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74화>
규모가 있는 에이전트들이 공통적으로 ‘게이트’를 마련해야 한다.
무언가 강제적인 뉘앙스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초인들 간의 대련은 자칫 사고로 번질 수 있으니까.
괜히 초인들이 병기로 불리는 게 아니다. 관리국이 왜 초인 간의 싸움에 민감하게 반응하겠나. 2급 헌터만 돼도 시간이 문제지 어지간한 건물 하나 날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경지가 높을수록, 힘이 강할수록.
이런 충격의 여파는 점점 커지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것이 ‘게이트’다.
부숴도 된다. 파괴해도 된다. 마음껏 활개를 쳐도 아무 상관없다.
이를테면 대련장인 것이다. 소속 초인들이 모든 힘을 개방해도 되는 공간.
당연한 말이지만 옵티멈도 본사 소유의 ‘게이트’가 있었다.
3급 게이트로, ‘데저트 보어’라는 멧돼지를 닮은 몬스터가 나오는 곳이다.
동급의 고블린이나 코볼트, 아인종 몬스터에 비해 돈이 되지 않아 비주류 게이트가 됐지만, 초여름 기후에 건조하지만 쾌적한 날씨, 넓은 평야 필드라는 점에서 ‘대련용 게이트’로 안성맞춤인 게이트.
이곳이 옵티멈 소유의 ‘대련용 게이트’였다.
* * *
휘몰아치는 대기. 번뜩이는 살기.
감각이 경종을 울리고 박민지가 반 발짝, 신영을 옮긴다.
그리고 그 순간.
내려쳐지는 박기혁의 대검.
콰아아앙-!
일 파로 바닥이 부서지고, 이 파로 울컥 대지가 솟아오른다.
박기혁의 전매특허인 검호류 강검술. 산사태였다.
산사태는 강검답게 강력한 힘을 깔고 가는 범위기.
범위 공격 특성상 근거리에서 방어하기란 매우 힘들다. 더욱이 현재 박민지 앞에 있는 상대는, 힘 하나만큼은 세계 최고일지도 모르는 박기혁이다.
사실상 방어는 불가능.
무결점의 검사로 평가받는 박수혁조차 동생인 박기혁이 근접에서 펼치는 강검술을 경계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민지는 다르다. 그녀는 가능하다.
‘산사태’가 남긴 여파 속에서.
길을 찾는 것이.
“……후.”
박민지가 눈을 반개하는 순간.
세상이 느려진다.
흙더미부터 돌덩이, 식물의 뿌리로 보이는 것이나, 눈앞을 가득 채운 파편들이 느리게 날아온다.
경계해야 할 건 저기 파편 뒤에 숨어 있는 검기 다발들.
저것만 피하면 된다. 217개의 검기만 피하면 된다.
박민지가 첫발을 내딛는다.
217개 중 31개의 검기가 그녀의 뒤쪽으로 흘러간다.
두 번째 발을 내디디며.
186개 중 63개의 검기를 흘리고.
세 번째 발을 내딛자.
123개 중 79개의 검기를 흘린다.
남은 검기는 44개.
이건 직접 처리.
촤륵.
박민지가 손을 펼치자 손가락 사이로 광채가 번쩍인다.
다들 알다시피 검호는 검에 특화돼 있다. 검호의 본능은 ‘검’에만 반응하고, 검이 아닌 무기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때문에 검호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검을 고집하는 것이지만…….
아는가. 세상에는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검이 있다.
지금 박민지의 손에 들린 검은 수리검.
수리검도 ‘검’이다.
검호류 변검술
거울 장난
촤르르륵-
쏘아진 수리검들이 쏘아지며 검기들을 지운다. 특이한 건, 한 번 충돌하고 나온 수리검들이 분열한다는 것.
1개가 2개가 되고 2개가 4개가 되고 순식간에 세를 늘리는 박민지의 수리검.
이제 산사태는 무력화됐고 전세는 역전됐다.
“정령사처럼 싸워 달라 했지?”
어디 받아 보렴.
검호류 변검술
거울 함정
거울 장난의 연계기, 거울 함정이 발동된다.
‘거울 장난’으로 늘어났던 수리검들이 기괴한 궤도로 튕겨져 나가며 박기혁을 노렸다.
마치 허공에 거울이 있는 것처럼 수리검이 어느 부분에서 반사된다. 반사된 수리검은 더욱 빨랐고, 더욱 치명적으로 쏘아지고, 끝내 박기혁의 발을 멈추게 만들었다.
“정령사는 지저분하게 싸우기로 유명한 족속들이야. 어때? 지저분하지?”
사방에서 덮쳐 오는 수리검들에 박기혁이 입술을 질끈 깨문다.
지저분? 욕이 한 사발 튀어나올 정도다.
