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92화 (9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92화>

나의 광신도 혐오는 제국 시절, 나의 스승이었던 영감의 영향이 크다.

“명심해라. 광신도는 절대 상종하지 말아야 한다.”

수많은 군상과 엮일 것이다. 그중에는 나를 이용하려 드는 사기꾼도 있을 것이고,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머저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엮이지 말아야 할 인간이 있는데.

그들이 광신도(狂信徒)다.

영감은 이 광신도를 극도로 혐오했다.

“이 새끼들은 말이야. ‘신’이란 단어 하나로 세상의 모든 현상을 부정할 수 있는 아주 쌍또라이 새끼들이다.”

“웃긴 거 가르쳐 줄까? 인류의 진화, 기술과 역사, 세상을 발전시킨 모든 현상. 반대로 전쟁, 재앙, 재해, 인류를 도태시킨 모든 현상. 이 모든 일 앞에 ‘신에 의한’이란 형용사가 들어가면 모든 게 합리화된다.”

신이 인간을 가여워해 인류를 진화시키고, 신에 의해 예견된 역사. 자연 재해도 신이 내린 징벌쯤으로 해석되면.

모든 게 말이 된다.

이게 만능의 형용사가 아니면 또 무엇인가.

“뭐? 옆집 사제들이랑은 잘 지낸다고? ……잠깐. 어디 보자, 내가 매를 어디다 뒀더라…… 이것아, 어디서 하늘 같은 스승의 말을 허투루 들어! 내가 언제 사제라 했냐. 광신도! 광신도라고!”

“한 번만 가르쳐 준다. 사제와 광신도의 차이가 무엇이냐. 답은 ‘믿음의 강제성’이다.”

사제는 믿음을 전파한다.

광신도는 믿음을 강요한다.

사제의 믿음은 평온과 안식을 찾는다.

광신도의 믿음은 복종과 희생을 강요한다.

“인간이 누려야 할 모든 권리를 거세시키고, 오로지 ‘믿음’만으로 채워 넣은 인형. 그래서 광신(狂信)인 거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왜 믿냐고…… 왜긴, 얘들은 인간이 가장 절박한 순간에 믿음이란 먹이를 던져 주거든. 너라면 알 거다. 굶주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사 직전, 뱃가죽 위로 장기의 꿈틀거림이 발악처럼 느껴질 때, 그때 건네주는 감자 한 알을 거부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광신도는 이 굶주림 속 감자처럼 절박한 순간에 찾아온다.

“이렇게 찾아온 광신도는 믿음을 주입하지. 거짓된 믿음을 말이야.”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그런데 또 지랄 맞게도, 이런 거짓된 믿음에 ‘신성력’이 발동한다? 이게 말이 돼?”

광신도가 믿는 신 중 진짜 존재하는 신이 몇이나 될까?

아니, 있기나 할까?

그런데 그들은 신기하게 ‘신성력’을 가진다.

왜냐하면.

“신성력에서 중요한 건 ‘신’이 아니라 ‘믿음’이거든.”

이게 영감이 ‘신’을 싫어하는 이유이며, 동시에 ‘인간’이 지닌 가능성을 높이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설령 거짓된 경전이라도, 이름조차 없는 무(無)의 존재라도 인간이 간절히 믿는다면, 믿음은 실체화된다.

거짓된 경전에 신앙이 깃들고, 무의 존재는 이름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된 믿음에서 나온 힘이, 제대로 된 힘일까? 복종과 희생으로 빌려 온 힘이 과연 신성할까?

답은 쉽게 나온다.

아니.

거짓으로 출발한 믿음은 결국은 거짓으로 끝난다.

거기서 나온 힘 또한 거짓이며, 타락한 힘.

이 타락한 힘의 종착역은 파멸뿐이다.

그러니 피할 수 있다면 절대로 피하고, 어쩔 수 없이 엮였다면.

그땐.

“아예 뿌리를 뽑아라.”

먼지 한 톨도, 그림자 한쪽도.

존재 자체를 지워 버려라.

영감은 내게 이렇게 당부했었다.

*   *   *

어둠 속에서 번쩍이는 마귀의 검광.

번쩍이는 박기혁의 마귀가 광신도의 인영을 가른다.

그러나.

까앙-!

벽에 막히는 마귀.

광신도가 황홀하다는 듯이 눈을 뒤집고 웃는다.

“그분이 지켜 주신다. 허업!!”

곧바로 날아오는 광신도의 반격. 박기혁은 급히 몸을 빼냈다.

“짜증 나네.”

현재 박기혁이 있는 게이트는 던전 필드. 사방이 꽉꽉 막혀 있는 던전이란 것이다.

다시 말해 대검이나 창처럼 리치가 긴 무기는 쓰기 부적합하단 말.

“형제니임!!”

광신도의 갑옷 위로 순백의 문양이 떠오르고.

문양이 빛을 발하는 순간, 신성 주문의 힘을 빌린 광신도의 도끼가 천둥처럼 내리쳐졌다.

콰가가강-!

박기혁의 오토 실드를 부수고 쇄도하는 광신도의 도끼.

