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3화>
쿠직, 쿠직.
자이언트 엔트가 여기저기 숲을 뒤적인다. 정신없이 주둥이로 숲을 찔러 대는 자이언트 엔트. 아무리 봐도 먹이를 찾는 것만 같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숫자의 자이언트 엔트들이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숲을 들쑤시고.
이름 모를 거대 꽃봉오리 뒤에 숨어 있던 박진용은 그 모습을 보고는 침음을 흘렸다.
“…….”
정말이었나. 박기혁의 말이.
“지금 자이언트 엔트가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소극적으로 활동하는 건, 녀석들이 약해서나 겁이 많아서가 아니야. 여왕을 보호하기 위해서지.”
“자이언트 엔트는 철저히 여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몬스터. 녀석들은 여왕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움직이지 않아.”
“그러다 터를 잡고, 안전이 확보되면 여왕은 본격적으로 번식하게 되는데, 이때가 가장 난폭할 때야. 응? 왜냐고? 그건…….”
“……이제껏 못 낳았던 알을 한번에 낳는다, 라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자이언트 엔트가 여왕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알았다. 서식지가 안정되면 개체수가 증가하는 것 또한 안다.
하지만 박기혁처럼, 마치 자이언트 엔트를 전문적으로 연구했던 연구원만큼 세세한 습성과 생리까지는 알지 못했다.
“……난놈은 난놈이야.”
사사로운 생각은 이제 그만.
다시 작전에 집중하는 박진용.
바쁘게 눈을 굴리며 오브에 적힌 숫자와 아래에 지나가는 자이언트 엔트의 숫자를 비교했다.
‘211.’
미리 설치해 뒀던 탐지 장비가 카운팅한 자이언트 엔트의 숫자였다.
‘예상대로.’
그가 있는 이곳은 자이언트 엔트의 서식지와 가장 가까운 1지역. 상식적으로는 서식지 근처에 가장 많아야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박진용이 심각한 표정으로 통신을 켰다.
“다른 곳 카운팅 상황은?”
- 2지역, 182마리.
예상대로 200마리 이하.
- 3지역, 159마리.
여기도 예상대로.
마지막. 이 작전의 핵심인 4지역은.
- 4지역, 387마ㄹ…… 방금 한 마리 추가돼 388마리입니다.
다행히 예상대로다.
서식지 근방인 1지역보다 많은 숫자가 왜 저기에 있냐고 묻는다면, 저곳이 멘티스 영역과 맞닿은 곳이기 때문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먹이’가 풍부한 곳이란 뜻.
- 허, 와…… 진짜. 보는데도 어이가 없네.
“왜.”
- 그게 팀장. 여기 엔트가 멘티스를 사냥해 가는데.”
“그래서, 말 똑바로 해.”
- 산채로 들고 가요! 팔 자르고, 다리 자르고, 몸통만요. 저거 산 채로 먹겠다는 거죠? 와, 자이언트 엔트. 그렇게 안 봤는데 잔인하네.
“……쓸데없는 데 정신 팔지 말고, 집중해라.”
사지를 자르고 바치든, 산 채로 먹든, 지금 조사대에게 중요한 건 녀석들의 배달 기술 따위가 아니다.
“모두 작전 기억하고 있을 테지만, 다시 설명한다. 우리 1팀은 차단막이 설치되면 엔트를 ‘작전 위치’까지 유인하는 역할이다. 동선 체크 다시 하고, 타임 라인에 신경 쓰도록. 너무 빨라도, 느려도 안 된다. 이상.”
네! 확인! 옛설! 알겠습니다!
답이 들려온다.
우리는 끝.
이제 남은 건 저쪽이다. 무전용 오브를 조작해 마나 파장을 바꿨다.
“1팀은 끝. 차단막 설치만 완료되면 언제라도 움직일 수 있다.”
- ……잠깐만. 기다려 봐.
* * *
“……잠깐만. 기다려 봐…… 금방 끝나. 알았어. 미안하다.”
무전을 끊은 정소이의 눈이 표독스럽게 떠올랐다.
“씨발, X같네.”
평소 인상 좋고, 웬만한 일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정소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소의 모습이고, 지금은 작전 상황. 어쩌면 향후 자신과 팀의 미래를 결정할 중요한 실적이 달린 일이다.
