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67화 (67/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67화>

어떤 행사를 앞두면 어머니가 항상 당부하는 말이 있다.

“항상 두 번 생각하렴. 할까? 말까? 긴가민가 생각되면 아예 말하지 마. 너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빌미를 주지 말란 말이야. 알겠지?”

음, 맞다.

내가 너무 막 나가서 하는 말이었다.

아마 현존하는 에이전트 대표 중 우리 김연희 여사님만큼 매스 미디어가 가진 힘을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도 또 없을 거다.

장점도, 부작용도 말이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렇지 않나? 이제는 가물가물해져 버린 일이지만 나, 정확히는 과거의 박기혁도 어찌 보면 미디어의 피해자였으니까.

대중의 관심에 아들이 난도질당하는 걸 실시간으로 지켜본 어머니. 그 마음이 오죽했을까.

이러니 어머니가 당부하는 수밖에.

성질 좀 죽이라고, 죽일 수 없다면 드러내지 말라고.

효자인 나는 최대한 어머니의 말씀대로 성질을 죽이는 편이다. 못 믿겠지만 진짜다. 하고 싶은 말도 꾹 참고, 행동도 몇 번이고 생각한다.

물론 성격상 욱하고 튀어나오는 경우가 태반이긴 했지만 말이다. 일부러 인간관계를 좁게 가지는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가끔 이렇게 매사에 조심하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게 가족의 힘인가. 그 옛날 영감탱이가 말하던 ‘지킬 게 있는 인간은 유연해진다.’가 이런 의미였나 싶기도 했다.

아마 영감이 이 모습을 봤다면 ‘이게 되네?’라고 놀라겠지, 보고 계셔? 당신의 골칫덩이가 변한 걸.

한데, 오늘은 달랐다.

이렇게 절제하는 나를 향해, 어머니는 짧게 말하시는데.

“네 마음대로 하렴.”

편하게 하란다. 내 성격을 뻔히 아시는 분이.

그러면서 눈을 보는데,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우신지, 전투를 앞둔 아버지를 보는 것 같더라. 안전핀이 풀렸다는 것이다.

어머니 본인은 적극적으로 부정하시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집안의 승부욕. 그것은 과학이었다.

어쨌든 허락도 받았겠다, 편하게 떠들라고 하셨으니, 효자인 나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편하게 떠들자.

Q. 초인과 일반인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마나를 느끼냐, 느끼지 못하냐. 이 차이죠.”

“그럼 초인이 되는 방법이 따로 있나요?”

“없어요. 마나를 느끼는 건 타고나는 겁니다.”

“노력해도 안 되나요?”

“출발선에 서지 못한 선수는 달릴 자격을 얻지 못합니다. 당연히 등수를 매길 수도 없죠. 이와 같습니다. 마나를 느끼지 못하는 이상 어떤 노력도 무의미합니다.”

“정말 일말의 가능성도요?”

“만약 당신의 나이가 20살이 넘었고 성장기가 완전히 지났다면. 네, 단언컨대 가능성은 없습니다. 차라리 삶에 노력하시라 말하고 싶네요.”

“워…… 기혁이 단호하네. 단호박인줄.”

“…….”

“……미안.”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래서 더 미안해.”

웃을 타이밍을 몰라 멀뚱히 바라보기만 했는데 은빛나가 쭈굴쭈굴해진다.

또 이게 뭐라고 폭발하는 채팅창.

- 너 이자식, 빛나눈나한테 그럼 모써 안 그래도 나이 많아서 서러운 눈나인데!

- 왜 웃기지 않아? ㅋㅋ 단호박인줄 ㅋㅋ 나만 웃김 ㅋ?

- ㅇㅇ너만 웃김.

- 아재요. 참으이소.

- 언니 단호박은 아녔어요. 근데 오빠 화장품 뭐 써요? 피부 엄청 좋다.

- 박기혁 싸가지 없을 듯, 하는 짓만 봐도 알 수 있음, 역시 관상은 과학.

- 관상쟁이 출근했네 ㅎㅇ.

- Good Boy. 강력한 몸이야. 너랑 친해지고 싶어.

