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9화>
“히히히.”
요즘 박봄은 하늘을 나는 기분이다.
왜냐하면 세 밤만 지나면 ‘언니’가 되기 때문!
신난다!!
“언니! 언니……!”
나도 이제 언니가 되는 거야.
박봄은 반복적으로 시계를 본다.
아빠한테 작은 바늘이 두 바퀴 돌아가면 하루가 지난다고 배웠는데, 눈을 부릅뜨고 본다.
움직이지 않는다.
눈이 빨개질 때까지 시침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힝…….”
실망이야.
돼지라서 그런가 보다. 옆에 날씬한 바늘은 엄청 빨리 움직이는데…….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박봄이 씩씩하게 입을 앙다문다. 옛날이었다면 눈물이 찔끔 났을 테지만.
이제는 아냐. 이제 봄이는 언니가 되는걸.
“아빠가 그랬어. 동생이 생기면 봄이가 지켜 줘야 한다고. 아빠가 봄이를 지켜 주는 것처럼…….”
물론 박기혁이 큰 의미를 두고 했던 말은 아니다. 아무렴, 어린 딸에게 무슨 부담을 주겠나. 그저 고양이 화장실이나 잘 치워 주고 잘 놀아 줘야 된다, 라며 가볍게 당부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특한 박봄은 아빠의 말에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꼈다.
“언니니까 노력해야 해.”
그날로 박봄은 노력하기로 했다.
아빠처럼 커지기 위해 밥도 잘 먹었고.
“봄이, 채소 또 남겼네?”
“……마지막에 먹을 거야.”
아빠처럼 단단해지기 위해 울음도 참았다.
“우리 딸내미, 오늘은 몇 번 울었어?”
“한 번도 안 울었어.”
“정말?”
“정말!!”
말하는 것도 또박또박.
친구도 사귀었다. 임현지라고, 매번 먼저 인사하는 친구다.
“봄이 하이!”
“현지 안녕.”
말수가 없는 데다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박봄.
게다가 이른 나이에 깨달은 마나와 혈족의 힘이 미묘한 오라처럼 둘러져 있어 아이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했다.
이런 박봄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짝꿍이 임현지였다.
“봄아, 여기 여기, 여기 봐봐. 짜잔, 너 언니 되는 날. 내가 별표해 놨어.”
“……별 이상해. 이렇게 해야 해. 꼭지가 여섯 개 있어야 별이야.”
“응? 다섯 개면 별 아니야?”
“아냐, 그건 가짜야.”
“그렇구나. 봄이는 오늘도 똑똑해! 좋은 언니가 될 거야.”
“고, 고마워. 현지도 똑똑해.”
생각이 많은 박봄과 항상 긍정적인 임현지는 금세 친해지더니, 이제는 둘도 없는 짝꿍이 됐다.
며칠 전에는 아빠랑 현지네 집에 놀러가기도 할 정도.
박봄은 처음으로 간 친구 집이 낯설었지만 딱 하나는 만족스러웠다.
현지네 엄마가 해 줬던 떡볶이. 그건 아주 맛있었다.
“아차차! 엄마가 말하라고 했는데. 봄아, 나 생일잔치에 봄이를 초대해도 될까?”
“생일잔치? 그게 모야?”
“생일 날 축하받는 자리라는데, 나도 처음으로 하는 거라 잘 몰라. 헤헤. 그냥 맛있는 거 먹겠지.”
“떡뽁이도?”
“떡볶이도!”
“그, 그치만. 그때면 봄이 언니 돼서 힘든데…… 동생이랑 같이 가도 될까?”
“몰론이지! 나도 민주랑 민정이 있잖아. 어제도 같이 놀아 줬자나. 에휴, 언니는 바쁘다니까. 응? 봄이 얼굴 빨게져써. 왜 빨게?”
“언니잖아. 언니 좋아. 언니…….”
언니.
입 짧은 박봄이 맛없는 시금치를 먹은 것도.
울보였던 박봄이 눈물을 꾹 참은 것도.
어린 박봄에게 언니가 된다는 것은, 동생이 생긴다는 것은 세상이 바뀌는 기적과 같았다.
그렇게 며칠.
