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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71화 (7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71화>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간다.

미국과의 교류회가 성사되기 며칠 전. 이 소식을 접한 위그드라실은 황당함을 넘어 분노까지 일어났다.

“……교류회라고요? 갑자기?”

호수 한가운데 앉아 있는 위그드라실. 그녀는 잔잔한 수면 위로 놓인 의자에 앉아 옆에 있는 두 존재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디 말해 봐요. 이 웃기지도 않은 생각은 누구 머리에서 나온 거죠? 설마 제가 이걸 받아들일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죠?”

적대적인 눈빛이다.

평소의 상냥하던 위그드라실의 모습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질적인 모습.

하나, 지금 그녀와 대화하는 존재들을 안다면 지금 위그드라실의 반응이 이해되리라.

그녀의 오른편에 있는 자는 이렇게 불린다.

‘세계 마법학의 한 축’, ‘클래스를 정립한 자’, 그리고 ‘미국 서부의 수호령’.

레드 드래곤(Red Dragon).

“순수하게 받아들여라. 교류, 서로 돕자는 거다.”

그리고 그녀의 왼편에 있는 존재는 이렇게 불린다.

‘마도 공학의 창시자’, ‘워 머신의 아버지’. 그리고 ‘미국 동부의 수호령’.

기간트(Gigant).

“나는! 나는! 저 거짓말쟁이가 불안해서! 사실 그 연구도 궁금해! 킹메이커? 킹메이커! 이름도 마음에 들어!”

각각 미 동부와 미 서부를 ‘지키는’ 수호령.

금발 벽안, 백인 남성의 모습을 한 레드 드래곤과 풍성하게 자란 곱슬머리가 아름다운 흑인 소녀의 모습을 한 기간트.

한쪽은 더없이 신사적인 모습이고, 한쪽은 티 없이 해맑은 모습이지만, 위그드라실은 잘 안다.

저것은 거죽뿐이란 걸.

레드 드래곤의 저 신사적인 모습 뒤에는 도를 넘는 ‘소유욕’이 숨겨져 있다. 가는 곳마다 분란을 일으키다, 끝내 현대사에 기록된 최대의 내전인 ‘동서 전쟁’을 일으킨 수호령이었다.

반면 기간트는 분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레드 드래곤보다 낫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탐구욕’ 때문에 다른 의미로 경계를 받고 있는 수호령이었다.

즉, 둘 다 불안하기는 매한가지란 말.

종류는 다르지만, 분명한 건 둘 다 위험한 존재다.

게다가 위그드라실이 컨트롤할 수 없는 존재고.

“붕괴 현상에 대한 연구는 이미 ‘기구’를 통해 전해졌을 건데요. 굳이 한국까지 올 필요가 있나요.”

“읽는 것과 보는 것이 다르듯, 서면과 실제는 다른 법이다. 게다가 전해 듣는 거랑 실제로 실행했던 자를 만나는 것도 한 차원 다른 접근이지.”

“맞아. 맞아. 저 음흉한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방금 했던 말은 맞아. 내가 봐도 너희들이 해낸 일과 지식은 끝내주거든. 우리 애들 좀 가르쳐 주라. 대신 내가 이 음흉한 놈은 맡아 줄게.”

“음흉한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다. 위그드라실, 너도 알 거다. 놈이 붕괴 현상에 관심이 있다는 걸. 내가 아니더라도 저놈이 먼저 접근했을 거다. 아니면 내 학생들을 꼬드긴 게 저놈일 수도 있고.”

“아니거든! 절대 아니거든! 내가 붕괴 현상에 쪼금. 쪼오끔! 관심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너처럼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아.”

“남의 것을 빼앗지 않는다? 오호라, 그럼 내 ‘날개’도 돌려줄 수 있겠군. 그건 본래 ‘내’ 거니까.”

“닥쳐. 본래 내 거였어. 내 ‘망토’란 말이야. 날개 따위라 부르지 마!”

“도둑놈 주제에 큰소리치는 건 여전하군.”

“열 받게 하지 마. 나 화낼 거야!”

“조용! 조용! 또 시작인가요!!”

위그드라실이 머리를 누르며 소리쳤다.

늘 붙으면 싸우는 레드 드래곤과 기간트였고, 늘 그렇듯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당연한 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둘을 붙여 놨는지.’

날개와 망토.

두 수호령을 완성시키는 성물이다. 그런데 웃기게도 이 성물은 하나. 세상에 오직 하나뿐이다.

다시 말해 레드 드래곤과 기간트, 둘 중 한 존재만이 완성될 수 있다는 말.