- 섹시해, 미국에는 오지 않아? Honey :)

빛나 누나 챙겨 줘라, 너무 말이 세다, 센 척 오지다, 배려가 없다 등…… 간간이 외국인도 보이고 분위기가 시끌벅적하다.

그런데 은빛나는 내가 채팅창을 보는 모습에 오해를 한 모양.

“여러분, 기혁이 그런 애 아니에요. 이건 그냥 콘셉트예요. 미녀와 야수 콘셉트! 앞서 가는 거 금지! 기혁이 너도 채팅창 그만 봐. 괜히 못된 말에 상처 입어.”

“전 괜찮아요.”

“헤엥? 정말……?”

은빛나는 과거의 ‘박기혁’을 기억해서인지 걱정되나 본데, 정말 괜찮다. 상처 입을 게 뭐 있나.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그런데 이거 반말하면 안 돼요?”

“아…… 무래도 안 되겠지이?”

“쩝, 굉장히 불공평하네요. 하는 수 없죠.”

“다음에 너 개인 방송할 때 해. 나도 개인 방송에선 반말하거든.”

“그래야겠어요.”

질문을 이어 나간다.

Q. 세상에서 제일 센 마법은?

“그딴 건 없습니다. 마법에 우위가 어디 있어요.”

“선생님, 질문 가능합니까~?”

“얼마든지요.”

“있잖아, 엄연히 마법에는 클래스가 있는 거잖아. 예를 들면 1클래스 매직 미사일과 8클래스 헬파이어. 이 둘 사이에는 우위가 존재하는데, 이게 틀렸다는 거야?”

“기준이 무엇인가를 봐야죠. 클래스란 기준이 마법의 ‘강함’을 측정하는 거면…… 네, 그거 틀렸어요.”

매직 미사일을 쏴도 내가 쏘면 강하고, 헬파이어를 써도 약한 놈이 쏘면 약하다.

마법의 위력이란 마법사의 경지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법. 같은 마법을 써도 위력은 천차만별인데, 이렇듯 변동성이 많은 사항을 기준이라고 칭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만약 클래스란 게 말이 되려면 기준이 ‘술식의 규모’, 혹은 ‘구현 난이도’여야 해요. 매직 미사일의 식이 헬파이어의 식보다 쉬운 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기혁아, 눈나가 걱정돼서 그러는데, 너 지금 네가 뭘 말한 건지 알지? 넌 현대 마법계를 대표하는 클래스란 체계를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는 거라고. 이거 엄청난 발언이야. 채팅창 봐. 지금 폭동 상태야.”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이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 흘러가는 물에도 이유가 있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이치가 있어요. 우리가 서 있는 이 지구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죠. 그런데 고작 인간이 만든 체계 따위가 완벽하다고 믿는다면 그건 오만입니다. 우리 인간은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

“헤에…… 기혁이 다 컸구나. 완전 상남자. 브레이크가 없네. 멋져…….”

Q. 같은 팀의 동료를 여자로 생각해 본 적 없나요. 예를 들면 진유리 같은.

“진유리, 잠이나 자라.”

Q. 며칠 전 ‘드럭 쇼크’로 남자가 사망했다. 올 한 해에 발표된 것만 60건 넘는 사망 사고다. 이것에 대해 미스터 박은 어떻게 생각하나?

“드럭 쇼크가 뭐예요?”

“드럭 쇼크. 미국의 ‘메시아 궁전’에서 만들어진 ‘업그레이드 기법’ 중 하나야.”

죽음에서 돌아온 인간은 모든 한계가 극복된다.

‘임사 체험’을 통해 인위적으로 가사(假死)상태에 빠트렸다 깨어남으로써 한계를 극복, 경지를 상승시킬 수 있다. 이를 드럭 쇼크(Drug Shock)라고 한다.

……라는데. 뭐지? 이 신박한 개소리는.

“들어도 못 알아먹겠네요. 대체 이 개소리는 누가 한 거래요.”

“어, 엉? 개, 개소리라고? 멍멍?”

“네, 개 짖는 소리요.”

