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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79화 (79/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79화>

병신 같다.

어떻게 챈들러라는 명문가에서 이런 병신이 나올 수 있을까?

윌리엄이 구치소에 갇혀 있는 챈들러 머레이를 보며 든 생각이었다.

“퍽!! 잘 왔어, 윌리엄. 지금 당장 날 꺼내 줘. 이 원숭이 새끼들이 날 가뒀다고.”

“……정황은 어떻게 되고 있지.”

“빼내는 것은 힘들겠습니다. 증거도, 증인도 모두 차고 넘치니…….”

쿵쿵!!

“야! 윌리엄!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빨리 꺼내 달라니까아!!”

“신경 쓰지 마. 증거는 뭐고, 증인은 뭐야?”

“CCTV에 너무 확실하게 찍혔습니다. 클럽에 있던 사람들도 머레이 선배의 ‘얼음’을 봤고요.”

“……개 같은.”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이거보다 더 심각한? 농담해? 민간인 구역에서 범위 마법을 발현한 것보다 심각한 문제?”

“네, 잠시 귀 좀.”

이어지는 후배의 말은 충격 그 자체였다.

“뭐? ‘박기혁’을 건드렸다고?”

“심지어 진룡 가문의 안주인에게 막말까지 했답니다.”

이 말까지 듣고 윌리엄은 철창 안의 머레이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죽일까?

죽이자.

저 돼지 새끼는 없어지는 게 세상에 이롭다.

할 수만 있다면 죽여서 그 흔적조차 지우고 싶은 윌리엄이었다.

분명히 처음 봤을 때는 그럭저럭 쓸 만했던 것 같은데 언제 이렇게 망가진 거지?

졸지에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가문과 악연을 쌓은 미국 교류단.

얻을 것이 있는 윌리엄인데 첫발부터 엉클어진 것이다.

“이대로라면 내일 법정에 새워질 수도 있습니다.”

“절대 안 돼! 이 사실이 알려지면 우리 교류단 전체가 병신 취급 받게 돼.”

“다른 선배들은 몰라도 머레이 선배는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습니다.”

“막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

명성의 힘을 알고 누구보다 잘 이용하는 윌리엄이다.

그런데 자신의 명성에 흠집이 나게 생겼다. 절대 그렇게 둘 수 없다.

바야흐로 미국발 ‘골드러시’가 시작된 것이다.

목격자들에게 합의라는 명목으로 거금을 쥐여 준다. 거절하기에는 너무 큰돈을 받은 목격자들은 입을 닫았다.

판사와 검사에게도 돈을 쥐여 준다. 하다못해 그날 근무한 청소부까지도. 혹시나 누가 발설할까 관계된 모든 공직자에게 돈을 쥐여 준다.

엄연히 불법이지만 언제나 세상은 합법보다 불법이 더 빠르고, 결국 공판은 미뤄졌다.

이제 남은 곳은 두 곳이다.

검호와 진룡.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두 가문.

권력도, 금력도…… 하다못해 무력도 통하지 않는 곳이다.

역시나 슬쩍 합의를 찔러 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변호사 특유의 완곡한 거절. 이걸 다르게 보면 위쪽까지 올라가지도 않고 변호사 선에서 정리당했다는 말이다.

대화할 의지가 없다.

눈치 빠른 윌리엄이 이를 모를 리 없고, 결국 두 가문을 직접, 두 발로 찾아가야만 했다.

그렇게 옵티멈 본사에서는 김연희를, 진룡산에서는 유해련을 각각 만나게 된 윌리엄.

하지만 그런 윌리엄에게 돌아온 답은.

“아들이랑 합의 보세요. 난 할 말 없으니까. 그런데 궁금해서 그러는데, 그런 수작질은 어디서 배웠어요? 돈 먹이는 거요. 완전 한국식이던데요. 재미있었어요. 근데, 적당히 하세요. 한 번은 애교지만 두 번은 고의니까.”

