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6화>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조사대가 게이트에 들어설 때만해도 조사대의 성공을 확신하는 이는 ‘없었다.’
적었다가 아니라 없었다. 기대는 할지언정 진심으로 이 조사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없었단 말이다.
생각해 봐라. 조사대 전원이 아카데미 학생 아닌가.
졸업생도 아니고 학생.
제아무리 그들이 4학년 최고의 유망주라고 해도, 유망주는 늘 그렇듯 증명이 필요한 법이다. 괜히 까 보지 않은 복권이라 불리겠나.
그 누구도 복권이 맞을 거라 확신하지는 않는다. 다만 ‘기대’할 뿐이지.
조사대가 부여받은 임무도 이런 성향이 강하다.
생태계 붕괴 현상의 변화 예측. 최종적으로 피해를 축소할 수 있는 방도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알 사람은 다 안다.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이미 두루뭉술한 목표에서 알 수 있듯이, 확실한 목적을 갖고 시작된 조사가 아니란 것이다.
확신도, 목적도 없는 조사.
그러면 이런 조사를 왜 하는가.
왜 하겠나. 모두 실적을 위해서지.
4학년, 그리고 졸업반. 이들은 하나같이 실적에 목말라 있다.
스펙을 쌓아야 하니까.
그 나이 때의 평범한 사회 초년생들과 다를 바 없다.
좋은 대우, 높은 연봉, 더 좋은 직장을 갖으려면 스펙은 필수다. 이력서에 한 문장을 추가하기 위해 각종 시험을 치르고 자격증을 갖춰야 했다.
A4용지에 쓰인 건조한 글자로만 나란 인간을 알려야 하는 게 슬프기도 하지만 어쩌겠나, 이게 현실인 것을.
초인들에게 실적은 이 스펙이었다. 영입 시장에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는 일종의 이력서.
이에 따라 현실적인 계약금이 달라지고 연봉이 높아지는데, 눈이 벌게져 실적을 쫓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것이었다.
위의 사실을 알고 본론으로 돌아오면, 이제 답은 쉬워진다.
이런 조사를 왜 하냐고?
실적을 쌓게 해 주기 위해서다.
4학년은 실적을 쌓아 영입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올리고.
아카데미는 우수한 졸업생을 배출해 낸 것으로 가치를 올렸으며.
소속 단체는 훌륭한 유망주를 자신의 품에 안은 것으로 단체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다.
온갖 이해관계가 맞물린 행사.
그것이 이번 조사대의 숨겨진 목적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렇게 구성된 조사대가 성공하게 된다.
아니, 성공이란 말조차 모자랄 만큼 역사적인 성과를 거둔다.
붕괴 현상을 조정한다.
이 터무니없는 일을 덜컥 성공시켜 버린 것이다.
“……조사대가 성공했다고? 정말?”
“허, 하…… 이거, 내가 꿈을 꾸나. 붕괴 현상 조정이란 게 가능한 거였어?”
“됐어! 민식아, 이거 세계 최초 아니냐? 학회에서 이게 가능하다고 떠든 거 없지? 얼른 확인해 봐. 아, 아니다. 괜히 소문내면 안 되니까 내가 할게. 넌 조용히 있어 봐.”
예상치 못한 성과에 관계자 모두가 놀랐다.
하지만, 이뤄 낸 성과에 순수하게 기뻐하기에 그들은 이미 어른들이었다.
기쁨에도 지분이 있는 법.
웃기는 이야기지만 이게 현실이다.
모두 공평하게 행복해하는 건 이상향에서나 가능한 법이다. 누군가는 더 기쁘고, 누군가는 덜 기쁘고를 가려야 할 시간이다.
제일 먼저 목소리를 낸 것은 대한초인협회다.
“제가 뭐라 했습니까! 시작할 때 이번 조사 느낌이 좋다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 보세요. 이렇게 떡하니 성과를 가져오잖아요! 이게 다 저희 협회의 ‘기획’이 잘된 공 아니겠습니까!”
협회가 아카데미에 먼저 조사를 요청한 건 분명히 사실이다.