참나, 내 마법 인생을 통틀어도 이 정도로 무식한 말은 오랜만이었다.

“간혹 사람이 죽다 살아나면 경지가 오르기도 합니다. 죽음에 다다를 위기에서 자신을 지켰다는 거니까. 그걸 극복함으로써 영혼의 격이 한층 더 격상되는 거죠.”

“응? 그럼 된다는 말이잖아. 같은 거 아니야?”

“전혀 다르죠. 잘 들어 보세요. 제가 방금 말한 건 진짜 위기를 말한 거예요. 인위적으로 조작된 위기? 이미 말이 틀려먹었잖아요. 어떻게 위기가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어요. 자기들도 인정하네. ‘임사 체험’. 죽음과 ‘체험’이라는 단어가 함께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하지 않아요?”

“아하! 중요한 건 자연스럽게네?”

“네, 임사 체험. 저게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인위적으로 조작된 죽음을 극복한다고 경지가 오른다?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헤에~ 그치만 드럭 쇼크는 미국 ‘궁전’을 대표하는 상징 같은 거야. 저거 받겠다고 해마다 엄청 많이 미국으로 건너간다고. 실제로 성과를 냈다는 사람도 많아. 나 아는 사람도 했는데?”

“글쎄요, 그 성과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모르니 말을 아낄게요. 다만.”

“다만?”

“눈앞의 성과에 집착하지 않길 바라네요. 충분한 고뇌와 노력 없이 인위적으로 이룬 성장은 부작용으로 이어집니다. 어떤 식으로든 말입니다.”

이후로도 질문들이 이어진다.

키는 몇이냐, 몸무게는, 성형한 거 아니냐, 마나 허무증인데 마법은 어떻게 쓰냐, 검을 사용하는데 마법을 논하는 게 건방지다, 검술 한 번만 보여 달라 등등

시작할 때만 해도 시간 낭비처럼 보였는데, 이것도 하다 보니까 꽤 재미있더라.

이런 걸 관종이라 하던가. 나도 은근히 관종기가 있는 듯했다.

그래도 뭐든 적당히 해야 하는 법.

슬슬 마칠 시간이 됐고 마지막 질문을 받는다.

Q. 한국에서 ‘붕괴 현상’에 대해 실험한다고 했다. 당신도 참여했다고 들었는데, 혹시 괜찮다면 이에 대해 말해 줄 수 있나?

“이거 제가 했던 작전 말하는 거 같은데요.”

“뭔데? 무슨 작전인데?”

“킹메이커 작전이라고…….

“우와, 킹메이커. 왕을 만든다? 뭔가 작전명만 들어도 가슴이 웅장하다. 킹메이커. 그거 설명해 줄 수 있어?”

“흠…….”

“왜? 곤란해? 곤란하면 안 되고.”

“아뇨, 곤란한 건 아닌데. 시간도 그렇고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서요.”

“그런 거면 괜찮아. 우리는 들을 준비가 돼 있거든! 그쵸? 다들 1을 눌러 동의를 표해! 봐봐. 듣고 싶다잖아.”

“그렇다면야…….”

뭐 별거 없는 거, 그렇게 듣고 싶다니.

난 사양 않고 이야기했다.

*   *   *

카메라 옆에서 구경하던 김연희가 입을 가리고 웃는다.

‘그럼 그렇지.’

박기혁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장면, 그가 킹메이커 작전을 설명하는 이 상황은 철저히 김연희가 연출한 거였다.

그녀의 아들은 스스로 이룬 성과에 놀랍도록 무감각하다. 정확히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니 세상을 놀라게 만들 ‘킹메이커 작전’을 어디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 먹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거다.

‘틀림없이 며칠 뒤면 작전명도 까먹을걸.’

그녀의 생일에 맞춰 ‘인공 정령석’을 선물할 때도 이랬다.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발상의 문제일 뿐 어렵지 않은 거라고, 이 정도는 자랑할 수준이 아니라며 겸양을 떨었지만.

지금 봐라. 인공 정령석 때문에 바뀐 세상을.