“그걸 왜 저한테 묻나요. 당사자가 따로 있는데. 알아서 해결하고 오세요. 저는 모르겠네요. 조심히 내려가세요. 록샨의 제자라 기대했는데, 기대 이하네.”

한쪽은 자신을 부패한 상인 취급하고.

한쪽은 스승님을 들먹였다.

윌리엄은 이때 또 한번 살의가 치솟아 올랐다.

‘나를 이딴 대접받게 해? 돼지 새끼, 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결국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박기혁과 해결을 봐야 한다.

그렇게 사건을 수습한 지 일주일 만에 겨우 박기혁을 찾아 나선 윌리엄.

“윌리엄? 아, 네가 그 정령사구나. 그래서 뭐? 합의? 킥, 못 해 줄 것도 없지.”

“나를 꺾어. 꺾으면 이번 일은 합의해 줄게. 대신 네가 지면.”

“내일 이 시간에 다시 도전하러 와. 이해했냐?”

이기면 합의. 지면 스파링 파트너.

손해 볼 게 없는 장사다. 오히려 머레이가 친 사고 탓에 스트레스를 받던 윌리엄에게는 일견 포상처럼 여겨졌다.

“후회하지 마라.”

그리고 윌리엄은 이날, 자신의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된다.

*   *   *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는 윌리엄.

“커억!”

스켈레톤의 사슬에 속박돼 있던 정령들은, 주인이 무력화되는 순간 부르르 떨리며 허공에서 흩어졌다.

“쩝.”

안 그래도 그놈의 ‘사랑’ 때문에 필요하던 차에 엘리멘탈 마스터 제자라 해서 기대했는데, 기대 이하다. 1시간도 못 버티는 건 뭐람.

내 눈빛을 읽은 것일까. 윌리엄이 핏발 선 눈으로 고함쳤다.

“젠장! 이건 무효다! 지난 일주일간 두 시간도 못 잤단 말이다!”

“……저런, 그렇구나. 잠을 못 잤구나.”

나도 대충은 짐작했다. 녀석이 풀 컨디션이 아니란 것쯤은.

한눈에 봐도 정령들이 매가리가 없는데 그걸 모르겠나.

개인적으로는 이런 놈의 반응이 진심으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럼 내일은 더 잘할 수 있겠다. 그치?”

“……!!”

“기대할게. 치료 잘하고, 내일 보자.”

무릇 최고의 스파링 파트너라 하면 격렬히 저항해야 하는 법.

넌 이제부터 내 전투 노예다.

일해라, 노예야!

“크크크크.”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

그렇게 난 망연자실한 윌리엄의 어깨를 툭툭 치며 지나쳐 갔다.

……

그리고 잠시 뒤.

시야에서 윌리엄이 사라졌을 때쯤.

내 발이 멈췄다.

“슬슬 나오지?”

아무도 없는 공간. 탁 트인 시야에 보이는 것은 푸른 잔디뿐.

늘 보던 대련용 게이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느껴진다.

아까부터, 정확히는 윌리엄이 우리 동아리 문을 박찼을 때부터 모습을 감춘 존재가.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굉장히 생소한 체계의 마법이었으니까.

그러다 한창 윌리엄의 정령을 조질 때쯤 생각나더라.

진유리의 워 아머 ‘드래고니안’을 만들 때의 마법 체계가 저거랑 매우 흡사했다.

워 아머에 들어가는 마법.

순수한 마법이 아닌, 첨단 기술과 결합된 이종의 마법. ‘마도 공학’이었다.

이를 알아채자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현재 이 정도 수준의 마도 공학을 사용하며, 내게 관심을 넘어 뒤쫓기까지 할 사람이 있는가?

나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은 쉽게 나왔다.

“들켰어. 왜 들켰지? 어떻게 한 거야?”

로자리아 빌랜드 워싱턴.

그녀뿐이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아한 점은.