하지만 기획했다는 건 좀…… 기획이란 건 나름대로 계획이 있어야 하는데, 그들에게 계획은 자신들이 키우는 유망주 정소이의 실적을 챙겨 주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다짐한 협회.
어쨌든 시작은 우리가 했잖아? 우리 공이 많아. 아무튼 많아.
이 성과의 가장 많은 지분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헌터 연합이 반발한다.
“기획? 기이이획?? 협회 거지새끼들이 양심을 똥구멍으로 처먹었나 보다. 공문 하나 틱 보낸 걸로 지분을 논하네. 하, 같잖다 정말. 최소한 우리처럼 돈이라도 왕창 썼으면 몰라. 이 거지새끼들은 양심도 없다니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조사대를 지원했던 헌터 연합.
물론 이 또한 연합이 4년 내내 밀고 있던 박진용을 지원하려는 의도였지만, 그래도 아낌없이 돈을 부은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킹메이커 작전에서 지원된 물자 중 절반 이상이 연합의 주머니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그만큼 적극적으로 지원했는데, 너희가 맛있는 부분을 다 가지겠다고? 어림도 없지.
이렇게 협회와 연합이 얼굴을 붉히는 사이, 슬며시 숟가락을 들이미는 관리국.
딱딱한 공문이었지만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다들 알지? 허가는 내가 내준 거. 너희들, 내 허가 없었으면 아무것도 못 했다?”
자신들의 허가가 없었으면 작전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주장.
틀린 말은 아닌 게, 이번 작전에서 핵심 물자는 ‘상급 마석’과 ‘인식 저해 차단 장비’였다.
이 두 물품은 악용될 우려가 있어, 엄연히 ‘전략 물자’로 분류되는 상황. 당연히 국가의 허가가 필요하고, 이걸 관리국이 담당했다.
또한 6레벨 이상의 상급 게이트로 분류되는 곳은 관리국의 관리가 본격적으로 들어가는 구간, 이런 곳에 대규모 물자 지원을 했잖나. 당연한 말이지만 이 또한 관리국의 허가가 필요한 행위였다.
이렇듯 관리국 입장에서는 다방면으로 자신들이 신속히 처리해 줬으니, 성공의 일정 부분은 관여했다 주장하는 것이다.
“옛말이 시작이 반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첫발!! 시작!!이 중요하단 말 아니겠습니까! 이번 성과는 우리 협회가 절반 이상은 이뤄 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렇지요. 맞습니다.”
“얻어 걸린 주제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마십쇼. 돈도 쥐꼬리만큼 보내 줬으면서 성과를 운운하는 게 쪽팔리지 않습니까. 무슨 거지새끼도 아니고…….”
“틀린 말이 아니군요.”
“뭐요? 거지새끼?! 말 다했소!”
“이 아저씨 옛날이랑 다른 게 없네. 목소리만 크면 단 줄 알아. 뭐! 거지보고 거지새끼라 하는데!!”
“허허. 둘 다 맞습니다.”
“……당신 누구 편이야.”
“저희 관리국은 이기는 사람 편입니다. 허허.”
각자의 논리로 서로의 지분을 주장하는 세 단체.
하지만 딱 하나. 이런 세 단체가 뜻이 맞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옵티멈과 진룡에 관한 부분이었다.
“싸울 때 싸우더라도 이건 확실히 하고 갑시다. 이거, 여기서 이뤄지는 흥정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특히 옵티멈과 진룡한테.”
“물론이지! 그치들에게 공을 넘길 생각은 없네!”
“음, 현실적으로 완전히 숨기는 건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최대한 늦추자는 거지. 어차피 게이트 안의 상황을 아는 건 여기 셋이 전부 아니야? 최대한 정보를 늦춘 다음, 조사대가 복귀할 때 빵! 타이밍 맞춰 터뜨리면, 저들이 어떻게 알겠어?”
“좋은 의견일세! 인생은 타이밍이지!”
“나쁘지 않군요.”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박진용과 정소이의 능력을 알고, 조사대의 역량을 잘 안다.
이 참신한 발상이나, 이를 실행하는 결단력.
객관적으로 이 작전, 그들만으로 불가능한 작전이다.
