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56화 (5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56화>

옵티멈 본사.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작전부장님, 이 ‘이상 현상’이란 부분, 자세히 좀 설명해 주실래요.”

안경을 쓴 김연희가 보고서를 보면서 작전부장에게 물었다.

“보고서에 쓰인 대로입니다. 몇몇의 게이트에서 기존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몬스터가 출현한 걸 확인했습니다.”

“확인됐다면, 증거가 있다는 건가요.”

“네, 여기.”

작전부장이 사진을 내민다.

첫 번째 사진은 엔트 사체.

엔트의 피부에서 나오는 나무는, 나무라는 재료의 특성상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스태프나 완드 같은 마법 도구부터 최고급 원목 가구까지.

비교적 수요가 많고, 시장이 안정되어 있어, 초인들의 훌륭한 수익원이었다.

당연히 김연희도 자주 거래하는 몬스터.

문제는 이 몬스터가 찍힌 장소다.

“톱날 오크 부락…….”

톱날 오크 부락에서 엔트가 나왔다. 있으면 안 되는 녀석이 나왔단 말이다.

시체도 아닌 멀쩡히 숨 쉬는 오크가 엔트와 대치하는 사진이라니…… 김연희는 보고 있음에도 눈을 의심했다.

이밖에도 리자드맨이 나오는 늪지 뱀 둥지에서 발견된 사막 좀비나, 넝쿨 고블린과 이끼 코볼트가 영역 싸움을 하는 사진까지.

“숲 필드의 넝쿨 고블린이랑 호수 필드의 이끼 코볼트가 같은 필드에 있다? 허…… 뭐가 이렇게 어지럽니, 완전 뒤죽박죽이네요.”

“마지막 사진에서 보신 것처럼 몬스터가 몬스터를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직 이유는 파악되지 않았지만 서로를 배제하려는 것 같습니다.”

“영역 싸움 같네요.”

“일단은 저희 작전부 의견도 그렇습니다.”

몬스터가 영역 싸움이라……

일리가 없진 않다.

하다못해 동물도 제 영역을 지키려 영역 싸움을 하는데, 그보다 몇 배는 더 호전적인 몬스터들이 잘도 조화를 이루며 살겠다.

“은밀히 알아본 결과 이런 이상 현상이 계속해서 목격되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말입니다.”

“심각하네요. 그냥 넘어가기에는 매우 심각해요.”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단순히 다른 몬스터가 나왔다?

그럴 수도 있다. 게이트는 미지의 공간이니까. 하지만 그건 민간인의 입장이고 옵티멈의 대표인 김연희는 다르다.

안일하게 대처했다간 옵티멈의 식구들이 다칠 수 있다.

“…….”

김연희가 다시 보고서를 훑어본다.

더없이 신중하게.

혹시나 빼먹은 정보가 있는지, 자신이 실수한 것이 있는지,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며 머리에 꾸역꾸역 정보를 집어넣고는 해석하길 얼마가 지났을까.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 이상 현상이 가리키는 방향이 선명히 그려졌다.

“생태계 붕괴…….”

김연희가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긴급회의 소집합니다. 팀장 이상 모두 대회의실로 모이세요.”

*   *   *

몬스터란 게이트의 정체성이다.

검은 숲, 톱날 오크 부락, 배불뚝이 미로 등등.

이 명칭을 붙이는 기준이 뭘까?

바로 몬스터다. 다른 게이트와는 차별되는, 이 게이트에만 있는, 이 게이트를 표현하는 가장 확실한 정체성.

이곳 검은 숲을 예로 들어 볼까.

트롤이 나오는 게이트는 많다. 하지만 ‘검은 숲’이라 칭해지는 곳은 이곳 하나뿐이다. 왜냐? 블랙 트롤이 나오는 곳은 여기뿐이니까.

이렇듯 우리는 출몰하는 몬스터에 따라 게이트의 정체성을 가늠해 이름을 붙여 부르기 시작하고, 이게 곧 게이트의 명칭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

지금 저곳에서.

