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94화>
‘계시’를 이용해 누구보다 빠르게 ‘구원’을 확보한 셀루티스.
그들은 어떻게 하면 이 ‘구원’을 강화시킬까 연구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알게 된 사실.
사고로 놓친 ‘구원’이 살아 있는 초인의 신체 일부를 섭취했고, 섭취한 초인의 ‘검술’을 사용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이를 통해 시체가 아닌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이는 것이 가장 확실한 성장 방법이란 것을 알게 된 셀루티스.
‘구원’이 살아 있는 생명체를 먹을 시 단순히 신체의 성장뿐만이 아니라 그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지식, 기술, 경험 등 섭취 대상의 능력치를 흡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셀루티스가 ‘인간’을 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식, 기술, 경험…… 이보다 완벽히 부합되는 먹이는 찾을 수 없으니까.
그러던 가운데 셀루티스의 한 사제, 서창현이 의문을 제시한다.
“혈족을 먹이면 어떻게 될까?”
과연 혈족의 힘도 뺏을 수 있을까.
사제는 평소에도 인체와 정신, 약물로 인한 인간의 변화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고.
마침 쓸 만한 연구 소재를 발견하게 된다.
챈들러 머레이.
미국을 대표하는 혈족으로서 ‘아이스 쉬프트(Ice Shift)’란 빙 속성 최상급 구현계 능력을 가진 챈들러 가문의 머저리였다.
서창현은 챈들러 머레이를 납치, 곧바로 실험에 들어간다.
“이거 풀어! 너!! 너!! 내가 누군 줄 알고!”
“압니다. 챈들러 머레이. 챈들러 가문의 수치이자 이 세상에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죠.”
“저, 저리가. Fuc…… 읍! 읍!!”
“존재 자체가 폐가 되는 인간. 참 비루한 삶이었어요. 그래도 다행입니다. 마지막 가는 길, 이렇게 속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습니까. 부디 그분의 품에서 죄를 뉘우치세요. 그럼 손부터 시작합시다.”
“으으으읍!!”
그렇게 알게 된 연구 결과.
‘구원’에게 혈족의 신체를 먹임으로써 혈족 계승이 이뤄진다는 결과를 얻어 냈다.
하지만 신체의 일부만으로는 혈족의 능력이 온전히 계승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 구하기 힘든 실험체를 다 먹이기에는 리스크가 컸다.
이에 사제는 고심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아이스 쉬프트’를 온전히 ‘구원’에게 계승시킬까.
그러던 도중 우연히 알게 된 실험.
바로 몇 년 전,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납치극의 장본인들. 진화단의 ‘호문클루스F’라는 실험이었다.
“강제로 혈족을 계승시킨다…… 강제로 계승한 힘은 최대 80퍼센트까지 보존했지만 불안전한 신체는 곧 붕괴됐다…….”
이 대목에서 서창현은 묘수가 떠오르는데.
“그럼…… 붕괴되기 전에 먹이면 되는 거 아닌가?”
인간이 붕괴되는 게 무슨 상관인가.
어차피 먹히는데.
붕괴됐지만 혈족의 힘은 가지고 있는 거 아닌가? 인간이란 그릇에 꾸역꾸역 힘을 집어넣고, 그릇이 부서지기 전에 ‘구원’이 먹어 버린다면?
혈족을 온전히 계승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혈족이란 힘을 담는 그릇 따위로 보는 악마적인 발상.
신이 있다면 절대로 허락해선 안 되는 발상이지만.
불행히도, 이 악마적인 발상은 결실을 맺게 된다.
* * *
얼음으로 이뤄진 운무가 펼쳐지더니, 대기의 온도가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치닫는다.
급속히 냉각되는 공간.
내뱉는 호흡에 성에가 끼고, 가열됐던 근육들이 추위에 움츠러들었다.
“어째 덩어리보다 더 잘 쓰는 것 같냐.”
아이스 쉬프트(Ice Shift).
얼음을 이용하는 구현계 혈족 계승.
전에 봤던 덩어리는 이걸 단순히 빙결 마법처럼 썼는데, 저기 위에 있는 타천사들은 왜 이 혈족이 ‘구현계’라는 건지 정확히 보여 주고 있다.
“이크.”
떨어지는 얼음 바늘을 피하며 한 바퀴를 구른다.
일단 벗어나야 한다.
일어나자마자 재빨리 백 스텝.
발이 땅에 닿자마자 아크로바틱하게 뒤로 한 바퀴 돌아 달려갔다.
하지만 몇 발자국 걷지 못하고 걸음을 멈춰야 했는데.
쿵! 쿵-!
내 앞으로 얼음벽이 세워진 것이다.
위를 보니, 타천사 두 놈이 양쪽을 막은 것.
