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5화>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한 자루 검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의 ‘아티팩토리’, EU의 ‘검의 둥지’와 더불어 세계 3대 대장간으로 손꼽히는 한국의 ‘가마’.
약 1년 전, 이 가마의 주인이자 최고의 대장장이인 ‘가마치’에게 한 통의 의뢰가 들어온다.
이에 가마치는 코웃음 쳤지만.
“의뢰? 의뢰에에? 늙으니 헛것이 들리네. 갖다 버려.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그래.”
그 대상이 세계 5대 에이전트이자, 한국 최고의 에이전트, 동시에 ‘가마’의 최대 후원자인 옵티멈의 마녀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허허.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아주 중요한 의뢰인만큼 이건 내가 직접 하겠네. 주게.”
곧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그런데 가마치는 첫 시작부터 눈을 의심하게 되는데.
“내 눈이 잘못됐나. 제자야, 이거 ‘악마의 송곳’ 아니냐? 이 마검으로 검을 만들어 달라 했다고? 의뢰서 다시 줘 봐…… 진짜네? 허허. 마녀가 노망이 났나 보구나.”
한때 최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8레벨 게이트 ‘마계 13구역’.
이곳의 보스인 ‘사탄’을 최초로 레이드했을 당시 얻은 검이 바로 이 ‘악마의 송곳’이다.
그리고 이 악마의 송곳에는 또 다른 이명이 있는데.
바로 ‘지상 최악의 쓰레기’다.
“걸려 있는 저주가…… 72종. 확실한 정품입니다, 가마치 님.”
“쯧, 쓰레기가 맞구나. 수습 애들부터 내보내. 잔여 저주에 정신 오염되면 골치 아파.”
“스승님, 마검으로는 마검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건 상식이지 않습니까. 옵티멈의 마녀가 이를 모를까요?”
“모르지. 정화할 방법이 있는 걸지도.”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제 말은, 이거 성녀도 손을 턴 물건이잖습니까.”
72종.
인간이 기록한 모든 악마의 저주가 고스란히 담긴 마검.
그렇기에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 검.
만약 인간이 이 검을 들었다면, 그는 이미 ‘악마’ 혹은 ‘몬스터’라고 확신할 정도로 악마의 송곳은 현존 최악의 마검이었다.
이런 마검으로 검을 만들어 달라?
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가.
가마치는 재차 몇 번이고 확인했다. 심지어 개인적으로 옵티멈의 마녀에게 전화까지 했다.
진심으로 이 마검을 뜯어서 검을 만들어 달라는 건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이에 옵티멈의 마녀, 김연희의 답은 한결같았다.
“예, 되도록 가장 강력한 저주가 담긴 마검을 만들어 주세요. 저희 쪽에서 드린 악마의 송곳은 명함조차 못 내밀 정도로 강력한 놈으로요.”
그녀의 단호한 답에 가마치는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이 검, 절대 사용할 용도가 아니다.
혹시 고문 용도가 아닐까? 맞아. 악마의 송곳보다 더한 저주라면 같은 공간에 집어넣기만 해도 인간이 미쳐 버릴 것이다. 이게 아니라면 설마, 암살? 이것도 말 되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이게 말로만 듣던 발상의 전환인가. 과연 옵티멈의 마녀, 세계 5대 에이전트의 수장다운 파격이었다.
좋아, 소원대로 해 주마.
손잡이만 잡아도 꼴까닥 넘어가는 끝내주는 마검을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가마치의 오해(?)에서 비롯된 살인 병기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너, 너. 지하에서 썩고 있는 마검들 있지? 그거 다 들고 와. 얼른.”
악마의 송곳을 베이스로 마창, 마검, 온갖 ‘마(魔)’ 자가 붙은 무기만 무려 37자루가 섞여 완성된 검.
검신의 길이는 170. 폭은 25. 두께 5센티미터.
‘현재’까지의 무게는 74.4킬로그램.
흔한 장식조차 없어 투박하기 그지없는 모양.
