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91화>
옵티멈에 의해 밝혀진 타천사의 출현.
게다가 그 뒤에는 ‘셀루티스’가 관련돼 있다.
이 충격적인 소식에 경찰, 관리국, 집행부까지 모두가 충격에 빠지게 된다.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경찰.
게이트를 관리하는 관리국.
초인 범죄와 빌런을 담당하는 집행부.
한국을 대표하는 세 곳의 국가 기관.
이들은 때로는 수사권을 두고 견제하기도 하고, 빌런들을 잡기 위해 협력하며 초인 사회의 균형을 맞춰 왔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 세 곳 중 어느 곳도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게이트를 자유롭게 드나드는 몬스터라니, 이게 레드 게이트랑 뭐가 다릅니까. 관리국에서는 어떻게 하시고 계십니까.”
“저희야 일단 봉쇄 조치를 취했소. 그쪽 경찰에서는 어쩌기로 했소?”
“저희도 비슷합니다. 한동안 사냥 금지 명령 내렸습니다.”
“저런…… 초인들 추적하기가 쉽지 않을 건데요.”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어 나가고 있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 일단 경찰은 ‘왜 저런 몬스터가 있는지 몰랐나?’, ‘게이트를 드나들 수 있다면 당장 우리 옆에 나타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인간을 먹는다면서!’라며 온갖 몰매를 맞을 거다.
관리국은 또 어떻고.
일단 ‘타천사’라는 변종 몬스터가 게이트에서 나온 게 확인됐으니, ‘저딴 몬스터가 게이트를 드나드는데 어떻게 게이트를 관리하는 관리국이 모를 수 있습니까?’라며 난도질당할 테고.
하지만 이런 끔찍한 상황임에도 둘은 여기 집행부에 비하면 상황이 나은 편이다.
“그나저나 집행부는 어떻게 하기로 했습니까?”
“움직이고는 있지요……?”
“셀루티스를 추적 중입니다.”
“하…… 하, 그렇지요. 잘될 겁니다.”
“맞습니다. 맞아요. ‘만창’ 아니십니까. 다 잘될 겁니다. 커흡.”
“감사합니다.”
집행부장 지성철이 태연하게 말한다.
하지만 그의 속은 마냥 편하지는 않았는데.
‘……피곤하군.’
재작년 새롭게 집행부장의 자리에 오른 ‘지성철’.
그는 수호자의 한 축으로, ‘만창(萬槍)’이라 불렸던 남자다.
대대로 집행부장의 자리는 은퇴를 앞둔 수호자들 중 한 명이 맡아서 하는데, 지성철은 아직 현역임에도 스스로 강력히 원해 집행부장이 된 케이스다.
그리고 이때 그가 내세운 공약이 셀루티스, ‘광신도의 박멸’이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셀루티스 교단.
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분의 뜻’이란 말을 앞세워 악행들을 저지른다.
밀수, 밀입국, 납치, 인신매매, 마약 유통, 빌런 양산화 등등.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범죄를 다 하며, 광신도들은 그게 곧 정의이며 신의 뜻이라 지껄이고 있다.
지성철은 이 역겨운 셀루티스를 한국. 적어도 이 땅에서 만큼은 박멸하고 싶었고, 그래서 엄청난 물자와 인력을 들여 암암리에 ‘셀루티스’를 수사, 척결하고자 했다.
특히나 비교적 현역 수호자였던 인맥을 이용해 같은 수호자였던 ‘검호 박건’의 지원을 받으며 수사에 탄력을 받는 중이었는데.
이때!
이렇게 수사하고 있던 때.
하필이면 사고가 터졌다.
그것도 대형 사고가.
그것도 셀루티스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은 사고가 말이다.
“일단은 공개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오. 확실하지 않은 상태인데 알려지면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뿐이지요.”
합리적인 의견.
그럼에도 사심이 가득하다.
책임을 회피하고 당장에 급한 불을 끄고 싶다는 경찰청장과 관리국장의 의지가 엿보였다.
지성철은 이런 두 사람의 행태가 짜증 났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저도 그 편이 좋겠습니다.”
일단은 수습이 먼저다.
수습이……
그날, 전국 에이전트에 한 통의 공문이 전달된다.
‘게이트 총 리셋’
Gate All Reset
* * *
문이 열리며,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대표님!”
“저도 봤어요.”
김연희가 모니터에 뜬 공문을 보고 있다.
내용인즉슨 ‘게이트 총 리셋’.
게이트는 크게 세 종류다.
일반적인 사냥터인 ‘블루 게이트’.
랜덤으로 출몰하는 일회성 게이트인 ‘퍼플 게이트’.
그리고 몬스터를 ‘역류’시키는 ‘레드 게이트’.
여기 공문에서 말하는 게이트는 ‘블루 게이트’다.
초인들 사이에서는 ‘블루 게이트는 클리어하지 않는다.’가 규칙이며 불문율이다. 보스를 잡지 않고 일반 몬스터만 사냥한단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게 이득이니까.
