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4화>
자이언트 엔트 떼가 샌드웜을 타고 올라 점액질 살점에 주둥이를 박아 넣는다.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는 샌드웜. 초록색의 끈적한 액체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샌드웜은 몸부림치며 몸에 붙은 자이언트 엔트를 떨궈 냈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자이언트 엔트. 버둥거리며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샌드웜의 주둥이가 더 빨랐다.
원형의 입이 벌어지며 수천 개의 이빨들이 자이언트 엔트를 덮치고, 믹서기에 갈리듯 분쇄됐다.
이 와중에 킬러 비는 비행형 몬스터의 이점을 살려 전장의 우위에 섰는데, 허공을 유영하며 마법을 폭격. 자이언트 엔트와 샌드웜의 머리 꼭대기에다 바람의 창날을 꽂아 버렸다.
비행기가 전쟁의 패러다임을 바꾼 것처럼 ‘날 수 있다’는 압도적인 강점. 이대로라면 킬러 비가 이 전투의 승자가 될 확률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킬러 비‘만’ 날 수 있을 때 이점이다. 자이언트 엔트 병정이 날개를 펴는 순간, 킬러 비는 더 이상 하늘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자이언트 엔트 병정은 두꺼운 장갑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공격력으로 킬러 비를 추락시켰고, 땅으로 추락한 킬러 비를 기다리는 것은 엔트들의 날카로운 주둥이들이었다.
자이언트 엔트, 샌드웜, 킬러 비.
이로써 조사대는 세 몬스터 세력을 무대 위로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킹메이커 작전’의 절반 이상은 성공한 셈.
이제 남은 건 디테일이다. 보다 완벽하게 그림을 가다듬는 것. 이를 위해 조사대 인원 대부분이 저격용 스코프에 눈을 대고 있었다.
“이번에는 저놈.”
방아쇠를 당긴다.
기다란 저격용 총신을 타고 격발된 총알은.
자이언트 엔트 병정의 뒤통수를 노리던 킬러 비의 머리를 가격했다.
키에엑-!
머리가 크게 휘청거리는 킬러 비.
하나 치명상은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발사한 총알은 몬스터 전용으로 나온 ‘마나탄’이 아닌 일반용.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보통의 탄이니까.
몬스터는 태어날 때부터 마나를 품고 태어난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마나가 신체를 순환하는데, 이 마나을 뚫을 수 있는 건 같은 마나뿐이다.
아니면 압도적인 화력을 투사하든가.
때문에 지금 맞은 총알은 킬러 비 입장에선 다소 아픈 돌팔매질 정도.
그래서 의미 없냐고?
전혀.
목숨이 오가는 전투에서는 사소한 빈틈도 치명적인 법.
킬러 비의 대가리가 휘청거린 순간, 그 찰나의 순간에 자이언트 엔트 병정은 몸을 돌려 발달된 앞발로 킬러 비의 몸을 끌어안아 부러트려 버렸다.
이와 같은 현상이 전장 곳곳에서 반복된다.
빗발치는 총알이 킬러 비의 행동을 막고, 샌드웜을 귀찮게 한다. 그리고 그럴 때면 자이언트 엔트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렇다.
조사대가 축축한 땅에 몸을 뉘인 채 익숙하지도 않은 저격총을 잡은 목적은 하나다.
자이언트 엔트의 승리를 위해서.
“진짜 답답하네. 그냥 마법 쓰면 안 돼?”
“아서라, 마법 쓰면 어그로 튀는 거 몰라?”
“그래, 좋게 생각해. 우리가 언제 총을 잡아 보겠어.”
“답답해서 그렇지. 마법 마렵다. 저 바글바글한 몬스터 덩어리들한테 ‘일렉트로닉 스톰’만 갈기면 얼마나 시원할까.”
“풋. 겨우 네 일렉트로닉 스톰으로는 티도 안 나거든?”
