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76화 (7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76화>

나의 일과는 오전 7시에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물 1.5리터를 원샷 하며 화장실. 생리 활동을 마치고 간단하게 러닝 머신을 뛴다.

5분 걷고 15분 전력 질주.

송골송골 등에 땀이 맺힐 때쯤이면 먹었던 수분이 혈관을 따라 온몸을 훑는 느낌이 들며, 졸음은 완전히 날아간다.

오전 7시 50분.

이제 봄이를 깨워야 한다.

뽀뽀와 함께 봄이를 깨우면 우리 공주님이 칭얼거리며 “더 잘래…….”라고 앙탈을 부린다. 마음 같아선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더 재우고 싶지만, 아빠는 단호해야 하는 법.

궁둥이를 팡팡 토닥이며 씻기고 식탁에 앉는다.

워낙 바쁜 가족이라 전부 다 모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 그래도 어머니는 꼭 있으려고 하셔서, 매일 엄마에게 아침 인사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봄이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나는 아카데미로 간다.

천수만과의 딜 때문에 매일 출석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동아리실만큼 좋은 훈련실도 없어서 일단은 아카데미로 가는 편이다.

이제부터 일과는 단순하다.

일정한 간격으로 운동-식사-휴식을 반복한다. 운동 1시간, 식사 1시간, 휴식 1시간, 이렇게.

여기서 메인은 운동이다.

근 성장을 위한 고강도 운동.

만약 수업이나 연구 때문에 시간이 모자라면 식사를 프로틴 쉐이크로 대체해서라도 운동 시간만큼은 꼭 지키려 했다.

이쯤에서 물을 수 있다.

그럼 마법은요? 마법은 언제 공부해?

전직 마왕이라고 마법을 소홀히 하는 거임? 네가 그 입으로 말했잖음. 배움에 끝이 없다고. 설마 한 입으로 두 말하는 거임?

맞다.

배움에는 끝이 없고, 물론 마법도 공부해야 한다.

그 시간이 저녁.

저녁에는 집에 있는 연구실에 틀어박혀 미뤄 뒀던 마법을 공부한다.

참고로 요즘 공부하는 분야는 ‘마도 공학’. 진유리와 ‘드래고니안’을 만들 때 공부한 건데 의외로 재미있어서 파는 중이다.

어찌 보면 저녁은 내 일과의 핵심이었다.

그래서 웬만하면 저녁에는 약속을 잡지 않는다. 잡아도 우리 연구실에서 만나거나, 집 근처 식당에서 밥이나 먹는 정도였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나날.

단련은 늘 새롭게, 공부는 끝없이.

내게는 이게 일상이며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런 내 일상을 부수려는 망나니가 나타난다.

그래, 당신이 생각하는 그 사람이다.

잊을 만하면 나오는 걔.

진.유.리.

오늘도 등장.

“클럽 가자. 클러어업!! 나 클럽 가고 싶어어어어!!”

클럽이라면 청춘 남녀가 술 마시고 춤추는 곳 아닌가. 어두컴컴하고 시끄럽고. 음주가무하다 눈 맞으면 썸도 타고, 뭐 그런 곳.

내가 거길 왜 가는데? 마법사인 나에게 그런 비생산적이고, 비이성적인, 더군다나 근손실을 일으키는 알코올을 마시는 곳에 내가 왜 가야 하는가.

콧방귀를 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갔다.

아니, 갈 수밖에 없었다.

“나 생일이란 말이야!! 생일 선물로 가고 싶어어어!!”

젠장…….

생일이라는데. 일 년 중 유일한 날인데.

가 줘야지.

그래도 진유리, 양심은 있다. 우리 봄이랑 신나게 놀아 주더라. 아주 지쳐 쓰러질 때까지. 덕분에 봄이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평소 자는 시간에 클럽 한가운데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온 클럽의 첫인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끔찍한 곳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컴컴했고, 생각 이상으로 시끄러웠다.

감각이 발달한 내게는 여기가 인세의 지옥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엉켜 오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지 치우는 것도 한두 번. 나중에는 그냥 나 스스로 구석에 치워져야만 했다.

그리고 이때, 클럽에 대한 내 인상이 나락으로 빠지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야! 나랑 놀자.”

“꺄악! 이거 놔요.”

남자가, 드럽게 살찐 사내자식이 제 가슴팍에도 안 오는 여자를 잡고 있다. 안 놔주고 있다.

저 덩어리 놈, 초인이란 건 첫눈에 알아봤다. 차가운 마나가 선명하게 보이니까.

한숨을 쉬었다. 이제는 하다하다 초인 새끼가 민간인, 그것도 자기 몸무게 4분의 1도 안 되는 여자애를 건드냐.

