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81화>
천사(Angel).
이 단어를 들으면 백이면 백, 순백의 날개를 연상하게 된다.
순수를 증명하듯 눈처럼 새하얀 날개.
성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일반적으로 천사는 절대 ‘선’이라 여겨진다.
나도 어릴 때는 그랬던 걸로 생각한다. 천국에 사는 인간이 천사라고 알던 시절이니까.
그러다 이런 내 생각이 완전히 뒤바뀌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때는 과거 제국 시절. 내가 마왕으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때였다.
당시의 나는 강해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가득했다.
인간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가.
강함의 끝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마왕이라 불리며 경외받았음에도 홀로 수련 여행을 떠났다.
그러다 듣게 된 소문.
“너 들었어? 저기 ‘테마린’에서 천사가 강림했대…….”
“글쎄 천사가 손을 타악 뻗으니까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고, 봉사가 번쩍 눈을 뜨니…….”
“아직도 못 봤어? 테마린의 천사. 걔들 한둘이 아닌데. 꽤 돼.”
테마린에 천사가 있다.
테마린의 천사는 기적을 행한다.
테마린의 천사는 무리 짓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기에는 충분했지만 내 발길을 테마린으로 돌린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쉿, 조용. 내가 특별히 너희한테만 가르쳐 주는 건데, 그 테마린에서 돈을 주면 ‘천사’가 될 수 있대. 정말이라니까? 나한테도 제의 왔어. 예약도 해 놨는걸.”
인간이 천사가 될 수 있다?
만약 거기가 뒷골목에 있는 펍이고, 이 말을 한 작자의 앞에 맥주잔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면, 난 흔한 알콜 중독자의 주정쯤으로 치부했을 거다.
그런데 아니었다.
이 소문을 들은 곳은 뒷골목 펍이 아닌 살롱이었고, 이 소문을 뱉은 사람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노동자나 용병이 아닌 이른바 고위 귀족이었다.
문학과 교양, 자신의 지적 능력을 자랑하는 살롱에서 거짓을 말하거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사교계에서 손가락질 받는다.
즉, 다시 말해, 저 이야기는 최소한의 검증이 끝났다는 것.
난 호기심을 못 참고는 곧장 테마린으로 향했다.
그리고 난, 거기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진정한 ‘광기’를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믿는 신은 틀렸다. 이분이야말로 신의 화신. 믿으라. 의심치 마라.”
“버려라. 모든 걸 버려야만 진정한 평화가 온다.”
“저부터! 저부터 해 주세요. 여기 제 아들이에요. 제발 받아주세요!”
“이단을 죽여라. 믿지 않는 자를 잘라라. 그들의 피로 목을 축여 구원받아라.”
개종이란 이름하에 스스로 신체의 일부를 바치는 사람들.
‘천사’가 되기 위해 부모가 자식을 바치고, 자식이 부모를 바친다.
부정하는 자는 모두 틀에 묶인 채 제물이 되어 쓰러진다.
이교도, 배교자, 광신도…… 비이성의 끝판 대장들이 모인 대환장 파티가 도시 전체에서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모두가 가해자고 모두가 피해자인 광기의 도시.
그리고 이 광기의 꼭대기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천사’가 앉아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나중에 나에게 이 도시가 멸망하고 내 손에 잡힌 마지막 천사가 죽기 전에 뱉은 말.
“이 땅에 정의를 실현했을 뿐이다. 인간은 정화돼야 했다.”
혹시 모른다.
그 녀석들이 천사가 아닐 수도 있다. 거죽만 천사이고 단순히 천사를 흉내 냈을 가능성도 있다.
하나, 이때부터 난 천사를 믿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하다. 같은 종족인 인간도 서로 못 믿는데 어떻게 다른 종족을 믿을 수 있겠나.
내게 천사는 흰 날개를 지닌 몬스터일 뿐이다.
그래서 천사가 인간을 뜯어먹었다 해도 전혀 충격적이지 않았다.
* * *
……하지만 얘는 아닌가 보다.
“천사가 인간을 산 채로…… 으으!! 산타가 없다는 것만큼 충격적이야.”
“벌써 하루 전 일이다. 유난 좀 그만 떨어.”
“하루밖에 안 지난 거지!!”
하루 전. 형을 따라나선 포항행.
거기서 나와 진유리는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세계’에 접촉했었다.
그리고 본 것은 ‘천사’.
시종일관 짓고 있는 온화한 미소는 한없이 자비롭게 보였고, 잡티 하나 없는 순백의 날개는 신성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야말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사’였다.
이런 천사가 네 명의 괴한에게 습격받고 있었다.
