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68화 (6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68화>

난 아직도 모르겠다.

이게 왜 화제가 됐을까?

어머니의 부탁을 받고 처음으로 방송이란 것을 해 본 날.

눈치 보지 않고 신나게 떠들어서인지, 나 스스로도 만족했던 시간이었다. 기회가 있으면 또 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는 봄이 또한 함께했다.

물론 출연이 아니라 장소에만 함께 간 것이다.

위그드라실이 준 ‘조화의 열매’ 덕분에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아빠 껌딱지인 봄이. 메르헴이나 진유리한테 잠시 부탁하려 했지만 아빠랑 떨어지기 싫다며 앙앙 울고불고 매달리는데 어쩌겠나, 함께해야지.

그렇게, 재미있게 방송을 끝내고 마무리를 할 때쯤.

낮잠을 자던 봄이가 깨어났다.

“아쁘아?”

내가 장담하건대, 캡틴 타이거 잠옷을 입은 채 졸린 눈으로 뒤뚱뒤뚱 걸어오는 우리 봄이는.

세상에서 제일 귀엽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다.

진짜 객관적으로, 마왕의 냉철한 시선으로 평가했을 때도, 난 우리 딸내미보다 귀엽고 깜찍한 존재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그리고 이런 우리 딸내미가 방송을 탔다.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채팅창이 통째로 뒤집혔다.

안 그래도 방송을 끄지 말라며 아쉬워하던 시청자들이 봄이를 보고선 “닥치고 내 돈을 가져가!”라며 도네를 퍼부었다.

당연한 결과였지.

이 마왕을 눈웃음만으로 녹다운 시킨 치명적인 매력을 한낱 범인이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그런데 어딜 가든 분탕 종자가 있지 않나.

폭발적인 반응 속에서 이상한 글이 올라왔다.

- 거짓말 좀 작작하지. 어떻게 저만한 딸을 가질 수 있음? 나이 차가 말이 안 되잖아.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 안 함?

자신이 가진 의혹을, 남에게 인정받길 원하고 그렇게 인정받은 여론 뒤에 숨어 남을 상처 입히는 걸 즐기는, 전형적인 소인배.

메리는 이걸 키보드 워리어, 혹은 방구석 여포쯤으로 부르던데, 딱 그런 인간이었다.

그래서 화가 났냐고?

설마.

벌레가 길을 가로막았다고 화를 내는 인간이 있나?

잠깐, 말하고 보니 벌레한테 미안한데. 그래도 얘들은 생태계의 한 축이라도 구축하고 있잖나.

무시, 철저히 무시했다. 진행하던 은빛나도 이런저런 말을 하며 관심을 주기보다는 나처럼 무시로 일관했는데.

정작 반응은 엉뚱한 데서 튀어나왔다.

“울 아빠 거짓말쟁이 아니야!!”

아빠가 거짓말쟁이라고 매도당한 게 어지간히 분한 모양.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으로 악을 쓰는데.

정작 당시의 난, 다른 의미로 정신이 없었다.

얘가 어떻게 글을 읽을 줄 알지? 난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이런 나의 물음에 봄이는.

“응, 요정 이모가 가르쳐 줘써.”

결과적으로 여기서 멈췄어야 했다.

하지만, 난 멍청하게도 굳이 확인을 했고.

“위그드라실이?”

끝내 봄이의 입에서 결정타가 나오고 만다.

“응! 응! 요정 이모, 봄이 ‘선생님’이야!”

이제부터 사건은 급속도로 발전한다.

당시 이 방송을 보던 시청자 숫자는 30만. 그들이 가진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옵티멈 정기 방송에 등장한 박기혁의 딸. 충격 발언!

요정 이모=위그드라실=봄이 선생님?

<속보> 박기혁 딸, 박봄. 위그드라실의 제자.

한국의 수호령 위그드라실. 드디어 첫 제자를 들이다.

위그드라실의 제자, 검호의 후예, 옵티멈의 양녀.

명문 혈족과 수호령의 만남. 과연 우연일까?

위그드라실은 ‘황룡’의 전철을 밟는가?

……

웃기는 일이다. 봄이의 한마디에 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한다는 게.