“……밴시가 트롤을 먹어?”

“트롤이 밴시를 찢고 있고요.”

말하면서도 뭔가 어색하지만, 이 말 그대로다.

절벽 아래, 초원 저편에서 한 무더기의 블랙 트롤과 밴시 무리가 충돌하는 상황.

밴시들은 영령체인 몸집을 부풀려 블랙 트롤을 먹어 ‘지배’하려 했고, 블랙 트롤들은 이에 격렬히 저항하며 주술을 두른 몽둥이로 밴시들을 부수고 있는 중이었다.

대체 뭔 일이래? 보고 있어도 황당하다.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기혁. 저도 보고 있어요. 준우는요?”

“잘 보인다.”

“단체로 환각에 걸린 게 아니라면, 맞아. 밴시 쪽이 조금 더 유리해.”

“허, 뜬금없이 무슨 일이래.”

모두가 한마디씩 하는데, 내 어깨에 목마를 타고 있던 봄이도 합류한다.

“봄이도 보고 시퍼!”

“안 돼, 지지야.”

“그래두!”

“뭐, 봐봐.”

“지인짜?! 와!!”

봄이가 해맑게 웃으며 눈을 부릅뜨는데.

그래, 볼 수 있다면 보렴.

평소라면 절대로 안 보여 주겠지만, 지금은 거리가 멀어서 망원경을 쓰거나 마나로 눈의 안력을 키우지 않으면 육안으로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다.

역시나 금세 시무룩해지는 봄이.

“이잉, 안 보영.”

“안 보인다 했잖아.”

“그치마안.”

칭얼거리는 봄이를 달래며 다시 시선을 절벽 아래로 향한다.

블랙 트롤과 밴시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한데, 싸우기까지 하고 있다.

이를테면 무지성 백병전이라고나 할까.

전략도 없다. 전술도 없다.

때리고, 찢고, 먹고…… 죽어 나가는 동료를 뒤로하고 몽둥이를 내려치는 트롤이나, 자신의 존재를 태워 가며 공포의 절규를 내뿜는 밴시나.

그저 있는 것은 적을 향한 분노와 살의뿐.

이곳은 야만의 전쟁터였다.

“계속 보니까 은근 신나는데? 검투장 같기도 하고.”

“유리, 검투장은 불법이에요.”

“알아, 알아. 그냥 해 본 말이야. 흐응~ 누가 이기려나.”

진유리의 물음에 먼저 답한 건 준우.

“밴시가.”

“응?”

“밴시가 이겨. 영혼형 몬스터니까.”

공격 형태가 물리인 블랙 트롤로서는 영혼 타입 몬스터인 밴시를 공격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이게 준우가 하고 싶은 말이고, 실제 전투의 양상을 봐도 블랙 트롤 쪽이 밀리고 있었다.

하지만 메리의 의견은 달랐는데.

“아니요, 내 생각은 달라요.”

“오오, 커플의 의견이 갈라졌어! 메리 학생, 반론하시죠.”

“큼, 큼. 준우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그냥 트롤일 때 이야기지요. 우리가 보는 건 블랙 트롤이에요. 블랙 트롤은 달라요. ‘재앙’을 쓰잖아요. 재앙은 주술의 일종, 영혼 상태인 밴시도 얼마든지 공격 가능해요.”

“맞지.”

고개를 끄덕였다.

메리의 말도 맞다. 선두에서 밴시를 종잇장처럼 찢고 있는 건 재앙, 즉 주술을 두른 블랙 트롤의 몽둥이였다.

의견이 엇갈린 메리와 준우 커플.

서로를 노려본다. 자기주장이 강한 두 사람답게, 절대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주술은 무한이 아니다. 소모값이 존재하지. 반면 밴시는 형태 자체가 영혼형이다.”