일단은 다칠까 싶어 말렸다.

“죽어라, 병신 새끼야(Son of a bitch)!”

그런데 이놈이 공격하네?

그것도 꽤 수준 높은 빙계 마법으로. 아니,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마법이 아니라 혈족 계승인 것 같다. 술식이나 배열도 갖추지 않고 즉시 시전된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어쨌든, 그래서 선빵을 맞은 나.

내 머릿속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지만, 가장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은.

‘정당방위는 성립됐네.’

그 순간, 내 주먹은 빛보다 빠르게 녀석의 턱을 가격하고 있었다.

*   *   *

“……이렇게 된 겁니다.”

“허…….”

내 이야기를 듣던 수사관은 한숨을 쉰다.

“정리해 봅시다. 여기 이 사람, 이름이 챈들러 머레이라는…….”

수사관의 손가락이 가리키며 이름을 말하자, 덩어리는 뭐가 그리 열 받는지 발을 구르며 발악한다.

“셧 더 퍽! 너희 같은 천것들이 함부로 부를 이름이 아니야. 감히 챈들러 가문의…….”

하지만 수사관도 한성깔 했다.

“사일런스(Silence).”

“읍, 읍! 읍!!”

“조용히 있어요. 당신한테 물은 거 아니니까요.”

오…… 폼 나는데?

수사관의 똑 부러지는 태도에 내 호감이 올라간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줘야겠다.

“다시 묻겠습니다. 박기혁 씨는 친구의 권유로 클럽에 간 겁니다. 맞나요?”

“네, 처음이었죠. 마지막일 거고요.”

“좋습니다. 그러다 시끄러워서 한쪽 구석으로 갔는데, 저기 챈들러 머레…….”

“웁! 웁! 웁!!”

“……챈들러 머레이가 여자를 강제로 ‘폭행’하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맞나요?”

“손을 잡은 건데 폭행인가요?”

“폭행입니다. 초인이 민간인을 강제하는 모든 행위는 ‘특수 폭행’으로 간주됩니다.”

“아!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폭행이 맞네요.”

“좋습니다. 폭행을 목격한 박기혁 씨는 민간인을 구하기 위해 나섰고, 챈들러 머레이.”

“웁!! 우웁!!”

“……가 능력을 썼습니다. 빙계 마법이었죠. 박기혁 씨는 ‘목숨에 위협’을 당했고 자구책으로 ‘어쩔 수 없이’ 여기 챈들러 머레이를 폭행했다.”

“그렇죠. 아주 정확한 분석입니…….”

“우우우웁!! 우우!!”

“……기절시킬까요? 한 방이면 되는데.”

“……할 수 있으면 제가 먼저 했습니다. 손 집어넣으세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 구속구가 걸린 손을 무릎 위에 놓았다.

“좋습니다. 챈들러 머레이는 그렇다 칩시다. 그럼 저기 있는 사람들은, 왜 폭행하신 겁니까.”

“아…….”

나의 시선이 세 사람을 스쳐 간다.

마나 구속구를 쓴 채 다른 수사관들과 이야기 중인 세 놈. 얼굴이 시퍼렇게 된 채 억울하다며 열변을 토하는 모습이 제법 웃겼다.

“박기혁 씨, 왜 웃으시는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그냥 딴 생각이 나서요. 왜 때렸냐고 물었죠. 정당방위였습니다. 저 녀석들이 친구 맞았다고 단체로 들러붙더라고요.”

“그래서 폭행했다?”

“살려면 어쩔 수 있겠습니까. 저기 민머리는 칼까지 뽑았는데, 주먹이라도 써야죠.”

“…….”

“뭐 제 말을 못 믿으시겠으면 CCTV 확인하시면 될 겁니다. 칼춤 추는 게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을 거예요.”

“하…….”

“혹시 없으면 말하세요. ‘개인적’으로 찍어 놓은 것도 있으니까요.”

“허어…….”

곤란한 표정으로 한숨만 내뱉는 수사관.

설마 내가 돌아가는 상황을 모르겠나. 사실 내가 한 ‘폭행’은 아주 사소한 일이다.

진짜 문제는 저 덩어리.

양국의 지식 교류를 위해 이뤄진 교류단이, 그것도 미국 명문가, 우리나라로 치면 유명 혈족의 일원이.

민간인을 향해 ‘능력’을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한둘이 아닌 사람들이 그득한 클럽에서.

이거 국제 문제다. 내일 아침 신문 1면에 대서특필로 찍혀도 문제없을 정도로 심각한 사건이란 말이다.

그 증거로 저기 봐라. 미국 외교관이 식은땀을 흘리며 애들을 변호하고 있는 모습을.

