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80화>
셀루티스 교단의 원류는 반(反)초인 운동에서 시작됐다.
세계에 사는 수많은 이들. 그들은 모두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다.
좋은 직장을 가지게 해 주세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100만 프리져가 될 테야. 운동선수가 돼서 떼돈을 벌 거야.
우리는 꿈을 꾸고 이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그래, 노력.
사람이 자신의 꿈과 미래를 위해 필수적인 행위.
초인은 이 노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존재다.
공부를 잘할 필요 없다. 준비도, 계획도 필요 없다.
초인이란 이유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이능을 발현한다. 몬스터에게서 얻은 마석으로 일반인은 절대 꿈꿀 수 없는 수익을 올린다.
그저 마나를 느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넌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초인이란 존재가 노력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는 불공평하다!
반초인 운동은 이 불공평함에 기인하여 시작된 운동이었다.
셀루티스는 이 반초인 운동의 정신을 더 발전시킨다.
기존의 반초인 운동이 초인이 주를 이룬 사회에서의 ‘탈출’이라면, 셀루티스는 더 극단적으로 초인이 주를 이룬 사회의 ‘붕괴’를 기원했다.
그것만이 이 부조리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리라.
셀루티스는 굳게 믿었고, 오늘도 기도하고 있었다.
* * *
셀루티스의 상징, 역십자.
초인이 없는 구시대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이 상징 앞에서 대사제 임미령이 무릎 꿇고 있다.
“……어린양들을 굽어살피시고 …… 저 간악한 악적들을 징벌하소서…….”
교황의 손발이 되는 아홉 대사제.
임미령은 이 대사제 중에서도 신앙심이 높기로 유명했고, 매일 아침 새벽 기도를 올렸다.
기도를 마친 임미령이 눈을 뜬다.
맑은 눈. 오로지 신념으로 가득 찬 눈이었다.
임미령의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가 걸린다.
지나치게 화사해 언뜻 보면 인상이 좋아 보이나, 자세히 보면 인공적인 표정이다.
그녀에게 표정이란 ‘겉옷’과 같았다.
입고 벗는, 나를 치장하는 겉옷.
그렇게 그녀는 오늘도 표정을 ‘입은 채’ 하루를 시작한다.
“좋은 하루예요. 오늘 김장하는 날이죠오? 큰일 났네요. 이거 살찌는 거 아니에요? 호호호홋! 자, 맛나게 만들어 봅시다.”
기도실을 벗어난 임미령은 세간에서 존경받는 봉사자였다.
병마로 남편과 자식을 잃고 세상을 원망하다, 끝내 신을 믿으면서 구원받고 봉사한다는.
식상하지만 그만큼 잘 먹히는 시나리오를 뒤집어쓴 봉사자.
때문에 그녀는 다수에게 존경받았고, 그녀가 사는 이곳 봉사원을 세계구급 빌런 단체인 셀루티스 한국 본관이라고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고된 하루가 끝나고.
느즈막하게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임미령은 봉사원 문을 걸어 잠근 채, 지하로 내려간다.
그리고 지하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건.
“오셨습니까, 대사제님.”
“뭘요. 식사는 하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대사제님.”
“수고는 무슨요. 모두 신의 뜻인걸요.”
수백 대의 PC와 수십 명의 셀루티스 사제들.
그들은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 퍼져 있는 사제들에게서 정보를 취합했다.
임미령은 이 정보를 검토해 사제들을 움직이는 ‘두뇌’ 역할이었다.
자리에 앉은 임미령이 보고서를 읽는다.
구원 31호 사망. 사인 불명.
: 갑작스런 신체 붕괴. 이에 응급조치를 취함. 붕괴의 진행이 계속됐음. 끝내 엘릭서까지 사용해 봤지만 끝내 사망.
……
구원 69호 사망. 사인 불명. 급사.
: 어떠한 조짐도 없이 사망했다. 다행히 촬영 중이라, 영상 증거를 동봉한다.
……
- 구원 6호. 먹이 부족. 지원 요망.
- 구원 16호. 먹이 부탁한다.
- 구원 33호. 먹이 부족합니다.
……
…
이처럼 요즘 그녀가 보는 보고서의 90퍼센트는 ‘구원’에 관한 것들.
‘계시’에서 언급한 ‘구원’이 이렇게 많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당황도 했지.
그러나 이내 받아들였다.
순응했다.
전지전능한 ‘그분’의 뜻을 감히 인간 따위가 판단할 수 있겠나.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며 불경이리라.
복종하고 또 복종해라.
임미령은 늘 복종하는, 누구보다 충실한 신도였다.