잊을 만하면 시계를 보며 뚱뚱이 침이 빨리 가길 기도하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토요일.
유난히 하늘이 맑은 오늘, 박봄은 저 하늘의 태양처럼 눈부신 기적을 마주하고 있었다.
“우와아.”
* * *
“……우와아!”
봄이가 함지막한 웃음을 지으며 고양이들을 바라본다. 커다란 눈에는 하트가 뿜뿜.
정말 좋나 보다.
“그렇게나 좋아?”
“응응!!”
폴짝폴짝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저 아이는 알까.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유기 동물 보호 센터. 다시 말해 여기 고양이들은 한 번쯤 버림받았거나 길가를 떠돌던 아이들이란 말이다.
그래서인가, 내게 비친 고양이들은 하나같이 이쪽을 경계하고 있다.
몸을 숨기며 눈치를 보는 고양이, 하악질을 하며 친구를 지키는 고양이, 저마다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날을 세웠다.
하지만 우리 딸, 하악질하는 모습마저 사랑스러운가 보다. 눈에 사랑이 흥건하다 못해 넘쳐 흘러내린다.
“안녕, 얘들아. 내 이름은 박봄이야. 박 자 기 자 혁 자. 아빠 딸이야. 만나서 반가워.”
알아듣지도 못할 건데 창살 안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아빠! 아빠! 나 저기 안에 들어가면 안 돼?”
“글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럼 물어보자! 봄이 빨리 들어가고 싶어. 얼른!”
봄이가 앞장서서 걷는다. 나는 꼭 저기로 들어가고 말 테다. 아주 보무도 당당히 걷는데.
미안하지만.
“봄아.”
“응?”
“거기 아니야. 일루 와. 옳지.”
좋아, 어색하지 않았어.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본관으로 들어섰다. 예상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 그냥 내가 봄이를 안고 들어서니 전부 우리만 쳐다봤다.
여기를 운영하시는 원장님이 고양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셔서, 이곳에서 고양이를 입양하려면 신원이 확실해야 한다더라.
그래서 깠지. 그 결과가 이거고.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직원처럼 보이는 분에게 갔다.
“어, 어, 박기혁 씨 본인ㅇ…… 맞겠죠. 네, 맞아요.”
직원이 신원을 확인하려고 묻다가, 자신도 이건 아닌 것 같은지 민망하게 웃었다.
“이리로. 원장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아마 자세히는 모르지만 보통의 사람이라면 입양하는 데 원장한테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거다. 이쪽이 거물이라 그런 거겠지. 보통 이런 곳은 후원으로 운영되니까.
건물을 구경하며 걷는데, 내 팔뚝에 앉아 안겨 있던 봄이가 물었다.
“아빠, 이제 안에 들어갈 수 있는 거야?”
“아까 거기?”
“응, 봄이 동생들 밥 주고 시포.”
“흠…….”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힘들 건데…….
그리고 내 예상은 맞았다. 푸근한 뱃살에 인상 좋게 생긴 아저씨 원장님 앞에서 봄이는 “저기 안에 들어가고 싶어요!”라고 말했고, 원장은 애매하게 웃으며 봄이에게 말했다.
“공주님, 고양이들 집에 들어가고 싶은 거니?”
“네! 그런데 저 공주님 아니고 봄이에요. 박봄.”
“음, 봄이었구나. 아저씨는 봄이가 공주님처럼 예뻐서 이름도 공주인 줄 알았어.”
“헤헤.”
“그런데 봄아, 미안하지만 고양이 집은 그냥은 못 들어가. 고양이 집이잖아. 잠자고 쉬고 있는데 방해하면 안 되겠지? 봄이도 혼자 있고 싶을 때 누가 건들면 싫잖아. 안 그래?”
“……맞아요.”
“그래도 정 들어가고 싶으면 일해야 돼.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그릇도 씻고, 애들 목욕도 시켜야 해. 할 수 있어?”
“할 수 이써요!!”
“허허. 그러면 아저씨가 한번 말해 볼게.”
과연 원장님, 역시 애들을 많이 다룬 티가 난다.
아주 들었다 놨다 하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하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이런 질문을 했겠나.
원장은 봄이를 달래 놓은 다음, 차분해진 상태로 내게 손을 내밀었다.