그런데 이런 일생일대의 기회에 실수를 해?
“대가리는 장식이야?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차단막 설치한다고 회의에서 몇 번을 강조했는데, 가져오라는 차단막을 안 들고 오고, 뭐? 마나석?”
“참아, 정소이.”
“아오! 열 받아! 쪽팔리게!! 박진용이 꼽 주는데 암 말도 못 했어. 아무 말도 못 했다고! 믿겨져?!”
“…….”
“나중에라도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비웃겠어. 하, 이제는 나까지 웃음이 나오네. 부팀장아, 우리가 애들 너무 풀어 줬던 게 아닐까. 긴장이란 걸 하면 실전에서 이런 실수 못 하지. 안 그래? 넌 어떻게 생각해?”
“조지든 뭐든, 일단 작전 끝나고 생각하자. 흥분 가라앉히고. 너 흥분하면 실수 자주하는 거 알지? 심호흡하고 스마일, 억지로라도 웃어야 해.”
“후우-.”
부팀장의 말에 정소이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웃는다.
평소의 사람 좋은 웃음.
이처럼 그녀가 매일 밝은 표정을 짓기에 그저 성격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사실 그녀에게 이 웃음은 일종의 루틴이다. 최상의 컨디션을 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행동인 것이다.
“괜찮아?”
“좋아, 한결 좋아졌어. 마음 가라앉히고 마지막으로 작전 점검이나 하자.”
“알았어.”
정소이가 무전을 켠다.
그리고 평소의 밝은 목소리로.
“3팀 전원 위치에 있지? 본의 아니게 작전이 지연되고 있는 점 사과할게. 어쩌겠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잖아. 그래도 놀 순 없으니 남는 시간에 마지막으로 점검할게.”
3팀의 임무는 멘티스의 영역 반경에 차단막, 정확한 명칭은 ‘인식 저해 차단 마법’이 걸린 장비를 설치, 이후 1팀이 자이언트 엔트를 ‘지정 위치’로 몰이할 때 길을 터 주는 역할이었다.
“우리에게 제일 필요한 건 뭐다?”
무전이 동시에 올린다.
- 기동력!!
“좋았어. 우리 3팀은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해야 해. 버프는 필수, 각자 장비 점검하고, 비상시 헤이스트 물약 아끼지 마.”
말을 하는 도중에 부팀장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차단막이 도착했다는 뜻.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다치지 마.”
성질이 더럽니 어쩌니 해도 지금 이 말은 진심. 다른 건 몰라도 내 새끼들 다치고 죽는 건 못 본다.
잠시 뒤, 필드를 가로지르는 우윳빛 마나 장막.
차단 마법 발동.
정처 없이 배회하던 멘티스 무리가 장막 앞에서 뒤돌아 가고, 그사이 정소이를 필두로 3팀 전원이 숲을 향해 맹렬히 질주하고 있었다.
* * *
작전명 킹메이커.
이 작전의 시작은 붕괴 현상의 ‘본질’에서부터 시작한다.
게이트 생태계 붕괴.
게이트에 새로운 이종의 몬스터가 등장해 기존의 서식하던 몬스터를 공격, 생태계를 부수는 현상이다.
현재 전 세계의 게이트는 붕괴 현상이 진행되며 여러 형태로 변화되고 있는 상황.
멸종, 흡수, 변이, 진화 등등.
변수에 변수가 더해지고 거기에 또 변수가 더해진 다양한 변수가 발생했고, 인간은 이제 이 붕괴 현상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게 됐다.
감히 인간이 대자연의 뜻을 알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는 지금껏 진행된 붕괴 현상.
모두가 아는 이야기고,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사실이다.
그런데 말이다, 박기혁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게 왜 충격에 빠질 이야기야?”
이종의 몬스터 출현? 생태계 파괴? 무수히 많은 변수로 이뤄지는 현상?
그래, 놀랍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어디까지나 붕괴 현상 자체가 놀라운 거지, 변화는 전혀 놀랍지 않다.
오히려 당연한 거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인간이 늙어 가는 것처럼.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변화란 가장 자연스러운, 세계의 흐름 중 하나다.