대검(大劍)의 본래 의미를 너무도 충실히 지킨 나머지 보통의 인간이 사용할 수 없는 규격 외의 사이즈가 돼 버린 검.
온갖 마검을 결합해 만든 터라 잠재돼 있는 저주의 총량은 측정 불가.
사용할 수도, 사용되어서도 안 되는 저주받은 마검.
그래서 붙은 이름.
마귀(魔鬼).
박기혁의 손에 들려 마검의 역사를 새로 쓸 마귀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다.
* * *
우우웅- 우우웅-
격렬해지는 전황의 한가운데, 마귀가 울음을 토한다.
해석하자면 ‘한 입만.’ 정도일까.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우리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는 엘더 샌드웜인데, 마귀 녀석에게는 먹잇감으로밖에 보이지 않나 보다.
“녀석.”
어지간히 먹었으면서도 아직도 배가 고프단다.
탐욕스러운 놈이다. 그래서 더 귀엽고.
“원하면 줘야지.”
피식 웃으며 도약했다.
마귀 녀석도 기분이 좋아진 모양. 말도 안 했는데 알아서 보조한다. 들고 있던 마귀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마귀가 가진 기능 중 하나인 ‘중량 조절’이었다.
도약력에 가속도가 붙는다.
단숨에 좁혀지는 거리.
시종일관 내 쪽을 경계하던 엘더 샌드웜이 이를 눈치 채고는 포효했다.
당연히 뒤따르는 건 격렬한 몸부림.
비록 마귀에게는 먹잇감으로 무시당하는 놈이지만 나름 샌드웜 중에서는 엘리트 개체. 보통의 샌드웜보다는 최소 1.5배 강한 놈이다.
게다가 여기 있는 엘더 샌드웜은 현재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 속된 말로 목숨이 간당간당한 상황이다.
지금처럼 목숨이 경각에 달린 순간 샌드웜은 생존 욕구가 폭발하며 ‘광란’ 상태에 빠지는데, 남은 체력을 소모하는 대신 공격력이 수직으로 상승하게 된다.
다시 말해, 지금의 저 격렬한 몸부림 하나하나가 일반적인 방어력으로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란 말이다.
키에에에!
쿵! 쿵!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에 1차로 공동이 떨리고.
격렬하게 저항하는 몸부림에 2차로 공동에 균열이 났다.
후두두둑.
지하 공동 천장에서 모래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제삼자가 봤다면 경악할 만한 광경. 족히 5층 빌딩만 한 크기를 가진 육중한 몸집임에도 불구하고 민첩성과 스피드가 폭발적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난 아무 감흥 없다. 내겐 조금이라도 더 살려고 발악하는 지렁이일 뿐이다.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히고.
두 걸음에 공격을 흘리고.
세 걸음에 사정권에 들어온다.
휘두르면 닿는 거리. 언제라도 출수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은 참는다. 보다 완벽한 일격을 위해.
쿵!
마귀를 세워 바닥에 꽂는다. 넓은 검면이 마치 방패처럼 전방을 가리고.
곧이어 흥분한 엘더 샌드웜의 꼬리가 후려쳤다.
내 움직임에 격렬하게 반응하는 엘더 샌드웜.
허공에서 견제 중인 진유리를 무시하고, 마찬가지로 빈틈을 노리는 한준우를 무시한 채 오직 나만 바라봤다.
키에에엑-! 키에에엑!!
진심으로 나를 떨쳐 내려 했고, 전력으로 내게서 멀어지려 하고 있다.
그래, 지금 엘더 샌드웜은 두려운 거다.
내게서 받은 상처가, 고통이, 공포가 되고 절망으로 변해 녀석의 정신을 나락으로 빠트린 것이다.
그리고 엘더 샌드웜의 정신을 망가트린 일등 공신은 이 녀석.
마귀였다.
우우웅-!
이 탐욕스러운 녀석의 두 번째 기능.
‘생명 갈취’
피나 체력 따위를 흡수하는 게 아닌, 생명력 그 자체를 뺏는다.
