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89화 (89/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89화>

박기혁이 일일이 게이트를 털며 천사들을 추적하는 사이.

당연한 말이지만 김연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5대 에이전트의 한 축인 옵티멈.

당연히 이 5대 에이전트가 모여 설립한 ‘연맹’. 정식 명칭 ‘파이브 시스터즈(Five Sisters)’의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현재 게이트 내에서 돌연변이 몬스터가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 돌연변이 몬스터는 하얀 날개에,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며, 우리가 쉽게 연상할 수 있는 ‘천사’의 외형적 특징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조사된 변이 몬스터의 특징은 이렇다.

첫 번째, 게이트 진입과 이탈이 자유롭고.

두 번째, 인간을 비롯해 다른 생물을 먹는 잡식이며.

세 번째, 이 섭취 활동을 통해 신체 능력, 지적 능력, 마나까지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킨다.

네 번째, 살아 있는 ‘초인’을 포식할 시 상대방의 능력을 빼앗는다.

그리고 마지막.

“……빌런 집단 ‘셀루티스’가 이 변이 몬스터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핫라인으로 전해진 이 믿을 수 없는 정보에 다른 연맹들은 각기 반응이 달랐다.

영국의 ‘로열 쉬벌리(Royel Chivalry)’는 의도 자체를 의심했으며.

“킴의 의도가 뭘까. 이런 헛소문을 퍼트리는 의도가…….”

미국의 ‘스타 히어로(Star Hero)’는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스마트 킴이 없는 말을 했을 리는 없고…… 헤이, 에브리헴. 대사관에 연락해 줘.”

이집트의 ‘호루스의 눈’은 방관.

“알아보거라.”

러시아의 ‘스페츠나츠’ 역시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에췻! 그래서 뭐, 어쩌라아…… 에취!!”

미국을 제외하면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

그럴 수밖에. 근거가 없으니까.

생각해 봐라. 아무리 그럴듯한 정보라도 실체가 없으면 한낱 소문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개인도 이런데 단체, 그것도 에이전트 업계의 공룡이라 불리는 5대 에이전트가 근거도 없이 섣불리 움직인다? 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의 빠른 대응이 이상한 거지.

저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이란 말이다.

하지만 며칠 뒤, 이런 상황을 한번에 뒤집을 사진 한 장이 전해지는데.

아름다운 외모, 인간과 같은 신체 구조.

거기에 붙은 순백의 날개.

그것은 천사였다.

아니, 이제는.

“옵티멈은 최초 발견자의 권한을 발휘합니다. 현 시간부로 이 변종 몬스터의 네임은 ‘타천사’입니다.”

‘타천사’라 불리게 된 몬스터의 시체였다.

*   *   *

“다행히 제때 증거를 확보했네요.”

“기혁 씨가 큰일을 해냈습니다.”

“그러게요. 우리 아들, 매번 미안해요.”

엄마 잘못 만나서, 항상 큰일에 휘둘리고……

김연희가 씁쓸하게 웃다가 재빨리 표정을 고친다.

감상은 1절만. 지금은 한시가 바쁘다.

그녀의 시선이 천사, 이제는 공식적으로 ‘타천사’라 명명된 몬스터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해부 결과는요?”

“……우선 위장을 갈라 본 결과 인간을 비롯해, 다른 생명체를 먹는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잡식이네요. 또 뭐가 있죠?”

“다행이라면 성장하지 않았을 때의 기본 스펙 자체는 생각보다 낮은 걸로 보입니다. 섭취는 이런 부족한 스펙을 충족시킬 방법으로 추측되고요. 덕분에 섭취를 충분히 한 개체와 하지 않은 개체 간에 전투력 차이가 극명합니다.”

“기혁이 사냥 영상은 저도 봤어요. 확실히 편차가 크긴 컸죠.”

“날개 조직의 마법 저항력이 상당합니다. 아직 실험 중이지만 중급 이하의 마법은 거의 다 무효화시키고 있습니다.”

