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70화>
한편, 박기혁이 박봄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조사대의 임무도 막바지에 이른다.
“조금만 더 고생하자.”
“으으! 며칠만 견디면 드디어 제대로 잘 수 있어.”
“침대, 침대가 필요해.”
“이제 곤충만 봐도 신물이 난다.”
멘티스의 대항 세력으로 자이언트 엔트를 세운다.
그래서 박기혁을 비롯한 조사대는 킬러 비 퀸과 엘더 샌드웜을 정리하며 자이언트 엔트의 성장을 도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냐고 한다면, 그건 아니다.
아무리 킬러 비와 샌드웜 세력을 흡수해 성장해도 자이언트 엔트는 신생 세력. 기존의 지배자인 멘티스에 비할 바는 못 됐다.
고로, 시간이 필요했다.
자이언트 엔트가 안전하게 세력을 불릴 시간 말이다.
조사대의 마지막 임무가 바로 이 시간을 벌어 주는 것이었다.
“막판에 멘티스들이 난리만 안 쳤어도 빨리 끝났을 건데.”
“학회에 보고해야 해. 인식 저해 마법도, 내성이 생기는 줄 꿈에도 몰랐잖아.”
“으으, 장막 뚫고 나랑 딱 눈 마주치는데, 식겁했다니까.”
“야, 지나간 건 말하지 말자. 난 이제 이쪽 보고 오줌도 안 눌 거다.”
“그래도 귀하다는 체력 포션 하나는 원 없이 마셨어.”
지옥 같은 시간이었다.
자이언트 엔트 영역에 접근하는 멘티스를 막기 위해 24시간 경계해야 했고, 조사대는 매일같이 차단막이 설치된 꽃인지 나무인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식물 위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밥은 입으로 먹는지 코로 먹는지 몰랐다.
밤낮이 뭐야, 제대로 잠을 잔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나중에는 각성제도 통하지 않아, 체력 포션을 물처럼 들이부으며 버텨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고생도 오늘로써 끝이다.
마침내 작전이 끝났고, 오매불망 기다리던 복귀의 날이 찾아온 것이다.
“다들 고생했다.”
“와아아아!!”
“드디어 잘 수 있어!”
“난 씻을 거야!”
관리국에 인수인계를 마친 박진용과 조사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게이트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그들은, 수많은 인파를 마주하는데.
차르륵! 번쩍번쩍!!
“왔어!! 도착했다! 사진 찍어. 카메라! 카메라!!”
“이봐, 밀지 마! 꺼지라고!”
찰칵찰칵!
파직 파직 파직―!
“킹메이커 작전은 성공했습니까?”
“복귀하셨는데 기분이 어떠십니까!”
“부상자는 없었습니까.”
“BBCC 기자 조세핀입니다. 킹메이커 작전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마무리됐습니까? 아니면 진행되고 있습니까? 진행되고 있다면 얼마나 진행되고 있습니까?”
“New York Today Times에서 나왔습니까. 킹메이커, 미지의 현상이라 불리며 이제는 하나의 자연 현상쯤으로 취급받던 ‘생태계 붕괴 현상’을 인위적으로 컨트롤해 냈습니다. 세계 최초로 붕괴 현상을 컨트롤한 소감이 어떻습니까.”
눈도 제대로 못 뜰 정도로 플래시가 터졌다. 질문 세례에 귀에서는 이명처럼 윙윙대는 소리가 들렸다.
‘이게 무슨 일이야. 너 아는 거 있어?’
‘어떻게 해야 돼. 외국인은 또 왜 이렇게 많은데? 여기 한국 아니야?’
정신을 못 차리는 조사대.
선두에 선 박진용도 꿀꺽, 침을 삼켰다.
‘기대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환영식이 있을 줄은 알았다. 외부와 정보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이야기가 있었으니까.
너희가 하고 있는 작전은 역사적인 업적이다.
너희는 인류의 희망이 됐다.
찬양일색의 말들이 적혀진 종이 쪼가리들.
이 정도까지 금칠을 하는데 환영식은 해 주겠지.
