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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61화 (61/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61화>

박봄은 기분이 좋지 않다.

왜냐하면 아빠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가 며칠 봄이랑 떨어져야 할 것 같아. 일이 생겨서 어디 좀 갔다 와야 되거든. 미안해, 우리 딸. 아빠도 같이 가고 싶은데 이번에는 같이 못 가. 뚝. 울지 말고.”

눈물이 났다.

무슨 일인지 밉다. 봄이에게서 아빠를 뺐아 갔다. 마구마구 혼내 주고 싶었다.

“대신 가족들이 같이 있어 줄 거야. 호랑이 삼촌하고 호냥이 이모 알지? 봄이 예뻐하잖아. 할머니도 있고 할아버지랑도 잘 놀고 있어. 아! 가수 삼촌하고 선물 이모도 있을 거야. 절대 혼자가 아니니까. 걱정 말고 씩씩하게 있을 수 있지?”

못 해요.

봄이는 아빠가 없으면 안 되는걸.

호랑이 삼촌이 업어 주면 좋아. 호냥이 이모가 아이스크림 사 주면 맛있어.

할머니랑 티비를 봐도, 할아버지가 목마를 태워 줘도.

가수 삼촌이랑 노래를 불러도, 선물 이모가 공주 옷을 사 줘도.

좋아, 기뻐.

그래도.

아빠랑 있는 게 더 좋아. 더 행복해.

그러니까. 가지 마. 봄이 놔두고 가지 말아요.

“왜 울어, 내 새끼. 봄이가 울면 아빠가 맘이 아프잖아.”

“열 밤씩 두 번만 보내면 올 거야. 선물 사 올게. 우리 봄이가 뭘 좋아할까? 아! 전부터 냥이 키우고 싶다 했지. 아빠랑 같이 냥이 키울까? 동생 생기는 거야. 우와, 이제 봄이도 언니 되겠네?”

냥이……?

동생?! 언니이!!

“언니 되려면 씩씩해야겠지? 울지 말라는 건 힘드니까, 아빠 올 때까지 세 번만 울기. 약속.”

박봄은 아빠랑 약속한 손가락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세 번만 울기로 했는데에…….”

벌써 세 번 다 울었어. 어떡하지?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고, 그래야 착한 어린이라고 아빠가 그랬는데. 박봄은 아빠가 돌아올 날을 손가락으로 세며 자신이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을지 예상해 본다.

“다섯 밤 잤으니까아…….”

손가락이 다섯 개. 오 일. 이게 두 번…….

“손가락이 모자라. 힝…….”

힘들겠다. 벌써부터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빠, 보고 싶어요.”

“정말, 박봄 양은 박기혁 군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요정 이모?”

빙그레 웃으며 다과를 내려놓는 여자.

바로 위그드라실이었다.

“울 때는 울더라도 먹고 울어요. 눈물도 수분이거든요. 물을 많이 마셔야 잘 나와요. 쭈욱- 마셔요. 옳지, 옳지.”

위그드라실이 준 ‘음료’를 꿀꺽꿀꺽 마시는 박봄.

매번 마시는 거지만 맛있다. 사과 맛 같기도 하고, 오렌지 맛 같기도 하고 어쨌든 맛있다. 그래서인지 한결 기분이 편안해졌다.

“어때요? 계속 울고 싶으신가요?”

“……안 울 거야.”

“어머? 박봄 양이 울지 않는다고요? 대단한데요?”

“봄이는 아빠랑 약속했어. 세 번만 울기로. 봄이는 착한 어린이야. 약속 지켜.”

“흐응? 그건 이상한데요? 제가 본 것만 해도 세 번이 넘는데요?”

“……그, 그건?!”

우물쭈물.

꼼지락꼼지락.

당황한 박봄의 큰 눈이 데구루루 길을 잃고 헤매는데, 위그드라실이 짓궂게 웃으며 속삭였다.

“비밀로 할까요?”

“비…… 비밀.”

“그렇죠. 저희 둘만의 비밀. 저희만 조용한다면 박봄 양은 착한 어린이가 될 수 있는 거죠.”