궤적을 추적한다? 불가능.
회피할 수 있나? 불가능.
반격은? 절대 불가능.
회피도, 반격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건 닥치고 맞으라는 기술 아닌가.
“지랄 맞구만!!”
콰직!
박기혁이 마귀를 바닥에 꽂으며.
마귀에 육망성이 떠오르는 순간.
육망성의 마법진으로 이루어진 성이 만들어진다.
앱솔루트 실드(改)
철옹성(鐵甕城)
태태태태태태태태탱-!!
허무할 정도로 쉽게 막히는 수리검.
그러나 정작 박민지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오히려 더욱 바쁘게 박기혁의 주위를 뱅뱅 돌며 수리검을 뿌려 대는 중이다.
“정령사를 상대로 가드를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다만 예외도 있어…….”
정령사는 마나 효율이 최악인 직종. 가드를 세우며 소모전 양상으로 끌고 간다면 대부분 먼저 지치는 쪽은 정령사다.
하지만 박민지는 동생이 겨우 이 정도 수준의 정령사 때문에 자신을 찾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대충 짐작은 된다. 요즘 시끄럽다던 미국 교류단. 그 엘리멘탈 마스터의 제자일 거다.
그러면 그 수준에 맞춰 줘야지.
“마법 전문인 네가 더 잘 알지? 일정 수준 이상 정령사의 경우 다양한 방법으로 마나 소모란 약점을 극복한다는 거.”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실력을 쌓으면 가장 먼저 자신의 약점부터 지우려 한다.
정령사들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박민지의 기준에서 ‘쓸 만한’ 정령사는 대부분 ‘마나 드레인’을 사용했다. 생각해 보니 그때도 엘리멘탈 마스터의 제자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누나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박민지가 마지막 수리검을 뿌리고는.
“실력자들을 상대로 가드만 올리면 결국.”
허리에서 순백색 검신, 백로를 잡아들어.
“죽어.”
벤다.
허공을 벤다.
검호류 강검술
불꽃놀이
콰과가가강!!
박기혁의 주위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리검들이 일시에 폭파.
은색의 폭발이 폭풍처럼 박기혁을 덮쳤다.
더욱이 ‘불꽃놀이’의 특수 효과가 발동. 폭발에 휘말린 마나마저 연쇄 폭발시키며 박기혁의 ‘철옹성’에 깎여 나가고.
끝내, 조그마한 구멍이 뚫렸다.
농구공이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빈틈.
조금만 지나면 복구가 될 빈틈이지만 박민지가 그 찰나의 순간을 놓칠 리 없다. 그녀의 손에는 어김없이 수리검이 펼쳐져 있었는데.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여덟 줄기 섬광이 쏘아졌다.
눈으로 인식하기 힘든 속도.
검을 뽑으면 늦는다. 마법을 캐스팅해도 늦는다.
박민지의 머리가 인식한다. 이건 무조건 적중한다고.
그런데 왜일까…… 박민지의 가슴은 말한다.
막힌다고, 다음을 준비하라고.
결과는……
가슴이 맞았다.
촤르르르륵-!
검은 사슬들이 쏘아진다. 아니, 쏘아진다는 표현도 모자라다.
그건 검은 파도였다. 사슬로 이뤄진 파도.
촤륵~! 촤르르륵~~!
사슬로 이뤄진 파도에 박민지의 ‘별똥별’이 먹혀 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슬은 진짜 파도처럼 영역을 넓혀 가며 이곳이 자신의 영역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박기혁은 사슬의 파도 위에서 대검을 들며 해맑게 웃었고.
“아직 더 할 수 있죠?”
박민지도 수리검을 펼친 채 비슷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물론이지.”
평야를 가로지르는 두 사람.
피륙이 갈라지고, 검기가 난무하는 이곳은.
세상 제일 재미있는 놀이터.
검호에게 전장이란 그런 곳이었다.
* * *
대련을 끝내자마자 우리는 옷도 갈아입을 새조차 없이 급히 약속 장소로 향했다.
형이랑 밥 먹기로 했는데 신나게 놀아서일까, 조금 늦었다.
“……저 사람들 뭐야?”
“코스프레 하나?”
“할로윈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가죽 재킷 입은 여자 완전 존예! 딱 내 스타일임!”
“남자 봐라. 키 실화냐? 2미터는 무조건 넘겠는걸.”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냐?”
“배우겠지.”
“아니, 그쪽이 아니라 다른 데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주목받는 것 같다.
하긴 몸 구석구석에 멍 자국이 난 남녀가 넝마가 된 옷을 입고서 거리를 활보하는데 눈길을 안 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들었어? 누나보고 예쁘대.”
“시끄러워.”
