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100화>
두 번째 오브젝트, 우드 골렘의 속성은 ‘기민(機敏)’.
민첩성과 기동력을 올리는 속성. 속성에 맞춰 우드 골렘도 날렵하게 생긴 게 특징인 놈.
하지만, 상대를 잘못 골랐다. 이쪽에는 속도에서 만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박민지가 있었다.
박수혁이 군왕을 깨우고, 다섯 자루 황금의 검이 사방을 점했다. 박기혁과 진유리도 길목 하나를 막고.
퇴로가 막힌 우드 골렘이 흥분한 채 몸부림칠 때.
숨통을 끊는 건 일곱 줄기 섬광.
검호류 신속
북두칠성(北斗七星)
오브젝트 ‘기민(機敏)’ 제거.
……
…
세 번째 오브젝트, 우드 골렘의 속성은 ‘부활(復活)’.
말 그대로 사망 시, 한차례 더 생명을 얻는 속성.
진유리의 고유 마법, 용언 ‘살(殺)’이 펼쳐진다. 붉은 가시가 우드 골렘의 몸통을 꿰뚫는다.
비산하는 파편들.
나무껍질이 후두둑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이 깨진 껍데기 틈으로 박민지의 ‘보름달 부수기’와 박기혁의 ‘역천(逆天)’이 쏘아졌다.
백과 흑.
순백의 검기와 암흑의 검기, 교차하며 지나치고.
굉음과 함께 우드 골렘이 땅으로 주저앉는다.
하지만 우드 골렘의 속성은 ‘부활’. 빛무리와 함께 부활을 발현하며 몸을 일으키는데.
그때.
이미 기수식을 취하고 있는 박수혁.
칼집에서 검이 번쩍이는 순간.
황금의 검들이 쇄도했다.
검호류 군왕
공평무사(公平無私)
오브젝트 ‘부활(復活)’ 제거.
……
…
네 번째, 속성은 ‘물리저항(物理抵抗)’.
체술, 검술, 무기술 등 물리력에 관한 저항력을 증가시키는 속성.
검술에 특화돼 있는 검호에게는 치명적인 속성. 그러나 여기에는 검호만 있는 게 아니다.
진룡도 있고, 마왕도 있다.
박수혁과 박민지가 시선을 끄는 사이 준비를 하는 박기혁과 진유리.
우드 골렘이 고정된다.
표적이 세워지고.
박기혁이 술식을 펼친다. 일대를 뒤덮는 육망성 마법진.
마나가 요동친다.
공간이 동요한다.
세계가 전율한다.
그리고 전율하는 마나의 세계에서 진유리가 마나의 선을 잡아당긴다.
연계 마법
허리케인 & 인페르노
스톰 브링거
오브젝트 ‘물리저항(物理抵抗)’ 제거.
……
…
마침내 마지막, 오브젝트의 속성은 ‘괴력(怪力)’.
단어 그대로 힘을 증가시키는 속성이…….
“죽어, 개새끼야!”
콰직! 콰직! 콰직! 콰직……!!
……이었다.
있었는데, 없어졌습니다.
어디 내 앞에서 힘자랑이야.
박기혁의 마귀에 걸레짝이 돼 버린 우드 골렘.
오브젝트 ‘괴력(怪力)’ 제거.
끝났다.
이제 이 싸움을 끝내러 가자.
네 사람이 하늘을 꿰뚫고 날아갔다.
* * *
한편, 폐허가 된 도시로 공략대가 걸음을 내디뎠다.
쓰러진 목조 건물에는 불길이 아직 꺼지지 않았고, 여기저기 널린 쇠붙이에는 번개의 찌꺼기가 남아 스파크가 번쩍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모두 말은 안 하지만 공략대의 눈길이 앞장서 걸어가는 진도하와 박건을 향했는데.
‘쑥대밭을 만들었잖아.’
‘……괜히 수호자가 아니구나. 꿈도 못 꾸겠어.’
‘미쳤어. 같은 초인이 아니야. 인간이 아니라고!’
자신들도 최선을 다했다지만, 이 전투의 수훈 갑은 누가 뭐래도 박건과 진도하, 저 두 사람이었다
수천이 넘는 적진 한가운데로 소풍 가듯 휘젓는 박건이나, 족히 1시간 동안 낙뢰를 떨어트리는 진도하나 둘 다 상식을 벗어난 인간이었다.
그때, 때맞춰 하늘 저편에서 날아오는 네 사람.
박수혁, 박민지, 박기혁, 검호 3남매와 진유리였다.
“애들 오네.”
“그렇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박건과 진도하.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는 것.
애초에 저 넷을 한꺼번에 보냈는데 지거나 다친다는 걸 상상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둘 사이에 끼어 있는 은빛나는 상황이 달랐는데.
‘아직 이틀 안 됐는데…….’
속으로 당황하는 중이다.