“흠, 먹이가 많이 부족하네…… 구할 방법은 생각해 놨나요?”
“지방 쪽 장례식장이나 병원을 섭외 중입니다.”
“그건 계속 하고 있던 거잖아요. 다른 방법은요?”
“저기…….”
“부끄러워하지 말고 말씀하세요, 형제님.”
“외국에서 수입해 보시는 건…… 중국이라면 대량의 ‘시체’…… 아, 아니. 먹이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음…… 괜찮은데요! 한번 직접 추진해 보시겠어요?”
“……!!”
“왜 그러시는 건가요, 형제님? 자신 없나요?”
“하, 할 수 있습니다! 해 보겠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
“부탁할게요. 아, 그리고 여러분. 여기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평등의 공간이에요. 언제나 의견 있으신 분은 기탄없이 말씀해 주세요.”
이렇게 보고서 검토가 끝나면 임미령의 일과는 마무리되고, 그 후 기도실로 가 저녁 기도를 하고 잠에 들며 하루가 끝난다.
그런데 한창 그분을 향해 기도 중이던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 똑똑!!
다급한 노크 소리에 급히 문을 열자, 평사제가 헐떡이며 토하듯 외쳤다.
“크, 큰일 났습니다, 대사제님! 현재 구원 17호가 게이트를 탈출했다고 합니다!”
* * *
포항의 어느 산골.
인적조차 드문 이곳에 일단의 사람들이 오르고 있다.
“아고, 허리야. 끄으윽. 쉬펄, 이게 뭔 지랄이고. 대체 믈 찾는근데?”
“거 있잖습니까. 어저께 들어온 신고. 그게 초인들 싸움이라 카던데요?”
“임 경장아, 이거 머꼬?”
“눈이죠?”
“눈이제? 눈깔이 보이제? 내 두 눈이 똑똑히 보이는데, 그걸 몰라서 묻겠냐? 저기 나무 탄 거, 여기 땅 패인 거, 전부 초인들이 지랄한 거겠지, 내 말은, 왜 흔적을 이따만 하게 찾았는데도 왜! 대체 왜! 애들을 뺑뺑이 돌리냐고! 점마들이 서울에서 왔으면 다야?!
“쉿! 쉬잇! 선배님, 조용하세요. 다 듣겠습니다.”
“들으라 카는 거다! 이보소! 이 땡볕에 언제까지 이 지랄ㅇ…… 읍!!”
“선배! 좀! 제발 쪼옴! 클 납니다! 야야, 네가 선배님 모시고 내려가. 쉬고 있으라고. 알았지?”
화를 참지 못한 경찰이 후배랑 내려간다. 그러나 다른 경찰들도 생각이 비슷한 모양.
이 정도 찾았으면 됐지 뭘 더 찾으래?
차마 말은 안 하지만 눈빛에는 불만이 가득하다.
서울에서 내려온 경찰들이 이를 몰라서 그들을 괴롭힐까.
안다. 같은 경찰인데 왜 모르겠나.
자신들도 적당히 하고 싶다. 쉬고 싶단 말이다.
한데, 오늘은 그럴 수 없다.
하필이면 이 사람이 ‘지원’ 나왔으니까.
“여기서 번개가 내려치고 불이 번쩍였다는 거죠.”
지금 묻고 있는 남자의 정체는.
박수혁.
검호가의 장남이었다.
“네, 최초 신고자 말대로라면 초인 간의 전투가 있었던 게 확실합니다.”
“평소 전투가 잦나요?”
“간혹 있지만…… 엄청 많지는 않습니다.”
매년 에이전트는 의무적으로 일정 이상의 ‘지원’을 보내야 했다.
이 지원 숫자는 새해가 시작될 때 정해지는데, 각 지자체들은 사건사고가 터졌을 때 에이전트에게 의뢰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이 경우 지원자는 랜덤. 즉, 뺑뺑이로 오게 되고.
하필이면 박수혁이 옵티멈을 대표해 포항에, 그것도 인적도 드문 산에 오게 된 것이다.
촌구석 변방 부대에 2스타가 온 거나 마찬가지.
덕분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찰들이었다.
“저기 박수혁 씨. 그냥 단순 싸움 같은데…… 이만하고 내려가는 게.”
“쉿, 잠시만요. 잠시만 조용해 주시겠어요.”
박수혁이 턱을 괴며 주위를 둘러본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전투의 흔적들.
“……흠.”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저기 불에 그을린 나무도, 듬성듬성 패인 흙도, 모두 요란하기 짝이 없다.
“……마치 이쪽을 봐 달라는 것처럼.”
당연한 말이지만 이런 수작질에 속을 박수혁이 아니다.
