으로 향했다.
사람들에 섞여 내부로 들어가자, 우리를 반기는 건 사방이 유리로 된 벽. 그리고 거기서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들이었다.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농담 조금 보태 어지간한 크기의 해양 몬스터도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우리는 거기서 펭귄도 봤고.
“펭귄! 아빠, 펭귄 봐 봐. 저기, 저기야. 똥실똥실, 뒤뚱뒤뚱. 이렇게.”
“잘하는데? 아빠보고 펭귄처럼 걸어 봐.”
“이렇게. 뒤뚱뒤뚱.”
인어 공주도 봤다. 물론 진짜 인어는 아니고, 호흡기를 낀 인어 공주였다.
“우와아…… 공주님! 공주님이야!!”
“그래, 공주님이네.”
“안녕하세요, 공주님! 손손손.”
수족관 안에 등장한 인어 공주에 봄이뿐만 아니라 근처의 아이들까지 전부 벽에 달라붙어 손을 흔들었다.
인어 공주는 멋지게 턴을 하며 눈을 찡긋 깜빡이는데, 과연 자본주의의 눈웃음. 눈웃음 하나에도 절도가 느껴졌다.
이밖에도 봄이는 가오리를 보며 “아빠, 쟤 울어.”라고 말하기도 하고, 거북이를 보고는 헉 놀라며 “여기 용왕님도 있는 거야?!”라고도 말했다.
그렇게 즐겁게 돌아보다, 드디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이 아쿠아리움에 온 궁극의 목적. ‘네모’를 만나게 되는데.
“우와아아아아아아아!!”
“호오.”
“아빠, 저기 네모! 파란색. 줄무늬. 뽀뽀 입술. 네모가 확실해!!”
“그래?”
“맞아. 틀림…… 어? 어? 네모가 저기도 있어. 저기도, 저기도오.”
“네모 가족인가 봐.”
“네모 가족 많아. 엄청 많아. 손가락, 발가락보다 많아. 우와아!!”
아쿠아리움 한쪽 벽면을 유영하는 ‘네모 떼’의 등장에 봄이가 자지러지는데, 솔직히 이건 인정이다.
머리 위로 파란색의 물고기가 우르르 몰려가는 장면은 내가 봐도 장관이더라. 수족관을 이런 식으로 지을 수 있다니, 참 기발한 발상이었다.
참 멋졌다.
바다에서 마지막 날.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건 기대 이하였다. 내가 아니라 봄이의 반응이 말이다.
“뿌우우. 아빠, 이거 재미없어.”
“그래?”
“아빠, 이리이리. 요기에 귀.”
“응? 왜?”
“봄이는, 아빠랑 하늘 나는 게 훨씬 재미있어.”
원래 우리 몸은 전보다 강한 자극을 원한다. 그래야 짜릿하거든.
그런데 봄이는 이미 하늘을 날아 본 몸. 이제 느릿하게 움직이는 케이블카에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몸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래도 실망 마라. 하이라이트가 남아 있으니.
바로 불꽃놀이.
우리 봄이, 밤바다에서 하는 아빠의 폭죽놀이는 혼절할 정도로 좋아해 줬다.
“아빠, 아빠.”
허공에다 아포칼립스를 새기고.
육망성이 떠오른 순간.
콰지지지지직-!!
얼음이 하늘을 채운다.
불꽃놀이를 불꽃으로 시작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시작!
하늘에 얼음 꽃이 핀다. 흐드러지게 핀 얼음 꽃은 얼마 못 가 떨어지고, 흩어진다. 그리고 흩어지는 물방울에 하얀 연기가 깃들며 화르르륵 타올랐다.
이번에는 불꽃. 불꽃이 커다란 꽃 한 송이를 피운다.
그리고 피어난 꽃에서 불꽃의 날개가 펄럭이며 새가 날아오르고, 새가 바다 위를 돌더니 번개를 남기며 흩어짐과 동시에.
별이.
별이 일대를 감싸고.
어제 본, 네모 가족을 닮은 별의 파도가 바다 주위를 감쌌다.
“우아아아아아아아아!!
