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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102화 (10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102화>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생태계 붕괴 현상, 킹메이커 작전, 미국 교류단, 셀루티스와 타천사, 마지막으로 레드 게이트까지.

와, 이렇게 열거하고 보니 나 엄청 바빴구나.

여튼 이런 사건들을 여차저차 해결한 뒤 아카데미에 복귀하는데, 황당한 말을 듣는다.

“기혁, 복귀 축하해요. 근데 3일 뒤에 시험이에요.”

“3일 뒤에 복귀 신청하지 그랬냐. 그러면 중간고사 그냥 넘길 수 있었을 텐데.”

“……진유리, 너 알았냐?”

“나? 알았는데. 너 진짜 몰랐던 거야?”

“…….”

“진짜 몰랐나 보네, 어쩐지 복귀하자고 하더라니. 난 너 아는 줄 알고 말 안 했지. 됐어.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나도 공부 안 했어. 큼!”

“우쭐해하지 마세요, 유리. 그건 자랑이 아니에요.”

“그! 그래도! 기혁 서, 선배님이라면 문제없을 거예요. 파이팅!”

음, 3일 뒤에 시험이란다.

중간고사 말이다.

하하, 킹메이커 작전을 치를 때가 1학기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돌아오니 2학기 중간고사를 치르게 됐다.

진유리 말대로 시험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었다. 다만 시간이 이렇게 많이 지났다는 거에 충격이었던 거지.

정말 뜬금없지만, 그 순간에 떠오르는 건 우리 딸내미 봄이었다. 대체 봄이랑 얼마나 떨어져 있던 거지…… 새삼 더 잘해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중간고사는 진유리의 말대로 대충 넘겼다. 어차피 성적이야 내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대신 봄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함께 그림을 그리며, 봄이의 넘치는 상상력을 감상했고…….

“아빠, 아빠. 이거 봐봐. 나 그림 그렸어.”

“와! 이거 낙ㅌ…….”

“말이야!”

“그래, 말! 말이네. 멋진 흑마야! 이야, 우리 딸 그림도 잘 그리네. 이 꼬리 결이 살아 있잖아.”

“아빠, 그거 뿔인데?”

“음, 그렇구나. 요즘 말에는 뿔이 달려 있었군.”

함께 단풍 구경도 갔다가, 봄이의 숨겨진 야망에 대해 알게 됐으며…….

“우와아아. 너무 이쁘다. 버찌도 이쁘지?”

“야앙아-.”

“그치? 이쁘지? 이게 뭐냐면, 언니가 알아 왔어. 단풍이라는 거야. 가을에 볼 수 있대. 그치, 아빠?”

“맞아. 우리 봄이 똑똑한걸?”

“응! 할모니도 그랬어. 봄이는 똑똑해서 크면 대표님 될 거래!”

“대표님……?”

“응! 대표님! 세상에서 젤 똑똑한 사람만 할 수 있대! 호랑이 삼촌이랑 호냥이 이모는 싹쑤가 없댔어. 근데 아빠, 싹쑤가 뭐야?”

“그게, 싹수라는…… 후, 엄마. 진짜…….”

“봄이는 커서 대표님 될 거야!”

함께 하늘을 날 때, 봄이의 말 못 할 외로움에 대해 알게 됐다.

“우와아아앙-! 버찌야, 달이야 달! 아빠, 더 높이!”

“이야옹! 이야옹!!”

“버찌도 달 좋대! 더더더!”

“머리 꽉 잡아.”

“우오아아아아아아!”

“에오오오오옹!!”

“하늘 나니까 좋아?”

“응! 응!! 대따 좋아! 봄이도 커서 하늘 날 테야! 하늘 날아서 나쁜 사람들 얍! 얍! 때려 줄 거야!”

“나쁜 사람들?”

“응, 봄이한테 아빠를 뺏어 가는 사람. 나쁜 사람이야! 봄이는 아빠가 꼭 필요한데, 아빠 아니면 안 되는데, 나빠. 혼내 줄 거야.”

