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84화 (84/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84화>

알파 기어(Alpha Gear).

현존하는 모든 기계 소환물의 모태가 된 최초의 머신.

인간 이상의 자아가 존재해 사고, 판단, 결정. 심지어 감정까지 모두 느끼는, 그야말로 영혼이 담긴 기계로 기록돼 전설처럼 전해진다.

하지만 오리지널 알파 기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훼손되며, 알파 기어란 단어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

‘자아가 있는 기계.’

마치 오리지널처럼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결정할 줄 아는 자아를 지닌 기계는 모두 ‘알파 기어’로 통칭되고 있는 것이다.

장인들은 이 알파 기어를 첨단 기술과 마법이 결합된 마도 공학의 ‘진리’로 여겼다. 인간이 가야 할 길이며, 마법의 최종 진화형 같은.

로자리아가 ‘고유 마법’을 알파 기어로 오해한 것이 이 때문이다. 그녀의 사고 회로에서 ‘진리’는 알파 기어니까.

게다가 로자리아가 오해한 이유가 또 있는데, 알파 기어의 특징 중 하나가 평생 한 명의 주인만을 섬긴다는 거다.

고유 마법에는 오로지 술자만이 간섭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게, 알파 기어도 한 명의 주인 외에는 어떤 식으로도 움직일 수 없다.

“그 마법진이 알파 기어였구나. 내가 ‘분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해. 납득했어.”

물론 오해다.

앞서 말했듯 ‘고유 마법’과 ‘알파 기어’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뿐이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하지만 박기혁은 침착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든 납득했잖아. 귀찮게 안 하겠다는데 굳이 나서서 정정할 필요 있나.

그래도 계산은 철저해야 하는 법.

받을 걸 빼먹을 수 없다.

“그거 내놔. 전에 준다고 한 거.”

“약속은 약속이지.”

로자리아는 ‘다음에 또 보자’라는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녀가 앉은 자리에는 한 장의 종이가 남겨져 있었다.

*   *   *

종이를 본다.

복잡하게 쓰인 수식과 기하학적으로 표현된 도면.

확실한 건, 내가 기대하던 백지 수표는 아니란 거다.

“……바꿔 달라 하면.”

없어 보이겠지……?

내 말에 한창 고기를 굽던 진유리와 포크를 든 채 고기를 기다리던 봄이, 짝꿍인 버찌까지 세 쌍의 눈동자가 동시에 날 바라본다.

“무슨 말이야. 다른 메뉴 시킬까?”

“아빠, 뭘 바꿔?”

“아냐, 아무것도.”

지글지글.

고기가 구워진다. 오늘의 주 종목은 돼지고기.

별다른 스킬 없이 구울 수 있고, 금방 익어 후루룩 걷어 먹으면 꿀맛!

돼지고기계의 가성비. 돼지고기계의 베스트셀러.

대패삼겹살 님 되시겠다.

그래서 오랜만에 진유리에게 집게를 넘겨줬다. 설마 대패삼겹살도 못 구울까 하고.

하지만.

설마가 사실이었다. 얘는 몬스터만 구울 줄 알지, 고기를 굽는 건 영 꽝이었다.

답답하니 내가 굽자.

“집게 줘 봐. 내가 구울게.”

“잠깐만, 잠깐. 내가 구울 수 있어! 있다니까?!”

“됐어. 내놔.”

“히잉.”

집게를 뺏어 들고 굽는다.

불판에 차르륵- 대패삼겹살을 뿌리고 자리를 맞춘다. 그다음 기름이 빠질 길을 만들고 그쪽 라인에 김치와 콩나물을 익혔다.

수혁 형이 있다면 여기 김치가 들어갈 자리는 마늘로 가득 찬다. 그걸 혼자서 다 먹을 정도로 마늘 애호가인 형이었다.

순식간에 고기가 다 구워졌다.

“자, 먹자!”

“우와아!”

봄이가 침을 꿀꺽 삼키며 ‘고기! 고기!’ 노래를 부른다. 어쩜 이렇게 귀여울까.

“언니! 딸기 언니! 나 쌈, 쌈.”

“잠깐만. 이 정도면…… 크려나.”

진유리가 싸 준 쌈을 ‘앙’ 하고 깨물고는 맛있다며 탄성을 질렀다. 먹고 있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단 말이 이런 거구나, 새삼 느꼈다.

“먹어, 기혁아.”

“먹고 있어.”

“먹긴, 굽느라 못 먹고 있잖아. 자, 여기. 아 해 봐.”

“너 먹어.”

“아, 쫌! 아~ 해 봐. 아~~.”

기어코 내 입에 쌈을 넣는 진유리.

고기를 먹는 사람은 난데 정작 자기가 웃는다.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봄이를 챙겨 주는 게 기특해, 진유리의 앞접시에 한 움큼 고기를 집어다 줬다.