“착한 어린이.”

“그래요. 착한 어린이.”

악마의 유혹이 이보다 달콤할까.

미취학 아동 박봄에게는 심히 견디기 힘든 유혹이었다.

결국 눈치를 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박봄. 콕콕 양심이 찔리지만 봄이는 아빠에게 만큼은 항상 착한 어린이로 남고 싶었다.

“그럼 착한 박봄 양. 오늘도 저랑 신나게 놀아 볼까요?”

“응!”

당차게 고개를 끄덕이는 박봄.

박봄의 순하던 눈동자가 매섭게 변한다. 흡사 맹수를 닮은 눈동자가 빛을 발하고.

곧이어 박봄이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마나가 꿈틀대더니.

우드득.

몸을 일으키는 나무 인형들.

하나, 둘, 셋…… 마지막으로 아빠를 쏙 빼닮은, 대검을 든 나무 인형까지.

총 17구.

박봄의 ‘혈족 인형’들이 몸을 일으키고, 반대편에서 몸을 일으키는 위그드라실의 목각 인형들.

그리고 인형이 완성됐을 때.

“신나는 ‘인형 놀이’를 시작해 보죠.”

인형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이렇듯 박봄의 홀로서기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   *   *

수색을 위해 하늘을 나는 중.

문득 구름을 보는데 봄이 생각이 났다. 몽글몽글한 구름이 마치 우리 봄이의 빵빵한 볼따구 같아서.

“봄이 보고 싶다.”

잘 있으려나. 세 번만 울자고 약속했는데 힘들겠지. 벌써 세 번 다 울었을 수도 있다.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귀엽기도 하고.

역시 빨리 보고 싶다. 빨리 집에 가서 봄이랑 뒹굴뒹굴하고 싶다.

확실히 한바탕 날뛰고 나니까 애들이 빠릿빠릿해졌다. 과연 주먹은 훌륭한 대화 수단이더라.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지휘권을 갖지는 않았다.

내 식구도 아닌 애들을 귀찮게 왜?

“성기사, 너. 그, 이름이 뭐랬지? 박진용! 그래, 박진용. 네가 대장하고, 너는 정소이지? 정소이, 네가 부대장해. 내가 보기엔 그게 맞아.”

다소 과격함에도 내가 몸의 대화(?)를 선호하는 이유는 인간을 파악하는 데 이만한 방법이 없어서다.

칼날이 오가고, 목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데 본성을 숨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적어도 내가 주도한 몸의 대화에서 자신을 숨길 만큼 여유로운 놈은 본 적 없다.

얘들도 그랬다.

박진용, 정소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박진용은 성기사답게 자신이 선두에 서서 이끄는 정석적인 리더다. 반면 정소이는 자신의 매력을 활용해 유대감을 강조하는 스타일.

누가 더 낫다, 낫지 않다 비교하기에도 어려운, 너무 다른 스타일의 두 사람이다.

그런데 난 박진용을 콕 집어 지휘권을 줬다.

왜? 간단하다.

정석적이니까.

정석이 왜 정석이냐. 어딜 갔다 놔도 제 몫을 하니까 정석인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멤버. 처음 보는 이들과 손발을 맞춰야 하는데 유대감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고, 합이 맞으면 얼마나 맞을까?

이런 구성에서 정소이의 재능은 빛이 바랜다.

반면 박진용은? 아마 무난하게 컨트롤할 수 있을 거다. 그게 정석의 장점이고, 내가 그를 선택한 이유였다.

그리고 박진용은 이런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다고 증명하듯 현재까지 훌륭하게 지휘부를 컨트롤하는 중이었다.

- 동쪽 킬러 비 벌집 발견. 규모가 계속 커지는데요. 대기할까요?

- 대기하면서 상황 주시해라.

- 서쪽, 자이언트 엔트 개미집 입구 발견한 것 같다. 그런데 대장, 다수의 자이언트 엔트 병정들이 남쪽으로 가고 있다. 어쩔까?

- 숫자는?