“……우리 딸내미 안아 보자.”

새삼 느꼈다.

아이는 빨리 큰다고.

아이는 언제까지 아이가 아니었다.

언젠간 이 손에 들리지 않을 만큼 훌쩍 크겠지. 그때가 되면 조금 슬퍼질 것만 같았다.

그러다 번쩍 스쳐 가는 생각.

“그래, 운동을 하자!”

봄이가 커지면, 나도 커지면 되는 거야.

열심히 운동해 여기서 가슴(?) 사이즈 더 키우고, 더 강력해지면.

우리 봄이 평생 품에 안아 주고, 어깨에 앉힐 수 있지 않을까?

……나 천재인 듯? 겁나 멋져.

이러니 봄이가 아빠만 찾지.

저 멀리서 어머니의 ‘기혁아, 그거 아니야!’라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기분 탓일 거다. 암, 기분 탓.

이렇게 봄이랑 알콩달콩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2학기 기말고사가 훌쩍 다가왔다.

기말고사는 전과 비슷한 게이트 레이드 방식. 즉, 또 봄이랑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무슨 1년 중 절반 이상을 게이트에서 보내는 것 같다.

억울해서 학장실 문을 박차고 천수만 멱살을 잡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일단 참았다.

왜냐하면, 그 시점에 불청객이 하나 찾아왔던 것.

“오, 오랜만이다.”

“네가 거기서 왜 나와?”

태연한 척하지만 바짝 얼어 있는 남자.

크리스토퍼 윌리엄이었다.

그래, 전(前) 미국 교류단의 단장.

잠깐 딴 얘기지만 현재 미국은, 정확히 미 서부는 아주 곤란한 상황이었다.

타천사가 사용한 ‘아이스 쉬프트’ 때문에.

우리는 왜 타천사가 당신네 ‘아이스 쉬프트’를 사용하냐며 따졌고, 미 서부 ‘궁전’들은 ‘우리도 모른다.’라고 억울해하는 상황이었다.

솔직히 억울할 만했다. 덜 떨어진 한 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니까.

어쨌든 미국은 이를 해명하고 우리 쪽과 협상을 해야 했고, 그 협상자로 윌리엄이 온 것.

“박기혁, 혹시 미국에 올 생각 없…….”

“없어.”

“……스승님이 정식으로 널 초청했다. 너와 진지하게 마법의 미래에 대해…….”

“싫어.”

“좀 끝까지 들어 봐라!!”

“……방금 나한테 소리 지른 거야?”

“아, 아니…….”

“그래, 그 이야기란 거 들어 보자. 어디 조용한 데 가 보자고.”

“잠깐만. 잠깐만!”

봄이랑 놀 시간도 모자란데 무슨 미국이란 말인가.

난 깔끔하게 무시하고서 봄이랑 버찌랑 기말고사 전까지 시간을 보냈다.

같이 자고, 밥 먹고, 수업을 들으며 예전에 봄이가 불안전했을 때처럼 하루 종일 함께했었다.

그리고 찾아온 기말고사 날. 결국 봄이는 울고 마는데.

“으아아아앙아아앙!!”

“봄이 뚝. 목 다쳐.”

“아빠, 가지 마아아!!”

“빨리 올게. 이리 와.”

“시러어아아아앙!! 가지 마아아아!!”

숨이 넘어갈 듯 우는 봄이. 그래서 약속했다.

뭐든지 다 이뤄 드립니다.

아빠와 함께하는 신나는 방학 계획표!

“봄이 겨울 방학 때 하고 싶은 거 다 하자. 아빠가 올 때까지 생각해 놔. 아빠가 뭐든 들어줄게.”

“흐끅, 흐끅, 저…… 정말?”

“응! 정말! 진짜! 약속!”

“약속…….”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잠시 떨어지는 것이다.

봄이도 이를 깨달았는지 울음을 뚝 그쳤다.

갈 때 ‘아버지 다녀오세요!’라고 배꼽 인사까지 하더라.

그 모습을 보는데 왜 울컥하는지, 정작 내가 눈물이 찔끔 났다.

