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62화 (6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62화>

쉬유웅-

구름을 뚫고 나오는 진유리.

박기혁이 퍼트린 마법진.

진유리의 임무는 이 인위적인 마나의 공간에서 샌드웜의 마나를 잡아 추적하는 것이다.

끊길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떨리는 마나의 선.

이 마나의 선이 자연으로 흩뿌려지기 전에 찾아내야 한다.

“드래고니안. 리미트 해제.”

- 리미트 해제.

드래고니안의 등 뒤로 마나의 날개가 펼쳐졌다.

정식 명칭 ‘진룡의 날개’.

붉은빛 마나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며 날개가 빛을 발하는 순간.

- 한계 돌파.

드래고니안의 투박한 기계음이 들리며 진유리의 시야가 점멸했다.

이전의 비행이 그냥 활강이라면, 지금은 신관을 뚫고 쏘아진 총알처럼 하늘을 꿰뚫는 진유리.

팡! 팡-!! 파앙--!!!

몰아치는 소닉붐.

음속의 속도로 마나의 선을 추적하고.

마침내 도착. 급히 무전을 넣는다.

“찾았어!”

순식간에 허물어지는 박기혁의 마법진.

핼멧 부분이 벗겨지며 머리를 드러낸 진유리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별거 없다. 흔한 풍경. 저 밑에 샌드웜의 서식지가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이걸 순수하게 마나 탐지로 찾아야 했다면? 한세월이었겠지.

새삼 박기혁의 능력에 혀가 내둘러지는 그녀였다.

“이게 되네.”

발동하지 않은 마법진으로 필드를 뒤덮고, 마법진 영역에서 몬스터가 가지는 특유의 파장을 찾아낸다.

이론은 쉽다.

그런데 이 필드가 거의 도시 면적이라면?

백이면 백, 불가능하다고 말할 것이다.

어마어마한 마나가 소모되는 것은 둘째치고, 제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도조차 불가능하니까.

하지만 박기혁은 해냈네?

“게다가 풀 컨디션이 아닌 상태로.”

바포메트와 아수라. 키메라와 펜릴.

각각 팔과 다리를 맡고 있는 외부 마나 홀 중 두 개가 없는 상태.

핸디캡을 갖고도 이 정도란 말인 것이다.

“왠지 분한걸.”

많이 쫓아왔다고 생각했다.

초인 강대국으로 불리는 한국.

그 한국에서 마법 명가라 불리는 진룡.

진룡의 역대급 재능이라 불리는 진유리.

천재라는 말도 모자랄 정도의 재능이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노력했다. 박기혁에게 닿기 위해서.

역대급 천재가 노력까지 한다. 게다가 그 천재의 배경마저 무시무시하다.

진룡 가문.

이 명망 높은 가문은 이런 진유리의 노력에 무제한으로 지원할 충분한 여력이 됐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드래고니안 모델-1.

부족한 진유리의 육체 능력을 보완하고, 장점인 용의 눈과 마나 드레인을 극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진유리 전용 워 아머였다.

이것도 모자라, 지난 1년간 그녀는 본인의 마법 경지까지 올리게 된다.

진지하게 마법에 몰두한 끝에 박기혁이 말한 온전한 ‘자신만의 진리’를 마법에 투영하는 경지, ‘고유 마법’에 첫 발자국을 뗐다.

실제로 현재 진유리는 박기혁을 제외하곤 아카데미 내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 이는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까지 포함해서다.

이만하면 나 강한 게 아닐까?

그런데 이런 그녀의 자신감이 오늘 흔들렸다.

“더 노력해야지.”

오히려 좋아. 홀로 길을 개척하는 것은 그녀의 스타일이 아니다. 더 이상 외로운 건 싫으니까.

박기혁이 갔던 길을 따라가면, 그래서 그에게 닿는다면, 적어도 그녀 앞에는 한 사람뿐일 거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저런 엄청난 재능과 나의 재능이 합쳐지면.