원하는 자는 둘인데 물건은 하나. 게다가 이 물건이 양보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분쟁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솔직히 제삼자인 위그드라실 입장에서 이건 싸우라고 등 떠미는 수준이다.

이런 걸 보면 ‘창조주’가 참 음흉하다 생각된다. 박기혁도 ‘음흉한 놈’이라고 욕하던데, 세삼 동감이 가는 위그드라실이었다.

“후우, 다른 이야기는 하지 말고 본론에 집중해 주세요. 정말 순수하게 교류만을 위한 건가요? 다른 어떤 의도도 없이?”

“그렇다.”

“응.”

“지금 발언에 당신들의 ‘이름’을 걸 수 있나요?”

“…….”

“……그건 좀.”

난색을 표하는 둘.

그럼 그렇지.

위그드라실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둘을 다시 봤다.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이죠?”

레드 드래곤은 불쾌하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거짓은 없다. 일단은 진실이지.”

“아까와 대답이 다르네요? 들어 보죠.”

“맹세코 내가 네게 거짓을 말한 적은 없다. 순수하게 게이트의 이상 현상이 궁금해서 교류하자는 거다. 다만…….”

“듣고 있어요. 계속하세요.”

“다만 내 학생들은 다르다. 그들은 자신들이 준비하던 프로젝트와 너희의 연구가 놀랍도록 비슷하다는 점에서 의문, 아니, 의심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황당한 말이에요.”

“베꼈다는 거지. 화내지 마라. 나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직접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더군. 인간이 늘 그렇듯 말이지.”

“그게 전부인가요?”

“전부 다.”

“……하.”

믿기지는 않지만 그래서 설득력이 더 있다.

자존심 높기로 유명한 레드 드래곤이다. 만약 거짓을 말했다면 그럴듯한, 그러니까 자기 수준에 맞는 이유를 댈 거다. 이런 허접한 이유 말고 말이다.

다음은 이쪽. 위그드라실이 왼편에 있는 기간트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나, 나? 나는 아까 말한 대로 음흉한 저놈 때문에도 있고, 너희 연구도 궁금하기도 하고…… 음, 그리고. 그리고…… 에잇! 솔직히 말할게.”

기간트가 항복이라도 한 것처럼 두 손을 들고는.

“실은 나 인공 정령석이 궁금해서였어. 너도 알다시피, 정령석은 우리 쪽에 꼭! 꼬오옥!! 필요한 물건이잖아.”

“제가 알기로 수출이 되는 걸로 아는데요?”

“알아. 알지만 부족한걸. 우리가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만들어 내는데. 무기며, 갑옷이며, 워 아머. 하다못해 마도구들도 다 정령석이 필요하잖아. 라이선스를 얻고 싶어. 그게 안 되면 최대한 물량을 더 확보하고 싶고. 아, 시원하다!! 진작 말할 걸!”

“…….”

이쪽의 이유도 납득됐다.

인공 정령석에 흑심이 있어 오히려 레드 드래곤보다 설득력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요. 이 교류회라는 거, 제가 거부하면 진행이 안 된다는 것도 아나요?”

“굳이…….”

“헤헤…….”

“간섭을 축소하자 말했던 건 너였지 않나.”

“나도 좀 그래. 말에는 책임이 있잖아.”

레드 드래곤은 말을 흐리고, 기간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배시시 웃었다.

“좋아요, 알아서 하세요. 저희 쪽에서도 승낙하면 하는 거죠. 그러나, 한 가지만 명심하세요.”

둘이 사이가 나쁜 건 안다.

이해도 한다.

상황이 그러하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유도.

모두 잘 안다.

그래서 최대한 중립적으로 바라봤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여러분의 영역에서 싸우는 건 상관없어요. 그러나 제 영역에서, 제 숲에서 분쟁을 일으키지 마세요. 이건 부탁이 아니라 경고예요.”

위그드라실의 말이 끝나는 순간.

두 존재가 부서지며 물로 돌아간다.

파악!

물이 내려쳐지며 고요했던 호수에 파란이 일어난다. 마치 닥쳐올 미래를 예견하듯.

“안 되겠어요.”

보험이 필요하다.

저쪽이 제멋대로 나온 만큼, 그에 못지않은 강력한 보험이 말이다.

*   *   *

“……이렇게 된 거예요.”

“와…….”

난 젓가락을 멈춘 채, 위그드라실을 빤히 봤다.

“황당하네.”