협회나 연합 고위 관계자들이 오고, 국회 의원 한 명이 와서 손을 내밀며 ‘허허 수고했네. 역시 한국의 미래야.’라며 칭찬하며 사진을 찍는.
다소 의례적인 환영식 말이다.
그래서 그 정도로 예상했는데…….
이런 건, 상상도 못 했다.
“도대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 있었긴. 모두 이 사람 때문이지.
“보기 좋아.”
김연희는 멀찍이서 이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일한 만큼 보답을 받는 세상.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세계 최초로 붕괴 현상을 컨트롤해 낸 업적. 최초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저들은 축하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사실 단상 위에 오른 조사대는 모르겠지만, 이 폭발적인 환영에는 김연희의 몫이 컸다.
그럴 만도 한 게, 원래 킹메이커 작전은 유명하지 않았다.
연구 단계에 있던 생태계 붕괴 현상. 원인도, 시기도 모르는 이 현상을 컨트롤한다고?
그것도 일개 아카데미생이?
하…… Are you kidding me?(장난해?)
대부분의 반응이 이랬다. 한국에서 하는 재미있는 시도쯤으로 여긴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환상처럼 여긴 킹메이커 작전이 성공했다. 게다가 옵티멈 정기 방송이라는 매체를 통해 공개됐다.
폭발적인 호응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 증거로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을 보라. 검은 머리칼만큼이나 금발, 갈색, 다양한 색의 머리색들이 보인다.
여기 온 기자들 중 5할 이상은 전부 외신 방송.
해외의 마법사들은 물론이고 언론, 각계각층에서 이만큼 이번 작전에 주목을 한다는 거다.
모두 한국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옵티멈 덕분.
이제 이 작전은 단순히 초인들 사이에서의 성과가 아닌 세계적인 화제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자랑스러운 일이다. 초인 강국이란 이름에 걸맞은 성과라고나 할까. SNS는 오랜만에 뿌려진 치사량의 국뽕에 정신을 못 차리는 중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즐거워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협회와 연합, 각종 이익 단체들이 그렇다.
‘일이 너무 커졌어. 이렇게 많이 올 줄 누가 알았나.’
‘젠장, 옵티멈의 마녀. 자기가 못 먹으면 남도 못 먹는다 이거냐.’
‘그래서 내가 경고했잖아. 옵티멈이랑도 나눠 먹어야 한다고 말했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나왔네. 쩝.’
지금 받는 저 박수가, 저 환호가,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번쩍이는 카메라가, 입을 열기도 힘든 저 주목이.
이 찬란한 성과가 모두.
내 거일 수도 있었는데.
업계 관계자들은 마치 금덩이를 눈앞에서 놓친 사람처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눈으로 단상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삼자 입장에서는 웃기는 일이다.
원래부터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뺏겼다고 아쉬워하다니.
하지만 이제 와서 잘잘못을 따져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이미 무대는 만들어졌고, 그들은 들러리인걸.
“하하하하. 왔어, 왔어. 다들 고생했습니다. 큰일을 해 줬어어요.”
“헌터 연합을 대표해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들이 한국의 자랑입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정장 입고 산을 탄 수고를 보상받으려면 부지런히 사진이라도 찍어야 했다.
* * *
- 반갑습니다. ‘러브니스’ 복지 재단입니다. 무엇을 안내해 드릴까요?
- ……세계의 절망.
- 네? 잘못 들었습니다. 한 번 더 말해 주시겠습니까?
- 내일의 희망.
- 장난 전화인가요?
- ‘구원’을 실행하리라.
- ……반갑습니다, 형제님.
- 반갑습니다, 자매님. ‘왕’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습니다.
- 대사제님께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바로 전화 돌려 드리겠습니다.
삐이이-
- 오셨군요, 형제님.
- 평사제 ‘에밀’, 인사드립니다.
- 작전 성공했다면서요. 소식 듣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고생 많았어요.
- 아닙니다. 그분의 종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만……
- 말씀하세요. 듣고 있답니다.
