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88화 (8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88화>

원래 난, 내 일에 친구들이 휘말리는 걸 싫어한다.

무언가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고, 한편으론 미안하고…… 어쨌든 이 복잡한 감정 자체가 별로였다.

이게 병적이라 메리와 준우는 일견 섭섭해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다.

뭐, 이런 감정적인 부분을 제쳐 두더라도 솔직히 말하면 혼자가 편하긴 편하다.

어쨌든, 이랬던 내가 진유리를 합류시킨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첫 번째. 워낙에 진유리와 내가 호흡이 잘 맞는다는 점.

두 번째. 비록 세계의 편린 속에서라도 진유리는 나와 함께 ‘천사’를 봤다는 점.

세 번째.

사실 이게 가장 중요한데.

“갈 거야! 갈 거야아악!! 나 데려가아!!”

……본인이 너무 가고 싶어 했다.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농성하는 것처럼 바닥에 드러누워 바둥거리는데, 정말 가관이더라.

21살 먹고 봄이도 안 하는 짓을 하고 있다니, 일순간 숨이 턱 막혔다.

문득 저번에 진룡산에 올라갈 때 모두가 내게 ‘잘 부탁한다.’라고 말한 게 기억났다.

설마 그 부탁한다는 게, 진유리인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진유리의 합류로 내가 편해졌다는 거다.

아주 많이.

“펼친다.”

게이트에 입장하자마자 아포칼립스를 펼치면, 진유리는 내가 펼친 마법진에서 ‘천사’의 흔적을 찾는다.

“여긴 없어.”

다행히 세계를 통해 ‘천사’를 본 진유리는 녀석들의 마나 파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아마 실제로 봤을 때보다 선명할걸. ‘세계’는 크게 보면 마나의 근원 같은 공간이니까.

그렇게 나는 펼치고, 그녀는 찾고.

이것만으로도 진유리는 내게 아주 큰 힘이 되고 있었다.

*   *   *

“저기야.”

진유리의 손가락이 돌산을 가리킨다.

“근데 기혁아, 두 마린데 내가…….”

“아니.”

진유리의 말을 자른다. 보나마나 ‘도와 줄게’라는 걸 거다.

“쉬어. 넌 충분히 고생하고 있어.”

“그치만…….”

“정 도와줄 거면, 쟤들 감시하고 있어.”

여기서 쟤들은, 윌리엄과 로자리아다. 설마 내가 쟤들을 지원 인력으로 데려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라 믿는다.

쟤들의 용도는, 일단은 ‘인질’이다.

덩어리랑 아무 상관없다고 말했으니 대질 심문해 보고 ‘혐의 없음’으로 밝혀지면 그대로 ‘인질’.

반면 ‘계획범죄’라고 밝혀지면, 그땐 ‘실형’이다.

손을 흔들어 주고는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저기 까마득한 절벽으로, 몸을 들이받는다!

꽈아앙-!!

굉음과 함께 흔들리는 절벽.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파르르 떨리며 균열을 만드는데, 내가 노린 게 저 균열이다.

마귀로 균열을 내려쳤다.

검호류 강검술

산사태

파지- 파지직- 파지지지직……

균열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가더니…….

파즈즈즈즉-

돌산이 허물어진다.

꼭대기부터 돌이 굴러 떨어지고, 다시 그 돌이 밑에 있는 돌을 빼내고, 균열로 시작된 분열에 돌산이 도미노처럼 서서히 무너져 갔다.

그리고 드디어 등장하는 우리의 천사, 아니, 비둘기 새끼들.

펄럭-!

무너지는 돌산에서 날개를 펼치려 하는데 내가 가만히 보고 있겠나. 곧바로 달려든다.

문득 봄이랑 보던 만화가 생각난다.

걔들은 이상하게 등장 신이나 변신 신에는 건드리지 않는 게 국룰이더라. 우리 똑똑한 봄이는 그게 ‘정의로우니까!’라고 말했었다.

그때는 말하지 않았지만.

현실은 가혹한 법이다.

난 저들에게 가혹한 현실을 가르쳐 줄 작정이다.

날개를 펼치는 천사의 몸뚱이를 어깨로 박아 버린다. 가속도와 체중, 거기에 마나까지 더한 차지.

당연히 비둘기처럼 날아간다.

키에에엑-!

곧바로 옆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데 무언가 손에 잡힌다.

“모를 줄 알았냐?”

“……!!”

투명화가 서서히 풀리며 내 손에 잡혀 있는 건.

인간, 멀쩡한 인간이었다. 사제복을 입은 게 누가 봐도 ‘나 광신도요!’라고 하고 있다.

“어, 어떻ㄱ…….”

말을 들어 줄 의리는 없다.

콰직!

팔을 뜯어낸다.

“커어어억!!”