짝짝짝!!
봄이는 물론이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까무러칠 듯 환호했다.
“아빠, 대단해에!!”
“훗. 아빠 대단하지이?!”
“응응! 우주 최고야!”
이번만큼은 생색 좀 내야겠다.
내가 이 폭죽놀이를 보여 주려고 시청에 공문 보내고, 허가서 받는다고 했던 작업을 생각하면.
이건 칭찬 좀 받아야 한다.
이렇게 검호 패밀리의 힐링 여행 첫 번째 일정은 무사 종료.
우리는 다음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박기혁과 박봄의 힐링 여행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점.
서울의 어느 카페.
힙한 인테리어로, 소위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곳에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잠시 뒤, 카페에 있던 모두의 시선이 여자를 향하는데.
놀라워서.
복장에 한 번 놀라고, 외모에 두 번 놀란다.
붉은색 트레이닝복. 아니, 트레이닝복이라는 표현보다 ‘추리닝’이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리는 여기저기 헤진 옷.
여자들은 확신했다.
나 저거 알아! 저건 잠옷이다!
저 추레함과 눅눅함. 100퍼센트 잠옷이다!
아무리 한국이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지만, 시내 한복판에 저런 잠옷을 입고 오다니. 여자의 정체를 확인하려 시선이 올라가는데.
이때 두 번째 놀란다.
“헐.”
“뭐야. 존예.”
너무 예쁘다.
여자의 뒤로 아름다울 ‘미(美)’라는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
왜 있잖나. 와, 저런 사람이 연예인을 하겠구나? 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저 여자였다.
그녀의 떡진 머리는 웨이브가 돼 있고, 화장은커녕 씻기라도 했는지 의심스러운 얼굴은 초췌한 가련미를 뿜어내고 있었다.
이쯤 되자, 그 추레한 추리닝마저 빛나는 것 같은 느낌. 새삼 이래서 모델이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런 시선 따위는 안중에는 없는 여자.
“하아아음, 얘는 귀찮게 왜 불러내.”
오히려 보란 듯이 쩌억 하품하며 가려운 머리를 벅벅 긁어댔다.
그때, 한참 머리를 긁는 여자를 향해 뛰어오는 여자.
“선배! 유리 선배!”
“늦어, TMI.”
그렇다.
여자의 정체는 진유리.
방학이 시작된 지 2주일 만에 처음으로 밖에 나온 진유리였던 것이다.
……
…
이 층으로 자리를 옮긴 진유리와 김하니.
“선배, 상태가 왜 이래요.”
“내 상태가 뭐가 어때서.”
진유리가 두리번두리번, 자기 몸을 살펴본다.
“이상 없는데?”
“이상 없어요? 그럼 선배, 그 상태로 기혁 선배 앞에 설 수 있겠네요?”
“절대 안 되지. 기혁이는 내 좋은 모습만 봐야 해.”
“하아, 그 좋은 모습 반만이라도 평소에 하고 다니세요.”
“훗. 나란 여자. 내 남자에게만 아름답지.”
“와아…… 정말 얼굴이 아까워요. 그렇게 쓸 거면 저 주세요.”
김하니의 앙탈에 진유리가 피식 웃으며 딸기 에이드를 마신다.
“……음, 괜찮네. 그래서, 왜 불렀어?”
“그냥요. 선배 보고 싶어서 불렀죠. 전에 집 밖으로 안 나온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선배 심심할까 봐 불렀는데…… 정말 한 발자국도 안 나갈 줄은 몰랐어요.”
“내가 한 발자국도 안 나갔다 했니?”
“선배 상태를 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에요.”
“귀찮아. 쉴 때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내 철칙이야. 네 전화 아니었으면 받지도 않았을걸.”
“영광인가요?”
“이제 알았어? 영광인 줄 알아, 기지배야.”
“풋. 그럼 기혁 선배는요.”
“그걸 말이라고 해? 날아가야지. 난 기혁이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뭐든지.”
피식, 진유리도 말하고선 어이가 없는지 웃었고, 김하니도 못 말린다며 웃는다.