“솔직히 이게 왜 갈리는지 모르겠어요. 밴시하고 트롤, 솔직히 트롤이 압도적이잖아요! 전투 레벨만 봐도 비교조차 되지 않아요.”

“그건 인간의 기준이다. 지금은 몬스터와 몬스터의 싸움. 사냥과는 완전히 달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네요. 영혼형 몬스터가 인간형한테 강하다는 것 또한 인간의 기준이에요. 저기 트롤 진영 보세요. 챔피언들 나오니까 전황 바뀌고 있잖아요.”

“너 또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군. 저기 봐라. 밴시 진영에서도 엘더 밴시 나오는 거. 진영 뭉개지고 있잖나.”

“억지예요, 준우.”

“억지는 네가 부리는 거고.”

“이익!”

“뭐.”

찌릿.

둘 사이에 전기가 오간다.

서로 사귀는 사이면 한 명쯤은 물러서 줄 만도 한데, 죽어도 자기가 옳단다.

둘의 모습을 보던 봄이가 내 귓가에 조심스레 속삭였다.

“아빠, 가수 삼쫀하고 선물 이모 싸우는 고야?”

“아니야, 그냥 서로 이야기하는 거야.”

“우리는 저러지 말자. 사랑하면 서로를 감싸 줘야지. 이렇게.”

“……좋은 말할 때 손 치워라. 부숴 버린다.”

“훗. 좋으면서. 부끄럼쟁이 기혁이도 매력 있어…… 아얏.”

진유리의 머리를 콩 때리고는 다시 전황에 집중했다.

블랙 트롤과 밴시의 전투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황.

사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냐가 무슨 상관인가. 여기가 검투장도 아닌데. 그럼에도 아까부터 계속 전투에 집중하는 이유는.

“숫자 늘어났네.”

수가 늘어나서.

현재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어서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양측 숲에서 쏟아지는 몬스터들.

처음에는 일반 몬스터만 쏟아 내더니, 이제는 아까 준우와 메리가 말한 대로 트롤 챔피언이나 엘더 밴시 같이, 정예 몬스터까지 쏟아 내고 있다.

마치 마른 나뭇가지에 붙은 불길처럼 실시간으로 세를 늘리고 있는 몬스터 무리들. 이제는 나처럼 따로 신경 쓰지 않아도 육안으로 식별이 될 만큼 그 수를 부풀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진유리가 오늘도 엉뚱한 발언을 하는데.

“바글바글. 저기에 광역 마법 날리면 끝내주겠다. 안 그래?”

“미쳤어요, 유리?!”

“안 돼!”

“깜짝이야!”

나와 메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 질렀다.

왜냐하면 우리 눈, 정확히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주술사의 눈’에는 보이니까.

정도 이상으로 타오르는 악의(惡意)의 불꽃이 말이다.

“함부로 건들었다간 큰일 난다.”

“이 정도로 흥분한 몬스터라면 공격받는 순간 어떤 식으로 나올지 몰라요.”

괜히 공격했다간 표적이 바뀔 수도 있다. 저릿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저 악의의 화살이 서로가 아니라, 이쪽을 향하면?

그때부터는 곤란해진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진다.

“……굳이 우리가 아니라도 누가 때릴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다. 진유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없을까? 더욱이 저기 있는 몬스터는 걸어 다니는 황금이라 불리는 트롤이다.

어부지리를 노린답시고 광역 마법이라도 쏘면…….

“이쯤 봤으면 됐다. 슬슬 짐 싸자.”

“왜에~ 한창 재미있었는데. 좀만 더 보자.”

“난, 기혁 의견에 찬성이에요. 아무리 봐도 불안해요.”

“사냥은 끝인가?”

“이 분위기에 사냥이 되겠냐. 빨리 나가서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자. 봄이는 뭐 먹…… 자네. 조용히 나가자.”

우리는 자리를 정리한 뒤 미련 없이 게이트를 나왔다.

……

그리고 며칠 뒤, 역시는 역시일까. 나의 감이 맞았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데.