생살을 찢으면 어마어마한 고통이 뒤따른다. 그런데 생명체에서 생명을 뺏는다면? 그것도 자의가 아닌 타의로 갈취당한다면?
막말로 존나 아프다.
육체와 영혼. 인간을 구성하는 근원.
생명은 이 근원의 연료다. 꼭 필요하고 없어서는 안 될 요소.
이게 뭉텅뭉텅 썰린다.
뺏긴다.
뜯겨 나간다.
생물이 느낄 수 있는 고통 중 불에 타 죽는 게 가장 고통스럽다고 하는데, 단언한다.
그거보다 훨씬 아플 거다.
후웅- 깽! 후웅- 깽!!
투박한 소리와 함께 막히는 엘더 샌드웜의 꼬리질.
하지만, 보통의 검…… 아니, 웬만한 방패조차도 부서지는 이 괴랄한 꼬리질 속에서 우리 마귀.
평온하다. 아니, 평온하다 못해 행복해한다.
우웅- 우웅-!!
공격을 막을 때마다 조금씩이나마 엘더 샌드웜의 체액이 튀었고, 이 체액은 그야말로 생명력 덩어리. 마귀에게는 훌륭한 영양분이었다.
우우웅!!
키에에에엑!!
때린 쪽이 고통스러워하고, 맞은 쪽이 행복해하다니.
이게 말로만 듣던 취향인가. 돼도 안 되는 생각에 웃었다. 그만큼 여유가 있단 뜻이었다.
“그래도.”
슬슬 마무리해야겠지.
우드드득!
손톱이 자라난다. 솜털이 바짝 솟는다.
뚫고 나온 송곳니는 마치 호랑이의 이빨 같았으며, 전신을 뒤덮는 마법진은 마치 호랑이의 갈기 같았다.
눈을 뜬다. 동공이 찢어지며 잠자던 맹수가 깨어난다.
파괴란 본능을 가진 검호가.
‘아직 멀었어.’
우우웅-
갈귀처럼 전신을 뒤덮고 있던 마법진에서 빛이 일렁인다.
불길처럼 타오르는 듯 검은 빛무리.
마왕의 징벌이라 불리는 아포칼립스였다.
두 가지 힘이 소용돌이친다. 아니, 세 가지다. 두 가지 힘에 덩달아 눈을 뜬 ‘거인’의 힘까지.
검호, 마왕, 거인.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모든 힘이 깨어났다.
비로소 완전체가 된 나.
그리고 이때 마귀의 세 번째 기능이 빛을 발한다.
‘파괴 불가’.
완전체가 된 나의 힘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검.
마귀는 그런 검이었다.
검호류 파괴.
역천(逆天)
하늘을 거스른다.
검은 검광이 세계를 가른다.
첫 번째 검광이 공간을 부수고, 두 번째 검광이 적을 멸하며, 세 번째 검광에 법칙이 부서진다.
그렇게 여섯 개의 검광이 육망성을 그렸을 때.
이곳은 더 이상 지하 공동이 아니었다.
뒤를 막고 있어야 할 벽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천장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눈부신 태양이 자리했다.
그리고 나의 적, 엘더 샌드웜은 여섯 조각으로 잘려져 허물어져 있었다.
“끝.”
작전이 끝났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다.
* * *
옵티멈 대표실.
한 여자가 무섭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애들 왔다며?”
인사도 없이 대뜸 질문부터 던지는 여자. 진룡가의 안주인인 유해련이었다.
“노크는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기지배, 너랑 나랑 예의 차릴 사이니. 시원한 물이나 한잔 줘. 달려오느라 목이 타네.”
“가지가지 한다, 가스나가.”
말은 이렇게 해도 두 사람은 둘도 없는 친구.
곧이어 비서실장의 손에 시원한 차와 다과가 들려 왔다.
“찬우, 안녕.”
“오셨습니까.”
“응, 방금 왔어. 근데 너 아직도 비서야? 나 있을 때도 비서였잖아.”
“아닙니다. 이제 저도 비서실장입니다.”
“어머? 비서실장이야? 찬우 출세했네. 근데 왜 네가 이런 허드렛일까지 해. 아랫사람 안 시키고.”