“실망스럽죠? 수호령의 치부를 보여 드려 죄송하네요. 같은 수호령으로서 사과…….”

“아니, 내 말은…….”

간짜장을 내려다본다.

“꼭 이 타이밍에 말해야 했냐?”

윤기가 자르르르.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로 비벼진 간짜장을 막 한 입 삼키려 할 때 왜 이런 밥맛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

“어머, 거북하셨나요?”

“……너 같으면 안 거북하겠냐?”

수호령이라면 단순히 무력만이 강한 존재가 아니다. 어쩌면 이 세계의 비밀에 가장 근접한 존재들. 그런 수호령의 이야기를 간짜장과 함께 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던 신박한 접근법이다.

가만 보면…….

“너도 정상 아니라니까.”

“이런, 제가 실례한 거네요. 그러면 이거 치울게…….”

“스탑. 동작 그만.”

어디서 음식을 버리려고.

빛의 속도로 견적을 뽑는다.

군만두에 탕수육, 간짜장 두 그릇에, 볶음밥 하나.

“15분 컷이네. 조금만 기다려 봐.”

후루룹. 들고 있던 간짜장부터 마셨다. 부지런히 탕수육과 군만두를 집어넣으며 빈 공간에 볶음밥을 채워 넣었다.

이런 내 모습이 위그드라실은 보기 좋은가 보다. 차분히 웃고만 있다.

“후훗. 참 보기 좋아요.”

“우물우물…… 내가 방송이란 걸 해 봤거든.”

“네, 저도 봤어요.”

“거기에 먹방이란 게 있어.”

“먹방?”

“먹는 거 보는 방송.”

“아하? 그런 것도 보나요? 인간들은 참 신기하다니까요.”

“그 신기한 짓을 지금 네가 하고 있지.”

“……아하?”

“이제 알겠냐. 먹방의 매력을.”

“그렇…… 네요? 이게 먹방?”

“오늘만 특별히 공짜로 보여 주는 거다. 다음에 봄이랑 방송하기로 했거든, 그때 들어와서 후원도 하고 그래라. 알았냐? 시답잖은 애들 싸움에 끙끙대지 말고.”

“푸흐흣. 애들 싸움요? 아하하핫!”

박장대소하는 위그드라실.

아주 좋아 죽는다.

“아, 너무너무 즐거워요. 애들 싸움이라니, 수호령 간의 싸움을 애들 싸움이라니. 제가 이래서 기혁 군을 좋아해요. 언제나 한결같다니까요.”

“뭐, 틀린 말인가? 수호령이란 존재가 워낙 신비해서지 본질만 보면 애들 싸움이지.”

“그렇죠. 맞아요. 애들 싸움. 기혁 군이 옳아요.”

무력과 인성이 관계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나 자신도 그랬으니까.

한때 마왕이었던 내 입장에서 볼 때 흔히 강자라고 불리는 인간들은 대부분 ‘결핍’을 가지고 있었다.

돈, 사람, 무력, 애정, 관심 등등. 그들은 무언가가 부족하기에 그것을 채우려 집착했고.

그 집착이 강자를 만든다. 난 그렇게 판단했다.

그런데 수호령이 그 단어처럼 세상을 수호하며 공명정대할까? 정의로울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글쎄…… 내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힘들다.

마지막 짬뽕 국물을 해치우며 식사를 마쳤다.

“좋아, 이야기해 보자. 사정은 이해했어. 그럼 네가 할 부탁이란 게, 그 애새끼들이 사고 치는 거 막아 달라는 거지?”

“네, 좋게 마무리는 됐지만 과거의 행적이나 성향을 볼 때 아무래도 안심할 수가 없거든요.”

레드 드래곤과 기간트.

둘은 굉장히 오랫동안 대립했고, 이후에도 대립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당연히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진 상태.

“……어떤 형태로든 폭발할 거예요. 저는 저의 ‘숲’에서 불청객들이 분탕 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요.”

그러니 제어해 달라.

이게 위그드라실의 부탁이었다.

“어려운 건 아니네. 알았어. 그런데 하나 짚고 넘어가자.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과격하잖아?”

나랑 아무 상관도 없는 놈들 싸움을 사정 봐주면서 말릴 생각은 없다. 피곤하기도 하고.

위그드라실에게 ‘괜찮냐?’라고 묻는 것처럼 주먹을 내려다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위그드라실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답을 줬다.

“전혀 상관없어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나서 주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질 테니까.”

이거 기대하지도 않은 재미가 찾아온 것 같다.

난 씨익 웃으며 단무지를 으깨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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