그래도 얘들은 꽤 훈련을 받은 모양. 피를 뿜어내면서도 깔끔한 후퇴를 펼치고 있다.

동시에 나를 포위하는 적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사제복을 입은 인간들이 나타난다.

숫자는 여섯.

천사도 날개를 펼치고 있다. 숫자는 둘.

그런 가운데 눈에 띄는 갑옷이 보인다. 제국에서나 볼 법한 은색의 풀 플레이트 아머.

만화를 보면 가장 휘황찬란한 옷을 입은 애가 보스다.

고로, 저놈이 보스.

넌 좀 맞자.

“그분의 뜻대……!”

말을 잇기도 전에 달려든다.

그래도 훈련됐다는 내 예상이 틀리진 않았나 보다.

실드가 대장을 보호한다. 바람의 장벽이 내 앞길을 막는다. 저주를 비롯해 각종 주술들이 내게 날아들고, 디버프와 메즈 역시 나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소용없다.

챠르르르륵-

공간을 뚫고 나온 사슬들이 마법을 쳐 낸다.

디버프를 대신 견뎌 낸다.

내 앞에 펼쳐진 모든 마법들을 지워 내고, 대장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았다.

“일단 한 놈.”

주먹을 내지른다.

콰직!

어금니가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고래고래 소리치는 녀석.

더 때렸다.

퍽!!

때리고, 때리고.

퍽!! 퍽!!

비명조차 나오지 않을 때까지 줘 팼다.

이가 전부 나간 채 추욱- 늘어지는 대장 놈. 이제 녀석의 얼굴에서 본래의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묶어서 진유리한테 갖다 줘.”

공간을 뚫고 나온 스켈레톤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녀석을 잡고서 돌산 아래로 떨어졌다.

그래도 의리는 있던지, 몇몇이 대장을 구하려고 뒤따르려 하는데.

“누구 마음대로.”

촤륵-!

사슬들이 그물처럼 주위를 묶었다.

이곳은 지나갈 수 없다.

어둠이 순식간에 증식하며 사방을 가득 채웠다. 이제 이 공간에 빛은 없다. 오로지 심연 같은 어둠뿐.

그리고 어둠 속에서 나의 스켈레톤들이 눈을 떴다.

번뜩이는 귀기.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그들의 귀기가 적들에게 집중된다.

“…….”

“……그분이시여.”

포위한 줄 알았더니, 실상은 자신들이 포위됐다.

긴장한 듯 몸을 떠는 광신도들.

쟤들은 이제 됐다. 대장으로 보이는 놈을 잡았으니 이용 가치는 없다.

“저 녀석들은 너희가 맡아.”

스켈레톤들이 포효를 지르며 녀석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검은 연기와 사슬, 타락한 인간의 추악한 비명까지.

좋다. 분위기 최고다.

“이제 너희네?”

몸을 돌려 두 마리의 ‘천사’를 바라본다.

각각, 한 명은 금발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하고 있고 한 명은 우리가 흔히 보는 황인 여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우아한 미소를 짓고 있는 ‘천사’.

솔직히 아름답다. 외관만 보면 이보다 아름다울 수가 없다. 누가 저들을 인간을 먹는 몬스터로 볼까.

“…….”

“말 못 해? 며칠 전에 본 애들은 말하던데.”

“…….”

“아직 인간을 덜 먹은 개체인가 보네.”

입술을 핥으며 마귀를 빼든다. 녀석들도 빛을 토해 내더니, 각각 창과 활로 주장했다.

“본 게임 시작하자.”

마귀의 검면에 육망성 마법진이 그려지는 순간.

허공을 박차며 쏘아졌다. 천사들도 순백의 광채를 뿜어내며 나를 향해 달려든다.

마귀를 휘두른다.

깡-!

창날에 막혔고.

등 뒤로 빛의 화살이 날아오자, 쿵……! 마법진이 화살을 튕겨 냈다.

곧바로 내 마법진에서 뇌전이 쏟아지는데, 천사들은 알았다는 듯이 날개를 펄럭이며 마법을 뿌리쳤다.

곧바로 쏘아지는 빛의 화살.

내 쪽에서 마법을 쏘면, 막고 빛의 화살로 반격.

일방 패턴의 지루한 ‘대치전’이며, 동시에 고속 기동을 기본으로 둔 ‘속도전’이다.

뭔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전투가 지속됐다.

‘이 녀석들.’

철저히 거리를 지키고, 속도를 맞추고, 선공을 배제한 채 반격만 한다.

상대적 강자를 공략할 때 사용하는 전투법이다.

그것도 철저히 ‘인간’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전투법.

“어디서 용병이라도 먹었나? 더럽게 싸우네.”

독만 제대로 사용할 줄 알면 그대로 ‘암살자’로 데뷔해도 될 정도다.

“이것도 막나 보자.”