얼마나 완벽할까?

“역시…… 우리는 운명이야. 내가 가질 수밖에 없어.”

히히히~.

진유리가 실실 웃으며 무전을 들었다.

“시스터 TMI. 위치 보냈어. 복귀할게.”

- 네, 알겠습니다아!

진유리를 하늘 저편으로 사라지며 생각했다.

이름은 뭐가 좋을까?

*   *   *

“여름이가 좋겠어.”

“……무슨 말이야.”

얘가 또 잘못 먹었나. 대뜸 여름이라니? 아니, 생각하기도 싫다. 헛소리가 터진 진유리랑 씨름하기에는 지금 내 상태가 영 메롱이었다.

“여름이 좋겠어. 그다음은 가을…….”

“비켜.”

“그다음은 겨울. 딱 맞잖아.”

중얼거리는 진유리를 지나쳐 일단 침상에 누웠다.

후, 살 것 같다. 간만에 마나를 텅텅 비웠더니 정신이 혼미하다.

등 뒤로 온기가 느껴진다.

안 봐도 뻔하다. 진유리다.

슥슥, 쫙쫙.

뭔가 짜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굴에 차가운 무언가가 닿는다.

“깜짝이야. 뭐야?”

“닦아 주는 거야. 가만있어.”

“됐어. 나중에 씻을 거야.”

“나 더러운 거 싫어하는 거 몰라? 닦아 줄 때 감사하게 받아. 괜히 튕기지 말고.”

“참 나.”

알아서 해라. 내버려 둔다.

생각해 보니, 그냥 ‘클린’ 마법으로 해결할 수 있으면서 유난이다.

그래도 뭐, 썩 나쁘지는 않다.

진유리의 손길에 몸을 맡긴다. 노곤한 기분이다.

“너도 여름이 낫지?”

“……겨울이 좋지.”

더운 것보다는 추운 게 나으니…….

졸린다.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진유리의 헛소리를 자장가 삼아 스르르, 눈이 감겼다.

“어…… 수 없…… 넷은…… 낳…… 지. 힘…… 자.”

*   *   *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한숨 푹 자고 나니 어느새 다음 날이었다.

부스스 일어나서 시계를 보자 한창 아침 회의가 진행될 시간.

아무리 나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조사대의 일원인 이상 기본적인 건 해야 한다. 그게 예의 아니겠나. 최소한 얼굴은 비춰야 맞다.

“어이, 진유리.”

“응냥~ 가으리~ 겨우리~.”

“진유리! 일어나.”

침낭을 통째로 들어 세웠다. 기우뚱, 중력에 허리가 접히니 잠을 깨는 진유리.

“……여보?”

응, 아직 덜 깼어.

“아악! 깼어, 깼어! 흔들지 마앗!”

한차례 실랑이를 끝내고 천막을 나섰다. 곧바로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우리.

한창 회의를 주도하던 박진용이 이쪽을 보고는 눈인사를 한다. 늦어서 미안하니 목례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한편 어떤 남자랑 이야기 중이던 김하니는 우리를 확인했는지 이쪽으로 달려오는데.

“오셨어요?”

“오올~ 시스터 TMI. 쟤는 누구야? 남친?”

“아, 아니에요. 그냥 동기예요.”

“에이, 분위기가 그냥 동기가 아닌데. 언니한테 말해 봐. 남친이 아니라면 썸남인가?”

“아니라니까요오.”

재미있는 먹잇감을 찾은 진유리와 손사래를 치는 김하니.

흥미로운 광경이었지만 정작 내 시선을 뺏은 건 따로 있었다.

“흐음.”

저 남자. 방금 전까지 김하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저 녀석이 왜 이렇게 눈에 밟힐까.

희한하네.

사내놈이 귀걸이를 해서인가? 확실히 저 커다란 십자가 귀걸이가 독특하긴 했다.

녀석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빙그레 웃으며 이쪽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너무 뚫어져라 봤나 보네. 괜히 민망하다.