“인사가 늦었군요. 반갑습니다. 여기 보호 센터 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필입니다.”
“괜찮습니다. 저희 딸 때문인데요. 반갑습니다, 박기혁입니다.”
차 한잔 나누며 하는 대화.
한 해에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버려지는지, 그리고 버려진 동물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원장은 불쌍하고 안타까운 현실들을 토로했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말했듯, 여기는 후원으로 이뤄지는 곳. 그들 입장에서는 큰손인 내가 지원해 주길 바란 것이다. 이 자리도 그렇게 마련된 거였고.
어떻게 보면 다분히 노골적인 의도에서 시작된 자리.
뭐, 그래도.
“알겠습니다. 개인적으로 후원하겠습니다.”
좋은 일이잖나. 영혼도 깨끗하고.
자기 욕심을 지나치게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상에서 타인의…… 아니, 인간도 아닌 동물에게 이토록 헌신적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사람이라면 후원할 만하지.
흔쾌한 내 대답에 오히려 고맙다며 허리를 숙이는 원장.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나이 드신 분이 내게 연신 허리를 숙이는 모습이 일견 비굴해 보이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난 이 모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평생을 봉사하고, 더 봉사하기 위해 자신을 낮추며, 더 많이 봉사할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기뻐한다.
대가 없이 타인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이제야 가족을 만나 사랑이란 의미를 어렴풋이 알게 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기에.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 * *
간단히 이야기를 마치고, 이제 우리는 입양할 고양이를 만나러 갔다.
물론, 그 전에 할 일은 하자.
오면서 많이 봤잖나. 봉사 활동하는 분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버려진 동물들이 불쌍하고 가여워 온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이 땀 흘리며 일하는데, 그냥 입양만 하고 간다면 얼마나 모양 빠지나.
온 김에 싹 청소해 줄 생각이다.
아참, 그 전에.
“봄이 먼저 동생 보고 있을래? 아빠는 여기 일 좀 도와주고 갈게.”
“봄이도 할래!!”
“그래? 그럼 봄이는 저기 아가들이 먹는 밥그릇 씻어 볼까? 할 수 있지?”
“응!”
아무리 관리를 잘해도 수십 마리의 동물들이 있는 축사다. 대소변이고 뭐고 생각 이상으로 더러울 건데 아직 어린 봄이에게 보여 주기에는 조금 그랬다.
봄이를 보내고 제일 먼저 한 일은 목욕.
고양이들을 살살 달래서 목욕탕으로 들어서게 했다.
“다 왔나. 대충 숫자는 맞는 것 같고.”
목욕 시작.
문이 닫히는 순간 ‘딱’, 손가락을 튕기고.
워터 볼(Water Ball).
허공에서 물벼락이 떨어졌다.
물론 아주 섬세하게. 조심조심.
키에에엑-!!
쇄애애액!
키야악!
그럼에도 물에 흠뻑 젖은 고양이들이 단체로 비명을 지른다. 성격 급한 놈들을 나를 향해 달려들기도 했다.
“좀만 참아라. 깨끗하게 해 줄 테니까.”
이어진 마법은.
클린(Clean).
원래라면 클린 마법 하나만으로도 충분하겠지만 여기 고양이들은 아무래도 사람의 손이 덜 탄 아이들. 상상 이상으로 더러울 거다.
그러니 워터 볼로 물을 어느 정도 끼얹은 다음에 클린을 써서 시너지 효과를 내 줬다.
말끔히 때를 씻어 낸 다음, 마지막은 체온 유지 마법인 ‘웜(Warm)’과 바람을 만드는 ‘윈드(Wind)’를 더블 캐스팅해 따뜻한 바람을 보내 주면.
끝.
보라, 여기 뽀송뽀송해진 고양이들을.
아주 반질반질한 게 숨겨진 미모까지 살아났다.
골골골.
고롱 고롱 고롱…….
“그러면 다음은 댕댕이들을 해야 하나.”
다음으로 강아지를 하고, 이렇게 몇 차례를 돌리니 얼추 목욕이 끝났다.
다음은 청소.
이번에도 먼저 할 일이 있다.
“네? 나가 달라고요?”
“네, 제가 할 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쉬세요.”