이에 박기혁도 마귀로 막아 내려 했지만.

까앙!

“……?!”

느껴지는 저항.

마귀가 던전의 벽에 걸린 것이다.

“지랄 났…….”

박기혁의 눈빛에 처음으로 ‘당황’이란 감정이 물들고.

반대로 광신도는 기세를 높였다.

“그분의 뜻대로오!!”

휘뿌연 신성력이 둘러싼 도끼.

일단 막아야 한다.

박기혁이 손을 꺾으며 손잡이로 도끼를 막아 냈다. 하지만 몸을 기형적으로 꺾어서일까. 자세가 무너지며 빈틈이 속출했다.

중무장한 광신도를 앞세운 채 기회를 엿보던 타천사가 이 틈을 놓칠 리 없다.

이제껏 견제용으로 날렸던 빛의 화살이 더 화려하게 발광했다.

강화된 빛의 화살이 빈틈으로 쇄도한다. 오토 실드가 바쁘게 움직이며 ‘빛의 화살’을 막아 내는데, 역부족이다.

눈앞의 타천사는 인간의 시체를 충분히 탐닉한 개체. 검기 한 번에 싹뚝 잘려 나가던 타천사가 아니었고, 한 방 한 방이 예사롭지 않았다.

여기에 저기 한쪽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광신도의 기도까지 더해지니.

“그분이시여, 이단을 징벌하소서.”

희뿌연 연기가 뒤덮이며 마나가 흩어지길 잠시.

기어코 빛의 화살은 박기혁의 오토 실드를 뚫고서 어깨를 강타했다.

백색 섬광과 동시에 박기혁의 어깨로 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공방의 균형이 깨졌다. 지겹던 대치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광신도와 타천사는 마구잡이로 공격을 퍼부어 댔다.

앞과 뒤에서 방패로 밀어붙이고, 곳곳에서 타천사의 신성 마법이 번쩍였다.

그렇게 밀리고 밀려, 막다른 골목까지 몰린 박기혁.

등에 닿는 차가운 감촉.

벽이다. 이제 퇴로는 없다.

‘ㄱ’ 자 코너에 몰린 상황. 양쪽에서 몰려오는 적들이 보였다.

“확실히.”

까다롭다.

신성력의 냄새가 불쾌함을 넘어, 역겨운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제 장난치는 수준을 넘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네.’

자신이 너무 얕봤다. 카니발리즘의 특성상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게 당연한데, 아무런 방비 없이 여기에 들어온 게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박기혁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고, 박기혁의 사고는 그보다 더 빠르게 상황을 판단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이 내려진 순간.

박기혁은 뺨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핥으며 씨익 웃는다.

“어디 본격적으로.”

놀아 보자고!

꽈앙!

마귀를 박아 넣는다.

바닥에 새겨진 육망성 마법진.

아포칼립스. 박기혁의 고유 마법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포칼립스가 핏빛을 머금은 순간.

증식한다.

디스펠

Dispell

마법을 지우고.

마리오네트

Marionette.

신경계를 뒤흔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워터 폴(改)

Water Fall

콰아앙아앙-!!

공간이 깨지며 물벼락이 쏟아졌다.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거침없이 쏟아지는 ‘워터 폴’.

적들은 물줄기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몸을 피해 보려 했지만, 좌우는 이미 막힌 상황.

내 마귀를 봉쇄할 때야 좋았겠지만, 이제는 역으로 저들이 난감해졌다.

“기, 기도합시다!”

“그분이시여!”

다급해진 광신도들이 신을 찾아보지만, ‘마리오네트’ 저주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밀폐된 공간. 사방이 꽉 막힌 이곳에서 댐의 물이 터지듯 쏟아지는 ‘워터 폴’의 수압은 인간이 막을 수준이 아니었다.

“마…… 막아, 커헉!!”

우르르!

마치 수도관의 물처럼 마법도, 광신도도, 타천사도, 서 있는 모든 것들이 휩쓸려 나갔다.

쿵! 쿵! 벽에 부딪치며 엉키고, 장비가 손을 벗어나고, 몸을 가눌 수 없이 뒹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지하 공동.

텅 빈 굴 안.

저벅저벅.

굴 저편, 아득한 어둠 속에서 들려오는 박기혁의 걸음소리.

거대한 실루엣이 흐릿흐릿 보일수록, 광신도의 얼굴에는 짙은 음영이 꼈다.

“형제님.”

“네, 준비됐습니다.”

모습이 보이는 순간, 모두 일거에 달려든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박기혁을 기다린다.

입구 앞을 부채꼴로 포위하는 광신도들.

타천사도 날개를 펄럭이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언제라도 공격할 수 있게 태세를 갖췄다.

저벅, 저벅, 저벅, 저벅……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음영을 뚫고 박기혁의 발이 나오는 순간.

곧바로 신성력을 일으키는 광신도와 타천사들.

그러나…… 이쪽은 이미 마귀를 휘두르는 중이었고.

검호류 변검술

십자 포화

‘十’ 자 검기가 허공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   *   *

“아구 아구, 어깨야.”