“……그건 안 좋은 소식이네요.”

중급 이하의 마법.

단위법상 ‘클래스’로는 5클래스 이하. ‘레벨’로 7레벨 이하 마법이다.

영국의 ‘브리튼 연구소’가 작년에 발표한 연구지에서는 세계 평균 초인 전투력을 15레벨 기준, 6레벨로 보았다.

그런데 중급 이하의 마법? 세계 전체 초인의 절대 다수는 이 수준조차 못 미친다는 게 학계 정설이란 말이다.

이를 토대로 본다면 현재 이 시간에도 게이트를 드나들고 있는 대부분의 파티, 혹은 공략팀들은 타천사에게 무력하다.

여기에 만에 하나 타천사들이 이 무력한 초인들을 먹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땐 정말 ‘레드 게이트’는 우스울 정도의 재앙이 펼쳐질 것이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김연희가 다급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손에 있는 폰이 끊임없이 울렸다.

“옵티멈입니다. 경찰청장님께 연결해 주세요…… 네, 기다려…… 저기요, 잠시만요? 이 번호 몰라요? 하, 대체 핫라인 관리를…… 후우, 상급자 불러 주세요. 빨리요! 급하다니까요!!”

“관리국장님이시죠. 저 김연희예요. 긴급 상황이에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모두 진실…….”

“집행부 지성철 부장님 연결해 주세요. 성철 오빠, 나 김연희. 시간 없으니까 잘 들어…….”

경찰의 통해 안전을 확보하고, 관리국을 통해 게이트를 봉쇄한다. 마지막으로 집행부에게 지원 요청 및 가장 중요한 수사 협조권을 받는다.

“협조 요청 떨어졌습니다!”

“모두 출진하세요.”

이젠 정말 시간 싸움이다.

*   *   *

“출진하시랍니다!”

활주로를 가득 채운 헬기들이 동시에 시동을 걸고, 서서히 회전하는 로터 사이로 격납고의 문이 일제히 열렸다.

끼익-!

전투복을 입은 일단의 무리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옵티멈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조사팀.

그리고 그들의 선두에는.

“가죠.”

백호, 박민지가 있었다.

백호단 외 283명.

출진.

*   *   *

길게 파여 있는 참호와 화살을 쏘는 고블린 군대.

방패를 든 채 진격하는 스켈레톤 군대.

이곳의 전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콰직!

화살 세례 속에서도 기어코 참호로 뛰어든 스켈레톤이 고블린의 두개골을 갈랐다. 이를 시작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전선.

그리고 그 틈으로 내가 달려갔다.

“훕!”

연기를 뚫고서 나간 자리.

저 멀리 보이는 성까지는 일직선.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달리자.

허벅지가 터질 듯 부풀어 오르며 내 몸이 날 듯 도약했다.

파앙- 파앙-! 콰아앙아앙!!

폭발하는 함정을 피하며.

타타탁- 타타탁-! 타타타탁-!!

쏘아지는 화살을 막아 내며

전진, 또 전진한다.

하지만 성에 가까이 갈수록 화살의 숫자는 더욱 많아지고, 위력도 강해진다.

마구잡이로 쏘던 화살 중에는 분명히 급소를 노린 화살이 존재했고, 개중에는 맹독 화살이나 폭발 화살 같은 ‘특수 화살’도 심심찮게 보였다.

시야를 가릴 만큼 쏟아지는 화살 세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나는 ‘오토 실드’의 출력을 높인다. 육망성 마법진이 광속으로 움직이며 화살들을 튕겨 내 갔다.

그때, 내딛는 발에 걸리는 이질적인 감촉.

“……!!”

잊을 만하면 터지는 함정이다.

그 즉시 몸을 던져 땅 위를 구르자, 콰르르릉!! 지반이 무너져 내린다. 동시에 매캐한 냄새의 연기가 자욱하게 끼고, 사방에서 그물까지 덮쳐 왔다.

