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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95화 (9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95화>

이익선이 허겁지겁 산 아래로 미끄러졌다.

“젠장! 젠장!!”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살고 싶었어. 나는 살아야 했어.

팀원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친 자신에 대한 혐오와, 그래도 살았다는 안도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어어엉…….”

이익선이 소속된 에이전트는 P.S.H

메이저 에이전트라 불리는 곳인 만큼 이익선은 아카데미를 나온, 소위 말하는 ‘성골’이었다.

그래서인가, 벼락 승진으로 젊은 나이에 부팀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된다.

하지만, 욕심은 끝이 없다 했던가.

탐이 났다.

딱 한 계단만 더 오르면 팀장에 오를 수 있었다.

비록 옵티멈과는 비교도 안 되는 P.S.H지만 이곳도 엄연히 메이저 에이전트. P.S.H에서 팀장이라면 어딜 가도 대우받을 수 있는 위치다.

그렇게 어떻게 하면 팀장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가운데 때마침 국가에서 내려온 지원 요청.

이거다! 이걸로 성과를 낸다면!

이익선은 앞장서서 손을 들었다.

그런 그의 행동력에 하늘도 감동했을까. 팀장이 갑자기 몸이 아프며, 임시 팀장의 지위로 수사대를 이끌게 됐다.

그때의 감동이란…….

이때쯤 이 수사 작전에 무려 세계구급 빌런 집단 ‘셀루티스’가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보다시피 한창 감동에 젖어 있던 이익선은 이를 가볍게 무시한다.

아니, 도리어 좋아했다.

힘겨운 시련일수록 그 과실은 달콤한 법. 셀루티스를 상대하며 순조롭게 작전을 수행한다면 팀장은 물론이고.

어쩌면, 옵티멈에 스카우트될 수도……

이런 이유일까. 누구보다 의욕적으로 작전에 임했던 이익선.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그가 이끄는 조사대는 무려 6마리의 타천사를 잡았다.

이 밖에도 게이트를 클리어하며 쓸 만한 아티팩트를 얻기도 했고, 이를 팀원들에게 줘 인맥 관리도 쏠쏠히 해냈다.

그래, 모든 게 잘되고 있어.

감히 이상처럼 여겨지던 꿈이 현실이 되어 잡힐 것만 같았다.

누군가 그랬던가. 인생에서 세 번의 찬스가 찾아온다고.

이익선은 지금이 이 찬스라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도 없이 손을 들고 마는데.

“본론부터 말하겠습니다. 현재 셀루티스가 함경남도를 중심으로 전력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첩보입니다. 이에 저희 조사대는 이쪽을 수색할 인원을 뽑을 생각입니다.”

“혹시 생각 있으신 분 있으십니까? 참고로 보상은 충분히 할 생각입니다.”

국가에서 라이선스를 받지만, 엄연히 에이전트 소속인 초인들. 자연히 명령권 같은 강제력은 없었고, 이렇게 권유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 생각보다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손을 들었다.

이전의 임무가 워낙 간단했던 탓이다.

‘타천사라는 거 별거 없던데?’라는 생각이 깔려 있는 조사대는 타천사가 주는 위험보다 보상에 눈독을 들였다. 물론 이익선도 그중 한 명.

그렇게 이익선은 보무도 당당하게 함경남도로 갔다.

하나, 그의 앞에 놓인 현실은 처참했는데.

“얼음? 빙결계 마법이 아닌데, 얼음이라고?”

“모두 멈춰!!”

이제껏 나왔던 어디 하나 나사 빠진 타천사는 없었다.

그들 앞에 있는 타천사는 충분한 ‘인간’을 먹고 성장한 개체. 게다가 여기에 챈들러 가문의 ‘아이스 쉬프트’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셀루티스가 자랑하는 암살자 ‘구원 성가대’까지 투입되자.

지옥도(地獄道).

그들이 마주한 것은 인세의 지옥이었다.

“헉헉!”

필사적으로 뛰어갔다.

다친 다리와 팔이 더 이상은 무리라며 비명을 질렀지만 살고 싶다는 이익선의 의지가, 고통을 마비시켰다.

하지만 고통은 참을지언정, 시시각각 떨어지는 운동 능력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 아이스 쉬프트의 ‘결빙’이 상처를 타고 전이되며, 이익선의 발은 점점 굳어 가고.

결국, 털썩.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곧이어 저 멀리서 들려오는 인기척.

어둠의 뒤에서도 환하게 빛나는 날개.

타천사였다.

“제발.”

움직여. 움직이라고.

이익선이 다리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움직이라 명령해 보지만, 오히려 주인과 가까워진 아이스 쉬프트의 마력으로 더욱 빨리 굳어 갈 뿐이었다.