누가 봐도 천사가 선이고 괴한은 악인 상황. 모르는 이가 근처에 있었다면 백이면 백 천사를 도왔을 거다.
그러다 문제의 상황이 발생한다.
괴한 한 명이 천사가 쏜 ‘백색의 화살’. 외형만으로는 매직 미사일에 가까운 마법에 적중당하며 행동 불능에 빠지게 됐다.
그리고 천사는.
콰직!
아득아득, 아득.
넘어진 괴한을 덮치더니 먹기 시작했다.
산 채로, 그것도 전투 중에 말이다.
괴한의 동료들이 재빨리 천사를 때어 놓았고, 천사는 입에 피와 살점을 덕지덕지 묻힌 채, 아까 전의 그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래.
우리가 ‘세계’에서 엿본 것은.
‘천사’의 거죽을 쓴 몬스터였던 것이다.
진유리가 몸을 부르르 떤다.
“나 잠도 못 잤다니까. 고기 뜯듯이 팔을 씹고 있는 그 천사 얼굴 생각나서. 으으, 소름 끼쳐. 천사가 맞을까? 이제는 그게 천사인지도 모르겠어.”
“몬스터라 생각해.”
“인간적으로 몬스터라고 하기에는 너무…….”
“신성해 보였지?”
“응…… 아름다웠어.”
외견이 이렇게 중요하다.
그 꼴을 보고서도 아름다우니까, 신성해 보인다고 하잖나.
“그래서 아주버님은 어떻게 하기로 했어?”
“죽을래. 누가 네 아주버님이야.”
“사소한 거는 넘어가 줄래? 집요한 남자는 별로거든.”
“하…….”
일단 우리는 이 일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아카데미 생활도 생활이지만 왠지 구린내가 난다는 수혁 형의 판단이었다.
“형이 어머니랑 이야기하고 조사 들어간다 했어. 일단은 우리 가족만 알기로 했으니까, 괜히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가, 가족만? 그럼 나도 가족인 거야? 햐~ 이 울림, 미쳐써…… 심장 터질 거 같아. 만져 볼래?”
“……하아.”
이젠 대꾸해 주기도 귀찮다.
대신 딱밤을 때렸다.
딱!
“아얏!”
“농담 아니다. 아주머니나 아저씨한테도 말하지 마. 조사 끝나면 내가 말할 테니까.”
수혁 형이 느낌상 구린내가 난다고 했는데, 말은 안 했지만 나도 비슷한 생각이다.
이번 사건, 뭔가 심하게 불쾌하다. 특히 그 천사 형태의 몬스터.
‘식인을 통해 상대방의 능력을 갈취한다.’
아무리 봐도 이교도, 그중에서도 가장 질이 나쁘다는 악마 숭배자 녀석들이 행하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식인)’이었다.
참 나. 제국에서는 인신 공양이더니, 여기서는 카니발리즘?
솔직히 이쯤 되면, 이 천사라는 놈을 재앙의 근원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는 이게 합리적 의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아, 맞다. 그리고, 너 그거. 내가 ‘세계’ 보여 준 거, 되도록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 괜히 귀찮아져.”
“에이, 당연하지. 너랑 나만의 비밀이잖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나는 문고리를 잡고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혹시나 애들이 어제 뭐 했냐고 묻거든.”
“비! 밀!”
한쪽 눈을 찡긋하며 비밀이라 강조하는데.
“……영 미덥지 못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동아리실 문을 열었다.
쿠웅-!
* * *
한국 아카데미.
위그드라실을 뜻하는 ‘나무 로고’가 새겨진 입간판 앞에 윌리엄이 서 있다.
‘오늘은 무조건 이긴다.’
벌써 며칠째 이어지는 박기혁과의 대련.
이제껏 결과는 패배. 여기 서 있는 것 자체가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걸 방증하는 대목이다.
굴욕적이다.
내가 엘리멘탈 마스터의 제1제자인데, 내가 미국을 대표하는 유망주 랭킹 1위인데.
위대한 아메리카의 1위인 내가 어찌 이 코딱지만 한 소국의 초인에게 밀릴 수 있는가!
윌리엄은 이 개 같은 상황에 평소의 입버릇대로 ‘칭키’라는 단어가 나올 뻔했다.
“……!!”
하지만 ‘뻔’이었단 건, 말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뱉으려던 버릇보다 그날, 박기혁에게 ‘칭키’라는 단어를 쓴 날의 기억이 엄습했다.
“아, 칭키. 메리한테 들었어. 그거 인종 차별이라며?”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해. 인종 차별은 나쁜 짓이야. 그러니까.”