코끝을 괴롭히는 악취.

감각 교란 약이다. 그물 역시 접촉과 동시에 마나를 빨아먹는 ‘마나 약탈’ 주술이 걸린 그물.

난 곧바로 마귀를 들었고.

검호류 발검술

달빛 가르기

백색의 섬광이 일직선상의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하지만 다리가 멈춘 건 사실.

성벽 위의 고블린도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처럼 ‘캬악, 아카아칵!!’ 울며 방방 뛰고 있었다.

“후우.”

대지 마법 ‘디그’로 가벽을 세우고, 잠시 그 뒤에 몸을 숨겼다.

퉤, 입안에 가득 찬 먼지를 신경질적으로 뱉는다.

“골치 아프네.”

고블린은 몬스터라고는 볼 수 없는 손재주를 지니고 있다.

본인의 무기를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함정을 판다든지, 독을 만든다든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손재주를 활용해 그들의 비루한 육체를 보완해 나간다.

그래서인지 고블린은 모이면 모일수록 강해진다.

단순히 수십 마리의 무리 단위일 때랑, 수백 마리의 부족일 때가 다르고, 또 수천을 넘는 군단일 때랑 수만을 넘는 ‘도시’ 단위랑은 또 다르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고블린은 이 ‘도시’ 단위다.

게이트 이름도 ‘아찰쿰 시티’. ‘아찰쿰’이 다스리는 도시란 뜻이다.

자, 그러면 이 대목에서 의문이 들 것이다.

왜? 천사 자식…… 아니, 이제는 ‘타천사’란 놈을 잡는 내가 왜? 고블린이랑 씨름하고 있는 건가.

맞다.

아주 적절한 질문이며, 핵심을 관통하는 주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찰쿰 시티의 ‘아찰쿰’ 때문이다. 망할 아찰쿰 놈이 타천사에게 먹힌 것.

본래 보스가 죽으면 게이트는 클리어되며 닫혀야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아찰쿰’의 역할을 아찰쿰을 먹은 타천사가 대신하게 된 것 같다.

아니, 아무리 고블린이라도 보스, 그것도 4레벨 게이트의 보스란 놈이 이렇게 허무하게 먹혀도 되는가? 그리고 그걸 먹는다고 대신 ‘보스’가 되다니!

뭔가 어이가 없지만 눈앞에 놓인 정황이 그러하다.

저기 성벽 위에서 이쪽으로 크로스 보우를 겨냥하고 있는 고블린을 봐라. 저게 곧 증거다.

저 견고한 성이 증거이고, 일사불란한 군기가 증거이며, 비정상적인 장력을 지닌 크로스 보우가 그 증거다.

아무리 고블린이 똑똑하다지만 인간을 섭취해 지적 능력을 갖춘 타천사와는 비교할 수 없다.

더욱이 타천사 옆에는 ‘셀루티스’의 광신도들이 늘 따라붙는 실정.

그들이 머리를 짜내고, 고블린을 갈아 넣은 결과.

지금 내 앞에 놓인 고블린 세력은 단순히 ‘도시’급이 아니라, 전문적인 전투 활동이 가능한 ‘요새’급으로 격상된 것이다.

“참나, 고블린이 성벽에 대(對)마법 방어 주술진을 쓰는 꼴을 보다니.”

기가 차는 노릇이다.

처음으로 마주했다면 우격다짐 힘으로라도 뚫겠는데, 지금 시간은 저녁 9시. 오늘의 마지막 타임이었다.

이미 다섯 차례 전투를 치른 나였고, 아무리 강철 같은 체력을 자랑하는 나라도 완벽한 컨디션이라고 하기에는 무리였다.

물론.

“뚫으라면 뚫지 못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저 성안, 가장 깊숙이 앉아 있는 타천사 놈이 문제다. 여기 보스를 먹고 얼마나 많은 먹이를 먹었는지 모르는데, 여기서 과하게 힘을 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쯧, 귀찮아졌네.”