국민 사냥터 ‘검은 숲’에서 대규모 사상자 발생.

생존자들 ‘밴시’와 ‘블랙 트롤’이 연합했다 증언. 몬스터 학계 논란.

‘검은 숲’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렇게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끝난 사냥.

이때만 해도 흥미로운 현상이라 생각했지, 관심까지는 주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를 본 그날 점심, 난 뜻밖의 장소에서 이 현상에 대해 듣게 되는데…….

*   *   *

“박기혁 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응?”

“‘생태계 붕괴 현상’에 대해서요. 박기혁, 당신의 의견이 궁금해요.”

지혜의 숲.

화려한 꽃들로 만개한 정원.

그 안에서 방실방실 웃고 있는 우리 봄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사랑스러워 폰으로 찍고 있었는데, 정작 질문은 영 개똥이다.

난 위그드라실을 뚱한 눈으로 쳐다봤다.

“봄이 보고 싶다고 해서 왔더니.”

“귀여운 박봄 양이야 언제나 보고 싶죠. 이건 개인적인 궁금함인 거고요.”

“그게 왜 궁금한데?”

“인간의 시선이 궁금하다고나 할까요. 인간들은 과연 이 생태계 파괴 현상을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가. 그런데 마침 제 앞에 박기혁 군이 있네요.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박기혁 군은 제가 신용하는 몇 안 되는 인간이거든요.”

“쓰읍.”

우리 조 애들을 제외하면 아카데미에서 봄이를 가장 많이 챙겨 주는 위그드라실.

덕분에 봄이에게는 요정 이모라는 애칭까지 받은 그녀였다.

이런 위그드라실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귀찮아도 진지하게 고민해 본다.

생태계 붕괴 현상.

우리가 본 것처럼 게이트 내에서 전혀 새로운 종류의 몬스터가 출현, 영역 다툼을 통해 게이트의 환경이 완전히 변하는 현상을 통칭하는 말이다.

어머니에게 듣기로는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대략 10퍼센트의 게이트에서 이 ‘생태계 붕괴 현상’이 벌어졌고, 실시간으로 현상은 확산되는 중이란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은.

“한 번쯤 변할 때가 됐지.”

게이트가 어떻게, 무슨 의도로 생겼는지 모른다. 다만 이 게이트를 통해 인간이 마석을 비롯해 각종 이득을 보고 있다는 건 안다.

그렇게 이득을 본 시간이 얼마인가.

“자연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고, 인간도 시대에 따라 변해. 그런데 게이트라고 영원할까. 그건 욕심이지.”

“그렇죠. 변화란 자연의 순리죠.”

“오히려 여태껏 고정되어 있었다는 게 더 이상한 거다. 뭐, 이렇게 이야기하지만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저놈은 원래 인간이 꿀 빠는 걸 못 보거든.”

“푸훗. 신한테 ‘놈’이라니요. 참 거침없어요. 제가 이래서 박기혁 군을 좋아한다니까요.”

무엇이 재미있는지 키득키득 웃는 위그드라실.

난 그 모습을 보다, 따뜻한 차로 입을 축이며 말했다.

“고작 이딴 거 물으려 바쁜 사람 불렀을 리는 없고, 본론부터 말해 봐.”

“역시 박기혁 군은 눈치가 빨라서 좋아요. 대화하는 재미가 있다니까요.”

“어디 해 봐. 혹시나 말하는데, 나보고 그 붕괴 현상을 조사해 달라는 거면, 거절이다.”

“어머, 어떻게 알았을까. 그런 부탁을 하려고 했는데.”

“이야기는 끝났네. 차 잘 마셨다.”

진짜로 몸을 일으키며 봄이를 부르려던 찰나.

순간 나를 멈춘 한마디.

“봄이 양 문제, 제가 해결해 줄게요.”

삐걱, 고개가 돌아간다.

그리고.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나의 눈이 검게 물들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