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77화>
비록 꿍꿍이는 따로 있다지만 원칙적으로 교류단의 목적은 ‘킹메이커’ 이론.
설령 그것에 흥미가 있든 없든, 일단은 이론이 검증된 공간을 가 보는 것은 상식이었고.
윌리엄을 비롯한 미국 교류단 1팀이 7레벨 게이트, ‘사마귀 여왕의 궁’을 찾았다.
“저기 저건 멘티스의 개체수를 조절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자이언트 엔트를 대체 세력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지만 아직은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기준 이상의 숫자가 접근했을 때 공격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방법이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는 힘들 건데요.”
“맞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영역을 푸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쪽으로 와 보시죠.”
참고로 로자리아는 ‘관심 없어.’라는 이유로 동행을 거부했다. 얼마나 딱 잘라 말했는지 곁에 있던 교류단이 민망했을 정도.
안내역으로 호텔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직원들도 로자리아의 행태에 화를 숨기지 못했다.
명성을 얻는 것을 즐기고 이를 이용할 줄 아는 윌리엄으로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일.
‘미친년. 제멋대로 사는 건 여전하군.’
뭐, 덕분에 반대급부로 자신이 돋보이고 있으니 상황 자체에는 꽤 만족한 그였다.
‘적당히 맞춰 주다가 빠지려면…… 하루쯤이면 되겠지.’
어차피 이 킹메이커 이론이란 게 핵심은 간단하니까. 미국에 돌아가 직접 실험해 보면 된다.
지금 윌리엄에게 중요한 건 아포칼립스.
박기혁이라는 놈이 만들었다는 신마법이 더 중요하다.
동양인 주제에 마법을 창안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이렇게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날 생각만 하던 윌리엄.
결과부터 말하자면, 윌리엄은 그토록 원하는 대로 게이트 ‘사마귀 여왕의 궁’에서 나올 수 있었다.
다만 이게 그가 원하는 방식이었냐면…….
그건 아니었지만.
“선배님, 지금 바로 나가야겠습니다.”
“머레이 선배가 민간인 클럽에서 광역 마법을 사용해 경찰에 끌려갔습니다.”
“잘못하면 ‘집행부’에 넘겨질 수도 있답니다. 어서 가셔야 합니다.”
* * *
게이트 규제에 구멍 뚫렸나. 불법 게이트 많아.
강소 에이전트로 유명한 ‘흑우 형제’와 ‘포세이돈’ 에이전트. 칠성 그룹의 품으로!
……
…
홍대 모 클럽에서 초인 난동!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경찰들도 경악
……
…
/초인드림.com
이 기사 본 사람? 이거 ‘거기’ 맞지? <링크>
서울 모 클럽에서 초인 난동!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경찰들도 경악
└ 엌ㅋㅋ 이거 이제 올라옴?ㅋㅋㅋ
└ 이거 일주일 전에 파***에서 벌어진 일 아닌가?
└ 마즘. 그때 여기서 저놈들 틀림없이 약 빨았다고 올린 그 사건임.
└ 실화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작 술처먹고 그 지랄을 떤 거라고?
└ 건물 다 부서지지 않았냐. 건물주 눙물.
└ 니가 건물주 걱정을 왜 하는 데 ㅂㅅ야.
└ 이 형 왜 급발진이야;;
└ 왜? 먼일 있었는데.
└ 같이 알자 좀,
└ 나 안다. 이거 안다. 저기 홍대 ‘파나노트’다. 저기 있었다. 나. 콰직콰직. 얼음 떨어졌다. 꺄아아아- 도망갔다. 나도 섞여서 도망갔다. 데헷V. 경찰 왔다. 삐용 삐용. 설명 끄읏~!
└ 내 눈이 이상한가. 분명 한글인데 못 읽겠어.
└ 개색캬!! 좀 알아듣기 쉽게 말해 봐라. 세종대왕님 예토전생해서 대가리 뽀게기 전에.
└ 글쓴이) 설명해 줄게. 일주일 전에 홍대에 파나노트 클럽에서 어떤 초인이 광역마법 갈겼어, 그것도 빙속성으로! 그런데 어떤 남자가 막아섰고, 갑자기 둘이 싸우기 시작, 여기에 빙속성 갈긴 마법사 동료가 오면서 패싸움으로 번짐
└ 미친! 민간인 클럽에서 초인들이 패싸움을 했다고? 능력 다 쓰면서?ㄷㄷㄷㄷ
└ 글쓴이) ㅇㅇ 정답.
