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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58화 (58/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58화>

당연한 말이지만, 아카데미 내에서 박기혁의 이미지는 농담으로도 좋다고 말할 수 없었다.

오죽 사고를 많이 쳤나.

심사를 보는 교수를 반쯤 죽여 놓은 것이나, 조원들 시험한다고 주먹을 날린 것이나.

동아리 만든다고 위그드라실을 꼬드긴 것도, 1학년 첫 중간 고사에서 절반의 조를 해체시킨 일 등등.

정녕 이게 한 사람이 이룬 일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박기혁은 사건사고를 몰고 다녔다.

이러니 교수들에게는 문제아로 찍힐 수밖에.

“이건 이야기가 다르잖습니까. 조사단에 박기혁 학생도 참여하다니요!”

“못 해요! 저 문제아를 어떻게 통제하라는 거예요! 전 자신 없어요. 아무튼 못 해요!”

“박기혁이라, 박기혁…… 끄응, 피곤하게 됐구먼…….”

선배들이라고 다를까.

간혹 겉모습과 내면이 다른 사람이 있다지만, 안타깝게도 박기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다.

매서운 인상만큼이나 거침이 없었고, 태산을 닮은 등만큼 굽힐 줄 모른다.

쉽게 말해, 막 나간다는 뜻.

그런데 선배?

왜? 나이 많으면 창칼이 안 박히나? 나이순으로 서클이 생기기라도 하나?

박기혁에게 선배란 그냥 조금 빨리 태어난 사람, 그뿐이었다.

이러니 사람에 대한 예의 정도는 지켜 줄지언정, 선배에 대한 존경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이 상황이 가장 잘 나타난 게 1년 전. 그러니까 박기혁이 참여했던 ‘교내 랭킹전’에서였다.

모든 학년이 참여 가능.

모든 무기 사용 가능.

무제한 룰로 치러지는 1:1 대결.

교내 랭킹전.

아무래도 자신의 강함을 가장 명확히 드러낼 수 있는 행사이다 보니, 곧 졸업해 현역으로 뛸 4학년 졸업반들이 자신의 얼굴을 알리기 위해 많이 참여하는 편이고, 실제로도 매년 졸업반들이 우승을 하는 행사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박기혁이 시작했고, 박기혁이 끝을 냈다.

첫 상대부터 박살 내놓더니, 결승전 상대마저 부숴 버렸다.

압도적으로.

상대 중 누구도 제 발로 대회장을 떠난 적이 없었다. 전부 들것에 실려 나간 것이다.

그날, 충격의 교내 랭킹전을 끝으로 박기혁은 선배들에게 위아래도 모르는 건방진 후배이며, 동시에 정면에서 욕하기에는 어려운 후배가 되었다.

“어머, 쟤 박기혁이잖아. 쟤가 그렇게 쩐다면서.”

“작년 교내 랭킹전 못 봤어? 쩌는 게 아니라 괴물이야. 그냥 규격 외라고.”

“근데 쟤도 조사에 참여하는 거야? 왜? 뭐가 아쉬워서?”

“쯧, 이런 실적은 졸업반한테 양보하는 게 예의 아니냐? 진짜 생각 없다.”

“정 불만이면 네가 말해 봐.”

“그건 좀…….”

그렇다면 동기들은?

여전하다. 트라우마가 괜히 트라우마겠나.

맞아 본 놈이 더 잘 안다고, 이미 박기혁은 3학년 동기들에게 범접 불가의 천재지변급 재앙으로 통했다.

“박기혁이야. 진짜 박기혁이라고!”

“X같네. 수업도 잘 안 듣는 새끼가 여길 왜 와?!”

“실적 쌓으려 왔는데…… 재앙과 함께라니…… 하, 하, 나 망한 거 맞지?”

“진유리까지 있네? 포기하자. 포기하면 편해.”

“쟤 둘이랑 함께하면…… 안전하긴 하겠다.

“니 실적은 안전하지 않겠지.”

이처럼 위험인물, 혹은 부정의 아이콘처럼 취급되고 있는 박기혁.

그런데 말이다. 이런 박기혁이 후배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다면 믿겠는가?

심지어 여자 후배들에게!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다.

여기 김하니도 그중 하나였으니까.

*   *   *

“하아~.”

김하니가 몽롱한 눈빛으로 언덕 저편을 바라보고 있다.

시야를 가득 매우고 있는 건 곤충형 몬스터 멘티스.

사마귀를 닮은 외형에 인간만 한 크기. 소형 트럭을 연상케 하는 멘티스들이 사탕을 마주한 개미처럼 다닥다닥 징그럽게 모여 있다.

그리고 그런 멘티스 무리 가운데서 흑빛 대검을 휘저으며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

바로 박기혁이었다.

“멋있어.”

큰 키에, 쪽 벌어진 어깨. 넓은 가슴은 바다를 닮았고, 우람한 허벅지는 소나무를 옮겨 놓은 것 같다.

세상의 남자다운 것들을 모조리 모아 꾹꾹 눌러 담으면 기혁 선배가 나오지 않을까?