“벌 받을 시간이다, 양키 새끼야.”
칭키, 치키, 치킨. 치킨처럼 다져 줄게.
그날, 윌리엄은 정말 치킨이 되는 줄 알았다. 뼈 하나 없는 순살 치킨 말이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쁜 기억은 지워야 한다. 이게 트라우마가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 몸이 움츠러들 수 있다.
지우자, 지워. 마인드컨트롤을 했다.
‘나는 어제의 나와 다르다. 비장의 무기가 있단 말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어젯밤에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온 비장의 무기가 느껴지고, 윌리엄의 마음이 편해졌다.
곧이어 자신감이 솟구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심호흡을 하며 다짐한 윌리엄이 힘찬 걸음으로 아카데미에 들어선다. 수려한 외모와 쭉 뻗은 다리, 매력의 교과서 같은 그의 등장에 시선이 집중됐다.
‘봐봐. 내가 이 정도야.’
이 시선! 이 관심!
이게 당연하다.
세상은 나, 윌리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세상의 인간은 두 종류.
윌리엄을 동경하는 사람과 윌리엄을 모르는 사람뿐이다.
능력이면 능력, 재력이면 재력, 매력이면 매력.
어느 스텟 하나 빠지지 않는 완벽한 인간.
윌리엄은 자신이 이런 인간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런 윌리엄의 자신감도 이 계단, ‘출구 없는 지옥’으로 가는 계단을 내려갈 때면 점점 쪼그라든다.
한 계단, 한 계단, 발을 밟을 때마다.
‘오늘은 어떻게 싸우지? 숫자로 밀어붙이는 건 의미 없어. 또 질 거야.’
‘아니야! 자신감을 가져 윌리엄. 넌 할 수 있어. 연계 마법을 써야 해, 연계 마법!’
‘아니야…… 저번처럼 연계 마법은 완성도 못 하고 파훼될 거야. 그리고 죽도로 얻어터지겠지.’
‘아니야! 윌리엄, 소심해지…….’
‘아니야…… 윌리엄, 넌 못 해…….’
나를 부정하고, 또 부정하고, 그 부정을 부정하고, 다시 부정하고.
윌리엄은 끝내 오늘도 이 무한 부정의 뫼비우스 띠를 풀지 못한 채 ‘출구 없는 지옥’의 문 앞에 서게 된다.
꿀꺽.
크게 떨리는 목울대.
파르르.
파르르 떨리는 눈 밑.
입안은 바싹 마르고, 겨드랑이가 축축해진다.
숨길 수 없는 긴장감이 윌리엄을 덮쳤다.
이 문 너머에 그가 있다.
박기혁.
이제껏 성공의 길만 걸었던 윌리엄.
그를 이 정도로 궁지에 몰았던 시련이 있었던가.
그에게 박기혁이란 처음 마주한 시련이자, 벽이며, 인생의 가장 큰 대적이었다.
“할 수 있다, 윌리엄. 넌 크리스토퍼 윌리엄이다.”
나는 오늘 마지막 보스를 클리어하고 진정한 Winner가 된다!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으며 문을, 이 괴랄할 정도로 무거운 문을 열었다.
“어, 윌리엄이 왔냐? 가자.”
오늘도 역시나, 인사도 없이 대련용 게이트로 향한다.
이때면 윌리엄은 이런 생각도 한다.
동아리실에 있던 스파링 코트. 저거 좋던데, 저기서 싸우면 안 될까? 저기서 싸우면 적어도 기절은 안 하겠지, 라는 얄팍한 생각 말이다.
물론 말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거다.
윌리엄이 며칠간 본 박기혁은 전투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진심이었으니까.
“시작하자.”
박기혁의 등 뒤로 마법진이 떠오른다.
빌어먹을 육망성.
윌리엄도 이제는 안다.
저 아포칼립스라는 게 단순히 한 가지의 마법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마법적 체계라는 것을.
불행이라면 이걸 몸으로 처맞으면서 깨닫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윌리엄은 나쁜 기억들을 구석에 처박고는 소리쳤다.
“오늘은 다르다!”
달라야 한다. 제발 달라야 한다.
그의 절박한 바람에 보답하듯, 그가 소환한 정령 부대가 등 뒤로 현신했다.
그리고 이에 응답하듯.
고오오오-
공간을 뚫고 등장하는 검은 스켈레톤과 검은 사슬들.
저릿한 귀기(鬼氣)가 주위를 엄습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몸을 떤다.
그럼에도 윌리엄은 마지막 자신감을 쥐어짜냈다.
“할 수 있다!(I Can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