└ 혹시 마법에 대한 지식 없는 뉴비도 있을 테니 간략 설명 들어감. 민간인 기준 얼음 마법은 스쳐도 최소 중상임. 동상에 걸려서 절단할 수도 있음.
└ 비슷한 분류로 번개 마법도 그래요. 별거 아닌 마법이라도 마나 저항력이 거의 없는 민간인이 맞으면 신경계가 망가질 수 있어요.
└ X같네. 이거 단속 좀 해야 하나는 거 아니야? 경찰은 뭐 한데?
└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이 사건 일주일 전에 벌어졌다며. 그런데 왜 기사는 지금 나옴?
└ 글쓴이) 나도 그게 궁금해서 올림, 아예 묻혔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갑자기 뒷북이잖음. 혹시 이거에 대해서 아는 사람 있나? 있으면 정보 좀.
* * *
쓸데없는 일에 엮인 일주일.
꽤 요란하게 보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원래는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는 것,
나는 마법사고, 마법사는 항상 이성적이며,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 사건 키워 봐야 봄이 보는 시간이나 줄어들 뿐이지 나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다.
그냥 어린놈들이 술 먹고 나한테 지랄한 거다.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 없단 말이다.
다만 민간인이 대부분인 공간에서 능력을 썼다는 점과, 녀석들이 미국 교류단의 일원이란 점. 게다가 녀석 중 미국 명문가인 챈들러가 있다는 점에서 사건이 복잡해졌을 뿐이다.
생각해 보니 죽일 놈이긴 하네.
어쨌든, 녀석들은 100번 처맞아도 할 말 없는 놈들이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죽어 나가는 건 대부분 중간에 끼인 다른 사람이더라.
안 봐도 뻔하지.
괜히 애먼 사람들 작살내고 정작 몸통은 쏙 도망가는, 웃기지도 않은 상황이 펼쳐질 거다.
가족이나 봄이를 건드렸다면 강냉이를 털어 버렸겠지만.
여하튼, 그러느니 얻을 거 잔뜩 얻어 내고 빠지는 게 맞다.
때문에 경찰에 끌려갈 때 비서실장님에게 전화해 ‘챈들러’ 가문에 대해 알아봐 달라 부탁한 거였다.
뭘 털어 올지 리스트를 짜려고.
그렇게 스텝 바이 스텝, 플랜을 짜 놨는데, 우리 망나니 진유리 님이 똥볼을 찬 거다.
아무리 내가 걱정됐다지만 진짜 어머니를 왜 데려오냐.
진유리의 어머니, 유해련이 등장한 순간 사건은 내 손을 떠나게 됐다.
당시 경찰들을 아주 탈탈 털어 버리는 유해련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우리 김연희 여사님이 말씀하긴 게 생각나더라.
“뭐어? 교양 있어 보여? 누가? 유리 엄마면 설마, 해쫑이? 해쫑이가 교오양?! 푸하하하!! 아악! 배 찢어질 거 같아! 우리 기혁이 사람 볼 줄 모르네. 아직 멀었어. 걔가 얼마나 지독한데.”
“성갑기마대 단장으로 있을 때도 유명했어. 자기 기준에 안 맞는 놈 있으면 쥐 잡듯 잡았거든. 그래도 훈련 안 할 때는 살뜰하게 챙겨 줘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성갑기마대 조기에 해체됐을걸.”
“콩 심은 데 콩 나는 법인데 진유리 걔 성격이 어디서 왔겠어? 해쫑이는 악을 쓰고 부정하지만 내가 보기에 유리, 고거 해쫑이 어릴 때 판박이야.”
그때는 ‘에이, 어떻게 진유리 같은 인간이 또 있을 수 있어요.’라고 웃어 넘겼는데.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옳았습니다.
유해련은 정말 진유리와 비슷했다. 어떤 면에선 업그레이드 된 진유리를 보는 듯했다.
이를테면 교양을 갖춘 진유리랄까?
