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60화>
나도 안다.
내 성격이 좋지 않다는 걸.
며칠 전 봄이 동화책을 읽어 주다가 본 내용인데, 성격은 본성도 본성이지만 유아기 시절 환경과 교육으로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고 하더라.
어느 정도는 공감된다.
빈민가,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시절, 뺐지 않으면 뺏겨야 하고, 나를 지켜 주는 건 오직 나 자신밖에 없던 세계.
전생의 내가 성장했던 환경이었다.
여기서 착한 놈은 나올 수 없다.
착한 놈도 나쁜 놈으로 변해야 살아남고, 끝까지 변하지 못한 놈은 내일 밤 강가에 시체로 떠내려 오는 환경이었으니.
이렇게 살아온 놈이 착할 수가 있겠나?
당연히 못돼 처먹었지.
이런 내가 칠흑 마탑에 들어가 동기 혹은 선후배들이랑 잘 지냈을까?
전혀.
그들은 내가 빈민가 출신이라고 얕봤고, 난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다.
서로 소 닭 보듯 무시하는데 어찌 접점이 있겠나.
그 증거로 마탑에서 내가 아는 이름은 영감을 제외하고 없다. 이만하면 말 다한 셈 아닐까.
당연히 사교성이 이러하니, 친목이고 파벌이고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됐다.
그런데 말이다.
칠흑 마탑의 대공자가 된 건 나다.
밤만 되면 동기들과 살롱에 드나들며 황금을 물 쓰듯이 썼던 상인의 아들놈도, 온갖 매력으로 사람들을 감화시키며 따르게 했던 왕족의 자제도.
빈민가 출신인 나와는 비교하는 것조차 불쾌해했던 자제들은, 결국 내가 앉은 이 정상의 자리에 도달하지 못한 채 무너졌다.
무엇 때문에?
실력 때문에!
돈도, 명예도, 지위도…… 심지어 성격조차도.
결국은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무의미하더라.
마지막에 그 사람의 위치를 정하는 것은 실력이란 것을 난 칠흑 마탑의 대공자가 됐을 때 깨달았다.
* * *
……그래서 이런 모습이 마음에 안 드는 거다.
조사대를 이끌어야 하는 녀석들은 제 잇속을 챙기느라 바쁘고.
“내 말 잘 들어 봐. 난 너희 3팀을 지휘하고 강제할 생각 없어. 그런데 여기에 너희만 있어? 다른 동기도 있고, 저기 후배님들도 있고, 이 많은 인원을 지휘부도 없이 놀리겠다는 거야?”
“허…… 이제는 후배까지 끌어들여. 야, 박진용. 말은 똑바로 하자. 너희가 지휘권 갖겠다는 거잖아. 여기 조사대 공을 다 독식하겠다는 말 아니야.”
“넌, 말을 왜 그딴 식으로 받아들이냐.”
“아니야? 내가 잘못 이해한 거니? 그럼 넌 지휘권 필요 없다는 거네? 얘들아, 너희도 들었지?”
“야, 정소이.”
“뭐, 박진용.”
이 둘의 폭주를 말려야 할 팀원들은 오히려 싸움을 부추기고 있으며.
“전에 우리가 양보했잖아. 인간적으로 너희도 한 번은 양보해야지.”
“무슨 개소리야. 그게 너희가 양보한 거냐. 우리가 잘해서 따낸 거구만.”
“난 이게 왜 싸울 문제인지 모르겠어. 1팀이 괜히 1팀이야? 실력으로 보나 능력으로 보나 우리가 지휘권을 갖는 게 맞지 않아?”
“이거야말로 개소리네. 솔직히 너희가 실력으로 1팀 됐냐. 박진용이 인맥으로 된 거잖아.”
“맞아. 붙으면 쫄아서 도망치는 주제에.”
“니 뭐라 했냐? 말 다했나? 한 판 뜨까?”
“허, 자신 있어?”
