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01화>
정부, ‘레드 게이트 클리어’ 선언!
모든 사태가 종료됐다.
공략대는 레드 게이트를 클리어했고, 수비대는 안전하게 방어에 성공했다.
전국에 내려졌던 게이트 봉쇄령이 풀리며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이제 남은 건 논공행상.
성공에 대한 과실을 나눌 시간이었고.
승자는 빠르게 결정됐다.
- 집행부 대변인, ‘레드 게이트’ 정보 공개하다.
- 집행부 공식 발표. 규모 6레벨. ‘다크엘프 광신도’ 명칭.
- 민간인 사망자 ‘0명’ 상위 레드 게이트라고는 믿기지 않는 피해.
슬슬 때가 무르익자, 언론과 미디어가 시동을 걸었다.
영웅(英雄).
이 얼마나 가슴 떨리는 단어인가. 사람들은 영웅을 원하고, 그들은 ‘적절한’ 영웅을 찾았다.
지성철.
신임 집행부장었다.
- ‘만창 지성철’ 그는 누구인가.
- 지성철 신임 집행부장. 젊은 카리스마를 보여 주다.
- 왜 ‘만창(萬槍)’이었나. 과거 재조명.
- ‘게이트 봉쇄령’이 ‘게이트 올 리셋’에 이르기까지. 지성철의 결단이 주요했다.
- ‘지성철’ 혼자 한 일 아냐. 관리국과 경찰의 도움에 감사 인사.
-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 옵티멈과 검호에게 감사.” 지성철, 인터뷰에서 옵티멈 언급.
반응은 뜨거웠다.
‘만창(萬槍)’이라는 전직 수호자 타이틀.
역대 집행부장 중 가장 젊은 피.
평판도 좋고, 미담도 많다.
무엇보다, 외모가 뛰어나다. 대중이 좋아할 만한 영웅의 상이었다.
초인드림.com
- 지성철이 역대 집행부장과 다른 점.
<사진> <사진> <사진> <사진>
└ 미친ㅋㅋ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내용 알찬 거 보소ㅋㅋㅋ 사진만 있는데 이해함.
└ 만창 수호자 은퇴하고 집행부장 한다 했을 때, 퇴물됐다 생각했는데, 반성합니다.
└ 반성합니다 222
└ 반성합니다 3333333
└ 솔직히 지성철, 지금도 현역 수호자랑 비벼볼 만하지 않음?
└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ㅎ?
└ 적봉이면 비벼볼 만함 ㅎㅎㅎ
└ 검호는?
└ ㄷㄷ 선 넘네.
모든 사태는 종료됐다.
시민들은 일상을 되찾았고, 영웅은 만들어졌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아 돌아갔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셀루티스’란 단어는 없었다.
* * *
“……예상은 했지만.”
모니터로 기사를 확인하던 김연희가 안경을 벗으며 눈을 꾹꾹 눌렀다.
피로하다.
노골적으로 집행부를 띄워 주는 기사들. 경쟁하듯 쏟아지는 칭찬과 낯 뜨거운 찬양.
김연희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걸렸다.
“이건 아니잖아요…….”
잠시지만 셀루티스가 전국에서 활개를 친 거다.
제주도, 부산, 대전, 광주…… 북쪽의 게이트 밀집 구역은 물론이거니와 심지어 서울 인근의 게이트까지.
모든 게이트에서 ‘타천사’를 회수했다.
그럼에도 아무도 몰랐다.
타천사란 존재가 있었는지, 셀루티스가 무슨 짓을 꾸미는지도, 그 누구도 몰랐단 말이다.
만약 그녀의 큰아들이 흔적을 찾아내지 못했다면? 아니, 애초에 셀루티스가 타천사 관리에 철저했다면?
지금까지도 모르지 않았을까?
이게 핵심이다.
국가 안보에 구멍이 뚫린 것.
이게 이번 사태의 시작이자, 근본적인 문제였다.