마귀가 번쩍이길 잠시, 어둠 속에서 일곱 줄기 빛이 내려친다.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일곱 줄기의 별똥별이 섬광처럼 쇄도했고, 천사들을 유린했다.

빛의 발톱이 천사의 몸뚱이를 할퀴려는데.

그 순간.

키엑?!

한 놈이 동료를 내던졌다. 진짜로 농담 하나 없이 동료를 방패로 쓴 것이다.

던져진 놈은 온몸으로 별똥별을 막아 냈다.

차르르륵-!!

반쯤 잘린 팔이 너덜거리고 몸뚱이는 갈비뼈가 훤히 드러났다.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된 천사.

그런 천사에게 동료 천사가 다가오더니.

콰직-!

먹었다.

먹는다.

뜯어먹고 있다.

동족 포식

카니발리즘

상처가 회복된다.

마법을 견디며 사라졌던 날개가 새로 돋아나고, 피부에서 반질반질 윤기가 생겨난다.

그렇게 마지막 한 덩어리까지 알차게 먹었을 때, 천사의 뒤로는 은은한 후광이 서려 있었다.

“재미있네.”

본능이 깨어났다.

송곳니가 길어지며 눈동자에 짐승의 포악함이 서린다.

근육들은 팽창과 이완을 반복하며 마치 증기 기관처럼 하얀 김을 뿜어냈다.

그렇게 마지막으로 육망성, 아포칼립스가 내 몸에 갈퀴처럼 그려졌을 때.

“2차전 시작이다.”

마귀가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   *   *

전투가 끝나고.

폐허가 된 돌산 아래로 내려왔다.

“쑥대밭이 됐구만.”

사실 돌산이란 말도 과거형. 돌만 있고 산은 사라진 지 오래다.

보이는 것은 돌무더기요, 서 있는 것은 나뿐이다.

“벌써 저녁 시간이네. 빨리 가야겠다.”

손가락을 튕겼다.

중력 마법 ‘그래비티’가 발현되며 바닥에 널려 있던 돌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잔해 가운데 보이는 이형의 시체.

녹색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천사의 시체였다.

“횡재했네. 이런 걸 루팅하고.”

30퍼센트.

몬스터의 사체가 남을 확률이다.

예전 수업 시간에 배운 것처럼 몬스터는 10에 7은 사망 시 마나로 돌아간다. 나머지 3은 시체를 남기는데, 이를 루팅이라 했다.

게이트를 넘나드는 변종 몬스터라도 몬스터는 몬스터인가 보다. 이 법칙이 유효한 걸 보니까.

“나오는 거 알았으니까.”

선물로 어머니한테 보내면 좋아하시겠지.

어머니라면 이 시체를 알차게 쓸 거라 믿었다. 좋아할 어머니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텐션이 높아졌다.

이제 애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날아가던 도중 의외의 소득들이 따라붙는데.

저 멀리서 날아오는 사슬 뭉치들. 마치 포장 배달처럼 내게 온 것은, 인간.

아까 그 광신도였다.

“나 주는 거야?”

달그락, 달그락.

스켈레톤들이 인간들을 회수해 온 것이다. 명령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더욱 놀라운 건, 이 중 절반은 아직 숨이 붙어 있다는 것!!

물론 사지가 다 붙어 있는 놈들은 하나도 없지만, 어쨌든 숨이 붙어 있는 게 어디인가.

“이런 귀여운 짓을!”

쓰담쓰담.

애정을 담아 두개골을 쓰다듬어 주자, 녀석들도 좋은지 턱을 달그락거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병졸처럼 아무 생각 없이 명령을 수행하던 스켈레톤은 예전 일이다. 사랑을 듬뿍 받은 녀석들은 이제 어떻게든 내게 보답하려 노력한다.

과연, 사랑의 힘은 실로 놀라웠다.

“기혁아, 여기. 여기야.”

“알아.”

툭, 발을 동동 구르는 진유리 옆으로 착지.

“무슨 일 없었지?”

“없었어. 너는 어디 다친데…… 악! 등! 등 찢어졌어.”

“응? 등에 상처 있어? 몰랐네.”

“너어는 진짜!! 못 살아 정말!”

진유리가 부산을 떨며 내 등에 포션을 들이부었다. 괜찮다는 데도 유난이다.

“안 되겠어. 다음부터는 나도 싸울 거야.”

“괜찮대도 그러네.”

“아니! 안 괜찮아! 내가 싫어!”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있는 진유리.

사뭇 비장한 분위기까지 풍기는데.

왜일까, 난 웃음이 나온다.

“큭.”

이거, 아까는 스켈레톤이 귀여운 짓을 하더니, 이제는 진유리까지. 세상에 귀여운 것들이 너무 많아졌다.

이 모든 게 사랑의 힘이라면, 그 사랑이란 거.

“거참 놀랍네.”

슥슥.

진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걸어갔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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