그런데 더 웃긴 건, 난 이때만 해도 이런 사실…… 그러니까, 봄이의 ‘위그드라실은 내 선생님’ 발언 때문에 전 세계가 떠들썩해진 건지 전혀 몰랐다.

모두가 알다시피 내가 뉴스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잖나.

하지만 우리 김연희 여사님은 아니었다. 방송을 마친 순간 난 어머니 방으로 불려 가야 했고.

“박기혁! 너어! 이런 말을 하면 어떡하니!!”

“네? 무슨 말요.”

“위그드라실!! 위그드라실에 대해 말하면 어떻게!!”

“아…… 봄이가 위그드라실한테 한글 배운 거요?”

“한글이 아니라-!! 아우! 진짜!”

“할모니…… 봄이가 잘못한 거야? 그런 고야?

“아, 아니란다. 네 아빠가 잘못한 거야. 우리 강새이는 괘, 괜찮아. 할무이한테 안겨. 어이쿠, 밥 먹으러 갈까? 뭐 먹고 싶어…… 넌 나중에 보자.”

이때 대충이나마 듣게 된다. 이 세계에서 수호령이 가지는 의미와, 수호령이 제자를 들인다는 것이 얼마나 큰일인지를.

솔직히 내 입장에서는 듣고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지만, 나는 효자다. 어머니의 말이기에 그러려니 했다. 뭐, 어머니가 큰일이라 해서 큰일인 거지.

실제로 어머니는 이례적으로 본인이 직접 성명까지 발표하시더라.

- ……방송에서 말한 ‘요정 이모’는 위그드라실이 맞습니다. 다만 봄이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위그드라실에게 의뢰했을 뿐, 저희 박봄 양이 위그드라실의 제자라는 말은 엄연히 사실이 아닙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관심을 멈춰 달라.

이렇게 어머니의 노력에 사태가 진정되는 듯 보였으나 몇 시간 뒤, 하나의 기사로 인해 어머니의 노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만다.

위그드라실 직접 입을 열다. “박봄 양이 원한다면 얼마든지요.” 제자 승낙?

“망할 년―!!”

그날 난, 어머니가 욕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 귀여운 봄이는 하루아침에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솔직히 다시 되짚어 보지만, 난 여전히 모르겠다.

이게 왜 화제가 되는지를 말이다. 애 좀 가르친 게 뭐가 문제고, 제자 좀 들였다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란 말인가.

그래서 물었다.

어렵지 않게. 딱 내 수준에 맞춰 이 상황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   *   *

동아리실 정중앙.

원래라면 5킬로그램부터 100킬로그램까지 덤벨들이 각 맞춰 세워져 있어야 할 공간에, 네모반듯한 칠판이 들어섰다.

그리고 칠판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우리 동아리 신규 멤버.

시스터 TMI라 불리며 모르는 게 없는 지식 사전 김하니!

그녀가 세계 지도를 그리고 있었다.

딱, 딱, 딱.

“야, 김하니. 이 상황을 설명해 달라 했는데, 그림이 꼭 필요해?”

“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유리 선배. 사정을 설명하려면 배경지식이 필수예요. 잠시만요. 집중 좀 할게요.”

김하니가 칠판에 세계 지도를 완성하고는 뒤돌아본다.

“여기 보세요. 공식적으로 세계에 알려진 수호령은 총 여덟이에요. 여기 중국의 ‘황룡’, 프랑스의 ‘자유의 깃발’, 영국의 ‘태사자’, 아프리카 연합의 ‘에우리아’, 러시아의 ‘야수왕’, 미국은 동부의 ‘레드 드래곤’과 서부의 ‘기간트’ 이렇게 둘. 마지막으로 한국은 세계수 위그드라실. 이렇게 여덟. 맞죠?”

“아빠, 저 이모 말 빨라. 디게 디게 빨라.”

“쉿, 집중.”

“큼큼. 이렇게 여덟 수호령은 각 구역에서 균형을 이루고 있죠. 그래서 수호령을 다른 말로 ‘균형자’라고 부르기도 한답니다.”

수호령, 혹은 균형자라 불리는 존재들.

당연하게도 인간이 감히 대항할 수 없을 만큼 절대적인 힘을 지녔다.