자세한 상황은 몰라도, 분명히 박기혁과 진유리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리라. 이게 아니라면 이토록 위대한 성공은 말이 안 됐다.
그런데 저 둘의 소속이, 옵티멈과 진룡 가문이 발 벗고 이 성과에 따른 지분을 주장한다면?
세 명이서 경쟁하던 파이를 다섯 명이서 나눠야 한다. 그럼 당연히 개인에게 돌아갈 몫은 줄어들 터.
그래서 내린 결론.
교묘하게 정보를 은폐, 최대한 시간을 끌며 정보의 우위를 이용해 한번에 발표할 생각을 했다.
한데,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터진다.
“관리국장님, 박기혁이 나왔습니다!”
“뭐, 뭐? 걔가 왜 지금 나와? 붙잡아 봐요. 뭐라도 대고 붙잡아 보란 말이죠.”
“……이미 늦었습니다. 서류 남겨 놓고 갔습니다.”
실적이고 뭐고 봄이가 보고 싶어 나온 박기혁.
이로 인해 김연희는 이미 작전이 성공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됐고, 눈치 빠른 옵티멈의 대표께서는 이 통화를 듣자마자 한눈에 굴러가는 사정을 알게 됐다.
“조용히 있으니까 제법 깜찍한 짓을 하고 있었네?”
신생 에이전트를 세계 5대 에이전트로 올린 김연희다. 이런 애들 장난 같은 놀음을 몰랐겠나. 이미 예상한 바다.
실패하든 성공하든, 저들이 조사대의 성과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포장하리란 것을 말이다.
그래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조사대의 주인공은 엄연히 4학년이고, 저들에게는 남은 기회가 얼마 없다. 그에 비하면 자신의 아들은 1년이 더 남았으니 굳이 실적에 욕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어차피 옵티멈 소속이 될 건데 굳이 실적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고.
하지만 이러면 말이 다르지.
김연희가 그린 그림은 어디까지나 이쪽이 양보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일방적으로 강탈하려 한다.
참아야 하나?
그녀는 스스로에게 물었고, 답은 쉽게 나왔다.
“비서실장님, ‘프리즘’에 말해 주세요. 전에 말했던 기획 방송, 승낙한다고요.”
당하고는 못 사는 김연희다.
나를 엿 먹이려 했으니 너희도 당해야지.
기대해라. 내가 어떻게 나오는지.
* * *
5대 에이전트 사이에서도 옵티멈은 유명하다.
과거 옵티멈의 시작은 실로 비루했다.
허름한 건물에 딸린 창고에서 시작한 옵티멈. 창업 멤버는 고작 셋.
김연희와 유해련, 그리고 박건. 이렇게 셋이 전부였다.
전통도, 역사도, 배경도 없던 시절.
딱 하나 있다면 ‘검호’인 박건이었는데, 예전에도 말했듯 당시의 검호는 진룡만큼이나 은폐된 조직이었고, 피치 못할 이유로 검호의 재산도 사용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야말로 맨몸으로 창업한 에이전트.
하루에도 열 곳 이상 생겨나고, 일주일 만에 다섯 곳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다는 밑바닥 신생 에이전트였다.
이런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김연희는 기어코 옵티멈을 끌어올린다.
완전 밑바닥부터 세계 정상까지, 한 번의 미끄러짐 없이 수직 상승시켜 현재는 5대 에이전트란 이름으로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고 있다.
이 모든 기적을 만든 그녀의 무기 중 두 가지.
투자와 소통이었다.
- 시청자 여러분 안녕~ 안녕~ 빛나 왔습니다! 오랜만이죠. 저도 보고 싶었답니다. 나도 방송만 하고 싶지. 그런데 본캐가 백호단 부단장인걸. 이래 봬도 바쁜 몸이라니까. 에헴! 응? 뭐 했냐고? 사냥 갔지. 저기 평양에 있는 게이트에 갔는…….
타고난 분석력과 예측, 정보를 받아들이는 천재적인 감각. 무엇보다 ‘투자’에 한해서는 신기에 가까운 능력을 지녔던 김연희.