“소중한 거다. 많이 무라.”

“에헤헤. 고마워. 잘 먹을게.”

냠냠냠.

한 젓가락, 한 젓가락, 청소기로 고기를 흡입하듯 먹는다.

그렇게 10인분을 구울 때 봄이가 아웃. 버찌와 내가 불러낸 ‘악마’들을 대동한 채 구석으로 빠졌고, 막 20인분을 시켰을 때 진유리도 슬며시 젓가락을 놓는다.

“난 끝! 더 이상 못 먹어. 배 터질 것 같아.”

“겨우?”

“겨우는, 엄청 많이 먹은 거거든. 집게 내놔. 내가 구울게. 너 계속 먹을 거잖아.”

“됐어. 걍 있어.”

“야!! 잘 구울 자신 있다니까 그러네. 믿어 봐 좀!”

못 이기는 척 집게를 뺏겼다.

“근데,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는데.

“뭔데. 물어봐.”

“너 도둑…… 아니, 로자리아 걔한테 받은 거 뭐야? 아까 보던 것 같은데.”

“아…… 그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무슨 설계도던데, 빅터라 했던가.”

“아, 빅터…….”

집게로 고기를 뒤적이던 진유리가 순간 ‘빅터?’ 하며 혼잣말을 하더니.

“비, 빅터라고??!!”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진짜로 놀랐는지 데시벨이 벽을 뚫을 정도.

무슨 일 있냐며 문을 여는 종업원에게 아니라고, 죄송하다고 말하며 되돌려 보냈다.

“노, 농담이지? 진짜 빅터 설계도라고?”

엄청 흥분한 모양. 목소리가 한껏 높아졌다.

괜히 이때 말을 걸면 더 흥분한다. 난 답하는 대신 로자리아에게 받은 설계도를 내밀었다.

“진짜, 진짜였어. 빅터…… 진짜잖아.”

“대체 빅터인지 벡터인지가 뭔데 그러냐.”

“진짜 몰라? 방금 전에 알파 기어에 대한 설명 들었으면서.”

“몰라.”

“헐.”

고기를 한 움큼 집어먹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올려다보니, 진유리가 마치 원시 시대의 호모 사피엔스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이쪽을 보고 있다.

굉장히 불순하단 말이다.

“됐고, 설명.”

“빅터가 뭐냐면…….”

“참고로 최대한 간단하게.”

“알파 기어야. 오늘 본 로자리아의 알파 기어.”

로자리아의 알파 기어, 빅터.

수호령 기간트의 손에서 탄생한 세 번째 워 아머.

기간트의 권능이 들어간 만큼 빅터는 탄생 즉시 전 세계 소환물 파워 랭킹에서 최상위권에 오른다.

형태도, 크기도, 어떤 식으로 기동하는지,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알파 기어 빅터.

그러던 와중에 몇 년 전, 이 빅터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미국의 유명 히어로 쇼 ‘시크릿 레이드’.

여기서 로자리아가 5레벨 게이트 보스, 사이클롭스를 1:1로 상대하게 되는데.

“빅터, 부숴.”

로자리아의 부름에 공간을 뚫고 나온 은색 거인의 팔

그 크고 우악스러운 손바닥이 사이클롭스를 덮치더니 압착, 산 채로 우그러뜨렸다.

“……빅터가 알려지고, 자연스럽게 빅터의 주인인 로자리아가 알려지게 된 거야. 메카닉 마스터의 제자, 수호령 기간트가 선택한 인간. 뭐 이런 식으로.”

“풋.”

웃음이 나왔다.

“이거 생각보다 웃긴 녀석이네.”

자신이 가진 최강의 무기를 이렇게 쿨 하게 내놓는다고? 이게 말로만 듣던 어메리칸 스타일인가.

“잠깐, 아니지. 생각해 보니까 또 그게 아니네. 야, 진유리, 이 빅터란 게 알파 기어라 했지?”

“엉.”

“알파 기어는 오직 주인만 제어할 수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고유 마법이랑 오해한 거고.”

“그랬지.”

“그럼, 이 설계도 아무 의미 없지 않겠어?”

“……?! 그러네?”

고유 마법이 술식을 안다고 해서 펼칠 수 없는 것처럼, 알파 기어도 설계도를 안다고 해서 만들 수는 없지 않을까?

자세히 안 봤지만 아마 그럴 것 같은데?

로자리아는 그걸 노리고 준 거고?

“하…… 당했구만.”

이 건방진 애송이를 봤나.

어쩐지 대뜸 백지 수표 내밀 때부터 찜찜하다 했는데, 나를 상대로 장난을 쳤다 이거지?

화가 난다.

마도의 마 자도 모르는 애송이에게 당한 사실이 쪽팔려 몹시도 화가 난다.