“오히려 여태껏 게이트에 변함이 없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냐? 비슷한 말을 위그드라실한테도 했던 것 같은데, 변할 때가 돼서 변하는 거다. 영원히 게이트가 변치 않길 바라는 건 인간의 욕심이지.”
그래서 이 붕괴 현상이 자연스러운 변화, 혹은 흐름이라고 봤다.
그렇다면 이 붕괴 현상의 본질은 무엇일까.
쉽다. 결과만 보면 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 붕괴 현상의 끝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으니까.
“강화. 게이트가 ‘강화’되고 있다. 이게 이 현상의 본질이야.”
붕괴 현상에서 ‘붕괴’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강화되는 게 본질이자 핵심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붕괴 현상의 본질은 강화다. 이 현상은 많은 변수를 갖고 있지만 결국 강화로 결말을 맺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시도해 볼 것은 무엇이 남았을까?
박기혁의 생각으로는 하나뿐이다.
“결말을 막는 거지.”
인위적으로 붕괴 현상을 조정해, 양측의 균형을 맞춘다.
전투를 지속하게 하되 누구도 승리할 수 없게.
“이야기의 결말을 맺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영원히 지속된다.”
게이트 ‘사마귀 여왕의 궁’에서 멘티스에 비견될 세력이 등장하면?
전투가 계속된다면?
대치 구도가 길어진다면?
결국 붕괴 현상은 현상이 아닌 하나의 진실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모든 가정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킹메이커
King Maker
“왕, 사마귀 여왕과 비견될 만한 왕이 필요해.”
왕을 만든다.
우리는 이곳의 주인인 멘티스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는 신세력의 왕을 옹립해야 하는 것이다.
* * *
남자가 나뭇가지 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다람쥐처럼 날쌔게 작은 틈을 날 듯이 통과하는 남자.
“후우! 후우!”
유려한 낙법으로 바닥을 구르고는 자연스럽게 일어서, 달린다. 죽어라 달려 나갔다.
농담이 아니다. 늦으면 진짜 죽으니까.
조금이라도 발이 멈추면 저 미친 개미 떼에 짓밟혀 반드시 죽는다.
콰지지직!
키에에엑~!
새액- 새액.
방금 전 남자가 몸을 밀어 넣었던 나무가 자이언트 엔트에게 부서지고, 이어지는 엔트 무리의 발길질에 흔적도 사라졌다.
도망치는 남자, 끈질기게 쫓는 자이언트 엔트 떼.
보통이라면 인간을 이토록 집요하게 쫓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멘티스라는 훌륭한 먹잇감이 지천에 널렸는데 굳이 인간을 쫓을 필요가 있겠나.
하지만 몇 가지 요소가 자이언트 엔트를 미치도록 만들었다.
하나, 여왕의 본격적인 번식으로 양질의 먹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점.
둘, 설치된 차단막 탓에 더 이상 멘티스들이 엔트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
셋, 몰이꾼이 들고 있는 ‘상급 마석’이 압도적으로 영양가가 있어 보인다는 점.
이 세 가지가 결합되어 자이언트 엔트 무리에게 저 도망가는 인간은 ‘여왕님의 번식을 위해 꼭 필요한 영약’쯤으로 해석되는 게 현재 상황이었다.
그리고 이 상황은 필드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젠장!”
“쉴 틈이 없네.”
“힘들다아아아!!”
“체력 회복! 체력 회복!”
필드에 원을 그리듯 빙빙 돌며 절대 겹치지 않게, 완벽히 계산된 동선으로 조사대는 더 많은 자이언트 엔트 떼를 모으고 있었다.
1300…… 1400…… 1500…….
더! 더! 더 많은 엔트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내, 자이언트 엔트 서식지에서 최정예 병력인 ‘병정’까지 출동하는 순간.
1800!
여기가 끝이다. 이게 현재 자이언트 엔트의 한계치다.
“됐어. 모두 ‘위치’로!”
박진용을 필두로 숲을 뛰어다니던 조사대들이 일거에 어느 곳을 향해 달려갔다.
“몰이 인원 제외하고 전부 빠져!!”