“……헨리 이 자식.”

윌리엄과 로자리아의 수준이 엇비슷하다면서?

틀렸다.

내게 처맞았음에도 윌리엄은 매우 훌륭한 인재다. 꽤 재능도 보이고.

굳이 비교하자면 준우랑 비슷하거나 조금 위?

진유리와는 비교가 불가하다.

녀석이 아무리 4대 정령을 다 다룬다고 해도 진유리에게는 ‘용의 눈’이 있다. 게임이 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로자리아는 이런 진유리와 동급. 어쩌면 최소 반보는 앞서 있다.

게다가 그녀가 사용하는 마법이 순수 마법이 아닌 ‘마도 공학’이란 점에서 진유리의 ‘용의 눈’도 100퍼센트 활용 불가능.

아마 둘이 붙으면 100에 80은 로자리아가 이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 혹시 너 ‘빅터’에 대해 알아? 그래서 본 거야? 말해 봐. 나 궁금해.”

“허…….”

“왜 웃는데?”

“어이가 없어서.”

제국 시절을 떠올려 봐도 이 나이에 이 정도의 강함을 지닌 인간이 있었나.

세계는 넓다더니, 잊을 만하면 이런 선물을 쥐여 준다니까.

“이 세계는 재미있어.”

*   *   *

카페에 앉은 나와 로자리아.

“이야기할 게 있으면 빨리 이야기하자. 유치원 마칠 시간 다됐거든.”

“유치원? kindergarten?? 왜?”

“우리 아가 수업 마칠 시간이거든. 그런데…….”

내가 로자리아의 귀를 유심히 본다.

“너, 번역기 없네?”

“한글 우수해. 몇 자 되지도 않아. 오기 일주일 전에 익혔어. 어색해? 이해 못 해?”

“아니, 그냥 신기해서 물어본 거야.”

“듣기 불편하면 언제든 말해. 껴 줄게.”

사소한 건 넘어가고 본론부터 말한다.

“날 뒤쫓은 목적은?”

“인공 정령석.”

“시원하게 나오네.”

“시간 아까우니까.”

마음에 든다. 예의랍시고 빙빙 돌려 말하는 건 내 쪽에서도 사양이었다.

“인공 정령석을 왜 나한테서 찾아? 옵티멈 본사에 가서 이야기해. 라이선스 주인은 어머니니까.”

“알아. 그쪽은 우리 쪽 사람이 이미 갔어. 내가 궁금한 건 라이선스가 아니야.”

순간, 로자리아의 등에서 무언가 튀어나온다.

기계 팔. 은색의 강철로 돼 있는, 얼핏 보면 거미의 다리처럼 생긴 기계 팔이었다.

그리고 기계 팔이 쥐고 있는 건, 인공 정령석이다.

그런데…… 이거 왜 이렇다니.

색이 탁하다. 아예 마나도 느껴지지 않고.

“……너 봉인 풀려고 했구나.”

“부정하지 않겠어.”

“실패했고.”

“맞아. 그거야. 실패. 나 궁금해. 왜 내가 실패한 걸까. 너무 궁금해서 잠을 이루지 못하겠어. 물을 게. 난 왜 실패했지?”

“그걸 왜 나한테 묻냐.”

“난 네가 내게 그 답을 가르쳐 주길 바라. 내가 널 뒤쫓은 이유야.”

“……이거.”

한 가지 확실하다. 얘는 정상 아니다.

뭔가 인간으로서 많은 부분이 결여된 느낌. 얘에 비하면 진유리는 선녀다.

“진유리는 귀엽기라도 하지…….”

내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올 줄이야.

새삼 매번 이런 애들이랑 엮이는 내가 불쌍해질 지경이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인공 정령석, 이제는 그냥 돌멩이로 변한 것을 들여다봤다.

잠시 뒤.

“호…….”

나도 모르게 나오는 탄성.

얘 뭐야? 거의 근접했는데?