“저쪽 남자는 누나 배우인 줄 알아. 저 여자애는 걸 크러쉬라네. 아주 좋아 죽어. 그런데 걸 크러쉬가 뭐야?”
“……너 어디까지 들리는 거야.”
“대충 다 들려. 그런데 아쉽다. 저 사람들 누나 칼춤 추는 거 봐야 하는데. 누나의 진짜 매력은 검으로 썰…… 커억!”
“득츠라…….”
누나랑 있을 때는 일부러라도 깐죽대는 편이다.
우리 딱딱한 누님이 의외로 이런 소프트한 걸 좋아하시거든. 고로 목울대를 때리는 건 누나만의 사랑 방식. 이거 귀한 거다.
그렇게 깐죽대다 몇 대 더 맞으니 어느새 약속 장소에 도착.
가족끼리 자주 오는 단골 고깃집이다.
고기가 생각나면 거의 여기로 오는 편이라 어머니가 아예 한 달 치 선금을 걸어 놓기도 하는 곳이었다.
“어서 오ㅅ…… 세, 세상에 이게 무슨 꼴이에요!”
“하하하. 급하게 오느라.”
“저런, 저런. 옷은 있어요? 없으면 빌려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오빠는 항상 먹던 그곳이죠?”
식당에 들어서자 온갖 관심이 우리 남매에게 쏟아진다. 살벌한 가격만큼이나 이곳을 찾는 이들도 제법 유명한 이들.
평소에 워낙 관심을 받는 터라 남들에게 드러나는 걸 꺼릴 텐데 우리 남매는 예외인가 보다. 힐끗힐끗 바쁘게 스캔 중이었다.
그때 어느 여자가 나와 마주치고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린다.
“누구지?”
“뭐?”
“아, 누가 날 아는 것 같아서.”
누나가 슬쩍 보더니 피식 웃는다.
“쟤 걔잖아. 블랙 스완 체리. 쟤가 SNS에 이상형이 너라고 올렸잖아.”
“아, 그래? 근데 누나가 그걸 어떻게 알아.”
“빛나한테 들었어. 빛나 아는 동생이래. 혹시 관심 있어? 관심 있으면 소개시켜 줄게.
“갑자기? 이 타이밍에?”
“소개받을 타이밍도 있니. 생각해 봐.”
잡담하는 사이 도착했나 보다. 안내인이 노크를 하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형이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형이 우리를 보며 뱉은 첫마디는.
“다음은 나다.”
웃음이 나온다.
인사도 없이 대뜸 다음 차례는 자기란다.
그놈의 승부욕이 뭔지.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정작 형과의 싸움을 기대하는 내 몸을 보며 징그럽다 생각했다.
그런 가운데 형님의 방 한쪽에서 버찌랑 놀고 있던 봄이가 다다다 달려와서 안겼다.
“아빠아아-!!”
“냐아아옹-!!”
“어이쿠, 아빠 더러워.”
“응, 아빠 추즈워.”
“추, 추즈워?”
“응, 냄새나.”
“윽.”
대충격.
방실방실 해맑게 웃으며 팩트로 때리는 봄이.
우리 딸, 강하구나.
“이모도 추즈워.”
“……궁금한데, 추즈워가 뭐야.”
“엄마한테 배운 사투리야. 더럽다는 뜻이래.”
“응, 할모니한테 배워써!”
“하여튼 엄마는 애한테 사투리를 왜 가르친대.”
누나가 씻는다 말하며 화장실로 가고, 곧이어 나도 클린 구슬을 들고 들어가 씻고 나왔다.
때맞춰 메뉴판을 들고 고민 중인 형이 보인다.
“매번 뵙던 분이 아니시네요.”
“네, 지배인님은 오늘 쉬는 날입니다.”
“그렇습니까. 음…… 어, 기혁이 왔네. 기혁아, 배 많이 고파?”
“응.”
“알았다.”
형이 직원을 향해 싱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10인분씩 전부 주세요.”
“……네에? 잘 못 들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죠?”
“이 페이지에 있는 거 전부 10인분요. 모자라면 더 시킬게요.”
싱긋, 상쾌한 웃음을 짓는 형. 직원은 정반대로 시퍼렇게 질려서 룸을 나서려 했고, 막 문이 닫히려던 때, 나온 누나가 말하는데.
“냉면 시켰어?”
“아! 민지가 말 잘했네. 잠깐만요, 여기 물냉, 비냉 각각 3개씩 주세요.”
“육회도.”
“육회도요.”
“곱빼기로.”
“전부 곱빼기로 부탁합니다.”
난 봤다.
닫히는 문틈으로 휘청이던 직원의 뒷모습을.
엄마의 말이 틀린 게 없다.
내 가족이지만 이놈의 집구석 정말 독특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