“같이해요. 여기 넓어서 혼자 힘들어요.”
“아닙니다. 혼자가 편해요. 미안해하지 마세요. 농담이 아니라, 진짜 혼자가 편해서 그런 거니까.”
한사코 미안해하지 말라고 했는데도 미안한 모양이다. 돌아가면서도 계속 이쪽을 뒤돌아본다. 토요일. 한창 놀 시간에 봉사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 하나같이 영혼들이 제법 맑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어 선물을 더 하기로 했다.
배달 앱을 켠다. 얼핏 보니까 한 20명쯤 있는 것 같으니까, 30인분 시키면 되겠지. 보통 1.5인분은 먹잖아. 피자와 치킨을 시켰다.
이제 청소를 해 볼까.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비롯해 청소 도구를 들고 간 난.
“얘들아.”
스켈레톤을 일으켜 세웠다.
우두둑, 공간을 찢으며 등장하는 스켈레톤들, 그들은 땅을 밟자마자 청소 도구를 쥐고는 빠르게 축사를 치워 나갔다.
대소변을 정리하고, 악취를 걷어 내고, 먼지를 털고, 마지막으로 만능 생활 마법 클린.
짜잔, 순식간에 깨끗해졌습니다.
‘이러고 있으니 옛날 생각나네.’
목욕이며 청소며 모두 전생에도 고아원 다니면서 많이 했던 일이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추억이라 했던가…… 괜히 그때가 생각나 빙그레 웃었다.
이후로 빨래도 하고, 철조망이나 전등 갈이처럼 힘쓰는 일들을 찾아 해치웠다.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이 한동안 할 일이 없을 정도로 일을 마무리한 난, 이제 우리 봄이를 보러 갔다.
“우리 봄이 어지간히 좋은 모양이네. 아빠 보러 안 오고.”
우리 봄이, 원래라면 30분만 떨어져도 우는 소리를 내는 아빠바라기이건만, 거의 1시간이 넘어갔는데도 아빠를 찾지 않았다.
조금 섭섭하기도 하다. 뭔가 뺏긴 것 같은 기분이라고나 할까.
실없는 생각을 하며 아기 고양이들이 있는 방으로 갔다.
냐아아옹~!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광경은, 겨우 눈만 뜬 아이들이 바닥을 아장아장 걷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사지를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지 뒤뚱뒤뚱, 보고만 있어도 위태로웠다.
나는 내 앞에서 넘어지려는 아기 고양이를 한 손으로 얼른 받혀 푹신한 곳에 놓아두고는 봄이를 찾았다.
사실 찾을 필요도 없었다.
방의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는 봄이. 그런데 뭔가 이상하네. 왜 울고 있지?
“흐끅, 흐끅.”
뭐가 그리 슬픈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다.
무슨 일인가 싶어 한달음에 달려간다.
“봄아,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아빠아, 흐윽.”
봄이가 내 발을 껴안고는 손가락으로 우리 안을 가리켰다.
“쟤가 살려 달래. 계속 살려 달라고 ‘말’하는데, 봄이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내가 잘못 들었나.
살려 달라고 말한다고?
서럽게 우는 봄이를 달래며 쪼그려 앉아 작은 우리 안을 바라봤다.
우리 안에 누워 있는 건 검은 고양이.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는 고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봄이가 말한 ‘말한다’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야옹, 냐아옹―.”
- 살려 줘. 살려 줘. 살려 줘…….
검은 고양이가 사념을 뿜어내고 있다. 살려 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며 절박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걸쳐 있구나.”
삶과 죽음. 이 경계선에 걸쳐 있는 고양이.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태워 구원을 바라고 있다.
“아빠, 살려 줘. 봄이 동생 살려 주세요.”
“걱정 말렴.”
아빠가 살려 줄 테니까.
작고 가녀린 고양이의 위로 육망성이 떠오르고.
곧이어 육망성이 뒤집히며 순백의 광채를 내뿜자.
아포칼립스(멸망:滅亡)
리버스(반전:Reverse)
얼라이브(탄생:誕生)
고양이의 거친 숨이 서서히,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리고.
에오오옹.
- ……고마워.
이렇게, 또 하나의 생명이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버찌.
새 가족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