“그렇게 기혁 선배가 좋으면 같이 가자고 하지. 기혁 선배가 무뚝뚝해 보여도 언니 부탁은 곧잘 들어주잖아요.”
“이래서 연애 하수는. 쯧쯧.”
“네?”
김하니는 황당했다.
뭐가 하수?
김하니는 연애 경험이 있는 반면 진유리는 모쏠.
누가 누굴 보고 하수라고 하는 거야.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 말만 하는 진유리였다.
“원래 관계가 깊어지려면 서로의 선을 지켜 줘야 하는 법이야. 기혁이의 선은 봄이고, 나는 그 선을 지켜 주는 거지.”
“와…… 선배 입에서 선이란 말이 나오니까 되게 어색해요.”
김하니가 ‘언니도 발전하네요.’라며 놀라고, 진유리가 ‘훗.’ 하며 거만하게 웃는다.
그렇게 도란도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김하니는 방학 수업 때 일어난 설들을 풀어 주고, 진유리는 마법 수련에 대한 것들을 풀어 줬다.
대충, 마법은 술식 공부보다는 실전으로 훈련하는 게 효율이 좋다 뭐다를 말하고 있는데.
‘실전’이란 부분에서 손바닥을 탁 치는 김하니.
“아, 맞다. 선배! 할 말이 있어요.”
“깜짝이야…… 뭔데?”
“그! 4학년 봉사 활동 있잖아요! 이거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요.”
“뭐?”
“경찰이랑 지자체랑 아카데미, 이 셋이 연결해서 무슨 프로젝트를 한다는 소문이 있어요. 무슨 치안에 관련된 거라던데.”
“음, 뭐지. 더는 몰라?”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저도 어머니한테 들었던 거라서.”
“그렇단 말이지…….”
대체 뭘 하는 걸까. 이왕이면 게이트 같은 거면 좋겠다.
그래야 기혁이랑 오래 함께할 수 있으니까.
인간적으로 너무 오래 떨어져 지냈어.
“하여튼 고생했어, 시스터 TMI. 제몫을 했네. 가자. 언니가 수고비로 밥 사 줄게.”
일단은 의문을 뒤로한 채 밥을 먹으러 가는 진유리와 김하니.
집으로 돌아온 진유리는 곧바로 한 사람에게 달려간다.
박기혁에게 만능의 열쇠 김연희가 있다면.
진유리에게는 해결사 유해련이 있다.
엄마는 다 아니까.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유해련은 이런 딸의 믿음에 오늘도 확신을 줬다.
“지하 조직 소탕하는 거 말하는 거네.”
* * *
한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많은 일들을 겪었다.
진화단에 의한 대규모 납치 사건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모르지만 타천사를 앞세운 셀루티스가 레드 게이트라는 재앙을 깨우기도 했다.
다행히 발 빠른 대처로 두 사건 모두 무사히 도려내는 데 성공했지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두 거대 조직이 빠져나간 자리를 노린 지하 조직들이 너도나도 몸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도려낸 상처가 크면 클수록 감염의 위험이 높은 것처럼, 지하 조직은 병균처럼 빠르게 확산됐다.
그들은 집요하고 끈질기게 세를 넓혀 나갔다.
그리고 이런 지하 조직의 확산에 고통 받는 것은 민간인, 평범한 삶을 사는 시민들이었다.
“……그래서 정부 쪽에서는 초인들이 나서서 처리하자는 말이 나왔고, 적당한 곳을 찾아보다 가장 중립적인 아카데미가 선택된 거야. 이해했니?”
“아하! 이해했어.”
“근데, 이거 아직 아는 사람 몇 명 없는데. 어디서 들었어?”
“비밀이야. 정보 제공자에게 약속했거든.”
“호.”
비밀도 지킬 줄 알아? 진유리, 많이 컸는걸.
유해련은 딸의 맹랑한 모습에 웃었다.
“제법이네. 누군지 몰라도 잘해 줘. 이렇게 정보에 빠른 아이는 그것만으로 가치가 있는 법이야.”
“걱정 마. 내가 간식도 사고, 밥도 먹였어.”