빨리 가야겠다. 얼른 와서 놀아 줘야겠다.

그래서 공략대를 앞에 두고 선언했다.

“각오 단단히 해라. 최단 시간으로 끊을 테니까.”

마왕이 아니다. 아빠다.

진심인 아빠가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 주마.

*   *   *

공략대 모두가 멍청하게 중앙을 바라본다.

“…….”

“…….”

“…….”

너무 놀라면 말도 나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정말이었다.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지금 그들이 마주한 광경…… 아니, 그냥 박기혁이라는 저 인간 같지 않은 인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과연 있을까?

“죽어!”

쾅!

“죽어!!”

콰앙!!”

“죽어!!”

콰아앙-!!

5레벨 게이트 ‘케다르칸의 지하 투기장.’

지하 투기장이라는 필드에서 몬스터를 상대한다.

각층마다 출현하는 몬스터 종류가 다르고, 중간 보스 ‘엘리트’ 개체도 존재.

이기면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열리고, 이를 반복해 지하 33층에 있는 보스 룸 ‘케다르칸의 방’에 다다르면 끝.

지극히 단순한 패턴이다. 대체 왜 이게 5레벨 게이트인지 모를 정도로 원 패턴 게이트.

사실 이 게이트는 4레벨 게이트였다. ‘붕괴 현상’ 전까지는 말이다. 생태계가 붕괴되며 이 게이트에 몇 가지 특징들이 추가됐는데.

첫 번째, ‘엘리트’ 몬스터가 더욱 강화됐다는 점.

두 번째, 필드 전역에 ‘흥분’ 디버프가 걸린 점.

세 번째, 마음대로 ‘탈출’할 수 없다는 점.

이 세 개가 혼합되며 5레벨 게이트로 재조정된 케이스였다. 동시에 비주류 게이트가 된 이유이기도 했다.

특히 몬스터를 잡고 드랍되는 ‘열쇠’가 있어야만 탈출할 수 있다는 점은, 돈이 목표인 헌터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

원래는 꽤 인기가 좋은 사냥터였는데, 급상승한 난이도 탓에 발길이 끊긴 것이다.

하지만 박기혁은 게이트에 들어오자마자.

이상했다.

아니, 미친 것 같았다.

“아, 그리운 냄새…….”

그래, 이곳은 암 속성 게이트. 몬스터 전부가 ‘언데드’ 타입으로 구성된 곳이었다.

그리고 언데드는, 박기혁의 좋은 식량이었다.

이를 모르는 공략대들은 박기혁이 언데드를 찢는 광경을 멍청히 구경해야만 했다. 간간이 1학년 때의 그 악몽이 생각나는지 몸을 떨었다.

그렇게 믿기지 않는 속도로 질주.

33층까지 단 10일 만에 돌파한 박기혁은.

현재 보스인 데스나이트 ‘케다르칸’을 구타하고 있다. 말 그대로다. 그냥 줘 패고 있단 말이다.

해골도 많이 처맞으면 먼지가 난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주던 케다르칸이 마지막 발악을 한다.

대량으로 소환되는 스켈레톤.

박기혁의 스켈레톤이 아니다. 케다르칸이 부르는 군세.

케다르칸의 라스트 패턴인 ‘기사단 소환’이었다.

“다들 뭐 해! 정신 안 차릴래!!”

“네, 넵!”

“한준우, 전방 탱킹해.”

“알았다.”

“메리는 쇠약 주술 유지해 주고.”

“알았어요.”

“진유리, 너도 여기 지켜.”

“넌?”

“나?”

박기혁이 웃으며.

“마무리해야지.”

뛰었다.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돌진했다.

마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앞에 있던 적들을 다 쳐 냈다. 몸이 굳는 스켈레톤 기사단. 상위 격인 ‘마왕’의 마나에 격이 무너지고 있었다.

단숨에 도약해 케다르칸 앞까지 도달한 박기혁은 녀석의 공격을 빗겨 치며 투구를 한 손으로 짚었다.

