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73화>
크리스토퍼 윌리엄은 전용기 창밖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을 보며 스승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놀라워! 이런 마법이 있을 수 있다니. 배열, 수식, 마법의 선 하나까지 모두 전혀 새로운 방식이야. 엑설런트! 퍼펙트!! 보고도 믿을 수 없군.”
“이름이 ‘아포칼립스(Apocalypse)’라고 했던가? 멸망! 이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사상? 관념? 사회? 이름 하나에 무수한 의미가 숨어 있군. 이름마저 완벽해!”
“기혁 팍. 한국을 대표하는 명문가 ‘검호’의 막내. 전사의 집안에서 마법의 천재가 나온 건가. 흠, 이 부분 흥미롭군. 마나 허무증 환자. 아! 어쩐지 이름이 낯익다 했더니 마나 허무증 환자였군. 오호, 그렇다면 ‘멸망’이란 자신을 몰라봐 준 세상에 대한 조롱일 수도. 이것 참 몸서리치게 흥미롭구나.”
“윌리엄, 네가 기혁 팍을 만나 봐라. 이 아포칼립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다. 될 수 있다면 미국에 방문할 수 있는지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도 잊지 마라.”
타인의 성과에 항상 냉소로 일관하던 스승이다.
마법에서만큼은 자신이 최고라 자부하던 스승이었는데…….
그런 스승이 이 마법만큼은 칭찬했다.
찬양했다.
윌리엄은 이런 스승의 모습이 놀라웠다.
동시에.
불쾌했다.
콰직-!
와인 잔이 부서진다. 당연히 아래로 떨어져야 할 유리 파편들이 허공에서 부르르 떨린다.
곧이어 등장하는 건 불꽃의 정령.
뱀의 형태를 띤 정령이 유리 파편들을 한입에 삼켜 버렸다.
윌리엄은 불의 정령을 물끄러미 지켜봤다. 자신이 만든, 오로지 ‘나만을 위한 정령’.
그래, 이게 진정한 마도이며, 마법이다.
“그깟 칭키 따위가 만든 게 아니라…….”
내가 진짜다.
나야말로 마법의 미래다.
윌리엄의 눈이 번들거렸다.
추악한 질투로.
* * *
한편 한국으로 향하는 또 다른 전용기.
로자리아는 따로 마련된 연구 칸에서 한창 연구 중이었다.
“여기를 연결하고…… 이쪽은 분해…… 이쪽은 생략…….”
연구 대상은 ‘인공 정령석’.
정확히는 인공 정령석에 새겨진 ‘락(Lock)’.
마법사가 자신의 발명품을 보호할 목적으로 새기는, 일종의 자신만의 사인 같은 것이었다.
“됐어. 이제 여길 지우면…… 그래, 예상대로야.”
당연히 당사자가 아니면 풀기도 힘들고 풀 수도 없다.
그래서 시도조차 안 하는 게 상식인데, 로자리아는 이 상식을 거부한 채 인공 정령석에 집착하고 있다.
거의 한 달째 말이다.
“다 됐어. 조금만 더 하면 돼.”
견딜 수 있어야 말이지!
마석에 인공 정령을 심으면 정령석이 만들어진다.
이 한 줄짜리 설명에 얼마나 많은 마법적 지식이 숨어 있는 줄 아는가?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자연이 아닌 인간이 정령을 만들어 내는 ‘인공 정령’.
이거, 하이 캐슬의 기술이다. ‘드럭 쇼크’와 더불어 미 서부 ‘궁전’들을 먹여 살리는 효자 상품.
게다가 살아 있는 정령을 무기체에 주입하는 건 그 유명한 ‘나이트 아머’에서 활용되는 핵심 기술 중 하나다. 이 덕에 나이트 아머는 어떤 워 아머보다 마나에 친화적이게 됐다.
아, 정령 수준의 ‘자아’는 덤이고.
이밖에도 여러 가지의 기술이 여기 이 작고 앙증맞은 인공 정령석 하나에서 모두 숨 쉬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인공 정령석만 파헤치면 이 모든 기술이 로자리아의 것이 되는 것이니.
이건 못 참는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견딜 수가 없다!
무식하게 마나의 배열을 하나하나 뜯어 갔다. 연구보다는 노동에 가까운 작업. 그녀는 이런 작업을 한 달, 무려 한 달간 골방에 틀어박혀서 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성과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마지막이야. 마지막, 저 육망성만 해결하면.”
침을 꿀꺽 삼키며 핀셋을 집는다.
핀셋에 마나가 투입되며 푸른색으로 빛나고, 로자리아는 혼신에 혼신을 다해 육망성 마법진의 끄트머리에 갖다 대는데.
그 순간.
파직…….
균열이 생기는 인공 정령석.
붕괴가 시작된 것이다.
“……!!”