“얘는 바쁜 사람 잡고 무슨 헛소리야. 비서실장님, 들어가 보세요.”
“하하. 오랜만에 두 분 같이 있는 모습 보려고 제가 직접 들고 온 겁니다. 여기, 파인애플 에이드하고 김 과자입니다. 대표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준비했습니다.”
“우와, 아직도 내 취향 기억하네. 고마워라.”
“두 분은 저의 ‘은인’이시니까요. 그럼,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바이바이.”
비서실장이 나가고, 이제 대표실에 남은 사람은 김연희와 유해련, 두 사람뿐이다.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말 해.”
“애들 왔다며. 그래서 왔지.”
“진짜 그게 궁금해서 여기까지 왔다고?”
“……덤으로 그 애들이 했던 작전. 붕괴 현상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는.”
“킹메이커 작전.”
“그래, 킹메이커. 그거 어떻게 됐나 궁금해서.”
쪼옵, 빨대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빨아들인 김연희는 시원한 표정으로 답했다.
“성공했어.”
“내 그럴 줄 알았지. 암, 우리 박 서방이 하는 일인데 잘돼야지.”
“……누구 맘대로 박 서방이래.”
“됐어. 소소한 건 신경 쓰지 마.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뭘 어떻게 해.”
“뭐긴 뭐야. 네 아들 실적에 숟가락 올리려는 하이에나들.”
“…….”
안 그래도 김연희의 신경을 긁던 문제다.
붕괴 현상을 조정한다는 상식을 초월한 발상. 이 발상만으로도 높은 점수를 줘야 하는데 직접 성과까지 냈다.
게다가 이 성과를 낸 대상은 아카데미 학생. 현역도 아닌 아카데미의 일원이다.
얼렁뚱땅 숟가락을 얹기에 좋은 상황.
실제로 이미 협회와 관리국, 아카데미와 헌터 연합까지 움직였다.
뭐, 여기까지는 이해한다. 이들은 직접적인 지원을 했으니까. 그런데 전혀 상관없는 이익 단체들까지 기웃거리고 있으니.
김연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우리 욕심쟁이 희땡이가 제 것을 남에게 뺏긴다고? 차라리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
“……넌 너무 날 잘 알아.”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잖아.”
“징글징글하네.”
“징글징글하지.”
픽, 마주 보던 두 사람이 웃는다.
“그래서 어쩔 거야.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도 움직이려고.”
“음, 괜찮아.”
“정말 괜찮아?”
“응, 정말로.”
이미 준비는 끝났다.
유해련의 말대로 김연희는 뺏으면 뺐었지 죽어도 뺏기지는 않는다.
“……뭐, 네가 괜찮다면야. 그건 그렇고 박 서방은 어디 있대?”
“유리부터 찾는 게 보통 아니야?”
“훗. 얘가 뭘 모르네. 사위 사랑은 장모인 것이야.”
“허, 기가 차네.”
“고생했는데 소고기라도 먹여야지. 어디 갔어? 집에 갔어?”
아무것도 아닌 질문이지만 김연희의 입에 미소가 걸린다.
무엇이 그리 급한지 헐레벌떡 달려가는 아들의 모습이 생각나서.
“기혁이는…….”
* * *
“헉헉!”
시간 맞췄다. 저 멀리 꽃가람 유치원이 보이고, 아이들이 선생님을 향해 배꼽 인사를 한다.
곧이어 각자의 어머니에게로 안기는 아이들.
그런 가운데 우울한 얼굴로 메르헴의 손을 잡는 아이가 보였다.
내 딸.
봄이었다.
“봄아아아!!”
나의 부름에 봄이가 고개를 돌린다.
“……아빠?”
마침내 우리의 눈이 마주치고.
서로에게 달려가 껴안는다.
“아쁘아아아아아!”
“봄아!”
눈도, 코도, 입도, 빵빵한 볼때기도. 하나하나 확인한 뒤에야.
비로소 실감했다.
내가 돌아왔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