- 현재 우리의 능력으로는 판단하기 힘들다.

- 알았다. 지원 부대 보낼 때까지 자리 고수해라.

- 남쪽 ‘여왕의 궁’은 아직까지 별다른 행동 없는데요? 간간이 밖에 나갔던 멘티스들이 돌아오기만 할 뿐이에요.

- 위치 고수하고, 혹시나 엔트 무리가 보인다면 바로 연락해 줘.

- 네.

물론 내가 힘을 실어 준 영향도 없지는 않을 거다.

원래 이 바닥은 센 놈이 왕 아닌가. 그래서인지 박진용은 나한테만큼은 조심스럽다.

- 저기, 박기혁 후배님. 샌드웜 서식지는 아직입니까?

봐라, 조심하는 거.

누가 보면 선배와 후배가 바뀐 것 같다.

난 피식 웃으며 무전에 답했다.

“아직이야. 너무 넓어서 쉽지 않아.”

- 부탁 좀 합니다.

“어.”

무전을 끊으며 아래로 하강했다.

현재 조사대에서 내 임무는 샌드웜을 마크하는 것.

대형 몬스터에, 지면 아래에 살며, 대형 몬스터 특유의 재생력과 방어력까지 지닌 것도 모자라, 언제라도 땅 아래로 도망칠 수 있는 까다로운 녀석.

지면 아래에서 생활하는 샌드웜은 자연스럽게 몸을 숨길 수 있기에 서식지를 찾기란 절대 쉽지 않다.

생각해 봐라. 땅에서 지렁이를 찾아야 하는 건데, 이 넓은 땅을 다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감지 마법에도 한계가 있다.

그나마 현실적인 방법이 땅의 정령.

중급 이상의 땅 정령을 낚시하듯 널어놓는 방법인데, 이건 현재 조사대의 상황에서 기각됐다.

조사대의 정령사는 총 다섯. 그중 땅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자는 셋. 다시 그중에서 중급 이상의 땅 정령을 다루는 사람은 한 명.

다시 말하면, 이 한 명을 데려다 쓸 시 다른 쪽에는 땅의 정령을 제대로 다루는 이가 전무하단 말이다.

곤충형 몬스터 천지인 이곳에서 안 그래도 땅의 정령은 쓰임새가 크다. 특히나 땅 밑에 서식지를 두는 자이언트 엔트를 상대할 때는 가히 핵심적인 역할을 맡겨야 하는데.

내가 하나 있는 땅의 정령사를 쓰면, 본대는 빈약한 스펙의 정령사로 꾸역꾸역 조사를 진행해야 된다.

여러모로 비효율적.

다른 말로는 조사에 차질이 생긴다는 말이고, 또 다른 말로는 우리 봄이를 만나는 시간이 더 늦어진다는 말이다.

그건 못 참지.

차라리 내가 고생을 더 하고 말지. 지금 이 시간에 앙앙대며 울고 있진 않을까 걱정인데, 우리 딸내미를 기다리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기쯤이면 되려나.”

허공에 멈춘 채 아래를 내려다봤다.

풀이라고 하기에는 웬만한 나무 못지않게 솟아오른 큰 풀과, 꽃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크기의 식물 줄기들. 곤충이 사는 작은 세계를 확대해 놓은 것 같은 숲이 아래로 펼쳐져 있다.

무전을 켠다.

“이쪽은 도착. 진유리, 몇 개 남았어?”

- 하나 남았어. 조금만 기다려.

“알았어.”

심호흡을 하며 이곳에 대해 생각한다.

7레벨 게이트. 사마귀 여왕의 궁.

전에 갔던 검은 숲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국민 사냥터로 불리는 곳이다. 멘티스가 트롤만큼 값진 몬스터는 아니지만 그래도 몬스터는 몬스터. 마석을 준다.

더군다나 이곳은 7레벨 게이트. 한 차원 강한 멘티스인 만큼 더 높은 단계의 마석을 획득할 수 있는 곳이다.