최악의 상황.
막아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 돼!
로자리아가 핀셋을 집어 던지고는 급하게 수습에 나섰다. 그녀의 두 손이 빠르게 움직인다. 마나까지 사용해 육안으로는 보기 힘들 정도.
하지만 그럼에도 붕괴의 진행은 계속되고, 이대로 안 되겠다 생각한 로자리아는 자신의 워 아머들까지 불러냈다.
“이익!”
허공에서 나온 기계 팔들까지 거들며 연구실은 순식간에 아비규환.
바쁘게 움직이는 그녀의 손.
그것보다 더 바쁘게 움직이는 기계 팔.
일찌감치 최고 출력으로 올린 마나 동결기가 웅웅 하며 요란한 비명을 지른다.
로자리아의 턱 끝을 타고 땀방울이 톡 떨어지는 순간.
“……!!”
파르르르, 떨리던 육망성의 선들이 이동한다.
별을 그리던 선들이 기우뚱 기우뚱 자리를 찾아가길 잠시.
새롭게 인공 정령석에 새겨진 문양은.
X.
실패, 혹은 꽝.
박기혁식 표현으로는 ‘쫑 났다.’라는 말이다.
푸쉬시식-!
인공 정령석이 빛을 잃다가, 끝내 침묵.
인공 정령석이 돌덩이가 된 순간이며, 그녀가 한 달 동안 공을 들인 노력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아악!! 안 되에!!”
절규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돌멩이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데구르르, 구른 돌멩이에는 X 표시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마치 로자리아를 조롱하는 것처럼 말이다.
* * *
“……?!”
묘한 기분에 창문 쪽을 바라봤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
있을 턱이 있나. 여기는 5층인데.
이곳은 나의 새로운 연구실.
골방에서 연구하는 내 모습이 안쓰럽다며 어머니께서 새롭게 지어 주신 신축 연구실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연구실보다는 연구소가 맞는 표현이다. 홀로 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부담스럽냐면, 전혀.
오히려 쾌적하고 좋다. TV가 크면 클수록 좋은 것처럼 생활공간도 넓으면 넓을수록 좋은 법이다.
덕분에 봐라. 우리 딸내미들도 좋아하는 모습을.
“버찌, 달료!”
“냐앙!”
도도도도! 빨빨빨!!
양쪽 벽을 번갈아 짚으며 전력 질주 중이시다.
그러다 꽈당, 하고 넘어지기 일쑤지만.
괜찮다.
미리 푹신한 안전 장판을 설치해 뒀으니까.
달리다 우당탕, 또 달리다 우당탕. 몇 번을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 도톰해요 안전 장판!
“꺄아! 언니 너무 좋아. 버찌도 좋지이!”
“냐아아옹-!”
“아빠, 버찌도 좋대! 아빠 최고야.”
데굴데굴 구르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봄이.
저렇게나 좋을까. 다음에는 트램펄린 같은 거라도 사 줘야 하나.
난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다시 연구에 집중했다.
오늘의 연구 주제는, 곧 있을 정령사를 대비하는 의미로.
정령(精靈).
정령에 대해 알아보자.
자연, 혹은 사물이나 존재에 깃들어 있는 영령 전체를 통칭하는 말.
흔히 정령이라고 말하면 자연계 정령만을 떠올리는데, 사실 사물에도 깃들 수 있는 게 정령이다.
한 번쯤 들어 봤을 거다. 오래 쓰인 물건이나 역사적인 물건에는 영성이 깃든다…… 라고 하는 거. 나는 이걸 ‘에고(Ego)’가 깃든다고 표현하는데, 이 에고가 정령의 또 다른 형태인 물질계 정령이다.
어찌 보면 우리 일상에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정령은 물질계 정령이라는 말.
그럼에도 자연계 정령이 일반적인 이유?
간단하다. 많이 보이니까.
정령사란 직업군이 실제로 존재하고, 그들이 다루는 정령은 자연계 정령들이다. 수토풍화, 수많은 정령들이 있고 저마다의 화려한 위용을 보여 준다.
하나의 정령이 독립적인 전투 능력을 가질 수 있고, 때로는 집단으로 한몸처럼 움직이기도 한다.
정령이기에, 영혼으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에 정령은 모든 면에서 가장 이상적인 병사다. 지휘관의 마음을 그대로 실현시켜 주는 최고의 병사 말이다.
저기 미국의 엘리멘탈 마스터는 개인임에도 ‘마법병단’으로 불린다는데, 경지에 오른 정령사는 일인 군단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이처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강함.
사람들은 이 강함에 매료되고 일반화시킨 것이다. 세상이 믿는 건 생각보다 단순한 법이니까.
여기까지가 이 세계에서 정령을 대하는 시선이라면, 지금부터는 내 개인적인 경험이다.