그런데 관계자들은 전부 이걸 덮고 있다. 지성철이란 영웅을 만들며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이해는 돼요.”
김연희 본인도 옵티멈의 수장이다. 책임을 지는 자리가 마냥 투명할 수는 없다는 걸 모를까.
잘 안다.
다만…….
저 무리에 자신의 지인이 끼어 있다는 게 씁쓸할 뿐이다.
김연희는 사진 속에서 웃고 있는 지성철의 모습을 보다, 브라우저를 껐다.
사라지는 창과 함께 실망감을 털어 낸다.
뭐, 이런 식의 일 처리가 한두 번이었나. 괜한 실망은 감정 소모다.
나만 잘하면 된다. 난 이런 식으로 변하지 않겠다.
속으로 다짐하며 김연희는 안경을 썼다.
사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영웅이라든지, 누가 뭘 받았다든지, 그딴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
“비서실장님, 이번 레드 게이트 관련 자료 모두 뽑아 주세요. 그리고 ‘광신도’에 관한 것도요.”
셀루티스.
많은 사람들이 묻으려고만 하는데, 김연희는 안다.
셀루티스가 얼마나 강하고 집요한지를 말이다.
괜히 세계구급 빌런으로 불리는 게 아니다. 이 광신도들이 진심으로 덤볐으면 겨우 이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겨우 레드 게이트나 만들려고 ‘한국 지부’를 포기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산이 맞지 않아.’
계산이 안 맞음에도 일이 진행됐다?
오랜 경험상, 이런 경우 백이면 백 꿍꿍이가 있었다.
대체 셀루티스는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일까.
무엇을 꾸미기에 무려 ‘한국 지부’를 포기하며 이런 일을 꾸민 것일까.
이게 중요하다.
김연희의 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녀의 감은 이번에도 적중했다.
* * *
스테인드글라스에 비친 색색의 빛이 아름답게 비추는 공간으로 사제복을 입은 서창현이 들어섰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순교할 겁니다.”
‘구원’을 통해, ‘그분’을 세상에 강림시키는 계획.
이를 위한 실험으로 셀루티스는 한국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이미 이곳에는 ‘위그드라실’이라는 우상이 있으니까요. 그분이 밟을 땅으로 적합하지 않아요.”
오직 ‘그분’을 위한 땅이 필요했다.
이른바 ‘성지(聖地)’.
한국을 시끄럽게 했던 ‘신전’은 모두 이 ‘성지’를 위한 밑 작업일 뿐이었다.
그런데 한창 ‘신전’을 건축 중이던 서창현에게 대사제는 충격적인 말을 건네는데.
“에밀 사제님은 이번 일에 빠지세요.”
대사제의 명령.
신전과 함께 순교하기로 했던 그였다.
이미 형제자매들과 마지막 술잔을 들었는데. 갑자기 빠지라니.
처음으로 대사제의 말을 부정했다.
나의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냐,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서창현의 저항에 대사제는 언제나처럼 인자한 미소를 지어 주셨다.
“결코 형제님의 믿음을 의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제님의 믿음을 신뢰하기에 내린 선택이에요.”
“형제님께서 저의 뒤를 이어 주세요.”
교황의 손발이 되는 아홉 대사제.
그분의 ‘계시’를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그분의 종.’
대사제는 그 자리를 자신에게 부탁했다.
“계획대로라면 이 땅에 있는 모든 형제자매님들은 그 분의 거름이 될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이 땅에 그분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 없단 말이죠.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그래서 에밀 사제가 그 역할을 해 줬으면 해요.”
처음에는 거부했다.
본래 그 역할은 당신의 것이 아니냐며.
차라리 당신이 하라고, 내가 제물이 될 테니 당신이 대신 살아 달라고 윽박질렀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사제의 말에 서창현은 제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쯤은 저도 남기고 싶네요. 들어주실 거죠? 제 부탁. 아드님.”
아드님.