동시에 모든 마나를 개방했다.

무너지는 공간. 심연의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신체’들의 머리.

그리고.

“꿇어라.”

콰득!

경직되는 케다르칸.

꼴에 보스라고 무릎은 꿇지 않았지만, 과연 그게 다행일까?

“호, 반항하네?”

박기혁이 기괴하게 웃더니, 마귀를 내려쳤다.

차라리 무릎을 꿇는 게 나을 정도로 터지는 케다르칸.

마왕과 데스나이트.

넘을 수 없는 격의 차이가 만들어 낸 광경.

애초에 이 전투는 성립되지 않는 전투였던 것이다.

Boss. 데스나이트 ‘케다르칸’ 분쇄.

게이트 진입 10일 16시간 9분.

게이트 ‘케다르칸의 지하 투기장’ 클리어.

기말고사 끝.

이제 방학이다.

*   *   *

일주일 뒤. 드디어 이 시간이 왔다.

나는 봄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봄이는 버찌를 다리 위에 앉혔고, 우리는 사이좋게 공책을 펼쳤다.

“어디, 우리 딸내미가 뭘 써 놨는지 볼까?”

“내가! 내가! 봄이가 읽을래. 아빠는 숫자 불러.”

“그럴까? 하나!”

“아빠랑 놀이공원 가기!”

“놀이공원이 가고 싶었구나.”

“응, 현지가 전에 갔다 왔다는데, 천국만큼 재미있대. 그래서, 봄이 보고 같이 가자고 했는데, 안 갔어.”

“왜?”

“아빠랑 가려고! 천국만큼 재미있으니까, 아빠랑 갈 거야.”

“허…… 와, 이거, 우리 딸…….”

배시시시 웃는 봄이.

심장이 아파 말이 안 나온다. 이 귀여운 생명체가 나랑 같은 인간이 맞나?

슬슬 걱정된다.

처음이 이 정도인데, 끝까지 견딜 수 있을까.

“아빠, 다음! 다음!”

“그, 그래. 둘!”

“아빠랑 바닷가 가기! 현지가 바다도 이쁘다 했어!”

“바닷가. 오케이, 접수. 다음 셋!”

“아빠랑 처음 만났던 곳 가기.”

“처음 만났던 곳이라면…… 아…….”

보육원이다. 행복 보육원.

나는 빤히 봄이 얼굴을 본다.

“아빠 혼자 가잖아. 이제 봄이도 괜찮아. 언니거든. 그치, 버찌야?”

“에오옹~.”

“봐. 버찌도 같이 가 준대.”

“……허.”

미치겠다. 울 것 같다.

이 콩알만 한 게 언제 이렇게 컸는지.

“아빠, 계속 끊겨. 흐름. 흐름.”

“아…… 미안, 미안. 넷!”

“아빠 칼춤 배우기!”

“칼춤?”

“응, 호랑이 삼촌이 가르쳐 주는데, 요론 쪼매 난 검으로 해. 아빠 검은 크잖아. 나도 큰 검 쓰고 시퍼.”

“아……! 그래, 알았어. 아빠 칼춤 가르쳐 줄게.”

“바로!”

“다섯!”

“아빠 마법 배우기! 나도 별 마법 배우고 시퍼. 이름 알았는데…… 그, 그, 아, 아포, 아포…….”

“아포칼립스.”

“아포카립뜨! 나도 그거 배울 테야!”

“좋지, 이것도 접수. 곧바로, 여섯!”

“아빠랑 ‘진짜’ 인형 놀이하기.”

“인형 놀이.”

왜 인형 놀이 앞에 ‘진짜’라고 붙였을까 잠시 생각하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오케이, 접수. 다음, 마지막 일곱!”

“아빠랑 꼬옥 붙어 있기.”

“아빠랑 붙어 있기? 이게 뭘까~?”

“이렇게에 꼬옥.”

봄이가 내 품에 안겨 뺨을 부비고.

끝내 나는 쓰러져야만 했다.

마왕, ‘박기혁’. 치사량의 귀여움에 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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