“어그로나 끌리겠지.”
“엔트 주둥이에 목이 뎅겅 안 하면 다행이게.”
“이 자식들이.”
“기운 넘치면 한 발이라도 더 쏴.”
“팀자아앙.”
“정 마법을 사용하고 싶으면.”
박진용이 턱짓으로 허공을 가리킨다.
“저렇게 하면 돼.”
저렇게?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향하고.
그곳에는.
“무야호오~~!!”
“시끄럽다니까!”
시야마저 확보하기 쉽지 않은 전장의 한복판을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두 사람.
박기혁과 진유리.
그들이 닿기에는 너무도 아득한 후배님들이 있었다.
“아…….”
“그냥 총이나 쏘자.”
“생각 잘했어.”
조사대원들이 충실히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 * *
팡- 팡- 팡!
폭죽처럼 터지는 진홍색 불꽃.
킬러 비와 자이언트 엔트 병정 모두에게 공평한 죽음을 주고 있는 죽음의 화마 속에서 진유리가 솟구치고 있다.
“우와아아~!”
물 반 고기 반. 아니, 몬스터 반인가.
어쨌든 대충 쏴도 다 맞는다.
즐거워라.
진유리는 해맑게 웃으며 상승 기류에 몸을 맡긴다. 그런 그녀를 뒤따르는 몬스터 무리. 폭발에 휩쓸린 킬러 비와 자이언트 엔트 병사들이다.
독기가 바짝 오른 상태로 진유리를 바짝 추격.
그녀가 코맹맹이 목소리로 우는 소리를 하는데.
“후에엥, 살려 줘어어~.”
그 순간.
그녀의 주위로 어지럽게 새겨지는 육망성 마법진.
“좀 조용히 해.”
퍼즈
Pause
잠깐의 멈춤.
진유리를 뒤따르던 몬스터들이 일시에 멈춰 섰고.
박기혁의 대검, 마귀가 검광을 흩뿌렸다.
검호류 발검술
단두대
푸쉭-!
멈춰 있던 몬스터들의 머리에서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모두 잘려진 머리에서 뿜어져 나온 체액. 곧이어 방금까지 몬스터였던 시체 덩어리들이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박기혁과 진유리가 나란히 하늘을 나는데, 박기혁이 가까이 있는 킬러 비를 두 동강 내며 말했다.
“병정 엔트 끌고 오지 말라 했지.”
“나는 안 때렸거든. 지들이 쫓아온 거거든!”
진유리는 ‘썬더 볼트’로 킬러 비를 태우며 답했고.
“쫓아왔으면 떨쳐 내. 마법은 폼이냐.”
“와, 나 무시당한 거임? 내가 쓰는 건 마법도 아니라는 거야?!”
박기혁의 ‘플레어’가 허공에 불길을 만들면.
“왜, 상처받았냐?”
“상처? 전혀! 날 이렇게 대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짜릿해. 늘 새로워. 역시 갖고 싶어!!”
이에 질세라 진유리의 플레임 스피어가 한 다발 쏟아진다.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응, 사랑한다고? 나도얍.”
헬멧까지 벗겨지며 윙크하는 진유리.
그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 웃는 박기혁.
한마디 한마디 시답잖은 대화가 오고가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쉼 없이 마법을 난사했다.
“인간적으로 우리 너무 잘 맞는 것 같지 않아?”
“시끄러워.”
플레임 에어리어, 파이어 레인, 콜 라이트닝, 라이트닝 쇼크 등등.
곤충형 몬스터의 상성 속성인 불과 번개, 이 두 가지 속성의 마법이 하늘에 번쩍일 때마다 킬러 비들은 저항도 못 한 채 아래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착실히 줄어드는 킬러 비 무리들.
“근데 언제까지 잡아야 하는 거야?”
“힘드냐? 힘들면 쉬어.”
“힘들긴! 그냥 지겨워서 그렇지! 언제까지 킬러 비만 잡을 거야. 너 뒤에.”