“쩝, 기분 탓인가.”

시선을 돌리며 신경을 끄자, 점차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어수선하면서도 약간은 심각한 분위기. 그런 가운데 흐르는 미증유의 긴장감.

확실한 건 매번 보던 회의와는 확연히 달랐다.

김하니를 부른다. 대충 돌아가는 사정은 알기 위해서.

“무슨 일이야?”

“그게요, 오늘 아침에 외부에서 전령이 왔는데요…….”

마치 물어볼 줄 알았다는 듯 김하니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외부에서 온 전령. 그의 손에 들려 있던 보고서는 현재 전 세계의 게이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태계 붕괴 현상’을 정리한 최신 정보였다.

“……우리가 말하는 ‘붕괴 현상’은 게이트 내에 이종의 몬스터가 소환돼, 기존의 몬스터랑 충돌하는 거였잖아요.”

“그렇지.”

“그런데 이게 점점 다른 식으로 변화하는 것 같아요.”

충돌이 생겼으니 응당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 법.

하지만 단순히 이겼다, 승리했다, 로 끝내기에는 그 결과가 예상을 벗어났으니.

패배한 쪽이 ‘멸망’당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경우.

반면 지능이 조금 있는 개체는 부하 혹은 노예로 부리는 방식으로 ‘흡수’하기도 하고, 여기서 더욱 머리가 좋은 놈들은 이들을 이용해 새로운 개체로 ‘변이’를 이뤄 낸 경우도 있었다.

이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변화가 이뤄지는데, 단 하나, 공통적인 부분이 있으니.

“……‘강화’가 진행되고 있어요.”

“잠깐. 강화? 몬스터가 강해진다는 말이야?”

진유리의 물음에 김하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몬스터가 강화되는 것은 물론이고요, 게이트까지 강화되고 있어요.”

김하니가 예를 든 것은 ‘검은 숲’.

국민 사냥터로 블랙 트롤이 나오는, 우리가 가장 최근에 다녀온 게이트였다.

“……현재 검은 숲에는 특이 트롤이 나오고 있어요. ‘약화’나 ‘쇠약’을 걸던 재앙을 강화시켜 ‘환각’이나 ‘광폭화’처럼,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엘리트’ 트롤이요.”

정확히 벤시가 모두 사라진 시점부터 엘리트 몬스터가 생성됐고, 이는 기존의 트롤보다 세 배 이상의 전투력을 뿜어냈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검은 숲’ 필드 전체에 ‘악몽’ 디버프가 걸린 게 확인됐대요.”

수면 상태에서 대상의 체력을 깎아 먹는 저주 ‘악몽’.

당장은 몸에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건 아니지만, 중첩되는 저주라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저주였다.

“결국 이런 이유로 ‘협회’와 ‘관리국’은 검은 숲의 게이트 레벨을 상향 조정할 예정이라고 하네요.”

붕괴 현상이 단순히 영역 다툼이 아니라는 증거가 나왔다. 문제는 이 사실을 알았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게이트의 생태계는 변하는 게 확정. 이제 인간이 게이트에 적응해야 되는 시간이 온 것이다.

“회의가 길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조사의 방향이 달라졌거든요. 기존의 목표는 새로 생긴 생태계를 파악해, 붕괴 현상의 피해를 최대한 축소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와서 소용없어진 거죠.”

“골치 아파졌네.”

김하니에게서 전말을 듣고 나니, 회의장에 감도는 이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해가 됐다.

박진용은 급 피곤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봤다.

“더 길어지는 건 의미 없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묻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조사’를 계속해야 된다에 동의했습니다. 남은 건 ‘무엇’을 조사해야 하는가, 인데…… 의견 있습니까?”

여기저기서 의견이 나온다.

새롭게 등장한 몬스터들의 스텟 및 능력, 몬스터의 특성에 따라 서식지가 변형하는 과정, 활동 영역과 다른 몬스터 세력과의 관계도 등등.

꽤 그럴듯한 주제.