“이들이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는 미국의 ‘동서 내전’을 보면 단적으로 알 수 있죠.”

동서 내전.

미 대륙의 주도권을 두고 벌어진 수호령 간의 전쟁.

엄청난 인적, 물적 피해를 남긴 전쟁으로, 만약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면 미 대륙 전체가 회생 불능에 빠질 수 있었을 만큼 당시의 전황은 처참했었다고 기록돼 있다.

“역사의 오점이라고도 불리는 이 동서 내전을 통해, 수호령들도 위기를 느끼게 돼요. 잘못하다간 세계가 멸망할 수도 있겠다. 이렇게 생각한 수호령들은 한 가지 규칙을 정하는데, 이를 일컬어 ‘세계 균형 조약’이라고 해요.”

수호령은 본체의 힘을 투사하지 않는다.

몇 가지 예외 조항은 있다.

예를 들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경우에 한해서’ 같은 것.

“우스운 소리죠. 누가 수호령을 힘으로 위협하겠어요. 어쨌든, 세계 균형 조약을 통해 스스로에게 제약을 건 수호령들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영향력을 펼치게 되는데요. 이게 뭐나면요.”

“아카데미잖아.”

“맞았어요. 유리 선배님 말대로 아카데미죠.”

정식으로 인가된 아카데미는 총 여덟 곳.

정확히 수호령의 숫자와 같다.

“수호령들은 본격적으로 인간을 교육해 자신의 영향력, 혹은 흔적들을 새겨 나갑니다. 인간들은 기뻤죠. 이제껏 주먹구구식으로 배웠던 기술. 예를 들면 마법이나 주술 같은 것들을 정식으로 배우게 됐으니까요.”

그때 잠자코 듣던 한준우가 툭 던진 한마디.

“불공평하군.”

“뭐라고요, 준우 선배님?”

“불공평하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수호령은 여덟. 아카데미는 여덟 곳. 이 여덟 곳을 제외된 나라는 평등한 교육을 받지 못할 것이고, 격차는 더 벌어지겠지.”

“맞아요! 백 점짜리 정답이에요.”

실제로 아카데미가 세워진 나라의 위상은 이때부터 가파르게 상승한다.

반면 그렇지 못한 나라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비인가 아카데미를 내면서 발전하긴 했지만 격차는 분명히 존재했다. 아무렴, 한쪽은 족집게 과외 선생이 봐주고, 한쪽은 맨땅에서 공부하는데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메리, 네가 한국에 온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야?”

“그래요. 정식으로 인증된 아카데미와 비인가 아카데미는 확실히 수준이 달라요.”

“맞습니다. 완전히 다르죠! 수호령이 있는 아카데미와 그렇지 않은 아카데미는요.”

수호령을 가진 나라에는 아카데미가 있다. 이 아카데미는 초인들을 양성하는 곳. 자연스럽게 초인의 실력이 올라가고, 초인들의 실력이 오르는 만큼 그 나라의 국력이 강해지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현대 마나학과 초인 산업의 발전은 여덟 수호령이 있는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발전하게 돼요.”

위그드라실이 ‘홀로 완성되는 숲은 없다.’라고 말하며 협력과 지휘, 포지셔닝 같은 ‘조화’를 가르쳤다면, 중국의 황룡은 ‘승자가 곧 정의다.’라는 승자 독식 체계로 ‘경쟁’을 추구했다.

“각 아카데미의 성격이 다른 이유가 이거예요. 수호령 각자가 가진 생각과 사상, 자신 있어 하는 분야가 다르니까요.”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수호령이 바른 영향력을 투사한 것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이런 미묘한 균형이 깨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중국이 ‘대륙의 중심’을 추구하며 주변 나라들을 침공했죠. 네, 메르헴 선배는 잘 눈치채셨을 거예요. 이게 제1차 세계 대전의 시작이에요.”

1차 세계 대전.

끔찍한 대전쟁의 시작.

중국을 중심으로 몰아친 전쟁의 화마는 아시아를 넘어 유럽으로, 유럽의 식민주의에 반발하려는 아프리카까지 번진다.