제삼자인 후배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듯 멀뚱멀뚱 사태를 관망하는 중.
“흐아암,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언제 끝난대?”
“차라리 싸웠으면 좋겠네. 박진용 선배 정소이 선배 둘 다 4학년 에이스잖아. 누가 이길까 기대되네.”
“이해가 안 돼. 왜 싸운대? 한 명이 대장하고 한 명이 부대장하면 되잖아.”
“그게 쉽냐. 실적이잖냐, 실적.”
“난 저 두 사람이 저렇게 싸우는 거 이해돼. 학년 톱으로 입학했는데 하필이면 후배로 재앙이랑 진유리가 들어왔잖아. 3년 내내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겼으니, 실적이라도 챙길 생각일걸.”
“하긴 그렇겠네. 좀 짠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가 막힌 부분인데, 정작 학생들을 말려야 할 교수들은 갈팡질팡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최 교수님,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겁니까. 적당히 정리하죠.”
“그럽시다. 진용이가 1팀장 아닙니까. 명색이 기수의 얼굴인데, 진용이가 지휘하는 걸로 하고 좋게 좋게 마무리합시다.”
“그래도 그러면 되나요. 정소이 학생도 이제껏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증명했는데요. 경쟁조차 하지 못한다면 억울한 일 아니겠습니까.”
“맞아요. 소이도 얼마나 뛰어난데요. 단지 1팀장이란 이유로 숙이고 들어가라 하면 납득이 되겠어요?”
“커흠, 아무리 그래도 1팀장인데…….”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한심함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이곳이 사형대가 아닐까.
만약 이곳이 우리 학년뿐이고, 저 싸우고 있는 두 놈이 동기였다면 당장 가서 죽빵을 때렸을 거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봄이를 만나기 전, 아빠로서의 안전핀이 채워져 있지 않던 나였다면 지금 쟤들은 바닥을 구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이제 봄이 아빠.
인내를 탑재했다는 말씀.
“나가자.”
“잉? 진짜? 그냥 나가?”
“왜, 내가 날뛸 줄 알았냐?”
끄덕끄덕.
진유리가 얄미운 표정으로 말하고 있다. 당연한 거 아니야?
“됐다. 지들 밥그릇 싸움하겠다는데 냅둬.”
“히야~ 무시할 줄도 알고. 우리 혁이 다 컸네. 누나가 토닥토닥해 줘야지.”
“좋은 말할 때 엉덩이에서 손 치워라.”
솔직히 말은 했지만 손이 근질거린다.
일단은 선배 아닌가. 위아래가 없는 내게는 선배보다는 그냥 타인. 타인의 밥그릇 싸움에 나서는 것도 웃기는 노릇 아니겠나.
명분이 없잖아 명분이.
때릴 수도 없고, 이 개소리를 계속 듣기는 싫고.
방법은 나가는 것밖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처럼 조용히 나갈 작정이었다.
진심으로.
나를 건들지 않는다면.
“이봐, 어디 가는 거지.”
“잠깐만요, 후배님. 회의 아직 안 끝났는데 어딜 가는 거죠?”
“…….”
돌아서서 둘을 물끄러미 본다.
쟤들 날 모르나? 이런 말하면 민망하지만, 내 성격을 모르는 이가 아카데미에 있을 리 없을 텐데.
“자리 지키도록, 박기혁.”
“이야기가 길어지는 건 미안한데, 후배님도 조사대의 일원이잖아요. 회의에는 참여하셔야죠.”
알고 있다.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내게 날을 세우는 건.
‘주도권을 넘기기 싫다는 건가.’
김하니가 그랬던가. 캐스팅 보트는 내가 쥐고 있다고.
4학년이 저 둘을 중심으로 갈라졌다면 후배들을 대표하는 건 내가 되어 있었다. 의도치 않았는데도 말이다.
4학년인 둘은 스포트라이트가 둘에게서 나로 옮겨 가는 것을 결코 원치 않는 것이…….