까득, 이를 깨물고는 마귀를 휘두른다.
순간, 불꽃에 휩싸이는 마귀.
플레어(Flare).
화염 마법의 기본이자, 가장 범용성이 높은 마법이 마귀 안에 담기고, 얼음벽을 강타했다.
카가가강!!
폭발하듯 터지는 얼음 벽.
녀석들도 이럴 줄 알았는지, 부서진 얼음벽 뒤로 또 다른 얼음벽이 솟구쳤다.
어깨를 들이밀며 차지 후, 다시 얼음벽을 부순다.
다시 세워지고, 나는 다시 부수고. 세워지고 부수고, 세워지고 부수고.
근접전에서는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녀석들은 철저히 나를 봉쇄하며 고사시키려고 했다.
“어디까지 할 수 있나 해 보자.”
육망성 마법진이 내 몸 곳곳에 새겨졌다.
스트렝스, 헤이스트, 애니르마, 리젠틱 등등.
온갖 버프 마법이 내 몸을 감싸는 가운데, 플레어의 불꽃이 팔을 따라 내 몸 위로 타올랐다.
손으로 허공을 찢었다.
공간이 열리고 어둠 속에서 스켈레톤 군단이 안광을 내뿜으며 날아간다.
하지만,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얼음 운무에 얼어붙어 바닥으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아까도 이랬다.
소환물, 정확히 나의 스켈레톤을 저격하는 얼음 운무.
그래서 소환을 하지 않았지만.
“오른손, 왼손. 제물 써.”
바포메트와 아수라가 쟁여 놨던 제물을 먹는 순간.
마나 미터기가 급격히 치솟고.
내 주위를 덮고 있던 플레어가 폭발하듯 화염을 뿜어낸다.
플레어(改)
인펙션 플레어
화르르르륵-!!
플레어가 영역을 넓혀 가더니, 불꽃을 전염시킨다. 바닥에 붙고, 풀에 붙고, 결정적으로 나의 스켈레톤에게까지 달라붙는다.
귀기로 일렁이는 영혼의 불꽃이 아닌, 실제 불꽃이 붙어 타오르는 스켈레톤들.
불꽃이 얼음 운무를 막아서자, 스켈레톤들이 이제껏 허무하게 사라졌던 일을 보상받듯 하늘로 솟구쳤다.
그 모습이 뭐랄까, 마치 불을 붙인 폭죽 같다고나 할까.
불꽃을 뒤집어쓴 스켈레톤 군단이 하늘로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이를 막으려는 듯 허공을 막아서는 얼음벽.
한 마리를 막았다.
세 마리를 막았다.
다섯 마리를 막고.
열 마리를 막았다. 하지만 스무 마리, 서른 마리……
세 자릿수를 넘어가자.
스켈레톤을 막고 있던 얼음벽은 팔팔 끓는 냄비의 뚜껑처럼 버티지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키에에에엑-!
귀곡성을 뿜으며 솟구치는 불꽃들.
불꽃을 머금은 스켈레톤이 타천사들을 향해 사슬을 뿌리고, 하늘에는 불꽃의 거미줄이 지어졌다.
그런 가운데 난.
내게 벽을 세우던 놈에게 접근.
“어디서 한눈파냐.”
“……!!”
마귀를 휘둘렀다.
검호류 발검술
달빛 베기
어둠을 베어 가는 순백의 섬광. 그 앞을 가로막는 얼음벽.
푸른 스파크가 튀며 카드득, 얼음이 깎이는 소리가 들리는데, 승자는 얼음벽.
섬광은 끝내 벽을 뚫지 못한 채 얼음벽에 막혀 빛을 잃어 갔다.
생존 본능은 있나 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니 더 강해지는 건 확실.
달려가던 발을 바닥에 박자 몸이 멈추며, 육망성 마법진이 떠오른다.
하체의 근육들이 폭발하듯 부풀어 오르고, 몸을 회전.
그 순간, 내 몸에서 연소하며 몸집을 키워 가던 불꽃이 마귀에게 갈무리.
검호류 발검술
대지 가르기
회전하듯 마귀가 허공을 벤다.
검의 궤적으로 스며드는 바람.
요란했던 동작에 비하면 허무하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대지 가르기’는 타깃형 검술. 정확히 지정된 타깃을 향해 날아가, 적을 분쇄한다.
이름처럼 대지를 가르며.
단단했던 얼음벽이 와장창 깨졌다.
지면에 생긴 균열.
대지 가르기가 만들어 낸 균열로 타천사의 피가 고여 있다. 어깻죽지부터 가슴까지 찢겨져 나가며 즉사한 타천사의 피였다.
“일단 한 놈.”