- 이야기에 앞서 속죄를 청합니다. ……저 무지몽매한 자들이 ‘재창조’ 현상을 자연의 섭리라 여기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 자로서 저 미련한 양들을 계몽해야 하는데, 부족한 저는 아무것도 못했습니다.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 저런, 고통스러웠겠군요.
-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썩는 것 같았습니다. 어리석은 말은 제 귀를 병들게 했고,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끔찍했습니다.
- 에밀 사제, 전에 제가 해 준 말이 있죠. 기억나시나요?
- 당연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짐승이다, 부끄러움을 모른다……
- 맞아요. 그분의 뜻을 모르는 자들은 ‘짐승’이에요. 굳이 그들의 말에 상처받고 힘들어하지 마세요. 오히려 웃으세요. 그들을 잘 길들여 ‘가축’으로 만드는 게 그분을 위한 일이니까요.
- ……명심하겠습니다.
- 후훗. 믿어요. 에밀 사제라면 그들을 훌륭한 가축으로 길들일 수 있을 거예요.
-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작전에 대한 데이터는.
- 회수했어요. 정보의 질이 좋던데요? ‘구원’에 접근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 감사합니다.
- 그런데 하나 물어볼 게 있어요. 제가 전에 개인적으로 부탁한 박기혁에게 접근하라는 건.
- 죄송합니다. 시도해 봤지만, 저쪽에서 경계하는 통에 별다른 대화도 못 해 봤습니다.
- 저런…… 아쉽네요.
-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아니에요. 처음부터 무리였던 일인데요. 에밀 사제는 충분히 제 몫을 해 줬어요.
- 계속 시도해 보겠습니다.
- 꼭 그럴 필요 없는데…… 부탁할게요. 음, 그리고 이게 도움이 되려나…… 아마 곧 아카데미가 어수선해질 거예요. 그때 접근해 보세요.
- 어수선해진다니, 무슨 말씀입니까.
- 훗. 미국에서 재미있는 소식이 들려왔거든요. 때가 되면 알 거예요.
- 알겠습니다. 그럼 맞춰서 행동하겠습니다.
- 믿을게요.
- 그분의 뜻대로.
- 그분의 뜻대로.
……
…
* * *
“흐음, 좋네.”
지금 난 오랜만에 한가함을 만끽하고 있다.
봄이는 버찌랑 노느라 바쁘고, 메리와 준우는 연애질 중이고, 다들 바빠서 그런지 폰이 하루 종일 잠잠하다.
찬스다!
떠나자!
오랜만에 운전대를 잡았다.
나도 인간인지라 가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그럴 때면 찾는 곳. 햇빛이 잘 드는 테라스와 가슴이 탁 트이는 경치로 유명한 카페였다.
서울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라 자주 찾지는 않지만 그래도 인상이 워낙 강해서일까, 점장이 나를 알아보고 인사해 줬다.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입니다.”
“자주 앉으시는 자리가 3층 창가 테이블이죠? 거기 자리 남습니다. 얼른 가세요.”
“감사합니다.”
3층, 빛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설탕 두 스푼을 넣은 달달한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마시며 신문을 보면 여기야말로 지상 낙원 아니겠나.
정확히 이때까지 한껏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이 악마가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헤, 귀여워. 초 귀여워. 핵 귀여워.”
버찌의 사진을 보며 헤벌레 웃고 있는 여자. 이제 굳이 말할 필요 있나.
찰거머리 진유리 되시겠다.
“오늘은 안 등장하나 싶었다.”
“나 기다렸ㄱ…… 허억! 모야모야, 어쩜 이렇게 예뻐! 얘 이름이 버찌지? 누가 지었어? 잘 어울려. 찰떡이야.”
“어떻게 찾아왔어.”
“SNS 보고 왔지. 꺄악, 미쳐. 웃는 거 봐. 넘넘 사랑스럽잖아. 더 없어? 사진 더 없냐구?”
“……나 누구랑 이야기하냐.”
“빨리! 사진! 사지인! 현기증 난단 말야!”
“끙, 코코아톡.”
“오! 고마워.”
뺏다시피 내 폰을 들고 가는 진유리.