“……잠깐만요. 기혁이, 너 팔에 차고 있는 거 뭐니? 설마, 마나 구속구야? 네가 그걸 왜 차? 이봐요, 거기. 그래, 당신요. 여기 우리 사위님…… 크흠, 기혁이가 이걸 차고 있는데. 왜 피해자인 기혁이가 마나 구속구를 차고 있죠? 나 조금 궁금한데. 말해 봐요. 당장.”
“……쌍방 과실? 제가 알고 있는 거랑 너무 다른데요. 진유리, 똑똑히 말해. 저 턱도 안 보이는 돼지 새끼가 술 처먹고 여자애 희롱했고, 기혁이가 말렸는데 마법 썼다며. 맞아? 확실하지? 알았어.”
“자, 여러분. 제 딸내미가 싸가지가 조금 없고, 하는 짓이 망나니지만 거짓말은 안 해요. 상황 보면 가해자와 피해자가 완벽하게 정리됐는데, 왜 쌍방 과실일까요? 네에? 누가 말해 줄 사람. 나 너무 궁금한데?”
부랴부랴 경찰의 높은 분으로 보이는 사람이 오고, 때마침 비서실장님이 와서 유해련을 말려 봤지만.
“……찬우야, 나 화난 거 아니야. 정말 궁금해서 그렇다니까. 누나 정말 화난 거 아니야. 거기요, 어딜 가요. 이야기 안 끝났어요. 이리 와 봐요. 나 화난 거 아니라니까!”
화난 거다.
그건 100퍼센트 화난 모습이었다.
그렇게 흥분한 유해련과 경찰은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
그 와중에 우리 떨거지 3인방,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다 생각한 건지 ‘법대로 하자’라며 급발진. 그림 같은 타이밍에 사일런스가 풀리며 덩어리 자식의 입에서 ‘퍽 퍽!’ F워드가 쏟아졌고.
미국 외교관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No! No!!’라며 필사적으로 외쳐 봤지만.
늦었다.
유해련은 폰을 잡고는 걸쭉한 사투리를 뱉고 있었다.
“야! 희땡아, 우리 사위님 감옥 가게 생겼다. 여기 야들이 법대로 하라네. 우짜노.”
내 호칭이 사위가 된 게 조금 의문이었지만.
넘어가자. 그때는 낄 타이밍이 아니었다.
여튼 우리 김연희 여사님, 좋게 좋게 정리될 줄 알고 비서실장만 보냈는데, 뜬금없이 나온 감옥이란 단어에 흥분하셨고.
잠시 뒤, 경찰청 문을 열고 들어서는 건 옵티멈 소속 변호단.
결국.
법대로 하기로 했다.
* * *
사건이 이렇게 수습되고.(솔직히 수습됐는지 더 커졌는지 모르지만……)
난 봄이랑 함께 진룡산으로 향했다.
어머니의 조언이었다. 여러모로 신경 써 줬는데 감사 인사라도 하라고.
그래서 전통주 선물 세트를 사 들고 찾았는데.
산 초입부터 뭔가 싸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3대가 복 받으실 거예요.”
“우리 유리 아가씨가 성격이 그래서 그렇지 속은 착해요.”
……뭐지? 이 분위기는.
손이 귀한 검호와는 다르게 진룡 가문은 다산을 최고의 덕으로 삼았고, 거대한 가족처럼 혈족 전체가 함께 생활한다고 들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진유리는 자기가 공주님처럼 생활했다고 말했는데.
나를 잡고 진유리를 부탁하는 사람들의 눈빛에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마치 크고 거대한 짐을 가져가 달라는 절박함이 말이다.
진유리, 도대체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거냐.
그렇게 환대 아닌 환대를 받으며 정상에 도착했고, 나는 처음으로 진도하와 마주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진도하입니다.”
“안녕하세요. 박기혁입니다. 여기는 봄이, 제 딸이에요. 봄아.”
“안뇽하세요. 봄이입니돠. 얘는 버찌예요. 제 동생이에욥.”
“박봄 님과 버찌 님이시군요. 이렇게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이쪽으로.”
진도하에 대한 첫 인상은.
마법사.
완성된 마법사였다.
솔직히, 기대 이상이었다. 이 세상에 이 정도로 마도에 정통한 사람이 있을 줄이야.
‘여기에 용의 눈까지 더한다면.’