손가락을 튕기자, 균열 속 어둠이 생물처럼 입을 벌려 타천사를 삼킨다.
두 번째 목표는 하늘 위의 저놈.
무식하게 큰 날개를 펄럭이며 내 귀여운 스켈레톤들을 죽이고 있는 저놈이다.
발아래에 떠오르는 마법진.
마나가 요동치고 지면의 부스러기가 중력을 거스르며 떠오르더니.
쏘아진다.
뇌관을 뚫고 쏘아진 총알처럼.
일직선, 최단 거리로 타천사를 향해 쏘아지는데.
막아서는 얼음의 팔들. 수십 개의 얼음 팔들이 허공에서 생성돼 나를 막아섰다.
저놈은 벽이더니, 이놈은 팔인가.
웃으며 손을 뻗었다.
아포칼립스
Apokalypsis
아포칼립스로 아이스 쉬프트가 실시간으로 분해되어 갔다.
흩날리는 얼음 송이 사이로 당황하는 타천사의 눈빛이 정처 없이 흔들리고.
“두 놈.”
푸쉭-!
마귀가 심장을 꿰뚫는다.
꾸역꾸역 터져 나온 타천사의 피가 마귀의 검면을 타고 흘러내리다, 이내 흡수됐다.
우우웅-
맛있다며 좋아하는 녀석.
강한 적, 신선한 피.
타천사는 마귀의 입맛을 저격한 최고의 먹이였다.
하지만 아직은 안 돼. 식사를 즐기기에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어둠에 타천사가 흡수되자 먹이를 뺏긴 마귀가 징징댔다. 정말로 ‘지이잉- 지이잉-.’ 몸을 떨며 조르는 녀석.
귀엽게, 나는 녀석을 툭툭 치며 어깨에 걸쳤다.
“조금만 참아.”
아직 많으니까.
파앙-!
또 다른 타천사를 향해 쏘아졌다.
* * *
이제껏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것들이 일거에 몸을 일으켰다.
함경남도를 중심으로 저항선을 펼친 셀루티스는 하루에도 몇 번씩 타천사들을 이용한 공습을 쏘아 대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 가장 난감한 사람은 윌리엄.
“Oh my god…….”
윌리엄이 정신 나간 얼굴로 하늘을 본다.
그의 시야에 하늘하늘 내리는 눈송이가 담겼다. 일견 아름다운 모습. 그러나 저 눈송이는 엄연히 ‘아이스 쉬프트’로 구현된 눈송이다.
접촉 시 움직임이 느려지고, 축적되면 ‘결빙’ 효과까지 있는 제어기.
“……하필 아이스 쉬프트가 나오냐고.”
여기도 아이스 쉬프트, 저기도 아이스 쉬프트.
이게 말이 돼?
아이스 쉬프트라고! 얼음 속성에 한해서는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혈족 계승이 아이스 쉬프트란 말이다!
그런데 날아다니는 타천사들 전부가, 박기혁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나 소나 아이스 쉬프트를 쓰고 있다.
챈들러 가문 사람들이 이 장면을 봤다면 아마 피를 토하며 쓰러지지 않을까. 혈족의 힘을 사람도 아닌 몬스터들이 사용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걸 걱정하기에 지금 당장 윌리엄의 머리는 충분히 혼란스럽다.
“어떻게 하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해.
아이스 쉬프트는 챈들러 가문의 혈족.
고로 챈들러 성을 쓰는 자 외에는 쓸 수 없는 힘.
챈들러는 미국을 대표하는 명문가.
그런데 지금 하늘에 떠 있는 저 타천사는 아이스 쉬프트를 쓰고 있다. 얼음의 칼날이 조사대를 베고, 얼음의 빗줄기가 진지를 얼리고 있다.
미국 교류단 단장으로서, 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챈들러가 저 타천사랑 상관없다는 것을, 미국이 이 일과 상관없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고!!
뿌직뿌직-
소리가 들린다.
이것은 윌리엄의 내면에서 나는 소리.
찬란했던 그의 커리어가 박살 나는 소리였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명해야 한다.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높은 확률로 이 책임에는 윌리엄 본인이 포함될 것이다.
“안 돼. 절대 안 돼.”
윌리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완드를 손에 들고는 인공 정령 ‘크리스’를 소환했다. 이등신 레드 드래곤이 허공에서 나와 그의 어깨에 앉는다.
“누구 맘대로. 절대로 포기 못 해.”
이 명성, 이 인기, 이 특권…… 모두 포기 못 한다.
절대로 포기 못 한다.
이런 주인의 집착에 반응한 크리스.
울음을 터트리고.
구우우- 크아아아아아!!
그 순간, 수면처럼 흐릿하게 흔들리더니, 윌리엄의 정령 군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모조리 죽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