대사제가 아닌 대모로서 하는 부탁.
치사했다.
이렇게 나오시면 제가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 서창현은 눈물을 삼키며 홀로 살아남아 이곳에 있다.
지금 그가 걷고 있는 이 길은 형제자매님의 희생으로 이뤄진 길이다.
같이 기도하던 자매님.
함께 믿음을 나누던 형제들.
그리고 지옥의 구렁텅이에서 자신을 구해 준 대모님.
이제 저의 삶은 당신들을 위해 살겠습니다.
당신들이 그토록 원했던 믿음을 위해, 서창현이 아닌 ‘에밀’로서 살아가겠다.
서창현, 아니, 이제는 에밀이 된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대사제 에밀, 그분을 뵙습니다.”
쿵!
닫히는 문.
역십자가 문양이 그려진 문 뒤에서는 또각, 또각, 태엽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 * *
또각, 또각.
시간이 흘러간다.
3초, 2초, 1초……
땡!
“아빠!!”
“알겠습니다!”
봄이의 재촉에 나는 재빨리 전자레인지에서 즉석 밥을 빼낸다.
게이트다 뭐다 한동안 모이지 못한 우리 가족. 오랜만에 모인 기념으로 캠핑을 떠났다.
사실 기념보다는 잔뜩 삐진 봄이나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어머니를 달래려는 얄팍한 수작이지만…… 뭐, 모두가 해피하면 된 거 아니겠나.
환하게 웃고 있는 봄이를 향해 빙그레 웃어 주고는 부지런히 즉석 밥을 빼냈다.
캠핑장의 전자레인지는 6개.
여섯 번 열고 닫아야 한다.
처음 즉석 밥을 봤을 때는 ‘이 코딱지만 한 거 누구 코에 붙이나.’ 싶었다. 그래서 많이 했지. 전자레인지 여섯 개에 꽉꽉 채워서 돌렸더니 벌써 바구니 하나를 가득 채워 간다.
옆을 보니 봄이가 ‘빨리빨리’ 다그치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중.
“아빠, 봄이도 꺼내고 싶어.”
“뜨거워. 다음에 하자.”
“히잉.”
“대신 봄이가 야채 바구니 들어.”
“응!!”
봄이가 옆에 놓인 야채 바구니를 번쩍 들었다.
음료가 들어서 아이가 들기에는 조금 무겁지만 괜찮다. 어차피 내가 봄이를 안을 거거든.
밥이 잔뜩 든 바구니를 왼손에 들고, 바구니를 들고 있던 봄이를 오른손 위에 앉혀서 들었다.
“우와, 키 컸어!”
“아빠보다 커질래?”
“응응!”
과자 바구니를 뺏어 들고 봄이를 어깨 위에 태웠다. 자지러지듯 좋아하는 봄이. 이렇게 좋아할 줄이야. 다음에 시간 나면 하늘도 날아 줘야겠다.
자리로 돌아오자, 형과 누나가 고기를 놓고 이야기 중. 분위기가 제법 심각하다.
무슨 일이 있나, 해서 근처로 가 보니.
“판이 작아. 다 구워도 겨우 요만큼 나오는데?”
“흐름 끊기는 건 질색인데.”
“어쩌지?”
“고민되네.”
……저기요. 고기 가지고 이러는 겁니까.
몬스터 수천 마리한테 포위돼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두 사람이 겨우 고기 흐름 이러고 앉아 있으니 웃음이 나왔다.
“기혁이, 넌 어쩔래? 두 가지 방법이 있어. 하나는 불판을 몇 개 더 달라고 하는 방법. 또 다른 하나는 어머니 말대로 케이터링을 시키는 거.”
“캠핑은 직접 구워 먹어야지.”
“기혁이는?”
“그냥 엄마 하자는 대로 하자.”
참고로 현재 어머니의 기분은 매우 최악.
아버지와 우리 3남매가 말도 없이 게이트로 들어간 것 때문에 잔뜩 벼르고 있으시다.
