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55화 (55/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55화>

한편, 박기혁과 일행들이 사냥하는 동안, 박봄은 베이스캠프에서 아빠와 이모 삼촌들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째서일까, 박봄의 안색이 별로다. 빵빵하게 차오른 뽈따구에는 심통이 그득하다.

“아빠 미워. 봄이는 아빠랑 가치 가고 시픈데…….”

맨날 봄이만 남아라 해. 미워.

혼자 남겨진 게 어지간히 불만인 모양.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모두가 알다시피 존재를 나눠 받은 부작용으로 인해 박봄과 박기혁은 오랜 기간 떨어질 수 없는 사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게이트에 함께 오는 것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좋은 것만 봐도 모자랄 나이에 선혈이 낭자하고, 살점이 튀는 전장을 딸에게 보여 줄 아빠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나.

그러나 이런 아빠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기에는 어려도 너무 어린 봄이 어린이.

당장 자신을 홀로 남겨 두고 간 아빠가 미울 뿐이다.

“바뽀, 왜 아빠는 봄이를 데려가지 않는 걸까.”

그때, 바뽀란 부름에 그녀의 곁으로 회색 빛무리가 다가오는데.

회색 빛무리 안에 있는 건 염소?

정확히는 염소의 머리에 인간과 비슷한 이족 보행을 하는, 요정 혹은 정령과 비슷하게 생긴 존재.

그렇다. 이 존재의 정체는.

마왕의 오른팔. 대악마 바포메트였다.

설마 박기혁이 목숨보다 아끼는 봄이를 홀로 남겼을까 봐.

빈틈없는 보호책을 마련해 뒀고 바포메트는 이 봄이 보호책의 핵심이었다.

대악마에서 졸지에 마왕의 딸인 박봄의 수호 요정(?)이 된 바포메트.

처음에는 대악마의 드높은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했다.

인간을 보호하라니, 그것도 하등 쓸모없는 어린 인간을!

그래도 하늘같은 주인의 명령이기에 억지로 참고 했는데, 이제는 진심으로 박봄을 아끼는 바포메트였다.

바포메트가 박봄의 손에 올라 옹알거린다.

- 바뽀오 뽀오오 뽀오~

율동까지 섞어 박봄을 위로하는 바포메트.

앙증맞은 팔다리를 파닥파닥 휘젓고 있었다.

대악마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귀여움.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이 존재를 대악마라고 여길까 싶었다.

이런 눈물겨운 바포메트의 노력에 감동했을까. 봄이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봄이를 생각해서라구?”

- 뽀오!

“그러엄, 봄이도 데려가야지! 봄이는 아빠랑 같이 있고 싶다구!”

- 뽀오~ 뽀뽀오!

“위험? 그럴 리 업쏘. 울 아빠는 무적인걸. 왜냐하면…….”

순간, 교차되는 눈빛.

찌릿-

끄덕-

박봄과 바포메트가 무언의 사인을 주고받더니 벌떡 일어서.

“무적의!”

짤막한 손을 휘저으며 포즈를 취한다.

“캡티인~ 타이거어!”

- 바~ 뽀오!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르는, 성인이라면 절대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포즈지만, 귀여움이 절정에 이른 봄이와 마찬가지로 앙증맞은 바포메트가 콜라보를 이루니 귀여움이란 것이 폭발했다.

“훗. 조아써. 타이밍 끝내죠써.”

- 바뽀오~

주먹 인사를 나누는 두 사람…… 아니, 인간과 악마. 아니, 아이와 요정…….

어쨌든, 두 귀염둥이는 한창 재잘재잘 이야기꽃을 피웠다.

물론 일방적으로 봄이가 묻고 바포메트는 리액션만 하는, 대화인지 마임인지 모를 소통이지만, 종을 넘어 친구가 된 둘은 통하는 게 있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그리고 한참을 웃은 봄이에게 마침내 그 시간이 찾아왔는데.

“으으. 안 되에. 봄이 졸려.”

바로 낮잠 시간.

이때만 되면 귀신같이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봄이었다.

“안 되능데. 아빠 기다려야 하능데. 안 되능…….”

- 바뽀오~ 바뽀오~

“자장가 부르지마아…….”

봄이가 감기려는 눈을 필사적으로 힘을 내 보지만, 바포메트의 자장가는 암막 커튼처럼 봄이의 눈을 감기게 했고, 끝내 봄이는 침대에 누워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시 뒤, 바포메트는 잠든 봄이의 위로 이불을 덮어 주고는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가 공간을 뛰어넘어 모습을 드러낸 곳은.

베이스캠프 근처의 숲속.

바포메트가 오만한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 분명 경고했을 건데?

바포메트의 새까만 눈동자에 담긴 것은 인간들.

경고를 무시한 채 베이스캠프로 접근하려 했던 침입자였다.

- 건방진 것들.

바포메트의 눈이 심연처럼 가라앉는다.

소용돌이치는 공간.

뒤늦게 침입자들이 발버둥 친다.

실수였다. 살려 달라.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이미 너희는 죄를 지었다.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법.