됐어.
귀찮다.
집어치워라.
내가 왜 쟤들 입장까지 생각하고 있나.
“잘됐어. 안 그래도 꼴 보기 싫었는데.”
우득우득.
손을 풀며 몸을 돌렸다.
내 살기를 감지한 것인지 둘도 내게로 몸을 돌렸다. 시선이 마주친다. 이제야 제대로 얼굴을 본다.
“멀쩡하게 생긴 것들이 주둥이만 살아 가지고, 유치하게 밥그릇 싸움이나 하냐.”
“……!!”
“너희들 존나 구려.”
폼 나게 살아도 모자란 인생에 꼭 이렇게 구리게 살아야겠나.
쪽팔리게.
“니들도 초인이잖냐. 입 털지 말고…….”
초인의 가치는 주둥이가 아니다.
오로지 힘.
실력이다.
“실력으로 증명해.”
대검 마귀가 둘을 겨냥했다.
“덤벼.”
콰앙-!!
천막이 하늘 위로 휘몰아쳤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박기혁이 대검을 휘두르는 순간, 회의는 종료됐다.
눈앞에서 휘황찬란한 공세들이 격돌하는데 회의가 눈에 들어오겠나. 말려야 할 교수들까지도 넋을 놓고 볼 정도였다.
진유리는 피식 웃었다.
“그럼 그렇지. 기혁이치고 오래 참는다 했다.”
저거 봐라, 웃는 모습. 포위당했으면서도 좋아 어쩔 줄 모르잖나.
귀여워, 여간 귀여운 게 아니야.
하나, 이건 박기혁을 잘 아는 진유리의 입장이고, 김하니는 당황하는 중인데.
“서, 선배. 말려야 하지 않을 가요?”
“응? 왜?”
“그…… 저 두 분은, 4학년이고…… 기혁 선배님이 혹시나 다치면…….”
“푸훗, 기혁이가 다쳐? 진심이야?”
“그…… 일단은 2:1이잖아요. 게다가 저 두 분 4학년 탑 티어예요. 아무리 기혁 선배님이라도.”
“저 둘이 4학년 탑 티어? 흐응, 처음 보는데.”
아무리 봐도 기억에는 없다.
이럴 때는…….
진유리가 김하니의 등을 툭 치며 말했다.
“시스터 TMI. 말해 봐.”
“시스터 TMI?”
“오늘부터 네 별명이야. 빨리 쟤들에 대해 말해 봐.”
순간, 김하니의 얼굴이 붉어졌다.
시스터 TMI.
별명이 생겼다. 조금 인정받은 걸지도……
“저기 판금 갑옷을 입은 남자 선배가 박진용 선배예요. 1팀장이고요. 1팀장답게 학년 최고 성적으로 입학했고요. 직업군은 힐러와 탱커를 겸하는데, 소문으로는 성기사가 될 뻔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하늘을 날며 활로 견제 중인 선배는, 정소이 선배. 오늘은 저래도 평소에는 성격 좋기로 유명한 선배예요. 따르는 사람도 많고요. 직업군은 소환계 마법사로 알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신수’를 다룬다는 말도 있더라고요.”
역시 시스터 TMI.
툭 치니 주르륵 나온다.
벌써부터 자신의 쓰임새를 강력하게 어필하는 김하니였다.
진유리는 김하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전투에 집중했다.
“음, 자력 치유가 가능한 탱커와 견제와 소환이 가능한 원거리 딜러라.”
완벽한 퍼즐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 전까지 핏대 높여 싸우던 두 사람이 누구보다 서로에게 필요한 퍼즐이라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둘도 서로의 호흡에 놀랐는지 공격을 성공하고도 놀란 눈으로 마주 보기 일쑤였다. 이렇게 둘의 호흡이 잘 맞으니 전투 양상도 박기혁이 눈에 띄게 불리한 상황.
콰직, 콰직!