여기에 서로 앙금이 남아 있던 미국의 동서 갈등까지 겹치며 전 세계가 전쟁으로 타오르고, 그렇게 2차, 3차에 이르는 세계의 암흑기가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전쟁의 화마가 휩쓸고 간 자리.

남은 건 허무의 잿더미뿐이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전쟁.

그제야 사람들은 알게 되는데.

“이 전쟁의 시작에 ‘수호령’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거죠.”

처음 시작은 중국 ‘황룡’의 제자들이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전쟁을 계획, 세계에 대륙의 기상을 알려 주며 아시아의 중심으로 거듭날 계획이었단다. 모르긴 몰라도 이런 그들의 뒤에는 ‘승자가 곧 정의다’라는 이념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에 다른 수호령의 제자들이 동참하며.”

“전쟁이 가속화된 거네.”

“맞아요. 세상에 씻을 수 없는 흉터를 남긴 세계 대전의 주역은 수호령의 제자였던 거예요.”

수호령의 제자라면 실력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다. 실력도 없는 놈들을 그 콧대 높은 수호령들이 거둘 리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렇게 실력 있는 놈들이 단체로 힘자랑을 하면 그때는 파국이다. 보통 힘이 있는 놈들은 영향력이 있고 추종자들이 있거든.

이렇게 보니, 뒤에 있던 수호령들이 개입했을 거라는 의심도 스멀스멀 피어난다.

뭐, 진짜 그랬다면 저 세계 대전이란 걸 절대 막을 수 없었겠지만.

“하, 이제야 알겠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전례가 있으니까 괜히 불안한 거다.

“더군다나 위그드라실은 이제껏 한 명의 제자도 안 들인 유일한 수호령이었거든요.”

“위그드라실은 제자가 없어? 그건 몰랐네.”

“평소 수호령들의 영향력은 축소돼야만 한다며,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하신 분이에요.”

하긴 옛날에 이야기하다 비슷한 주제가 나온 기억이 있다. 그때 위그드라실이 이렇게 말했었다.

“어디까지나 이 세계의 주인은 인간이랍니다. 저를 포함한 수호령들은 이방인이죠. 이방인이 주인의 자리를 넘보고 터전까지 뺏는다? 우리는 이걸 두 글자로 ‘강도’라고 표현하죠.”

당시에는 그냥 농담 정도로 들었는데, 이제 보니 위그드라실은 내게 전하고 싶었던 거였다.

본인의 진심을.

“짜식, 멋지잖아.”

폼 나네. 마음에 든다.

이렇게 보기 드물게 온건했던 위그드라실이 처음으로 제자를 받았다. 설령 위그드라실이 세력을 가질 생각이 없다고 주장해도.

“타국의 입장에서는 봄이 양의 존재 자체가 위협적인 것이에요.”

“…….”

침묵이 흐른다.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상황이었구나. 새삼 어머니가 경기를 일으키며 성명을 낼 만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를 지키고 싶었던 거겠지.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하던 찰나, 봄이랑 눈을 마주친다.

“아쁘아?”

너울거리는 맑은 눈동자. 거기에 비친 나의 모습에 잠깐 할 말을 잃는다.

‘걱정을 하고 있다고? 내가?’

곧이어 드는 감정은 부끄러움.

쪽팔린다. 부모가 돼 가지고 자식 앞에서 걱정이나 하고 앉아 있다니. 불안하게 만들다니.

난 곧장 걱정을 지우고 오히려 활짝 웃었다.

“우리 봄이 대단하네?!”

“……봄이 대단해?”

“응!! 세상 사람들이 전부 봄이를 보고 싶다고 난리야.”

“정말? 봄이 보고 싶어 해?”

“그러엄!!”

봄이를 안아 들고 둥가둥가해 주자, 아이의 얼굴에서 걱정이 눈 녹듯 사라지더니 봄이란 이름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

그래, 이게 옳다.

고민할 필요 없다. 부모란 자식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으면 때려 부수고, 적이 오면 지우면 그만이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이 웃음을 지켜 주는 것.

그럼 된 거다.

“봄이, 행복의 춤!”

“예~!”

“잘한다~ 잘한다~.”

그러니 봄아, 언제나 웃으렴.

아빠가 지켜 줄 테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