마나는 사라졌어도 흔적은 남는 법. 로자리아가 어떤 식으로 접근했는지 대충 보였다.

내가 신기한 건 이 부분이다.

이 아이, 로자리아는 마나를 ‘분해’하고 ‘조립’했다.

이미 완성된 마법에, 그것도 타인의 마법. 거기다가 의지가 없는 무기체에.

기억나는가. 예전에 내가 마검의 저주를 해체했던 때. 무기체는 방어 기제가 없기에 마법을 해체하기 힘들다 했다.

그런데 로자리아는 이 모든 악조건 속에서도 내가 만든 락에 거의 근접했다.

어떻게?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고, 짧은 시간 안에 낸 나의 결론.

“이거, 마법 분해하고 조립하는 거. 네 혈족 계승이야?”

“Amazing! 역시 인공 정령석을 만든 사람이야! 맞아. 그게 우리 ‘워싱턴’가의 혈족이야.”

“……대단하네.”

오늘 여러모로 많이 놀라네.

만약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저 능력, 진리를 엿보는 ‘용의 눈’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없는 능력이다.

“하나도 대단하지 않아. 결국 못 뚫었어.”

“당연하지. 저 마법에는 ‘나’가 들었거든.”

“나? You? 무슨 말이야. 한국적 은유야?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봐.”

“여기까지. 이 이상 말해 줄 의무는 없어.”

“너무해.”

너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처음 본 사이에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다.

“할 이야기가 그거라면 이제 가도 되지?”

“앉아. 알았어. 거래하자는 거구나. 이해했어. 뭘 원해. 돈을 원해? 얼마를 원해.”

“뭘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틀려. 이건 거래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흥정이라는 거구나. 좋아, 여기 백지 수표가 있어. 네가 써. 얼마를 쓰든 네 거야.”

“말 제대로 들어라. 애초에 아포칼립스는 내가 아닌 타인이 풀 수 있는 마법이 아니라니까.”

“휴, 욕심쟁이네 너. 알았어. 이것까진 내놓고 싶지 않았지만…….”

손을 옷 안에…… 잠깐 쟤 원피스 입었잖아.

원피스에 속주머니가 있었나?

모른다. 남자인 내가 원피스를 어떻게 아나. 어쨌든 옷 안에 손을 넣은 녀석이 뒤적뒤적 몸을 배배 꼬더니.

탁, 검고 조그만 무언가를 내놓는데.

“이게 뭔데.”

“외장형 메모리.”

“그 정도는 나도 안다. 왜 이걸 꺼내 놓느냐고.”

내 질문에 로자리아는 구구절절 설명하는 대신 한마디로 답한다.

“‘빅터’의 설계도야.”

“…….”

“어때? 이제 거래할 생각나지?”

“…….”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말하는 로자리아.

내가 거부하리라고 생각도 않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이 빅터라는 게 대단하단 말인데.

“…….”

모르겠다.

빅터라는 거, 난 처음 들어 본다.

근데 흘러가는 분위기상, 이거 모른다고 하면 바보 취급받을 거 같다.

여기서 폰으로 검색하는 건 조금 없어 보이려나.

한참을 고민하고는 그냥 거절하면서 일어나자라고 막 생각했을 때.

그 순간.

“박기혁!!”

“아쁘아!!”

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고개를 돌리자. 진유리가 봄이의 손을 잡고서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세상에, 진유리가 반가울 줄이야. 그런데 봄이는 왜 이 시간에 나왔지? 아직 마칠 시간 아니잖아.

어쨌든 반갑다. 격하게 손을 흔들며 부르는데.

“오! 유리, 커억!!”

명치에 꽂히는 주먹.

경쾌한 타격음.

턱 막히는 숨.

굽어지는 허리.

생각지도 못한 습격에 쓰러지는 나.

황당해 위를 올려다보니, 진유리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쪽을 보고 있다.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바람을 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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