그녀는 그렇게 무패의 전설을 쓰게 되고, 고작 십여 년 만에 한국을 넘어, 세계 최고 투자가의 반열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 김연희가 한창 투자가로 이름을 날릴 때, 현재까지도 두고두고 회자될 역사적인 딜을 성사시키는데.
프리즘(Prism).
동영상 스트리밍이나 하던 작은 IT 회사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당연히 이 선택에는 많은 이야기가 뒤따른다.
억 소리가 100번은 나도 모자랄 금액을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동영상 사이트에 태운다고? 제정신인가?
이제 김연희의 성공 신화는 끝났다. 성공의 달콤함에 취해 꿈나라로 가 버렸다 등등.
본래 타인의 성공보단 실패가 더 재미있는 법이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김연희의 실패를 기대했다.
그러나 이런 모두를 비웃기라도 하듯, 김연희는 비상하는데.
누가 알았겠나. 이 아무런 가치도 없어 보이던 프리즘이 세계 시장을 재패할 줄 말이다.
프리즘의 2대 대표 ‘던컨’의 주도하에 발표된 스마트폰 ‘스탭’. 이 스탭이 초대박을 치며 프리즘은 단숨에 세계 시장의 주역이 된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억만장자가 된 김연희.
그렇게 그녀의 신들린 투자는 계속됐고, 현재에 이르러 IT 분야의 큰손이 된 것이다.
하나, 이게 끝이 아니었는데.
- ……그래서 민지가 엄청 화냈어요. 어머? 민지가 누구냐고요? 잠깐만, 여러분. 뭐라 하지 마세요. 모를 수도 있지이!! 왜 우리 뉴비 님 기 죽이고 그래욧! 뉴비 님, 민지는요. 박민지라고 백호라 불리는 검호예요. 검호는 아시죠?
과거, 김연희가 현역으로 있을 때만 해도 초인과 민간인 간의 갈등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민간인들은 운이 좋아 초인이 된 주제에 자신들이 뭐라도 된 양 으스대는 초인들이 꼴 보기 싫었고, 초인들은 목숨 걸고 국민을 지키는 데다 사냥한 마석 수입의 거의 절반을 내야 한다는 게 못마땅했다.
보이지 않는 벽.
아무도 언급하지 않지만 민간인과 초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했었다.
그리고 이 보이지 않는 벽을 부순 게 바로 김연희의 옵티멈이다.
프리즘을 통한 방송을 정기적으로 송출.
대중들이 원하는 정보와 호기심을 충족시키며, 초인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노출시켰다.
참고로 검호의 인지도가 치솟은 것도 이 방송 때문이다.
당대 검호인 박건이 나와서 검술을 가르쳐 준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화제가 되는데, 알다시피 이 박건이란 인간이 워낙 특이한가?
열혈 사나이, 정의 바보, 승부의 화신.
갖가지 별명이 붙여지며 명실공히 옵티멈 최고의 스트리머가 돼 버린다. 물론 박건 본인은 이를 철저히 부정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투자’로 옵티멈의 몸집을 불렸다면, ‘소통’으로 옵티멈의 인지도를 키웠고.
현재에 이르러 옵티멈은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하는 에이전트가 된 것이다.
- 콜록, 콜록, 나 너무 많이 떠든 것 같아요. 목도 아프고 슬슬 피곤도 하고. 여기서 방종하면…… 헤에~ 채팅창 화력 봐라. 여러분, 나 계속 보고 싶구나? 근데 목 아픈 건 진짜야. 혼자 떠드는 것도 힘들다니까.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오늘의 깜짝 게스트!
옵티멈의 미래, 옵티멈의 황태자, 옵티멈의 귀공자, 시대를 대표하는 천재, 검호란 이름의 괴물…….
온갖 수식어가 랩처럼 흘러나오고, 마침내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
- 소개합니다, 박기혁!
박기혁이 모습을 드러낸다.
- 안녕하세요, 박기혁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모습을 카메라 뒤에서 지켜보는 김연희.
감히 우리를 건드려?
좋아, 먼저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실적이고 뭐고 깽판을 쳐 주마.
이놈의 승부욕은 집안 내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