불과 한 달 전, 포보스에서 ‘인류의 역사를 바꾼 발명품’으로 인공 정령석이 실렸다. 이만큼 인공 정령석은 세상에 큰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박기혁이 이룩한 결과였고, 김연희는 이렇게 훌륭하게 자란 아들이 너무너무 고맙고 자랑스럽다.

아들이 너무나도 힘들 때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 못난 어미라 더더욱.

그런데 이렇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이룬 성과를 협회의 늙은이가, 연합의 하이에나가 쏙 집어먹으려 하네?

김연희가 열이 받나 안 받나.

‘애들은 건들지 말아야지.’

전에도 말했듯, 가만히 있었으면 양보할 생각도 있었다.

김연희는 내 자식이 소중한 것처럼 남의 자식도 소중하단 걸 잘 아는 좋은 어른이었다.

마나 허무증이란 천형을 극복한 아들이 각성한 듯 날뛰며 두각을 나타냈다. 자연스레 이번 4학년이 자신의 아들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고, 김연희는 이에 내심 미안한 감정을 가졌다.

조사대의 일에 정도 이상으로 왈가왈부하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

오히려 직접 나서 홍보까지 해, 애들의 실적을 돋보이게 만들 생각도 하고 있던 김연희였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양보’한다는 의미. 뺏겨도 된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이제 모두에게 알려졌고.’

협회든, 연합이든, 공을 독식하려 타이밍을 재던 모두가 닭 쫓던 개가 되었다.

놈들의 수법이야 뻔하지.

조사대가 귀환하는 타이밍에 맞춰 기자들을 쫙 깔아 놓았을 거다.

휘황찬란한 무대에 빗발치는 카메라 셔터음. 마치 이곳이 헐리우드인 양 환영식을 준비할 것이고, 순진한 조사대는 정신을 못 차릴 거다.

그 틈을 비집고 당황하는 조사대를 대신한다는 명목으로 무대로 올라 자신들의 놀라운 결단력을 칭찬할 거고, 조사대의 ‘어설픈’ 작전에 대국적인 지원을 해 준 스스로를 추켜세웠을 거다.

정작 맛있는 부위는 자기들끼리 맛있게 나눠 먹고, 조사대에게 남는 건 그저 ‘성공’이란 두 글자뿐.

이렇게 아이들은 또 어른들의 정치에 희생양이 되는 것이다.

김연희는 어른으로서 이런 어른들의 정치가 진절머리 난다. 애들 거는 건들면 안 되잖아.

이래서 아예 판을 새로 짠 것이다.

아이들이 주목받을 수 있게. 내 아들이 주목받을 수 있게 말이다.

‘이제 기자들 등판하고.’

패드를 켜자, 역시나 그녀의 예상대로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쏟아진다.

모두 김연희의 솜씨다.

특히나 주목할 건 바다 건너 미국 쪽.

세계 경제의 중심이자 김연희의 필드인 뉴욕 월 스트리트에서 경쟁하듯 ‘킹메이커’란 단어를 쏟아 내며 한국을 주목하고 있다.

장담컨대 지금 이 시간, 세계 곳곳에 있는 기자들이 이 기사를 보고 부랴부랴 한국행 비행기를 예약하고 있으리라.

이 상황에 애들의 성과를 탐한다?

바로 역풍을 맞는다.

이만큼 시선이 몰렸는데 뺏는 건, 태풍에 달려드는 불나방보다 미련한 짓이다.

권력을 목숨처럼 여기는 저들이 이런 리스크를 모를 리 없으니, 이제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간 셈이었다.

“한 만큼 대가를 받아야지.”

실로 깔끔한 마무리다.

너무나도 당연한 명제가 지켜진 것이다. 김연희는 이제야 만족스레 웃을 수 있었다.

이제 굳이 그녀가 남아 있을 필요도 없다.

김연희는 아들을 보고 후련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리고 있었다.

……

하지만 김연희는 몰랐다.

“아쁘아…….”

그녀가 돌아간 뒤, 잠자던 천사가 깨어났고.

이 천사가 세상을 놀라게 할 줄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