개체수도 트롤보다 훨씬 많고, 리젠률도 좋고. 결정적으로 약점이 명확하다. 화염 마법에 취약한 멘티스. 아니, 단순히 취약하다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살살 녹는다.

만약 화 속성 공격 수단이 충분하다면 몰이 사냥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이렇게 물을 수 있다.

이렇게 쉬운 게이트가 왜 7레벨 게이트인가요?

오해다.

여긴 절대 쉬운 곳이 아니다.

단지 멘티스가 사냥하기 쉬운 곳일 뿐이다. 예전에 쿠마스가 나오는 ‘배불뚝이 미로’에서 말했듯, 게이트의 명칭은 그 게이트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여기 게이트의 이름은?

사마귀 여왕의 궁.

그렇다. 이 게이트는 남쪽 끝에 있는, 잭과 콩나물에 나오는 콩나물처럼 구름을 뚫고 솟구친 저 줄기 더미 안부터가 진짜다.

밖은 그냥 뜨내기일 뿐이고.

“다만 뜨내기들이 엄청 많다는 거지.”

거의 도시 크기의 면적에 멘티스들이 우글거리니, 만약 이 ‘사마귀 여왕의 궁’을 사냥이 아닌 클리어를 목적으로 잡는다면 난이도는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난, 이 도시 크기의 필드에서 ‘샌드웜 서식지’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고.

슬슬 지루해지려 할 때 무전이 울린다.

- 완료. 다 심었어.

“잘했어.”

우득우득.

몸을 푼다.

“지금부터 내가 마나 펼칠 테니까.”

- 난 네가 만든 흐름에서 샌드웜 파장을 찾으면 되지?

“오냐.”

시작해 보자.

마나를 끌어올렸다. 오른편 공간이 일렁인다.

깨진 공간에서 사자 머리를 지닌 키메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왼편의 공간마저 일렁이는데.

사자가 고양잇과라면 이쪽은 개과의 주둥이가 보인다. 자유를 갈망해 끝내 자신을 창조한 신마저 집어 삼킨 늑대.

신살의 대마수.

펜릴(Fenrir).

펜릴이 공간을 뚫고 현신했다.

마나가 요동친다.

해일이 내려치는 것처럼.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마나의 질서가 재편된다.

그리고 이 질서는 온전히 나에 의해서 재창조되니.

응답하라.

“나의 진리여.”

아포칼립스

Apocalypse

대지 위로 붉은빛 선이 가로지른다.

선이 향하는 곳의 끝은 여섯 개의 마석이 있는 곳. 나의 사념이 각인된 마석이었다.

육망성.

멸망을 상징하는 붉은 선혈이 대지를 가로질렀을 때.

범위 안의 모든 마나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의 도시급 면적. 그 안에서 숨 쉬던 마나다. 겨우 오른발과 왼발만으로는 무리.

부서진다. 이대로라면 몸이 분해된다.

질식할 듯한 마나의 파동에 울컥, 피를 토했다.

“진유리!!”

- 잠깐만.

오래 못 버틴다.

조금만, 조금만.

이를 꽉 깨문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과거 마왕으로 불리던 시절.

어떤 도시를 통째로 지운 적이 있었다.

구성원이 기가 막혔지. 이교도에, 배교자에, 광신도까지 온통 미치광이로 가득찬 광기의 도시였다.

공양이랍시고 신께 제물을 바쳤는데.

겨우 내 허리춤에 오는 아이들.

차마 입에도 올리지 못할 방식으로 바쳐져 숨을 거둔 아이들을 본 나는.

신을 대신해 징벌을 내렸다.

피가 흘러내리는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그때에 비하면 이건 정말 별것도 아니다 생각하니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때 들려오는 진유리의 목소리.

- 찾았어!

그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마귀를 들었다.

그러고는.

촤륵-!

마귀를 잡아 단번에 마법진을 찢었다.

비로소 해방되는 마나.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허공에서 내려와 대자로 뻗었다.

“커흑, 컥 컥! 퉤!”

울컥 쏟아지는 핏물.

“젠장, 빨리 몸뚱이를 만들든지 해야지.”

새삼 느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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