이틀 되려면 6시간이나 남았거든.
약 42시간 만에 오브젝트 다섯을 해치워?
대체 쟤들은 뭘 한 걸까. 오브젝트가 생각보다 약했나? 설마 포기하고 오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스스로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오는 은빛나였다.
지휘관조차도 당황스럽게 만드는 괴랄한 전투력.
은빛나는 내심 다짐했다.
‘이번에 집에 가면 저 네 명 카드 무조건 뽑아야지.’
떡상이 확실하다.
그사이 공략대 곁에 안착한 네 사람. 자연스럽게 선두 대열 옆으로 따라붙었다.
박건이 특유의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자식들의 어깨를 툭툭 쳤다.
“모두 고생했다.”
“별거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격려에 박수혁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쉬웠어.”
“맞아. 쉬웠지.”
박민지는 어깨를 으쓱했고, 박기혁은 누나의 말에 동의했다.
그런 자식들을 기특하게 바라보던 박건이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농담을 건네는데.
“혹시 피곤하면 쉬어도 된다. 보스는 아버지가 잘 처리할…….”
그 순간, 세 남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아버지를 바라봤다.
뭐라고 하신 거야. 가장 맛있는 부분을 혼자 먹겠다는 건가. 선 넘으시네. 설마 이것은 도발?
“알았다, 알았어. 거참, 농담 한 번 한 거 가지고 아빠를 잡아먹으려 하느냐.”
“질 나쁜 농담입니다.”
“맞아, 아빠.”
“실망할 뻔했어요.”
“푸하하하하! 미안하구나!”
실로 전투광들이 모인 집구석다운 대화.
김연희가 이 장면을 봤으면 ‘이놈의 집구석!’이라며 땅을 치고 통곡했으리라.
큼큼, 은빛나가 헛기침으로 주위를 환기시키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일정이 당겨졌네요. 점검도 할 겸 간단히 휴식 취하고 가죠.”
그렇게 만반의 상태를 만든 공략대는 보스 룸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섰다.
마치 종교 시설을 닮은 보스 룸.
인간의 손길이 닿은 것 같은 장식들 가운데서 ‘역십자’가 불길하게 빛나고 있었다.
“문 열게요.”
끼익, 열리는 문.
유리 천장을 뚫고 하얀빛이 내려온다. 새벽을 여는 태양처럼 시설 안을 환하게 비추는데.
빛이 닿는 곳마다 보이는, 붉은색 액체.
“피?”
피다.
온통 피로 가득하다.
인간의 피 몬스터의 피가 뒤엉킨 피 웅덩이가 카펫처럼 바닥을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피의 카펫의 끝에 있는 것은 타천사.
커다란 십자가를 등 뒤로 메고 있는 타천사였다.
“어서 오세요.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몸을 일으키는 타천사.
십자가를 양손으로 쥔 채 가슴에 모으는 순간.
펄럭! 오른쪽으로 두 장의 날개가.
펄럭! 왼쪽으로 두 장의 날개가.
총 두 쌍의 날개가 펼쳐졌다.
“저는 구원자. 여러분을 구원해 드리겠습니다.”
Boss.
네임드 타천사, ‘구원자’ 등장.
* * *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과거의 나는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던 걸까.
하루 종일 마법, 마법…… 쉴 만하면 연구, 연구.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인 생활이었던 것 같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외출조차 하지 않았다. 그나마 외출이라면 고아원 아이들 만나러 가는 정도?
으리으리한 저택이 있었지만, 당시의 내게 집이란 안식처가 아닌 수면실이었다. 잠만 자는 곳 말이다.
친구라고 부를 사람은 영감하고…… 영감하고…… 영감이 유일하네. 나중에 성녀를 만나기도 했지만 걔는 친구보다는 동료에 가까운 애였다.
일일이 나열하다 보니, 참으로 무미건조했던 삶이었다.
마음 놓을 곳 없고, 마음 나눌 사람도 없는 외로운 삶.
만약 지금 내게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솔직히 못 할 것 같다.
그때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은 감정을 알아 버렸으니까.
어머니의 한결같은 사랑, 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소리.
수혁 형의 독특한 완벽주의도, 민지 누나의 무심한 척 챙겨 주는 자상함도.
그리고, 봄처럼 화사한 우리 봄이의 웃음도.
이제 난 자주 웃는다. 마법을 할 때도, 연구를 할 때도 봄이가 곁에 있어 준다.
지루할 정도로 반복적인 일상은 없다. 늘 새롭고 늘 재미있다.
조금 심심하다고 하면 전화가 울린다. 카페로 나가면 친구들이 나를 기다려 준다.
비록 전생과 같은 으리으리한 저택이 아니지만, 이곳에서 난 진심으로 치유받고 안식을 찾는다.
튀김 중독자 한준우, 메리 공주님, 말 많은 김하니, 마지막으로 진유리까지.