전투를 정리한 나는 베이스캠프로 걸음을 옮겼다.

수정구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걸으니, 몇 골목을 지나자 빛이 보였다.

이쯤에서 마음을 준비를 해야 한다.

빛으로 걸음을 내딛는 순간, 재빨리 손을 뻗는다.

“기혁…… 큭!”

내 손에 막혀 버린 진유리. 내 손바닥에 이마를 밀착한 채 울상을 짓고 있다.

“너어!”

“적당히 하자. 적당히 좀.”

얘는 정도를 몰라요 정도를.

주먹으로 머리를 ‘콩’ 때리고선 진유리를 지나쳤다.

“걔들은.”

“누굴 말하는 거야? 내가 잡은 애? 아니면 윌리엄하고 도둑년?”

“니가 잡은 애.”

“저기 저쪽 천막에 모아 놨어.”

“몇이나?”

“다섯.”

“고생했어.”

게이트 총 리셋이 시작된 지도 벌써 한 달.

남쪽부터 시작된 게이트 리셋은 이제 서울을 벗어나 평양 쪽까지 다다른다.

평양을 포함해 북쪽은 예로부터 ‘게이트 밀집 구역’이라 불릴 만큼 게이트가 많이 집중된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될 정도.

어머니를 포함해 고위 관계자들은, 만약 셀루티스가 게이트에 숨어들었다면 이곳에 집중됐을 거라 예상했고.

예상은 적중했다.

이제껏 작으면 한 마리, 많아 봐야 서너 마리쯤 보이던 타천사들이 북쪽 게이트에 들어서자 작으면 서너 마리, 많으면 일곱 이상이 숨어 있었다.

아마 여기서 다 태어난 것은 아닐 것이다.

전국 게이트에서 회수한 타천사들을 이곳에 숨겨 둔 것이겠지.

이렇게 셀루티스가 도망을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저항하자, 빠르게 북쪽까지 치고 올라갔던 수사대는 모두 대치 상황에 빠졌고, 여기까지가 현재의 상황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 천막이 보인다.

슬슬 돌려보내야 할 차례인가.

“넌 돌아가.”

“나도 보면 안 돼?”

“뭐 좋은 거라고.”

“그래도.”

쑥스럽게 말하는 진유리.

몸을 배배 꼬며 올려다보는 눈이 퍽 귀엽다.

이것이 요즘 귀여운 짓에 맛 들렸나. 아주 요망한 짓이 부쩍 늘었네.

“아직 멀었다, 꼬맹아.”

“야, 너랑 나랑 동갑이야. 나도 다 컸어.”

“쥐방울만 한 게 크긴 뭘 크냐. 얼른 가.”

안 가려는 진유리를 기어코 돌려보내고 천막에 들어섰다.

곧이어 내 시야에 비치는 것은 속박된 채 눕혀져 있는 사람들.

광신도들이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

“음, 말이 없네.”

“…….”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정보 불 사람 손. 내가 책임지고 고통 없이 죽여 줄게.”

“…….”

“없어? 없구나. 그럴 줄 알았어.”

역시나 이번에도 반응이 이렇다.

이제껏 잡힌 광신도들도 비슷했다. 자살을 시도하고, 그마저도 실패하면 겸허히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실 평소 같았으면 상관없다. 이들이 말하든 말든 무슨 상관인가. 기억을 뽑아내면 그뿐인데.

하지만 얘들은 좀 다르다.

“알아. 너희들 대가리에 이상한 자물쇠 심어 놓은 거.”

“…….”

이 셀루티스란 자식들은 독하게도 머리에 자물쇠를 심어 놨다.

그냥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 자물쇠. 십자가 모양의 아티팩트인데, 놀랍게도 이걸 뇌의 중추에 결합해 버린 것이다.

수많은 정신 금제를 봤던 나조차도 처음 보는 신박한 방식.

처음에 이 꼴을 봤는데, ‘와!!’ 절로 탄성이 나오더라.

어쩜 이렇게 반인륜적인 방식을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가 그거 보고 알았지, 너희가 믿는 신이란 놈이, 개자식이란 걸 말이야.”

“……!!”

“웁! 웁!”

“시능! 모역하디 아라!!”

재갈이 물린 상태로 바락바락 대드는 녀석들.

목숨을 위협할 때는 눈 하나 깜짝 안 하던 것들이 모시는 신을 부정하자 눈을 까뒤집으며 달려들었다.

“니들은 스스로가 숭고한 순교자라고 믿는 것 같은데.”

내 입장에서는 웃긴 노릇.

“근본도 없는 ‘존재’를 신으로 모시는 주제에 순교는 무슨 순교야.”

“……!!”

“됐어. 그만하자. 어차피 너희랑 대화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이번에도 발악하려던 녀석들이 눈을 부릅떴다.

몸이 안 움직이니까 마법으로 꼼짝달싹 못하는 녀석의 얼굴을 잡고 눈을 맞췄다.

그리고 공간이 깨져 가길 잠시.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대악마들.

“너희가 그렇게 죽고 못 사는 신이, 너희를 구원하는지 지켜볼게.”

그렇게 광신도들은 어둠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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