그의 ‘눈’은 특별하니까.
박기혁이 타고난 ‘신체’를 바탕으로 가공할 만한 힘을 쥐었다면.
박민지가 타고난 ‘반사 신경’을 바탕으로 신속의 영역을 손에 쥐었다면.
박수혁은 초월적인 ‘눈’을 통해 ‘완벽’을 얻었다.
한 번 본 검술은 모두 복제 가능하다. 설령 그것이 검이 아닌 다른 무기술이라고 해도 검술로 치환해 가능하다.
진룡 가문의 ‘용의 눈’에 근접한…… 아니, 백병전으로 한정한다면 용의 눈보다 탁월한 게 박수혁의 ‘눈’이었다.
이런 눈이 집중하고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법의 흔적 속에 숨어 있는 ‘검흔’을.
‘총 인원은 다섯.’
‘습격자는 4명. 피격자는 1명. 네 명이 한 명을 추적해, 포위했다.’
‘처음만 해도 이들은 흔적을 남길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한 명 쪽의 저항이 심했다.’
‘끝내 처리에는 성공했지만 전투를 숨길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이런 요란한 흔적들로 덧씌운다.’
여기까지가 이미 본 것으로 유추한 결과다.
아니, 이만하면 끝난 거 아닌가? 라고 묻는다면 맞다. 솔직히 이만하면 사건은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박수혁이 이를 말하지 않는 이유는.
4명의 습격자 쪽이 아니라, 당한 1명의 피격자 쪽에 가지게 된 의문 때문이다.
‘이상해.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분명 처음에는 약했다. 이건 숨긴 게 아니라 실력 자체가 약한 거다. 검흔들만 조합해 봐도 조악한 실력이 그대로 엿보였다.
‘그런데 성장했어. 무서운 속도로.’
전투 중에 성장하는 일은 자주 있다. 박수혁 본인도 자주 겪었던 일. 하지만 지금 말하는 건 이런 상식적인 경우가 아니다.
거의 서너 단계를 건너뛰어 성장했다.
검을 처음 잡은 아이가, 불과 20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숙련된 검사가 된 것이다.
믿겨지는가?
믿기 힘들어도 어쩔 수 없다.
여기의 검흔들은 분명히 그렇다 말하고 있으니까.
대체 이곳에 있던 존재는 무엇인가. 무엇이기에 쫓겨 죽어야 했고, 사라졌는가.
사건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 박수혁은 내내 생각해 봤다.
“도저히 모르겠네.”
결국, 궁금한 건 무조건 풀어야 하는 성격의 박수혁은 다음 날도 포항역에 내렸다.
다만 혼자 오지 않았는데.
“끄으윽. 뭐 궁금한 게 있다고 사람을 아침부터 괴롭혀? 형은 그놈의 완벽주의부터 고쳐야 해.”
박기혁과.
“소풍 같고 좋잖아. 나 김밥도 싸 왔는데, 먹을래?”
진유리.
든든한 지원군이 박수혁과 함께하고 있었다.
* * *
“햇볕 좋다.”
“선크림 발랐어? 발라 줄까?”
“됐어. 답답해.”
“답답해? 물 줄까?”
“오, 고마워.”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켜는데, 문득 의문이 든다.
“근데 넌 왜 왔냐.”
올 필요도 없고, 부른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근데 얘는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내 시중을 드나?
“……미안해서.”
“미안? 뭐가 미…….”
설마…… 얘 그저께 내 명치 때린 거 때문에 이러는 건가?
그리고 설마는 맞았다.
“네가 그럴 리 없는 걸 아는데, 막상 네가 다른 여자랑 웃고 있는 걸 보니까 너무 화가 났어.”
“……참 나.”
“연인 사이에 믿음이 중요한데, 미안해. 내 믿음이 부족했어.”
“미안한 것도 많다. 됐다 괜찮…….”
잠깐, 생각해 보니까 이거 뉘앙스가 이상하다.
내가 얘랑 왜 이런 대화를 하고 있지? 그러니까 이건 마치, 연인 간의 대화 같잖아?
젠장.
“……또 말렸네.”
“말려? 선풍기 줄까? 나 휴대용 선풍기 챙겨 왔어.”
“됐어. 저리 가.”
“……아직도 화났구나.”
“젠장, 화난 거 아니라니까.”
“화났네. 미안해. 내가 더 잘할게.”
“아, 씨. 들러붙지 말라고!”
엉겨 오는 팔을 빼내고는 성큼성큼 걸어 형 옆으로 따라붙는다.
“무슨 사이?”
“……아무 사이도 아니야.”
“호오, 그으래? 그렇구나. 납득했어.”