24시간, 언제라도 들어가서 사냥하며 마석을 획득할 수 있다.
반면 게이트를 클리어하게 되면 일순간 게이트는 닫히고 ‘수면’ 상태로 변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열리게 된다.
이 과정을 ‘리셋’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리셋 시간이 게이트 레벨에 따라 가파르게 상승한다.
일례로 1레벨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는 2일에서 3일 사이라면, 5레벨 게이트는 2개월 정도다.
즉, 다시 말해, 보스를 잡고 ‘클리어’하는 이득보다 365일 게이트를 유지한 채 마석을 캐내는 것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익이란 결론이 나온 것이다.
관리국이 창설된 것도 이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고.
그런데 이 공문에서는 이런 이익을 포기하고 게이트 리셋을 명했다.
그것도 ‘모든’ 게이트를 말이다.
“제가 제안했지만 이렇게 빨리 통과될지 몰랐는데, 어지간히 다급했나 보네요.”
“다급할 만했습니다. 타천사란 몬스터를 다른 시각에서 보면 걸어 다니는 ‘레드 게이트’라고 봐도 무방하니까요.”
“하긴, 거기에 셀루티스도 뒤에 있죠.”
“맞습니다. 저들 입장에서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조용히 해결해야 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시끄럽지 않게 해결할 방법은 대표님이 말씀하신 방안밖에 없습니다.”
게이트 총 리셋.
사실 이건 김연희의 머리에서 나온 계획이다.
현재 이 사태의 핵심은 타천사와 셀루티스를 잡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몸을 숨기고 있다.
어디에? 게이트에!
“아무리 타천사가 인간을 닮았다고 해도, 날개가 있는 이상 외부에 숨길 수는 없어요.”
다른 나라라면 모른다. 저기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땅덩어리가 큰 나라라면 가능하겠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곳은 세계에서도 높은 치안 수준으로 정평이 난 한국이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죠. 저들은 게이트 안에 숨어 있어요.”
다만 이것만으로는 그리 특별한 계획이라고 할 수 없다.
게이트가 좀 큰가? 그걸 어떻게 다 수색하고 앉아 있나. 솔직히, 한국에 존재하는 게이트 내부 면적만 더해도 한국 면적보다 더 클 텐데.
이 부분에서 물을 수 있다.
그럼 박기혁과 진유리는?
그 둘은 레이더를 켠 것처럼 타천사를 골라내는데?
이건 두 명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마왕급의 마나 제어력과 ‘용의 눈’이 만든 마나 장악력.
이 두 개가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한 방법이다.
어디까지나 박기혁과 진유리가 특별한 것.
보통의 초인들이 게이트 내부에 숨은 타천사와 광신도들을 찾아내기란 굉장히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서 김연희가 제안한 것이 게이트 클리어다.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어디에 숨었든 튀어나오겠죠.”
클리어된 게이트는 게이트 내에 포함되지 않은 ‘모든 것’들을 토해 낸다. 인간이든, 물건이든, 그것이 무엇이든 전부 외부로 배출하는 것이다.
참고로 블루 게이트를 주기적으로 리셋해 주는 게 이 부분 때문이다.
게이트에 쌓인 외부 물질들이 ‘오염도’를 높이고, 이 ‘오염도’가 극도로 높아지면 최악의 경우 ‘레드 게이트’가 될 수도 있으니까.
“수사대에 연락해요. 이제부터 최단 시간 내에 전부 클리어하라 하세요.”
“알겠습니다.”
“아차, 그리고 마석 최대한 수입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어느 정도……?”
“될 수 있는 한 최대로요.”
“마석 시세…… 방어하실 생각입니까?”
“그렇잖아요.”
김연희가 창밖으로 아래를 내려다본다.
한시도 멈춰있지 않는 도시. 모두 저마다의 일로 바쁜 걸음을 내딛고 있다.
“마석 가격이 오르면 타격받는 건, 우리가 아니라 저분들이에요.”
평범한 사회에서 평범하게 삶을 사는 사람들.
많은 초인들 중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는 이가 있다. 자신들이야말로 선택받았다고 말하며, 일반인들은 열등한 존재라 폄하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김연희는 아니라고 본다.
초인과 저들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초인들은 그들끼리만 살 수 없을 거고, 저들도 초인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답은 쉽게 나오는 법인데.
그러니.
“괜히 초인들 싸움에 저분들이 피해 보면 안 되겠죠.”
* * *
초인드림.com
사냥 못 간지 며칠 째임. ㅅㅂ 게이트 출입 금지 이거 언제 풀리는 줄 아는 사람, 나 지금 존나 급한데.
└ 왜 급함?
└ 글쓴이) 돈 필요함.
└ ㄷㄷ…… 돈이면 인정이지…… 안됐다. 많이 급해?