“입맛 떨어지네.”

젓가락을 놨다.

진유리가 ‘40인분이나 먹었으면서…….’라며 조용히 비꼬는데, 무시한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설계도 내놔 봐.”

알파 기어라 했나?

사실 말은 안 했지만 마음에 안 들었다.

감히 이딴 기술이 뭐? 고유 마법이랑 비슷하다고?

감히 마법의 정점인 고유 마법과 같은 선상에 서려고 하는 것부터가 잘못됐다.

“그 건방진 애송이는 내가 이걸 보고 아무것도 못 얻을 거라 믿었겠지.”

“야, 무슨 말이야.”

“수호령이 만들었다고? 어쩌라고. 나도 한때는…….”

“한때는? 한때는 뭐?”

아무튼.

로자리아, 넌 잘못 걸렸다.

감히 나를 상대로 이딴 깜찍한 짓을 꾸며?

내게 이걸 준 걸 후회하게 해 주마.

“어휴, 또 왜 저러는 거야. 봄아, 너희 아빠 이상해. 집에 가자.”

“응!”

*   *   *

같은 시간.

셀루티스 한국 본관에서는…….

“오늘도 당했나요.”

“……죄송합니다.”

“후, 정체는. 습격자의 정체는 알았겠죠?”

“정말…… 죄송합니다, 대사제님.

“하아.”

죄송, 죄송. 그놈의 죄송!

보고서를 읽던 임미령이 안경을 벗었다.

끓어오르는 화를 꾹꾹 눌러 보지만 기어코 삐져나온 화에 임미령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는 것만 말해 보세요, 형제님. 빈손으로 왔을 리는 없잖아요. 그렇죠?”

“……현재 저희 교단의 ‘구원’을 습격하는 자는 1인, 혹은 5인 이내의 소조직으로 보입니다.”

“그리고요?”

“……여태껏 생존자가 없는 점이나, 일체의 흔적을 남기지 않는 점으로 판단해, 최소 ‘특급’ 이상의 정예 전력으로 보여집니다.”

“그리고요?”

“‘구원’을 회수해 간 정황을 보아, ‘구원’의 정체를 아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임미령은 여태껏 자신이 들었던 ‘죄송’이란 말을 되갚듯 끊임없이 ‘그리고요?’라는 물음을 던졌다. 사제의 입에서 다시 ‘죄송합니다.’란 말이 나올 때까지.

“제가 이해한 걸 말해 볼게요. 습격자는 1명에서 5명. 실력은 최소 특급 이상이고, 정황상 ‘구원’을 노리고 있다.”

“맞습니다.”

“메이저 에이전트를 조사해 봤고 특급 요원의 행방이 묘연한 곳은 다섯. 그나마도 옵티멈은 제외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옵티멈은 쉽게 접근이…….”

“형제님, 제가 말하고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어디까지 말했죠? 옵티멈, 그래요. 제가 알기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특급 초인을 보유한 곳이 옵티멈이라고 알고 있어요.”

“…….”

“묻잖아요.”

“마, 맞습니다! 총 17명입니다.”

“그래요, 17명. 보통 에이전트당 2~3명이면 많은 특급 초인을 옵티멈은 17명이나 품고 있네요. 그런데 이 옵티멈을 놓쳤다니…… 게다가 ‘구원’을 행하는 이 중요한 순간에…….”

찰나의 정적.

이 짧은 순간에 임미령은 사제의 운명을 결정했다.

“형제님, 이제는 형제님의 능력에 의심이 드네요.”

“대, 대사제님.”

“당황할 거 없어요. 다 믿음이 부족해서가 아니겠어요. 이참에 ‘기도원’에 가셔서 요양 좀 하고 오세요. 자매님, 형제님을 부탁할게요.”

“가시죠, 형제님.”

“대, 대사제님! 제발!!”

기도원만은-!!

처절한 목소리를 뒤로한 채 문이 닫혔다.

“시끄러웠죠. 죄송해요. 모두 일 보세요.”

어수선한 분위기를 풀려고 하는 듯 임미령이 활짝 웃는다.

평소 짓던 사람 좋은 웃음.

그러나 왜일까. 이 공간에 있던 수많은 사제들이 이 웃음을 보고는 숨을 죽였다.

광신도(狂信徒).

오직 그분을 위해 몸을 바친 임미령이기에.

누구보다 신실하며, 누구보다 잔인하다.

그래서 사제들은 임미령을 존경하며, 동시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리로 돌아온 임미령이 다시 보고서를 검토한다.

“제대로 된 사람이 필요해요.”

이런 쓸모없는 정보나 주는 부족한 신도가 아닌, 진정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 찬 신실한 신자가 필요하다.

“안 되겠어요. 에밀 사제에게 연락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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