“조용.”
화르륵!
박기혁의 등 뒤로 치솟는 불길.
숯덩이가 된 킬러 비가 아래로 떨어졌다.
동시에 던져진 마귀가 진유리의 등을 노리고 달려드는 두 마리 킬러 비 중 한 마리의 머리를 꿰뚫고, 옆에 있는 놈은 직접 주먹으로 머리를 가격, 정신을 못 차리는 킬러 비의 머리를 마귀를 잡아 썰어 버렸다.
순식간에 셋을 지운 박기혁이 숨을 고르며 질문에 답했다.
“균형만 깨지면 돼. 그때면 나도 빠질 거야.”
현재 치열하게 전투 중인 세 몬스터 세력이 이제껏 평화로웠던 이유가 무엇일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갑작스레 떨어진 게이트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서식지를 갖추려고?
이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곤충형 몬스터에게 서식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니.
물론 기존의 주인인 ‘사마귀 여왕’ 멘티스의 눈치를 본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갖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박기혁이 보기에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비등비등해서.
어느 하나 확실한 전력의 우위를 점하지 못하니까.
이들은 몬스터다. 태생이 호전적인 놈들이다.
이길 수 있단 확신만 든다면 왜 싸우지 않겠나? 말려도 싸웠을 거다. 누구보다 앞장서서 다른 종을 뜯어먹고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하다. 섣불리 주둥이를 들이밀기에는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며 먼저 움직인 놈은 틀림없이 먹히는 기묘한 균형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 박기혁과 진유리를 포함한 조사대 전원이 자이언트 엔트를 지원하는 이유 또한 이 ‘균형’을 깨트리기 위한 것.
“헤에, 그렇구나. 그래서 멘티스를 차단한 거야? 걔들은 확실히 전력이 우위니까?”
“맞아. 이 균형은 멘티스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킬러 비가 벌집을 만들고, 샌드웜이 터를 잡았으며, 자이언트 엔트가 번식을 시작한 것 모두 멘티스가 아무것도 안 하는, 철저한 방관자로 남았기에 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얘는 대체 작전 시간에 뭘 들은 건가. 몇 번을 설명한 건데 어떻게 하나도 모를 수 있는가.
박기혁이 진유리를 빤히 봤다.
“너 작전 시간에 졸았냐?”
“에이, 설마.”
“그렇지, 설마 그 정도까지…….”
“당연히 잤지! 내가 그 지루한 시간에 깨어 있을 필요 있어? 네가 있는데.”
“……쓸데없이 당당하지 마.”
박기혁이 한숨을 쉬며 손가락을 튕긴다.
마법진이 어지럽게 얽히고, 수식을 완성하기 무섭게 진유리가 마법진에 손을 뻗어 마나를 ‘당기는’ 순간 발동.
매직 미사일이 하늘을 가릴 듯 내려쳤다.
콰강, 콰강! 콰과아앙-!
초토화되는 하늘.
제삼자가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할 광경이었다. 대단위 마법을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완성됐으니까.
박기혁의 제어력과 진유리의 장악력이 결합된 법칙을 벗어난 연계. 그러나 정작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한 당사자는 아무 감흥이 없었다.
“배고파. 이거 끝나고 아까 봤던 ‘여왕벌’ 잡으러 갈 거지?”
“아마도. 킬러 비 여왕은 좋은 재료거든.”
“빨리 잡고 떡볶이 먹자. 하루 종일 곤충 비린내만 맡으니까 급 매운 거 땡기네.”
“니가 해라.”
“아, 왜에에.”
아니, 처음부터 긴장한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이 전장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존재는 없었으니까.
“슬슬 샌드웜 처리하러 가자.”
“떡볶이 해 주는 거지?”
“생각해 보고.”
“야아아~.”
여유로운 대화를 하며 샌드웜에게 날아가는 두 사람.