- 벌 받을 시간이다.

사방에서 뻗어 나온 손이 인간들을 덮치고 있었다.

*   *   *

인원 제한이 없는 게이트에서 다른 파티를 만나는 건 특별한 일이 아니다.

게이트에서 인간을 만난다?

이상적으로 보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오히려 반갑다면 반갑겠지.

온통 나를 죽이려는 몬스터뿐인 이곳에서 대화가 통하는 인간을 만난다? 훌륭한 조언자가 될 수도, 든든한 동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낭만적이기까지 하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이 다른 것처럼, 엄연히 이상과 현실은 다른 법이다.

“얘들이야?”

- 그렇습니다, 주인이시여.

바포메트한테 제압당한 침입자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현재 이들은 옷이고 방어구고 모조리 난도질당해, 발가벗겨져 기절한 상태.

나의 시선이 한쪽에 고이 모셔 놓은 무기로 향했다.

“무기도 그렇고…… 반항은 안 했나 보네? 사지가 멀쩡한 거 보니까.”

-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소란이 있었습니다만 주제 파악을 하는 인간들인지 나중에는 스스로 무장 해제했습니다.

“다행이네. 괜히 피 안 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게이트에서 같은 인간은 몬스터보다 몇 배는 위험하다.

생각해 보자.

게이트란 어떤 곳인가?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차원이다.

이곳에 사는 것은? 괴물 혹은 몬스터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인간은? 이 몬스터를 잡을 수 있는 인간을 벗어난 초인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목적은? 마석 혹은 몬스터의 부산물, 더 정확히는 ‘돈’이다.

이것만 들어도 뭐가 싸하지 않나?

힘과 돈, 전투가 모인 곳에 절대 빠지지 않는 것.

맞다. 범죄.

범죄를 일으키기에 최적의 환경이 바로 여기 게이트란 말이다.

“하나 깨워 봐. 이왕이면 높은 놈으로.”

바포메트가 고개를 꾸벅 숙인 후, 한 놈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얼굴에 칼자국이 그어져 있는 게 여러모로 험악하게 생긴 녀석이다.

“……그래도 딸은 예쁘네.”

목걸이에 박힌 해맑게 웃는 소녀를 보다 피식 웃는다.

마법이 풀리며 기절한 녀석의 의식이 돌아왔다.

그럼에도 이를 악물고 기절한 척하는 녀석. 험악하게 생긴 것치곤 제법 약았다.

“깬 거 다 아니까, 눈 떠라.”

“…….”

“3초 안에 안 뜨면 영원히 못 뜨게 해 줄게.”

“……여, 여긴.”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를 시도하는 녀석.

허, 이 녀석 봐라. 아주 가지가지 한다.

“쓸데없는 연기하지 말고, 왜 접근했지?”

분명히 게이트에서는 매너 혹은 규칙이라 불리는 것들이 존재하고, 그중 대표적인 규칙이 ‘베이스캠프에 함부로 접근하지 말 것’이다.

“장비로 보나, 실력으로 보나, 이런 규칙도 모르는 애송이는 아닌 것 같은데…… 무슨 목적으로 왔을까? 약탈? 청부 살인? 설마 유괴?”

“오, 오해입니다! 그냥 길ㅇ…….”

“혹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말도 안 되는 변명 따위를 할 거면 그 입 닥치는 게 좋을 거야. 여기 보안 마법 내가 설치했거든.”

“…….”

“알람 마법만 총 세 번 울렸어. 귀가 아플 정도로. 그런데 너희는 지금 이 땅을 밟고 있거든? 이게 무슨 말이냐면…….”

검을 들어 녀석의 목에 갖다 대며.

“너희가 침입자란 증거지.”

“…….”

대검을 타고 핏방울이 흘러내린다.

“내 인내심은 끝났다. 말해. 빠짐없이.”

그제야 녀석이 두서없이 말을 뱉어 내고 있었다.

……

사건 발생 1시간 전.

케이노트 파티가 트롤을 사냥하고 베이스캠프로 귀환할 때였다.

“오늘도 완제품 건졌지?”

“어, 세 마리나.”

“젠장, X같네.”

“웬 욕? 두 마리나 건졌다니까?”

“나도 알아. 아는데 열 받잖아! 존나 안 나오던 놈들이 갈 때 되니까 우수수 떨어지고. 누구 놀리나.”

“난 또 뭐라고. 어쩌겠냐, 운인데.”

“그래도 대장 말 들으니 조금 꼴받긴 하다. 자리 안 좋은 것 같다고, 베이스캠프를 몇 번이나 옮겼는데도 안 나오던 놈들이 이제 좀 나오나 싶으니까 보급품이 앵꼬라니. 쩝.”

“내 말이! 하, 짜증 나네.”

케이노트 파티가 이곳 ‘검은 숲’에 들어온 지 19일째. 바로 어제까지 그들이 획득한 트롤 사체는 총 9구였다.

거의 이틀에 하나꼴.

대개는 하루에 하나 정도 건지면 평타라고 보는데, 이틀에 하나꼴이니 완전 쪽박이었다.