게다가 겉모습은 저래도 내 사람에게는 따뜻하잖아.

어쩜 저렇게 완벽할 수 있지.

“헤헤. 오길 잘했어.”

김하니가 처음 박기혁을 본 것은 1년 전, 그러니까 그녀가 이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됐을 1학년 때였다. 우연한 기회로 2학년과 같은 수업을 듣게 됐고, 김하니는 거기서 박기혁을 처음 마주하게 되는데.

“아쁘아, 봄이 졸려.”

“아빠가 안아 줄까?”

“응, 안아죠.”

한 손으로 봄이를 안은 채 수업을 듣던 박기혁.

뭐야, 듣던 거랑은 완전 다르잖아?

당시만 해도 그녀에게 박기혁의 이미지는 별로였다.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아마 입학생 전부가 그랬을 거다.

워낙 악명이 자자했어야지.

성질은 더럽고, 완전 폭력적이고, 게다가 싸가지는 또 얼마나 없는지 가문을 등에 업고 사람들을 깔본다더라.

눈만 마주쳐도 사람을 때린다는 이야기가 부지기수고, 동기 중 안 맞아 본 사람이 없다는 둥.

이렇게만 들으면 완전 망나니가 따로 없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본 박기혁은 이런 악명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아이를 향해 웃고 있는 눈에는 꿀이 뚝뚝 떨어졌고, 토닥여 주는 손은 폭력은커녕 상냥함이 가득했다.

어떻게 저게 망나니야? 내가 아는 망나니는 저렇지 않다고.

김하니는 새삼, 엄마가 많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난 내가 본 것만 믿어.”

역시 엄마는 지혜롭다.

물론 꼭 뒤에 아버지를 구박하는 말이 따라오는 건 비밀이지만, 어쨌든 엄마 말은 맞다. 아무튼 맞다.

그렇게 너무도 다른 갭 차이 때문일까. 김하니는 이상하게 박기혁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다.

“우와, 이게 기혁 선배 1학년 때야?”

아주 조금…….

“아주머니, 기혁 세트가 뭐예요? 이걸 다요?! 정말 다 먹어요? 그, 그거 주세요. 포장은 되죠?”

조금만 더…….

“찾았다…… 이게 기혁 선배 기사…… 햐아~ 선배도 어릴 적에는 작았구나.”

한 번만, 한 번만 더…….

꽃을 찾는 꿀벌처럼, 하나씩 파고들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빠져 버렸고, 김하니는 자신도 모르는 새 박기혁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김하니는 이에 성이 차지 않았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착하고, 이해심 많은 여자. 좋은 걸 나눌 줄 아는 여자였다. 이 좋은 걸 나만 알고 있다면 그건 죄악이다.

단군 할아버지가 홍익인간의 정신으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했다면, 김하니는 박기혁의 매력을 널리 알려 이 좋은 걸 모두와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만들어진 것이 팬클럽 ‘작은 거인’.

고작 6명밖에 없는 작은 클럽이지만 그 뜻만은 기혁 님의 가슴만큼 크다 해서 붙여진 이름.

김하니는 이 작은 거인의 1대 회장이었다.

때문에 2학년인 그녀가 굳이 참여할 필요가 없는데, 아니, 참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는데도 어떻게든 기를 쓰고 조사단에 합류한 것이었다.

안 그렇겠나.

다른 학년, 가뜩이나 성적 우수생이다 뭐다 해서 수업보다는 외부 활동이 더 많은 박기혁인데, 얼굴 보기도 힘들어 맨날 사진만 봐야 했는데.

‘기혁님과 함께잖아! 그것도 공략대라고! 같이 사냥하고,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잠을…… 허업!’

상상만으로도 혼절할 것 같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오겠어?!

다행히 김하니는 파티, 팀, 공략대 가릴 거 없이 환영받는 귀족 힐러.

어려웠지만 끝내 기회를 잡을 수 있었고.

지금 이렇게 게이트에서 기혁 님의 전투를 고스란히 직관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김하니의 손이 급히 배낭을 뒤졌다. 외주 제작사를 하는 부모님에게 조르고 졸라 얻어 온 비장의 아이템!

게이트 내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마석 카메라!!

“들고 오길 잘했다니까. 룰루루~.”

새 렌즈를 끼운다. 아빠도 비싸서 몇 번 안 썼던 거라던데, 오늘은 내가 주인.

후훗.

“와, 깨끗해. 잘 보여!”

활짝 웃음을 짓는 김하니.

카메라의 초점이 박기혁을 담고 있었다.

*   *   *

“쟤 뭐 하는 거래?”

“누구?”

“쟤, 저기서 너 찍고 있는데?”

“날 찍어?”

말을 하면서도 검을 놀리지 않는다.

촤륵―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곤충형 몬스터인 ‘멘티스’의 대가리가 잘려 나가고, 그 자리에서 보기에도 불쾌한 초록 채액이 뿜어져 나왔다.

“저기 언덕 뒤에서 말이야.”

“언덕 뒤.”

공격을 흘리며 뒤를 흘려 본다.