경찰에서도 되도록 묻고 싶을 거다.

국제 문제라니까? 이 사건이 공론화되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번질지 모른다. 충분히 부담스러워할 만하다.

아마 평소라면 묻혀도 벌써 묻힐 사건.

그런데 묻자니, 이제 또 내가 문제네.

하필이면 옵티멈 소속이고.

하필이면 검호가의 막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지금 수사관은 모든 게 다 싫을 거다.

나도, 덩어리도, 이 개 같은 상황도.

“박기혁 씨, 혹시나 해서 묻겠습니다. 이 사건, 없었던 일로 할 생각은 없습니까?”

“그게 되겠습니까. 목격자가 한둘이 아닐 텐데.”

“그건…… 후우,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박기혁 씨가 협조해 주신다면 저희 경찰청은 되도록 이 사건 묻고 싶습니다.”

“뭐…… 못 할 것도 없죠.”

“……!!”

“단.”

덩어리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적절한 사과와 합의가 있으면요.”

“…….”

수사관의 시선도 덩어리를 향한다.

“웁! 웁!! 우우우우웁!!”

발악하는 덩어리. 죽어도 못 하겠다고 온몸으로 호소하고 있다. 버티고 있는 의자가 가여울 지경이다.

“……만약 법대로 한다면 박기혁 씨도 폭행으로 입건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정당방위더라도 민간인이 있는 곳에서 능력을 사용했으니 말입니다.”

결국 마지막 카드를 꺼내는 수사관.

“하…… 솔직히 이런 말까지 하기 싫습니다.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내국인이었으면 이런 고민도 하지 않고 ‘집행부’에 넘겨 버렸을 테지만, 아시다시피 이 사람들은 그러기 힘듭니다.”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마치 양보를 강요당한 기분이니까. 옛날 성격 같았으면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며 ‘X까!’라며 외쳤을 거다.

그런데 봄이를 키우면서 그러지 못하겠다.

타인의 입장도 생각하게 되고, 내가 하는 행동이 최선인가 한번쯤은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이쯤에서 양쪽이 합의하시는…….”

하지만 생각은 여기까지.

“웬만하면 안 나서려 했는데.”

“……!!”

끼익.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등장했다.

순간 내 사고가 마비되는데.

‘대체 저분이 왜…….’

뚜벅, 뚜벅, 뚜벅.

걸어오는 여자.

여자의 등 뒤에서 진유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며 손을 흔들어 댄다.

“요즘 경찰은 피해자한테 합의를 강요해?”

진룡가의 안주인. 유해련.

진유리의 엄마 찬스가 도착한 것이다.

“여기 대가리가 누구니?”

*   *   *

한편, 포항의 어느 게이트.

하얀 사제복을 입은 두 사람이 늪지대를 걷고 있다.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습한 기후와 발자국 소리마저 불쾌할 정도로 질척대는 땅.

흘러내리는 땀과, 냄새나는 진흙에 하얀 사제복이 엉망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일말의 동요도 없었다.

“…….”

“…….”

흘러내리는 땀이 눈에 들어가도, 악취 범벅인 진흙이 신발 안으로 들어와도, 정체불명의 벌레들이 달라붙어도.

두 사람은 한마디 불평불만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례자니까.

‘구원’을 찾는 순례자.

이 성스러운 순례에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에게는 가슴 벅찬 일이었다.

그렇게 걸음을 옮기길 얼마나 지났을까.

남자가 손가락을 뻗는다.

“자매님, 저기.”

“………!!”

그곳에 있는 건 ‘알’이었다.

큰 비석처럼 생긴 알.

사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조금 큰 돌멩이, 혹은 탑으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이들은 한눈에 이게 ‘알’인지 알 수 있었다.

계시를 받은 대로니까.

그리고 계시에 의하면 이제 곧 이 알은 부화한다.

“시간 없습니다, 자매님. 이제 부화가 시작됐습니다.”

“네. 준비하겠습니다, 형제님.”

바르르르-

알이 점점 떨리기 시작한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한 줄기 실금이 생기고, 한 차례 바르르 떨리더니 또 금이 생겨나고.

깨진 창처럼 금들이 사방으로 뻗어 가며 균열이 생기더니.

종국에는, 균열이 부서진다.

마침내 알이 부화된 것이다.

끼걱끼걱끽끽-

파직!

그리고 알의 잔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는.

펄럭-!

천사.

인간의 몸에 순백의 날개가 달린 천사.

나의 ‘구원’은 희망이 아니다. 허상이 아니며, 현실에 실존하는 하나의 ‘생명’이리라.

“구원이시여.”

“구원이시여.”

그들의 ‘구원’은 우리가 아는 천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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