그러나 명백히 핵심에서는 벗어난 주제다.

현재 이곳 ‘사마귀 여왕의 궁’도 붕괴 현상이 진행 중인 상황.

결과가 안 나온 상황이란 말이다. 결과가 나오면 모든 것이 변할 건데, 지금 저걸 조사해 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말 그대로 조사를 위한 조사일 뿐.

이해는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전부 실적에 목말랐으니까.

하지만 난 싫다.

쪽팔리잖나. 겨우 이딴 의미 없는 걸로 실적을 쌓는다고?

여러모로 모양 빠진다.

한때 마도의 정점에 있었던 나다. 차라리 안 했으면 안 했지, 일단 내 이름이 걸린 실적이라면 응당 그 값어치를 해야 한다.

이러니 내가 손을 안 들 수 있나.

“저기 대장, 하나만 묻자. 혹시 지원돼?”

“……지원이라면 뭘 의미하는 겁니까, 박기혁 후배님.”

“장비와 도구, 각종 시약에 무기도 조금 필요하겠네, 아, 사람도 한 명 추가해야겠어. 가능해?”

“……합당한 사유라면 못 받을 것도 없습니다.”

“그럼 간단하네.”

짧고 굵게 가자.

결국은 생태계 붕괴 현상을 조사하러 온 것 아닌가.

진리를 추구하는 마법사라면, 응당 언제나 핵심에 다가가야 하는 법.

“붕괴 현상, 그거 우리가 조정해 보자”

내 손으로 붕괴 현상을 조정한다.

이 정도는 돼야 실적이라고 자랑할 것 아닌가.

*   *   *

붕괴 현상을 조정하자.

틀을 깨부수는 제안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누가 이런 생각을 해 봤겠나.

성공만 하면 세계 최초. 그저 실적이 아니라 학계 연구지에 실릴 업적이었다.

조사대의 눈이 돌아가는 건 당연지사.

박진용을 필두로 정소이와 다른 4학년들. 심지어 3학년 2학년도 모두 만장일치로 박기혁의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시작된 지원 퍼레이드.

- 마석하고 인식 저해 장비…… 요청. 신속히 지원 바람.

-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습니다, 협회장님. 이 실적에 지분을 요구하시려면 최대한 많은 지원을…….

- 아빠, 여기 쓰인 것들 보내 주세요. 그리고 보낼 때 회사 로고 작업하시고…….

지연, 학연, 혈연.

조사대는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지원을 요청했다.

조사대의 주역은 4학년 최고의 성적을 자랑하는 박진용의 1팀과 정소이의 3팀.

비록 두 사람이 박기혁에게 깨졌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박기혁이 이레귤러인 것이고, 나가면 올해 최고의 유망주로 취급받는 이들이다.

자연스럽게 그들에게 속한 팀원들도 영입 시장 최대어.

이들이 전부 목 놓아 지원을 요청하자, 게이트 앞에는 산더미만 한 물자가 쌓이게 됐다.

“초소장님, 이게 뭐랍니까. 무슨 전쟁 났습니까?”

“왜 있잖아, 몇 주 전에 들어간 조사대. 거기서 지원 요청했다더만.”

“아니…… 지원으로 마나 엔진이 왜 필요합니까? 이건 또 뭐야. 마나 폭약? 미친, 이건 또 왜 필요한 거야?”

“인력 지원도 있는데요. 한 명인데, 같은 아카데미 학생입니다.

“초소장님, 이거 허가 내줄 겁니까? 이상해요, 얘들.”

“냅둬. 위에서 공문 내려왔는데 뭔 상관이야. 허가 내줘 버려.”

속속들이 지원 물품이 베이스캠프에 쌓이고,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간다.

장비를 조정하고, 작전을 짜고, 시뮬레이션을 빙자한 반복 훈련까지 마치고.

일주일 뒤.

“가자.”

“응!”

박기혁과 진유리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작전명.

킹메이커(King Maker)

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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