‘정령’은 ‘마법’보다 파괴력이 부족하지만 빠른 시전 속도를 갖추고 있다. 정령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마법을 구현할 수 있으니까. 마법의 숫자나 규모도 개인이 혼자 하는 것과는 비교 불가하다.
게다가 ‘대화’라는 수단으로 캐스팅을 대체한다는 점에서 얼핏 ‘주술’과 비슷한 면모도 보이지만, 자유도나 범용성 측면에서 따라갈 수 없다.
단언컨대, 모든 이능을 통틀어 ‘다재다능’이란 측면에서는 정령이 최고다.
하지만 이런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단점도 극명하다.
대표적으로 마나 효율.
정령을 소환하는 순간부터 실시간으로 마나가 소모된다. 이건 조절할 수 있는 종류의 소모가 아닌 유지 비용인 것이다.
게다가 정령이 쏘는 마법은 공짜인가? 그것도 전부 술자의 몫이다.
수많은 정령 부대를 앞세워 한순간에 압도적인 폭격을 가할 수 있지만, 그게 끝이다.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유한하고, 압도적인 폭격 뒤에는 빈 깡통이 된 정령사만이 남을 뿐이다.
결국 이렇게 되면 큰 측면에서 위력의 총량은 주술사, 마법사랑 하등 다를 바 없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마나 효율 같은 문제점은 술자의 경지가 오르면 어떻게든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다.
진짜 정령의 단점은 따로 있었는데.
그건 바로 ‘계약’이다.
술자는 정령을 소환한다. 정령은 술자와 계약한다.
술자는 대가를 지불하면 정령이 가진 능력을 빌릴 수 있다.
그 대가로 정령은 술자를 통해 이 세계에 현신할 수 있다.
이게 정령의 기본적인 메카니즘이다.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정령은 기본적으로 계약에 의해 굴러가는 것이다. 힘을 쓰고 싶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상응하는 대가.
그래, 이건 정령의 마음대로다.
즉 정령의 성격과 성질에 따라 술자의 전투력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단점이 정령사의 경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그 정도가 더욱 심해진다는 거다. 왜냐하면 상급 정령으로 갈수록 정령의 자아가 뚜렷해지거든.
이렇게 되면 술자의 전투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극단적으로는 마법 하나 사용할 때마다 매번 협상 테이블을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불특정 변수를 반드시 끼고 가야 하는 게, 심지어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변수의 폭이 증가하는 게.
정령사라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근본적인 결함인 것이다.
“그에 비하면…….”
내 새끼들은 아주 착하지.
내 손이 연구대에 눕혀진 스켈레톤을 쓰다듬는다.
스켈레톤은 계약하지 않는다. 언제나 충성했고, 어떠한 명령에도 복종한다.
물론 이런 이유로 스켈레톤의 가치가 낮아진다는 사실도 잘 안다.
시킨 것만 하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술자의 제어를 필요로 하는 바보니까.
하지만 나는 이런 점 때문에 스켈레톤을 더 좋아한다.
시킨 것만 한다는 것은, 시킨 것은 반드시 목숨을 걸고 수행한다는 것이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술자의 제어를 필요로 한다는 말은, 나의 능력에 따라 그 활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뜻이 아니겠나.
난 이 바보 같은 놈들이 너무 좋다.
우득우득.
뼈를 맞춘다.
기존에 ‘단련(鍛鍊)’된 뼈들은 ‘물리’ 계열에 특화시킨 것들. 영혼 타입인 정령을 상대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뼈를 빼낸 뒤, 대(對)정령전에 맞춘 ‘단련’된 뼈들을 끼워 넣는다.
“마법진은 ‘영령화’가 괜찮으려나.”
서걱, 서걱…….
뼛조각에 마법진을 새겨 넣는다. 빈자리에 공포도 추가한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하위 정령들은 정신계 마법에 의외로 취약하다. 어설픈 자아가 부른 폐단이라고나 할까.
공포나 위압 같은 정신계 마법에 지속적으로 공략당하면 정령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진다. 정령을 상대하는 나만의 꿀팁이었다.
“무기는 뭐가 좋을까나.”
벽에 걸려 있는 무기들.
검, 창, 방패, 도끼, 한 손 망치, 전투 망치 등등. 각종 백병들이 주르륵 세워져 있는 가운데.
여기서 정령을 상대한다면…….
“이거겠네.”
사슬낫을 집어 들었다.
몇 가지 뒷정리를 하고.
“끝.”
딱, 손가락을 튕기자 검게 물드는 스켈레톤.
찾아오는 밤처럼, 빛을 잃은 달처럼.
점차 어둠이 스켈레톤을 집어 삼키고…… 하얀 백골이 검게 침식되는 순간.
두개골 사이로 푸른 안광이 타오르더니.
검은 연기를 두른 채 허공으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