└ 글쓴이) 존나 시급함.
└ 대출 받아보셈. 관리국에서 저소득 초인에 한해서 생계 지원 대출해줌.
└ 위에 분 이거 말하는 건가요. <링크>
└ ㅇㅇ 맞음, 이거 관리국에서 줌, 이율 개꿀 ㅎ. 나도 받았음.
└ 근데 님들아, 출입 금지 언제까지 하는 거래요?
└ 나는 이유나 알고 싶다. 무슨 일이 있기에 게이트 전부 통제하는지.
└ 아예 사냥을 못하는 건가??
└ 그건 또 아닌 것 같던데, 집행부 직원하고 메이저 에이전트 사람들이 출입하긴 하던데.
└ 옵티멈?
└ ㅇㅇㅇ
└ ㅅㅂ 설마 이거 독점 각?
└ 너는 생각을 하고 말해라, 독점할 거면 이렇게 대놓고 하겠냐? 응?
└ 왜 못할 거라 생각함. 우리나라 옵티멈 공화국 아님?
└ 킹직히 갓연희느님이 악연희느님으로 막을 사람 없다.
└ ㅉㅉㅉ 어이 ㅈ뉴비새끼들아. 연희느님 없었으면 우리도 일본처럼 유사 민주주의하고 있을 거다.
└ 맞지, 맞지. 중국 봐라. 걔들은 아예 대놓고 통제하잖아. 양 옆에 있는 나라들이 이 모양인데, 옵티멈 없었으면 아주 잘 돌아가겠다 ㅋㅋ킼ㅋㅋ.
└ 응, 꼰대 왔쥬?
└ 그래서 게이트 통제하는 이유가 뭐냐고? 아는 놈 없냐? 드림판 이렇게 죽었음?
└ 음, 이건 ‘카더라’인데요. 꽤 규모가 큰 빌런 집단 하나가 게이트 내부로 숨었다고 해요. 그래서 녀석들 추적하고 있다는 소문이……
└ 설마 저번처럼 ㅈㅎㄷ처럼 3대 빌런들 온 거 아니야?
└ …… 그랬으면 난리 났다.
└ 군대 출동했을 듯 ㅋㅋㅋ 전에 ㅈㅎㄷ 때도 출동할뻔했다잖아.
└ 글쓴이) ㅅㅂ롬들아 왜 내 글에서 ㅈ지랄인데! 그래서 사냥은 언제 갈 수 있냐고!!
└ 모름 ㅋ
└ 저도 ㅋ
* * *
“박기혁…… 옵티멈 소속…… 확인됐습니다. 임시 등급 특 S급. 확인했습니다. 5레벨 게이트 이상으로 진입해 주시면 됩니다.”
관리국 직원을 뒤로하고 걸음을 내딛는다.
주위를 보니 철조망이며, 각종 총기들이며 무슨 전쟁이라도 치를 것처럼 병력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어머니가 말했던 게 이거구나.”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튀어나온 놈들을 잡겠다고 하셨던가.
좋은 방법이다. 나처럼 게이트 전역을 탐지할 수 없다면 최선의 방법.
걸으며 경계 상황을 감상할 때, 누군가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는다.
말해 뭐하나. 진유리다.
“와, 사람 많다. 우리는 저렇게 안 해도 되잖아.”
“사람 많으니까. 좀 놔라.”
“에이, 싫은 척은.”
“……흉물스러운 거 들이대지 마라. 느낌 안 좋다.”
“뭐? 흉물? 어디가? 구체적으로 어디가 흉물스럽다는 거야?”
유리는 모르게쏘오~
진유리가 음흉하게 웃는데, 진짜 얘를 어째야 하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윌리엄, 궁금한 게 있어. 내가 쟤보다 못한 게 뭐야. 왜 쟤는 되고 나는 안 된다는 거야?”
“그걸 왜 나한테 묻나.”
“나는 모르니까.”
“그러니까, 네가 모르는 걸 왜 나한테 묻냐 이 말이다.”
“키도 내가 더 커, 엉덩이도 내가 크고, 가슴도…….”
“Fu**ing!! 그런 거 묻지 마!”
지 몸을 더듬으며 이상한 질문을 내뱉는 로자리아.
쟤는 어디서 뭘 잘못 먹었나. 아니면 며칠 전에 한 대 때렸다고 머리가 맛이 갔나. 그때부터 쭉 저 상태다.
진심으로 윌리엄이 불쌍할 지경이다.
“야! 박기혁. 너 지금 나 놔두고 저 도둑년 보고 있는 거야?”
“……?! 날 보고 있었다고요? 드디어?”
“설마 질투 유발? 너…… 이 여우…….”
“저기요, 기혁 팍.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제가…….”
안 되겠다.
여기를 탈출해야겠다.
더 이상 여기 있으면 정신 나갈 것 같다.
그렇게 난 들러붙는 두 여자를 뿌리치고 게이트로 진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