너무 자연스러워 자긴 건 줄 알겠다.
어질어질하네. 아주 진이 쏙 빠진다.
설마, 저주에 당한 건가, 합리적 의심이 들 정도로 탈력감이 든다. 대화 몇 마디에 이 정도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다니. 이것도 재주라면 재주라니까.
“요기 요기, 귀요미가 말을 한다던데? 무슨 말이야?”
“그건 또 어떻게 알았대.”
“우리 이쁜 봄이가 가르쳐 줬지.”
“직접?”
“직접.”
인상을 찌푸렸다.
버찌가 말을, 정확히는 사념을 전하는 것을 비밀로 하자고 했던 건 봄이었다. 가족 외에는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나한테 신신당부한 사람도 봄이었고.
그런데 얘한테 말을 해?
설마…….
“……얘를 가족으로 보는 건 아니겠지.”
생각해 보니 다른 애들은 다 ‘이모’인데, 진유리만 딸기 ‘언니’다.
“뭐라고? 잘못 들었어.”
“아니야, 아무것도.”
그럴 리 없다. 우리 착한 봄이가 그럴 리 없어. 암, 그렇고말고.
“너 뭐 해. 왜 고개를 돌려.”
“신경 쓸 거 없고. 뭐가 궁금하다고 했지? 버찌?”
버찌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사실 ‘사념을 표현한다.’라는 것 빼고는 비밀이라고 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다.
“사념, 사념, 사념…… 신기하네? 어떤 방식인데. 이미지? 문자?”
“음성 형태로.”
“음성은 많이 없는데. 지적 수준은 어느 정도야?”
“짐승의 본능 정도. 신기한 건 아니야.”
간혹 있는 현상이다.
불꽃이 꺼지기 전에 타오르는 것처럼, 생명도 마지막 숨이 멎기 전에 화려하게 피어난다.
생과 사,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나는 이걸 ‘걸쳐 있다.’라고 표현한다.
여담이지만, 죽음에서 돌아오면 강해진다는 논리는 여기서 시작되는 거다. 존재의 격이 높아진 상태로 살게 되면 한 차원 강해지는 건 사실이니까.
진유리도 이에 대해 들어는 본 모양.
하긴, 진룡이라는 유서 깊은 마법사 가문에서 이런 것도 가르치지 않을 리 없다.
‘그건 그렇고.’
이상하네. 진유리를 보고 있는데 뭔가 찝찝한 게, 아까부터 중요한 걸 놓친 기분이다. 얘랑 관련된 게 분명한데…… 뭐지, 뭐더라. 내가 뭘 놓치고 있는 건가.
한참을 생각하다.
“아!”
마침내 깨닫는다.
나는 왜, 한 번도 얘가 ‘왜’ 왔는지 생각하지 않았지?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고, 얘가 나를 찾아온 것도 이유가 있을 건데, 나는 왜 이유를 묻지 않았는가.
순간 소름이 돋는다. 설마 나, 진유리가 곁에 있는 걸 당연하게 느낀 건가. 그런 건가?!
“안 돼!!”
“깜짝이야. 뭐가 안 돼?”
“아, 아니야. 너 왜 왔어?”
“빨리도 물어본다.”
특종을 가져왔어, 말을 이으며 진유리가 핸드백에서 폰을 꺼냈다.
“봐봐. 여기. 우리 TMI가 빼돌린 따끈따끈한 정보야.”
“김하니가?”
폰을 본다.
꽤 긴 내용이자면 요약하자면, 아카데미 간의 교류가 성사됐고 그 대상이.
“기어스 스쿨과 하이 캐슬…….”
‘기어스 스쿨’이라면 미 동부의 아카데미다.
골렘과 워 아머 같은 첨단 기술과 마법을 결합한 학문을 가르치는 곳.
반면 ‘하이 캐슬’은 미 서부의 아카데미.
정통 메이지 학파로 약과 독, 각종 시술과 신체 개조를 통해 오직 ‘마도’만을 추구하는 곳이다.
동부와 서부의 아카데미가 온다.
미국이 오는 것이다.
한국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