대체 뭘 납득했는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굉장히 불순한 눈빛이었다.
다행히 피곤한 시간은 이것으로 끝. 현장에 도착한 우리는 주위를 살폈다.
“확실히…….”
“어때, 이상하지?”
“어, 많이 이상해.”
숲 이곳저곳을 할퀴고 간 마법의 흔적들. 나 마법사요! 보란 듯이 티를 내는 이 흔적들.
가짜다.
진실을 숨기기 위해 꾸며진 가짜.
“아주버님이 말한 대로 진짜는 이 검흔이네요. 마법은 검흔을 숨기려 쏜 것 같아요.”
“진유리, 누구 마음대로 아주버님이야.”
“제수씨가 아주 날카롭네요. 혹시 다른 것도 보여요?”
“뭐, 뭐? 제, 제수씨?”
“음…… 시간이 부족했나 봐요. 급하게 정리한 느낌이 있어요. 아주버님은 어떤 게 보이나요.”
“정확히 봤네요. 저도 그렇게 보고 있어요.”
“조심스럽게 예상하자면 습격자가 예상 못 한 변수가 발생한 것 같아요.”
“정확해요. 대단한데요?”
“뭘요. 아주버님이 더 대단하시죠.”
평소보다 호탕하게 웃는 수혁 형이나, 평소와는 전혀 다르게 조신하게 구는 진유리나.
둘이서 아주 쿵짝이 기가 막히다.
“소꿉놀이 그만하고. 그래서 형, 뭐가 문제인데.”
“그게, 피격자가 이상해.”
습격자는 넷. 피습자는 하나.
분명히 처음의 전투 양상은 습격자들의 압승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습격자들은 피습자를 제거하는 일보다는 어떻게 하면 흔적을 줄일까, 하는 고민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 피습자가 전투 중에 강해진다. 강해져도 너무 가파르게 강해져, 습격자들이 여유는커녕 목숨에 위협을 받을 만큼 강해졌다.
형의 의문이 이 부분이다.
“휘두르는 것 외에는 할 줄 모르던 인간이 겨우 몇 합 만에 상대의 기술을 익히고, 또 몇 합 만에 이 기술을 파훼했어. 너도 알겠지만, 인간이라면 이런 성장은 말이 안 돼.”
확실히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성장은 아니다.
그렇다고 인간이 아니라면 상황은 더 복잡해지는 거고.
“이래서 널 부른 거야. 마법 쪽은 나보다 네가 더 잘 알잖아.”
난 바닥에 쭈그려 앉아 흙을 쓸며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해 보는데, 꼭 알아야겠어?”
“계속 신경 쓰이는 게, 께름칙해. 감이 안 좋아.”
“뭐 그렇다면야.”
형의 부탁이니 들어줘야지.
아공간에서 마석 한 알을 꺼낸다. 중상급 마석. 전에 샌드웜 잡으면서 꿍쳐 놓은 마석이다.
마석을 움켜쥐고 작업에 들어가려는 순간.
불현듯 보이는 진유리.
“풋.”
얘도 인간인가, 형 눈치 보느라 입술만 오물거리고 있다. 미안해서 이상한 짓 하는 것도 그렇고, 오늘따라 썩 귀엽다.
기분인데 한번 보여 줄까?
“야, 진유리.”
“응? 나? 왜?”
“이리 와.”
손을 까딱이며 진유리를 부른다.
그리고.
“잡아.”
“응?!”
“손잡으라고.”
“어맛, 심쿵!”
“쓸데없는 말하면 안 보여 준다.”
“어, 어! 잡을게.”
덥석 잡는 진유리.
“너 오늘 아침에 뭐 먹었냐?”
“갑자기 아침? 밥 먹었지.”
“그래?”
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디 확인해 볼까.”
손에 쥐고 있던 마석이 부르르 떨리다 녹아내린다.
자연에 흐르던 마나가 파도처럼 너울대더니, 나를 중심으로 회전한다.
곧이어 공간이 깨지며 바포메트가, 아수라가, 펜릴이, 키메라가 모두 현신.
다시 뜬 나의 눈동자는 검게 물든다.
검게, 검게…… 마치 빛마저 삼키는 저 은하의 블랙홀처럼, 나의 눈이 심연으로 가득 찼을 때.
“보여 줘.”
시야가 반전한다.
우리는 세계의 편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
…
잠시 뒤.
“우웨에에에엑-!!”
바닥에 속을 게워 내는 진유리. 나의 예언대로 오늘 아침에 먹은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나는 울렁이는 속을 겨우 참으며 형을 향해 말했다.
“형, 혹시 ‘천사’ 믿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