다가온 타천사는 아래를 본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익선을 눈에 담는다.

그리고 인자하게 웃으며.

“식사, 잘 먹겠습니다.”

이익선을 향해 허리를 굽히는데.

그 순간.

“살(殺).”

붉은 가시가 타천사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전개된 아이스 쉬프트를 뚫고서.

정확히 정수리를 관통했다.

푸쉭-!!

*   *   *

드래고니안이 땅에 안착하고, 투구가 벗겨지며 진유리의 검붉은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재대로 들어갔잖아.”

혹시 몰라 다음 ‘용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곧이어 타천사의 시체가 허공에 흩어지며 마석이 남겨진다. 진유리는 마석을 회수하고는 옆에 있던 남자를 흔들었다.

“이봐요. 이봐요.”

기절했네.

쯧, 혀를 찼다.

전투 중에 기절이라니, 죽고 싶어 환장한 건가.

오래 붙어 있어서인지, 지나치게 ‘박기혁화’ 돼 버린 진유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한심해도 할 건 해야겠지.

진유리가 무전기를 든다.

“아, 아. 들리세요? 여기는 진유리. 이쪽에 부상자 있어요. 빨리 데려가세요.”

무전으로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는데, 상공에서 진유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

도둑년, 로자리아였다.

“왜 쫓아와.”

“알잖아. 가르쳐 줘. 고유 마법.”

“내가 왜.”

“너희가 사기 쳤잖아.”

“사기는 네가 먼저 쳤지, 이 도둑년아.”

“도둑은 너희야. 내 빅터 설계도를 훔쳤어.”

얼씨구, 지 좋을 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모자라 남 탓까지?

진유리가 허, 하며 비웃더니.

“야, 너.”

표정을 지운 진유리.

“내가 우습니?”

순간 마나가 움찔대며 진동한다.

항상 웃으며 푼수처럼 행동하는 진유리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기혁 앞에서만 그럴 뿐이다.

그녀는 엄연히 ‘진룡’의 혈족.

용은 고고하며, 오만하다.

드높은 힘만큼이나 자존심도 강한 지고한 존재. 그게 용이다.

진유리가 손가락으로 로자리아의 가슴을 찌르며 말했다.

“좋은 말할 때.”

툭.

“우리 곁에서.”

툭.

“꺼져.”

손가락으로 꾹꾹 경고하는 진유리.

“기혁이나, 나나, 네 억지에 놀아날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까.”

진심이다.

적어도 지금 진유리가 뿜어내고 있는 살기는 백 퍼센트 진심이었다.

한 번만 더 귀찮게 하면, 그때는 진짜로 가만있지 않는다.

진심으로 손을 쓸 생각인 것.

그런데 말이다.

“나도 한가하지 않아. 그러니 빨리 가르쳐 줘.”

이쪽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

진유리가 진룡이라면, 이쪽은 로자리아 빌랜드 워싱턴.

미국을 넘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워싱턴’ 가문의 일원이다.

“고유 마법이란 거, 꼭 알아야겠거든.”

로자리아가 떠 있던 양쪽으로 마나의 고리가 생겨나더니, 고리를 뚫고 나오는 건, 거대한 기계 팔 한 짝.

로자리아의 알파 기어. 빅터의 팔이었다.

“누가 도둑년 아니랄까 봐. 위협까지 하잖아.”

“위협? intimidate(위협)? blackmail(협박)? 잘못된 표현이야. 시작한 건 네가 먼저야.”

“해보자는 거네? 자신 있어?”

“Me가 묻고 싶어. 너, 나한테 이길 수 있어?”

두 여자 사이에서 스파크가 튄다.

“고백할게. 너 처음부터 별로였어.”

진유리의 슈트 뒤로 붉은 마나 날개가 드러났다.

“Me too. 나도 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빅터의 손이 로자리아를 보호하듯 감쌌다.

일촉즉발의 순간,

두 여자의 마나 파장이 충돌하며 오오라가 퍼졌다.

하지만 둘의 싸움은 결국 이뤄지지 못하는데.

“구조 신호 와서 와 봤는데.”

검을 타고 떠 있는 여자.

박민지에 의해서.

“너희들, 뭐 하니?”

*   *   *

피곤하다.

어지간히 때려잡았던 모양. 오랜만에 근육들이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만족하며 축 늘어져 있다.

뭐, 이래도 또 싸우면 좋다고 펌핑되겠지만, 솔직히 나도 쉬고 싶다.

날아서 베이스캠프에 안착.

일단 먼저 몸부터 씻었다.

클린 마법으로도 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좀 따뜻한 물에 씻고 싶다.

그렇게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내가 잘못 봤나? 왜 누나랑 진유리가 함께 있는 거지?