물론 마석들만 팔아도 손해는 아니지만, 누가 검은 숲까지 들어오면서 마석만으로 만족하겠나?

저주 해체 물약이나 상처 악화 물약처럼 검은 숲에 들어오기 위한 준비물만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당연히 파티들은 자신들이 들인 비용과 수고 이상의 성과를 기대했다.

이런 이유로 현재 케이노트 파티의 그 누구도 현재의 성과에 만족하는 이는 없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오늘 하루만에 3구의 시체를 획득했네?

19일째 9구를 얻었는데, 하루만에 3구.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그리고 여기서 문제의 발언이 나오는데.

“대장, ‘협조’ 좀 받는 게 어때?”

“…….”

협조.

협조란 단어에 대장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밖에서는 서로 돕는다는 의미의 단어일 뿐이지만, 게이트 안에서 이 ‘협조’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함축돼 있었다.

“얌마, 너 또 그러지?”

“아쉽잖아! 이제 좀 나오나 싶은데, 이대로 가라고? 넌 안 아쉬워?”

“……잘못했다간 평판만 나빠져. 그냥 가자, 대장.”

“맞아. 가뜩이나 요즘 주변에서 이상한 ‘소문’도 도는데, 괜히 오해받으면 X돼.”

“아니, 진짜. 내가 죽이자고 했어? 뺏자고 했어? 그냥 마석으로 식량이나 보급품 좀 구하자니까.

“새끼야, 그게 그거잖아.”

게이트.

법은 없고, 힘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협조’란 힘의 논리에 따르는 일이 많았고, 때론 협조란 이름의 ‘강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예를 들며 이런 거다.

물건을 사겠다고 온 사람 뒤에 덩치들이 지키고 서 있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는 세 보인다. 그런데 이들 앞에서 팔지 않겠다고 대쪽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할까?

게다가 여기는 법도 없는 곳인데?

괜히 ‘타 파티의 베이스캠프에 접근하지 않는다.’라는 불문율이 생긴 게 아니다. 법보다 힘이 앞서는 게이트라는 무법 세계에선 되도록 같은 인간을 만나지 않는 게 서로에게 좋았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서로에게 좋기보단 ‘내’가 좋기를 바라는 법.

“……좋아, 이야기만 꺼내 보자. 오해하지 마. 식량만 사는 거야, 식량만. 명심해. 식량만이야.”

대장은 끝내 규칙보다는 이득을 선택했고.

이게 현재, 박기혁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이유였다.

……

“그러니까, 사냥은 더 하고 싶고, 식량은 없으니 다른 파티에 ‘협조’란 명목으로 강매를 하려 했다?”

허……

너무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오네.

난 무릎을 꿇고 있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정말 식량만 사려고 했습니다! 폐를 끼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걸 말이라고 해? 경보는? 경보가 울렸으면 멈췄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그건…….”

“그건?”

“그, 그거언…….”

뒤룩뒤룩, 눈깔을 굴리던 놈은 결국.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후우.”

사실 이런 경우가 드문 건 아니었다.

특히 이곳 ‘검은 숲’처럼 인기가 많은 게이트라면 본의 아니게 베이스캠프를 침범하는 일도 적지 않다. 그래서 경보 마법을 덕지덕지 깔아 놓은 거고.

어쩔까나.

잠깐의 고민이 이어지고.

내 결정은.

“그냥 가라.”

“……네에?”

“그냥 가라고. 못 들었어?”

“가, 감사합니다!”

“다음부터 조심해.”

반성하고 있다?

그런 건 모르겠다. 내가 독심술을 쓰는 건 아니니까.

다만 바포메트가 나타난 후 스스로 무장 해제했다는 점이며, 영혼이 생각 이상으로 탁하지 않다는 점에서 정상 참작됐고.

결정적으로 녀석의 목걸이에 박혀 있는 웃는 여자아이가 눈에 걸렸다.

“목걸이에 있는 거 딸 맞지?”

“그렇습니다…….”

“귀엽네. 잘해 줘.”

딸의 언급에 처음으로 녀석의 얼굴에 그늘이 진다.

부끄러운 거다. 딸의 사진을 목걸이에 걸고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인 모양이다. 부끄러운 줄 알고.

‘나도 참 많이 변했네.’

옛날 같았으면 사지 하나쯤은 자르고 대화했을 건데, 이제는 이런 인간적인 생각도 할 줄도 알고. 새삼 내 안에 봄이의 존재가 크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침입자 해프닝은 마무리되는 것으로 보였다.

모두 내 눈치를 보며 숲으로 사라지고, 마지막으로 녀석이 인사하는데, 그때 이상한 말을 꺼낸다.

“요즘 검은 숲에서 의문의 ‘습격’이 벌어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목격자에 의하면 이 습격자가 유령이란 말이…….”

유령의 습격이라.

솔직히 이때만 해도 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마왕인 내가 고작 유령 따위에 무서워하겠나.

그런데 정확히 3일 뒤.

우리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마는데.

“……벤시가 트롤을 먹어?”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