마왕일 때 나와 필적하지 않을까?
소름이 돋는다.
호승심이 피어난다.
등줄기가 짜릿해지며 기분 좋은 긴장감이 온몸을 자극했다.
저쪽도 이런 내 반응을 눈치챘나 보다. 진도하가 슬쩍 보더니 빙그레 웃는다.
“시간은 많습니다. 식사부터 하지요.”
이 남자 점점 더 마음에 드는데.
난 웃으며 진도하의 뒤를 따랐다.
* * *
진도하는 자신의 실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 마도의 정점.
세계 마도를 이끄는 자.
세계 60억 인구를 통틀어도 마법 한정으로 자신을 상대할 자는 손가락으로 꼽을 거라 믿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진도하가 후진 양성에 열을 올리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자신이 안 하면 누가 하는가?
일종의 의무였다.
무릇 가진 자라면 베풀 줄 알아야 하는 법. 진도하는 자신이 가진 이 방대한 지적 자산을 베푸는 것이 이 세계를 위한 일이라 믿었다.
그런데.
‘신기해.’
이런 진도하에게 의무가 아니라, 진심으로 흥미를 끄는 사람이 나타났다.
아니지, 잘못 말했다.
사람‘들’이다.
지금 그의 앞에 있는 두 사람.
“어머님, 너무 맛있습니다.”
“할매 마시써!”
밥그릇을 비우고 있는 박기혁과 야무지게 숟가락질 중인 박봄이었다.
“어쩜 먹는 모습도 이렇게 복스러울까. 너무 보기 좋다. 우리 애들은 깨작깨작, 한 그릇도 제대로 안 먹는데.”
“엄마는…… 나나 오빠가 정상이고, 기혁이가 심하게 많이 먹는 거야.”
“조용히 하렴, 딸아. 지금 손님이랑 이야기하고 있잖니? 그런데 삼계탕이 언제 오ㄴ…… 마침 왔네. 여기 삼계탕도 먹어 봐요.”
“그거 산삼 들은 거야. 엄청 큰 산삼. 너 꼬드기려고 엄마가 특별히…….”
“여보, 얘 입 닫아요.”
“조용.”
“웁웁!”
“여기 삼계탕도 먹어 봐요. 직접 키운 거예요.”
“사양 않겠습니다.”
“아가는 할매가 찢어 줄게.”
“고맙습니돠아.”
검호는 대대로 전부 대식가인 집안.
역시나 두 사람 모두 아주 잘 먹는다.
박봄은 캡틴 타이거가 새겨진 어린이용 젓가락으로 야무지게 반찬을 집고 있었고, 박기혁은 아예 밥솥째 없앨 기세로 밥그릇을 비우고 있었다.
분명히 이런 점만 보면 그 ‘검밖에 모르는 고양이’가 분명한데.
‘왜 ‘용의 눈’이 반응하는 거지?’
진룡가 용의 눈은 총 3단계.
1단계가 마법의 흐름을 읽는 거라면 2단계는 상대, 즉 타인의 마법에 간섭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모든 현상을 마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재 진도하의 경지는 2단계와 3단계 사이.
타인의 마나에 간섭하며 어렴풋이 해석하는 수준이다.
진도하의 ‘용의 눈’으로 본 박기혁은 일말의 마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당연하다. 마나 허무증이니까.
물이 없는데 물놀이를 할 수 없듯, 마나가 없는데 마나를 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데…… 마나가 없는데, 마법이 있다.
육망성의 마법진이 선명하게 보인다.
‘어둡다. 깊은 무저갱 같은 어둠이야.’
그럼에도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감정적이고 친근하다. 사람 냄새가 난다고 표현하면 얼추 맞으려나.
검호에게 ‘마법’이 보인다는 것도 웃긴 일인데, 그 마법이 진도하조차 측정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하물며 봄이란 아이도 비슷한 게 보여.’
박기혁처럼 깊이가 있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모양을 갖춘 어둠.
솔직히 나이를 생각하면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다. 마나를 느끼기만 해도 대단할 나이인데, 벌써 마법적 자아를 갖췄다는 뜻이니까.
‘재미있군.’
마음에 든다.
박기혁이 진도하를 마음에 들어 하듯.
진도하도 박기혁이 썩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