“혀, 형님. 오해예요. 걔가 먼저 시비를…….”

“내가 왜 네 형님이니.”

“그, 그게, 제가 기혁이 여친.”

“여친? 네가? 난 들은 게 없는데.”

“아, 아직은 아니지만 그렇게 될 거예요. 기필코.”

형님? 여친? 저 뻥쟁이가 나 없다고 막 지르네.

너무 어이가 없어서 빤히 보고 있는데, 누나가 불렀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박기혁. 이리 와서 설명 좀 해 봐.”

“기혁이라니. 어? 기혁아!”

“쟤가 너랑 사귄다는데, 진짜야?”

“아니야, 사귀긴 뭘 사겨…… 진유리 너, 좀 이따 보자.”

진유리가 울상으로 ‘난 틀렸어.’라며 중얼거린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나한테 물어보니 누나는 ‘때와 장소를 못 가리더라.’고 말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뭔가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난, 눈치 보는 진유리와 냉랭한 민지 누나 사이에 끼어서 불편하게 지휘 통제실로 들어섰다.

한창 회의가 진행 중인 지휘 통제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구역을 봉쇄하고 어떻게든 수색을 해서 내부의 상황을.”

“이봐요! 수색을 강행하자니. 지금 피해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 점은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하나, 생각해 보십시오. 보냈던 수색대는 엄선된 인원입니다. 그런 수색대가 이 정도로 일방적으로 당했습니다. 만약 이 전력이 도시로 간다면…… 묻겠습니다. 책임지실 수 있겠습니까?”

“끄응, 그렇다고 저희 초인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바라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잠깐이면 됩니다. 지금 군대가 출발하기 직전이에요. 3일, 늦어도 5일 안에 지원이 올 겁니다.”

“3일? 장난합니까? 이틀도 힘든데, 3일을 버텨라? 그것도 늦을 수도 있는 지원을?”

“저기, 저도 할 말 있어요. 제가 듣기로 군대는 지금 ‘삼합회’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다고 아는데요. 어떻게 지원을 온다는 말인가요.”

“그, 그건…….”

“어떻게든 저희가 해결하겠습니다. 일단 안전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 맞습니다.”

현재 회의 상황을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어떻게든 셀루티스를 봉쇄하려는 정부 관계자와, 이대로는 불가능하다는 에이전트 관계자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였다.

“산 몇 개만 넘어가면 강원도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이란 말입니다.”

“더군다나 타천사들은 인간을 먹지 않습니까. 한 마리만 놓쳐도 끔찍한 일이 벌어질 거예요. 한시라도 빨리 이 지역을 봉쇄해야 합니다. 보상이라면 얼마든지.”

“보상! 보상!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몇 번을 말합니까. 이대로는 안 된다고요. 현실적으로 저거 못 막습니다.”

“셀루티스 전력이 확실하지도 않는데 어디서부터 막고 얼마나 막나요. 네? 말씀해 보세요. 못 하시잖습니까. 저희 에이전트는 초인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한 발짝도 못 움직입니다.”

사실 답이 없는 문제다.

둘 다 일리가 있으니까.

정부 관계자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조사대를 이곳에 눌러앉게 해 민간인 피해를 줄여야만 한다. 저들도 엄연히 공무원인데 시민들을 위해서 일하는 게 맞지.

반면 에이전트의 존재 의의는 소속 초인들의 이득과 안전, 그리고 지원이다. 이를 위해 수수료를 받는 거다.

다시 말해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소속 초인들의 안전이 우선.

민간인 보호가 중요하긴 하지만, 목숨을 내걸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각자의 입장이 충돌하는 이상 이 회의는 쉽게 끝날 가능성은 절대 없었다.

그렇게 길어질 거라 생각하며 의자 받침에 몸을 기댔는데.

“응?”

뭐지 이 기분은?

이상한 감각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돌아간다.

그런데 옆을 보니 누나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시선이 통제실 문으로 닿기를 잠시.

“실례합시다!”

촤륵-!

천막을 호쾌하게 젖히며 등장하는 사내는.

“아빠?”

“아버지?”

그렇다.

우리 아버지.

박건이었다.

“현재 시간 20시 21분. 수호자의 권한으로 ‘긴급 재난 사태’를 선포한다. 전부 전투태세를 갖추도록. 아! 혹시나 해서 말인데, 거부는 자유다. 응, 자유. 그래서.”

아버지는 검을 뽑아 바닥에 꽂으며.

“거부할 사람 거수.”

호랑이의 미소란 걸 사람 얼굴로 볼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 또 하나. 선두는 나다. 내가 제일 먼저 들어가고, 제일 나중에 나온다. 이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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