“당연한 거 말하지 마렴. 네 용돈이 얼만데 어디 가서 얻어먹을 생각이니? 무조건 네가 사.”
“엄마는 말을 해도…….”
유해련은 딸의 툴툴거림은 무시하고서 차를 마신다.
“어쨌든 준비하고 있어. 아마 개학하고 나면 바로 투입될 것 같으니까.”
“별거 아니잖아.”
“꼭 그렇지만도 않아.”
‘생태계 붕괴 현상’과 이번에 실행된 ‘게이트 올 리셋’
이 두 가지 일 탓에 벌이가 힘들어진 중소 파티들이 많이 해체됐고.
“……그들 중 일부가 지하 조직으로 빠진다는 정보가 있어.”
“아니, 왜 그런데? 사냥하면 되잖아.”
“사냥보다 이쪽이 더 돈 벌기 쉬운 거지.”
목숨을 걸고 몬스터를 잡는 게 쉽겠나, 마나도 못 쓰는 민간인에게 갈취하는 게 쉽겠나.
너무 뻔한 물음이었다.
“완전히 이해했어. 나가 볼게.”
“잠깐. 앉아 봐.”
유해련이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요즘 기혁이랑은 어떠니?”
“아 또 왜.”
“유리야, 엄마 눈 안 보이니. 엄마 무척 진지하단다.”
“잘되고 있어. 전화도 자주 하고.”
“그래그래.”
유해련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4학년만 투입될 거야. 그렇다면 거의 조로 움직일 거고. 네가 그토록 죽고 못 사는 박 서방이랑 같이 다닐 수 있을 거야.”
“엄마, 기혁이야. 박 서방이 아니라.”
“엄마는 말이야. 진심으로 너와 박 서방 사이를 응원하고 있어. 정말 간절해. 너 아플 때만큼이나 간절하단다. 이건 엄마만이 아니야.”
“엄마, 박 서방 아니라니까.”
“너희 아빠도 얼마나 기대가 큰데. 그 전에 레드 게이트 갔다 왔을 때부터 박 서방, 박 서방 노래를 부르잖니. 믿겨져? 까다롭기로 유명한 네 아빠가.”
“진짜, 박 서방 아니라니까.
“이뿐인가. 너 올라올 때 봤지? 거기 공덕비들 들어선 거. 그거 진룡산 일동이 전부 합심해서 세운 거다? 우리 진룡 일족은 전부 너와 박 서방을 응원하고 있어. 진심으로.”
“아, 진짜! 나 누구랑 말하는 거야.”
“인간은 세 번의 기회를 받는다잖니. 엄마는 네가 세 번의 기회를 다 쓴 줄 알았어. 너도 알다시피 네가 얼마나 아팠니. 네가 이렇게 건강하게 큰 것만 해도 세 번의 기회를 다 썼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더 바라는 게 없었는데.”
덥석, 딸의 손을 잡는 유해련.
“유리야.”
흠칫, 놀라는 진유리.
“왜, 왜 그래.”
“기혁이는 잡아야 돼.”
“아, 왜 그래, 엄마.”
“돈? 펑펑 써. 창고에 있는 거 모조리 다 가져다 써도 돼. 아빠가 뭐라 해도 괜찮아. 엄마가 막아 줄 테니까. 그냥 다 퍼 가.”
“……엄마, 우리 조직 소탕하는 거 이야기하고 있었던 건 알아?”
“기생충 자식들? 나는 네가 무섭지 그딴 기생충들은 하나도 안 무서워.”
“……내가 무섭다고?”
“……사소한 건 신경 쓰지 말고.”
꽈악, 유해련이 딸의 손을 힘껏 쥔다.
꿀꺽.
진유리는 엄마의 절박한 눈동자에 자동으로 몸이 움츠러든다.
“명심해. 박 서방이야. 박기혁, 걔 아니면 너 감당할 사람 없어.”
봉사 활동에서 지하 조직 소탕. 그리고 지금 박기혁으로.
진유리는 이 맥락 없는 전개를 보며 실감했다.
난 엄마 닮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