거대 꽃 위에서 아래로 지원하던 정소이. 그녀와 마찬가지로 곳곳에서 숨어 몰이꾼을 버프로 지원하던 조사대들이 전부 몸을 돌려 작전 구역을 이탈했다.
“도착 10초 전.”
몰이꾼이 두 명씩 한 조가 된다.
“9.”
한 명이 ‘상급 마석’을 받고, 한 명은 작전 지역에서 이탈.
“8.”
또다시 둘이 모이고.
“7.”
다시 한 명에게 마석을 몰아주고 이탈.
“6.”
다시 모인다.
“5.”
다시 이탈한다.
“4.”
모이고.”
“3.”
이탈.
“2.”
이제 남은 몰이꾼은 박진용 한 명뿐.
주렁주렁 매달린 상급 마석이 호사스럽게 반짝이고.
“1.”
마침내 목표 지역에 도착.
그럼에도 특별히 달라진 건 없다. 비슷한 숲, 비슷한 식물, 비슷한 하늘.
지형도 똑같다.
달라진 건 사방을 포위한 상태로 접근해 오는 자이언트 엔트 정도.
자이언트 엔트 무리들이 시시각각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박진용의 눈에는 그들이 마치 죽음의 해일 같았다. 일단 휘말리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질 거다. 눈을 떠 보면 그곳이 저승문 앞이겠지.
하지만 괜찮다.
자신이 저 죽음의 해일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으니까.
부스럭거리며 숲을 헤치고 나오는 남자.
“대뜸 잡아 와 놓고, 뒤처리나 시키다니.”
약간은 졸린 듯한 눈매의 남자. 하지만 졸린 듯한 눈매 뒤로 날카롭게 빛나고 있는 눈빛.
칼날처럼 섬뜩한 눈빛을 품은 이 남자는.
“가만히 있어라.”
화려하고, 고고하며, 우아한.
가장 아름다운 검사.
무희 한준우였다.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잊을 수 있는 축복.
망각이리라.
망각의 춤.
흔적도 없이 사라진 두 사람.
둘이 사라진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상급 마석 세 알.
곧이어 도착하는 자이언트 엔트 떼.
선두에 선 자이언트 엔트의 주둥이가 상급 마석에 닿으려 하는 순간.
쿠아아아아아아아아!!
땅을 뚫고 나오는 건.
샌드웜.
그렇다.
이곳은 샌드웜의 서식지였다.
그러나 아직 끝이 아니었는데
* * *
퓌유우웅-!
빛살처럼 허공을 뚫고 작전 위치에 도착.
작전은 무사히 진행됐나 보다. 샌드웜과 엔트가 한창 싸우는 중이다.
“일단 쟤들부터 회수해, 진유리.”
“옹.”
붉은 빛살이 하강하고, 잠시 후 상승하는 진유리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건.
한준우와 박진용.
“망각의 춤이라는 거, 공간 이동이 아니라 어그로를 사라지게 하는 거였나.”
“뭘 바랬나.”
“아무리 그래도 선배인데, 말이 짧아.”
“싸워서 이기면 말 높여 주지.”
투덕투덕, 매달린 상태로 잘도 으르렁댄다.
“진유리, 안전한 데 내려 주고 쉬어. 안 와도 돼.”
“쉬긴, 금방 올게.”
진유리가 전장을 이탈하고 이제 이 전장에 인간은 나뿐이다.
느긋하게 아래를 구경하자, 자이언트 엔트와 샌드웜이 필사의 전투 중.
자이언트 엔트는 상급 마석과 샌드웜이라는 양질의 먹이를 위해. 샌드웜은 느닷없이 들이닥친 침입자에게서 서식지를 지키기 위해.
양측 다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치열한 전장.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에 비하면 멀었다.
막말로 겨우 여기서 끝낼 생각이라면 물자도 필요 없이, 나랑 진유리만 있어도 충분하다.
“올 때가 됐는데.”
벌집에다가 아포칼립스를 두 방이나 갈겼는데 안 오면 섭섭하다.
하늘 저편 멀리서 검은 안개가 밀려온다. 곤충계 몬스터답지 않게 풍 속성 마법을 써 검은 폭풍이라고도 불리는 몬스터.
킬러 비.
참전.
“지금부터 서로 죽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