박기혁이 소환한 스켈레톤은 정소이의 소환물 ‘달두꺼비’에게 짓밟히며 완벽하게 무력화됐고.
빈틈이라도 생길까 싶으면.
쇄애애액-!
달두꺼비의 독이 묻은 화살이 가장 위험한 타이밍에, 가장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스켈레톤이 무력화됐고, 독화살로 인한 견제로 기동력까지 약해진 상태.
이제 박기혁에게 남은 카드는 몇 개 없었고, 그중 가장 자신 있는 정면 돌파를 선택했다.
하지만 달려 나가던 그를 향해 황금빛 방패가 들이닥치는데.
깡-!
“못 지나간다.”
“호…….”
박기혁을 막아서는 박진용.
성기사가 될 뻔했다는 소문이 진실이라 말하듯, 황금빛 신성력을 줄기줄기 뽑아내며 박기혁의 공세를 봉쇄하고 있었다.
화려한 마법과 기술에 비해 전황 자체는 지루한 상태.
세 번째 ‘달빛 베기’가 막히는 것을 본 진유리는 쓰게 웃었다.
“하여튼 쟤는. 봄이한테 바포하고 수라까지 붙였으면서 또 정면 승부야. 유지력 싸움은 힘들 건데…….”
“네?”
“그런 게 있어.”
거인의 육체를 지닌 박기혁은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마법을 사용하지 못한다. 때문에 사역한 마수들을 이용해 외부 마나 홀을 구축한 것이다.
그런데 현재 박기혁은 그 외부 마나 홀 중 두 개가, 바포메트와 아수라가 없다. 혼자 남는 봄이가 걱정돼 바포메트와 아수라를 봄이에게 붙여 주고 온 것이다.
당연히 사용할 수 있는 마나도 그만큼 줄어들었고, 화력도 줄어든 상태.
그 증거로 스켈레톤과 더불어 박기혁이 자랑하는 또 다른 무기 ‘저주’가 평소보다 못하다. 성 속성인 박진용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정도.
그리고 그 순간.
푹, 기어코 박기혁의 어깨에 꽂히는 화살.
진유리의 입에서 ‘호오!’ 감탄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화살에 당한 박기혁의 입에서도 ‘이야!’ 탄성이 나왔다.
이 모습을 본 김하니는 기가 막혔다.
맞았는데 좋아해? 같은 편 아니었어?
“쉽지 않을 줄은 예상했는데, 생각 이상이네.”
“걱정되지 않으세요?”
“걱정되지.”
그럼 그렇지, 김하니가 정상적인 대답에 안심하길 잠시.
이어질 말에 턱이 떨어졌다.
“저 둘, 이제 큰일 났어.”
왜냐하면 박기혁이 웃고 있으니까.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으니까.
“이제부터 쟤, 진심이야.”
진심인 박기혁에게는 브레이크가 없다.
진유리가 김하니를 잡아채고 끌고 왔다. 둘의 위로 덮이는 붉은빛 실드.
“온다.”
쿠웅!!
땅을 부술 듯 내려쳐지는 대검.
박기혁이 자랑하는 강검술 ‘산사태’. 박기혁을 중심으로 대지가 부서져 갔다.
뒷걸음질 치는 박진용.
시간을 벌어 주기 위함일까. 정소이의 화살이 전보다 더 맹렬하게 박기혁을 노리는데.
그 순간.
“나와.”
구웅-!
공간이 찢어지며 어둠 뒤에서 눈을 뜬 존재.
머리는 사자의 그것과 같고 몸통은 염소를 닮았다. 꼬리에는 뱀이 날름거리고 있으며 용의 날개가 펄럭이니.
온갖 악의 상징들이 결합되어 탄생한 대마수.
키메라(Chimera).
마왕 박기혁의 오른발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이미 허공은 육망성 마법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발 버텨 주라.”
지금 막 재미있어졌으니까.
환하게 웃던 박기혁이 어둠에 몸을 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