언덕이라 했지, 쟤 말하는 건가?

진유리의 말대로 언덕 뒤에서 이쪽을 찍고 있는 여자애가 있긴 하다.

“그냥 조사차 찍고 있는 거 아니야?”

“아니야, 너 찍고 있는 거야.”

“무슨 근거로?”

“여자의 감.”

“……감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시선을 두는 건 잠시, 곧바로 허리를 숙이며 검을 횡으로 긋는다.

촤륵-!

양단되는 멘티스.

곤충형, 그중에서 사마귀를 닮은 멘티스는 날카로운 앞다리 공격으로 유명하지만, 반대로 종잇장처럼 약한 방어력으로도 유명한 놈이다.

둔탁한 촉감. 육중한 대검이 전방에 있던 멘티스들의 허리를 동강 냈다.

그리고 허리를 접는 순간.

진유리의 번개가 날아들고.

지지직- 고소한 냄새와 함께, 후방에 있던 멘티스들이 튀김처럼 튀겨졌다.

등을 맞대는 우리 둘.

“마음에 안 들어.”

“뭐가.”

“쟤, 저 애 말이야.”

“왜 또.”

우리는 이렇게 개고생하는데, 한가하게 카메라나 가지고 놀아서?

아니, 이건 평범한 반응이다.

내가 아는 진유리는 절대 평범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쟤 너만 찍고 있잖아! 넌 내 건대! 내가 찜해 놨는데!”

“한동안 잠잠하더만, 또 지랄이네.”

“지랄이라니! 나의 애끓는 사랑을 겨우 지랄이라니이!!”

“애끓어? 참나. 또 로맨스 소설 봤구만.”

“바보야! 넌 어떻게 내 맘도 모르니.”

“괜히 기력 빼지 말고.”

눈빛이 교차하는 순간.

등을 맞대고 섰던 우리가 서로 교차하며 마법을 쏘아 냈다.

내 손에서는 화염 마법인 ‘플레어’가, 진유리의 손에서도 역시 화염 마법인 ‘파이어 랜스’가.

그 후 다시 한 바퀴 돌며 체인 라이트닝을 쏘아 냈고, 마법 세례를 뚫고 들어온 멘티스의 공격을 대검의 검면으로 막아 냈다.

곧바로 워 아머, 드래고니안(Dragonian)을 이용한 신속 기동으로 뒤를 잡는 진유리.

멘티스의 약점인 목덜미 뒤쪽에 ‘디스트로이 빔’을 먹이고는 곧장 실드를 전개.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연계.

굳이 말이 필요 없다. 나도 진유리도 서로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아니까.

‘용의 눈’을 가진 진유리는 내 마나 파장에 반응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내가 호흡을 맞춰 주지 않아도 나를 따라올 수 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는 훌륭한 파트너.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본능’을 마음껏 날뛰게 할 수 있었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얘랑은 잘 맞는다.

합을 맞추는 게 즐겁다.

입꼬리를 올리며 대검을 비스듬히 눕혔다.

검면에 ‘육망성’ 마법진이 새겨지길 잠시.

축 늘어져 있던 근육이 일순간 수축하며 꽈드득! 비명을 지르고, 그 순간 허공을 날던 진유리가 실드를 전개했다.

육체를 극한으로.

꽈득!

정신은 고요하게.

꽈드득-!

내면의 공간.

모든 것이 지워진 이 공간에.

힘(力).

오로지 힘 하나만을 새긴다.

검호류 강검술

대지진

구궁…….

지면이 흔들린다.

콰직!

대지가 부서진다.

한쪽에선 지면이 솟구치고.

바로 옆에서는 지면이 내려앉고.

내려친 검을 중심으로 일대가 초토화돼 갔다.

그 속에서 멘티스의 처절한 울음소리는 엉망이 되는 공간에 파묻혀 질식하듯 사라져 갔다.

“언제 봐도 말이 안 돼. 누가 저걸 검술이라고 해.”

솔직히 인정이다.

만약 내가 쓰는 입장이 아니라, 저기서 구경하는 입장이었다면 고위 대지 마법인 ‘어스퀘이크’라고 판단했을 거다.

하지만 이건 엄연히 검술.

아무튼 검술이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긴장해. 온다.”

“알고 있어.”

“영상 준비했지? 귀찮게 두 번 일하지 말자.”

“눼눼. 알고 있다니까요, 서방님.”

진유리가 투덜대며 하늘로 떠올랐다.

이쪽도 준비해 볼까.

대검을 땅에 꽂은 채 정신을 집중한다.

즈즉……

지면을 타고 전해지는 진동. 미약하지만 조금씩 진폭이 늘어가고 있다.

즈즈즉…….

녀석이다. 녀석이 오고 있다.

즈즈…… 즈즈즉……

우리가 여기까지 와서 멘티스를 잡고 있는 이유.

이 게이트의 생태계를 엉망으로 만든 주범 중 ‘하나’.

바로.

키에에에엑-!!

모래 속의 포식자라 불리는 샌드웜이었다.

“넌 머리 맡아. 난 몸통 자른다.”

“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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