이제 난 혼자가 아니다.
내 주변에는 많은 것들이 생겼다.
부끄럽지만 자신이 없다.
가족, 친구, 이 모든 관계가 사라진 옛날의 외롭던 나로 돌아갈 자신이 없다.
그렇기에 소중하다.
옛날, 그때의 외롭던 나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내 주변의 것들을 지켜야 했다.
내 손으로, 이 두 손으로.
난 오늘도 내 사람을 지킨다.
쉬이익!!
마귀를 내려쳤다.
보스 ‘구원자’가 십자가를 들어 막아 낸다.
끼이이이익-!!
쇠 긁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었다.
강하다. 내가 이제껏 만난 보스 중에서 가장 강하다.
이건 확신할 수 있는데, 저 녀석 절대 6레벨 보스 수준은 아니다. 진도하의 마법을 막아 내고, 아버지의 검을 피하는 게, 어떻게 6레벨 보스일 수가 있나.
대치를 이어 나갔다.
현재 나의 역할은 최전열 탱커고, 구원자 녀석의 공격을 정면에서 감당해야 했다.
그때.
“기혁아!”
수혁 형의 외침에 나는 뒤로 허리를 젖혔다.
굳이 어떻게 공격한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냥 느껴진다. 형의 움직임이.
황금빛 검광이 내 얼굴 앞을 지나쳐 구원자의 허리를 벴다.
하지만.
깡-!
막힌다.
순식간에 생겨난 얼음 방패에.
그래도 찰나의 순간에서 빈틈을 발견한 것일까. 누나의 백로가 허공을 가른다. 하얀 섬광이 정확히 일직선으로 얼음 방패의 사각을 노리고 들어갔다.
하지만,
콰직!
이 또한 막힌다. 이번에는 무식하게 큰 저 십자가였다.
공략대의 마법이 떨어진다. 능력치를 떨어뜨리는 디버프, 상태 이상을 거는 메즈를 비롯해 공격 마법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구원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래도 진유리의 용언 ‘살(殺)’이 펼쳐지자, 구원자도 신경 쓰이는 모양.
구원자가 등 뒤에 있던 두 쌍의 날개의 펼치며 몸집을 부풀렸다.
곧이어 구원자의 등 뒤로 비치는 건.
후광(Halo).
후광이 비친다. 새하얀 얼음 결정이 모여 만들어진 후광이.
“제가 구원해 드리겠습니다.”
목소리를 높이더니, 정확히 나를 향해 달려드는 타천사.
나도 지지 않고 마주 달려들었다.
도전했으면 받아 줘야지.
오냐, 와라. 서로 어깨를 부딪치다, 곧바로 거리를 벌리며 무기를 들었다.
녀석은 십자가를, 나는 마귀를.
“덤벼, 새꺄!”
휘두른다. 초식? 기교? 머리에 기억된 검술들을 다 지워 버린다. 그냥 본능에 몸을 맡긴 채 마귀를 마구잡이로 내려찍었다.
“어디까지!”
깡-!
“버티는지!”
깡-!!
“보자!”
까앙-!!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키는 사람이다.
내가 지킨다 했으니, 넌 이 뒤로 못 간다.
다리를 땅에 박고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는다. 십자가가 내 몸을 가격해도, 아이스 쉬프트의 냉기가 나를 덮쳐도.
난 자리를 지키며 녀석을 향해 마귀를 내리꽂았다.
최전선에서 구원자의 공격을 온몸으로 막아 내는 나.
그렇게 견디고 있을 때, 마침내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호, 빠져!!”
은빛나의 목소리다.
재빨리 콜에 맞춰 몸을 빼낸다.
그래도 이제껏 놀았던 게 섭섭하니 녀석에게 선물 하나를 남기는데.
타천사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깨지며 쇠사슬이 뻗어 나왔다. 일순간 속박되는 타천사.
그 순간 발현되는 대단위 연계 마법.
공략대 50명 전원의 연계로 만들어진 번개가 떨어졌다.
대단위 연계 마법
신의 징벌
여기에 진유리가 물 마법을 끼얹으며 시너지를.
아쿠아 캐논
Aqua Cannon
마지막으로 나와 형, 누나가 세 방향으로 찢어져 검을 뽑는다.
세 줄기의 검광이 일직선으로 그어진다.
황금의 빛에, 하얀 섬광이, 검은 암흑으로 교차되더니, 구원자를 지나쳐 외벽에 한 줄기 검흔을 남기며 사라졌다.
멈춰진 타천사.
“…….”
“…….”
“…….”
일순간 고요해지는 성당.
그리고.
털썩.
끝내 바닥에 쓰러지는 구원자.
Boss. 구원자 침묵.
게이트 진입 25일 1시간 7분.
‘레드 게이트’ 클리어.
끝.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