“형, 엄마한테 찍힌 거 알지?”
“나 혼자는 아니지. 너도 찍혔지. 민지도 찍혔고.”
“난 왜?”
“그럼 넌 아니냐?”
“…….”
“봐봐, 형. 지금은 납작 엎드릴 타이밍이잖아. 괜히 엄마 심기 거스르면.”
꿀꺽.
엄마를 생각하자 모두가 긴장한다.
“욕을 다발로 듣겠지.”
황금빛 검기를 너울너울 뽑아내던 완벽의 검사는 표정이 어두워졌고.
“난 맞을걸…….”
눈으로 쫓지 못할 속도로 반격조차 허락하지 않던 신속의 검사는 울상을 지었다.
덜덜덜.
심지어 보스한테 맨몸으로 돌격하던 나조차도 손이 떨렸다.
……이것이 두려움인가.
누가 뭐래도 우리 집안의 최고 권력자는 어머니였다.
그리고 잠시 뒤, 이 어머니께서 오셨습니다!
빵빵-!
양쪽에서 폭죽이 터지고, 꽃가루가 내린다.
참고로 꽃가루는 누나고, 내가 폭죽. 형은 귀한 분 앉으실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
“허…….”
어머니는 이런 우리를 ‘아주 애쓴다. 애를 써.’라는 표정으로 보고 계셨고, 또 아버지는 호탕하게 “푸하하하!” 웃다가.
“조용해. 뭘 잘했다고.”
한마디에 침묵.
“우리 강새이 이리 와. 넌 저기 끼면 안 돼. 이 사람들 아주 나쁜 사람들이에요.”
봄이를 안아 든 어머니가 우리를 말없이 쳐다본다.
숨 막히는 정적.
소름이 오싹, 식은땀이 주룩.
실시간으로 체력이 깎여 나가는 느낌. 단언컨대, 어떤 정신계 마법도 이것보다는 약할 거다.
“잘못한 줄은 알아?”
여기서 말하면 안 된다. 무조건 납작 엎드려야 한다.
형도, 누나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고개를 45도로 숙이며 자숙 모드를 하는데.
“미안하오.”
“……!!”
아…… 아버지.
기어코 판도라의 상자를 여시는군요.
어머니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한쪽 입꼬리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게 ‘너 잘 걸렸다.’라는 표정.
“뭐가 미안한데?”
“다. 전부 다!”
“다? 구체적으로 뭐가 미안하냐고.”
작정한 어머니가 자리에 앉더니, 아버지도 자기 앞에 앉으라 하신다.
눈치는 부족하지만 착한 아버지. 간절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도움을 청하는데.
“커흠. 봄아, 과자 안 먹고 싶어? 삼촌이랑 과자 사러 갈까?”
“아니야, 봄이는 아이스크림 더 좋아해. 호냥이 이모랑 아이스크림 사러 가자.”
“우리 케이터링 언제 온다고 했지? 내가 확인해 보고 올게.”
괜히 가족이 아닌 모양. 마음이귀신 같이 통한다.
몸을 빼내는 우리를 향해 ‘얘들아!’ 하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죄송합니다. 살 사람은 살아야죠.
“어디서 1시간만 있다 오자.”
“산책로 있던데, 거기 갈까?”
“나는 봄이랑 아이스크림 사 올게. 봄아, 이모한테 와.”
“…….”
“…….”
“……큭…….”
“푸풉…….”
“크큭, 크크큭.”
“푸하하하하하하!!”
함께 걷고 있는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이 터졌다.
행복이란 게 별건가. 함께 웃고 떠들면 이게 행복이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차를 마시고.
이렇게 함께 노을을 보며 걸음을 옮기면.
이게 행복이었다.
스스로 묻는다. 행복한가?
그래, 난 지금 행복하다.
“우리 사진이나 찍을까?”
네 사람이 찍힌 사진 속의 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제 난, 혼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