여기서 하루 쉬고 내일 아침에 올까, 갈등을 하던 사이.

내 감지 범위 안으로 누군가 접근했다.

너무도 익숙한 마나 파장.

그래, 진유리.

드래고니안을 입은 진유리가 날아와 내 옆에 착지했다.

“여기서 뭐 해?”

“고민하고 있다. 넌 왜 왔냐?”

“나도 고민하고 있어.”

얘는 갑자기 와서는 뭐라는 거야.

의문스러운 눈으로 보는데, 정작 진유리의 눈은 저기 성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던 진유리는.

“고민 끝. 결정했어.”

드래고니안을 장착하더니 날아오르며.

“저 성, 내가 없애 줄게.”

“……!!”

급히 괜찮다고 말하려는데, 이미 진유리는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야?

*   *   *

하늘 위, 땅보다 구름이 더 가까운 상공에 멈춘 진유리는 크게 호흡을 내뱉었다.

“할 수 있어.”

연습 많이 했잖아.

처음으로 실전에서 쓰는 거지만, 괜찮아. 난 진유리잖아. 연습한대로만 하면 돼.

신경을 집중한다. 수없이 많은 마나의 선이 진유리의 시선을 가득 채웠다.

진룡의 혈족에게만 허락된 시야.

용의 눈이다.

이 마나의 공간 위로 진유리가 나 자신을 투영시킨다. 박기혁의 말로는 ‘진리’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마법사를 정의하길, ‘마도의 길에서 진리를 찾는 존재’라고 표현해.”

마법사는 각자의 진리를 찾는 여정을 떠나야 한다. 그 여정은 고단하고 끝이 없어, 결국 많은 이들이 포기한 채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하지만 넌 보일 거야. ‘용의 눈’이 있으니까. 내가 말하는 ‘진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용의 눈.

그것은 진리를 엿볼 수 있는 특권이다.

“다른 이들이 미지의 답을 찾는 ‘고행’을 한다면, 넌 ‘여행’을 할 수 있어.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거든.”

“알겠어, 진유리? 넌 남들과는 아예 다른 출발점에 선 거야.”

지난 2년. 진유리는 노력 끝에.

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나.

나 자신.

마법사는 마도의 길에서 진리를 찾는 존재.

마법사가 마도의 길에서 찾는 진리는 결국 ‘나 자신’인 것이다.

그렇게 찾은 진유리의 ‘나 자신’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답.

바로 용.

용(龍)이었다.

“고유 마법.”

용언(龍言)

벌(罰)

먹구름이 몰려오며 빗방울이 떨어진다.

투둑, 투둑…… 굵어지는 빗방울. 비바람이 몰아친다. 거세게, 더욱 거세게.

하늘은 이미 밤처럼 어두워졌다.

폭우는 끝이 없었고, 바람에 굳센 나무마저 뽑혀 나갔다. 이제는 번개까지 치며 한 치 앞도 구분하기 힘들어졌다.

평지가 이러한데 사방이 막힌 성은 얼마나 처참하겠나.

고블린을 지켜 주던 성은 물로 가득 찼고, 진창이 된 바닥은 늪이 되어 고블린들을 옭아맸다. 그들이 자랑하던 무기와 갑옷은 이제 족쇄가 되어 발목을 잡았다.

처절한 비명 소리. 하지만 비바람은 그마저도 허락지 않고 모든 걸 파묻는다.

몸부림치며 익사하는 고블린 무리들.

이제 그들에게 남은 방법은 둘.

이대로 성안에서 고사할 것인가, 아니면 문을 열고서 나갈 것인가.

두말할 것 없는 선택이다.

결국 고블린들은 살기 위해 스스로 성문을 열고 나왔다.

자연재해.

자연이 내린 벌.

그래서 벌(罰)이리라.

이것이 고작 한 글자의 용언으로 만들어 낸 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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