이 둘에게 이번 작전은 이런 거였다.
여유롭게 즐기며 놀 수 있는 여흥거리 말이다.
그렇게 세 몬스터의 운명을 건, 그러나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는 대전쟁이 벌어진 지 3일.
마침내 킹메이커 작전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 * *
동굴 안.
우리는 캄캄한 어둠 속을 걷고 있다.
“이거만 잡으면 끝이야?”
“아마도.”
“이제야 제대로 싸울 수 있겠군.”
코끝으로 악취가 진동한다. 굳이 묘사하자면 시체 썩는 냄새랄까.
“못 견디겠어. 우웨엑!.”
“드래고니안 착용해. 정화 시스템 있잖아.”
“그래도 너만 이 시궁창에 남겨 둘 순 없잖아.”
“왜 나는 빼는가.”
“준우야,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너 참 눈치 없다. 누나 낭군님이랑 이야기하고 있잖아.”
굶주린 샌드웜은 살아 있는 생물을 보이는 족족 먹어치운다.
죽어 있든 살아 있든, 그게 뭐든 간에 배를 채우고 강력한 위액으로 소화를 시키고, 이때 소화하고 남은 찌꺼기가 분비물로 나온다.
이 분비물을 이용해 토굴을 만드는데 악취가 심할 수밖에. 말이 분비물이지 인간으로 치자면 대소변이잖나.
“한데 기혁, 정말 우리끼리 괜찮나. 상대는 ‘엘더 샌드웜’이다.”
“괜찮아.”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솔직히 말은 안 했는데 킬러 비 퀸 상대할 때도 버거웠어.”
“킬러 비랑은 달라. 얘는 진짜 별거 없어.”
샌드웜은 오묘한 몬스터다.
곤충형 몬스터라면 응당 무리화, 혹은 공동체를 이루는 게 보통인데, 얘들은 독립 성향이 강하다. 사냥 시 언제나 단독 행동을 하는 것은 그 증거.
그런데 이런 독립 성향에도 불구하고 또 웃긴 게, 사냥이 끝나 배가 부르면 귀신같이 서식지로 돌아온다. 마치 술이 잔뜩 취해도 잠은 집에서만 자야 하는 인간처럼 이해 못 할 귀소 본능이 있단 말이다.
“킬러 비 퀸이나, 자이언트 엔트 여왕은 기본적인 지능이 있다. 때문에 확실한 명령 체계를 구축할 수 있어. 킬러 비 퀸이 친위대 운용하던 거 기억나?”
“확실히 괜찮았다.”
“네 말대로 빨리 치는 게 정답이었어. 겨우 3마리니까 쉽게 잡았지, 조금만 더 많았으면 골치 아플 뻔했잖아.”
“반면 이놈, 엘더 샌드웜은 그딴 거 없어. 얘가 하는 건 그냥 서식지를 지키는 것, 불침번일 뿐이야.”
물론 서식지의 규모가 커지고 몇 가지 조건이 갖춰지면 샌드웜에 ‘왕’이 태어나기도 한다. 그러면 집단행동에 들어가는데, 그 파괴력은 전율적이라고도 한다.
전생에 사막 도시 하나가 통째로 침식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게 샌드웜 킹의 소행이라고 들었다.
“기혁아.”
“응?”
“저기, 저기 좀 봐. 빛이야.”
도착한 것 같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이후 있을 현실에 집중했다.
캄캄한 어둠의 세계에서 빛이 보인다. 마치 구원자의 손길처럼, 일견 성스럽기까지 한 빛.
하지만 저 빛의 끝에 있는 건 구원이 아닌 전투였으니.
키에에에엑-!
엘더 샌드웜이 몸부림치며 격하게 환영했고, 난 ‘마귀’를 빼 들고선 이에 정중히 화답했다.
검호류 발검술
달빛 베기
지하 공동에 일렁이는 달빛.
전투는 이미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