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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술 명가의 마왕님-52화 (52/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52화>

“헉! 헉……!”

미친 듯이 달렸다. 그 어떤 격렬한 전투보다도 훨씬 더 격렬하고 치열하게 달리고 또 달렸고.

드디어 저 멀리 꽃가람 유치원이 보인다.

현재 시각 1시 29분.

아슬아슬하게 세이프.

겨우 늦지 않고 도착했다.

“후우우-!”

긴장이 풀리자, 수축했던 근육이 일시에 풀렸다. 잔뜩 차오른 숨을 몰아쉬는데 며칠 전 어린이 집 입원(入園) 설명회에서 마주했던 여자가 반갑게 말을 건넸다.

“봄이 아버지 아니세요. 어우, 땀 봐. 여기, 이걸로라도 닦아요.”

“가, 감사합니다. 아직 안 늦었죠.”

“풋. 조금 늦어도 괜찮은데.”

“후우, 봄이랑 약속해서요.”

“약속…… 그렇죠. 약속 참 중요해요. 봄이 아버지는 참 좋은 아버지네요.”

현지 엄마로 불리는 분인데, 워낙 인상이 좋아 여러모로 좋게 기억하는 분이었다.

현지 엄마가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창문에 얼굴을 비춘다.

조막만 한 아이들과 전에 봤던 유치원 선생님이 보인다. 칠판에 준비물이 쓰여 있는 걸 보면 끝인사를 하는 것 같은데 아이들은 농담으로도 집중하는 모습이 아니다.

자기 어머니가 왔는지 기웃기웃 이쪽을 엿보는 아이들.

그리고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우리 봄이다.

공주님 머리를 하고는 의젓하게 앉아 있는 봄이.

하지만 난 안다. 의젓하게 보이는 저 모습이, 너무 불안해 얼어 있는 것이란 것을.

아마 엄마들 틈에 내가 보이지 않아서겠지.

손을 크게 흔들어 봄이에게 얼굴을 비춘다. 내 노력이 통했는지 봄이랑 눈을 마주쳤고, 그제야 우리 이쁜 딸내미는 잔뜩 굳어 있던 자세가 스르르 녹았다.

귀여워.

“내 딸이지만 너무 귀엽다니까.”

“풋. 그렇게 귀여우세요? 정말 봄이 아버지는 봄이를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

“저기 현지 엄마, 이 젊은 분은……?”

“아! 이번에 입원하는 봄이 아버지 되세요. 봄이 아버지, 이쪽은요…….”

나를 중심으로 아줌마들이 모여들었다.

전부 이번에 꽃가람 유치원에 아이들을 입원시킨 어머니들이다.

힐끔힐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살피는 어머니들. 하긴, 그녀들 입장에서 새파랗게 어린 남자가 자신들의 커뮤티니에 등장했으니 궁금하긴 할 거다.

질문이 이어진다.

나이가 몇 살이냐. 어디 사냐. 직업은 뭐냐.

꽤 명문으로 불리는 유치원이라서일까. 비교적 무례한 질문은 없다. 그저 간단한 호구조사.

자식 가진 입장에서 충분히 용납될 질문들이었다.

물론 이런 분위기에도 선을 넘는 사람이 있긴 한데.

“쯧, 대체 애를 몇 살에 낳은 거래. 엄마는요? 엄마는 어디 있어…….”

“저기요, 성민이 엄마. 초면에 무슨 무례인가요.”

“맞아요. 교양 없이.”

알아서 커트당한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새롭게 안 사실. 현지 엄마가 의외로 이 커뮤니티의 대표란다. 어쩐지 이리저리 잘 챙겨 주더라.

“그런데 봄이 아버지. 봄이는 유치원 잘 가려고 해요?”

“아뇨, 오늘도 엄청 울었는데요.”

시간 맞춰 오겠다고 약속에 약속, 손가락까지 걸고 나서야 겨우 보냈었다.

“아, 그래서 뛰어왔구나.”

“그쪽 아이도 그렇구나. 저희 애도 그래요. 오늘도 아침에 유치원 가기 싫다고 얼마나 떼를 쓰던지.”

“해수도요? 저희 연우도 아침마다 전쟁이라니까요.”

분리 불안.

반려견이나, 반려묘를 키우면 한 번쯤 들었을 법한 말일 거다. 쉽게 설명해, 애착 대상과 떨어지며 겪는 불안 증세다.

거창하게 표현했는데, 사실 이 분리 불안이란 건 이맘때 아이들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이다.

자연스러운 성장 과정의 한 부분이랄까.

왜 안 그렇겠나. 태어나서 부모만 보고 컸던 아이가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졌다.

유치원이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어른도 새로운 환경을 맞닥뜨리면 긴장부터 하는데, 하물며 신체도 자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다.

그래서 입원하고 몇 달 정도는 가능한 한 오전 수업만 하는 것이고.

“너무 걱정 마세요. 조금 있으면 적응할 거예요. 저희 첫째도 처음에는 못 간다고 생떼를 부렸는데, 나중에는 깨우지 않아도 자기가 일어나서 가방까지 챙기던걸요.”

“혹시 첫째가 아들?”

“네, 어떻게 아셨어요?”

“헤, 뻔하죠. 백이면 백,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긴 거겠죠.”

“어떻게 아셨대. 호호. 그러고 보니 우리 셋째도…….”

하지만 우리 봄이의 분리 불안은 이런 일반적인 아이들의 경우랑은 다르다. 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심리적인 진통이라면, 봄이는 엄연히 다른 문제였다.

“아쁘아아!!”

“봄아.”

쏘아지듯 달려드는 봄이를 안아 든다.

역시나 내 눈에 가장 먼저 보이는 건, 탱탱 부은 눈.

“딸내미, 오늘은 몇 번 울었어?”

“두 번바께 안 울어떠.”

“정말?”

“……세 번.”

“진짜?”

“……네 번. 미아네.”

“우리 딸이 뭐가 미안해.”

오히려 아빠가 미안하지.

봄이가 이토록 아빠를 찾는 이유는, 심리적인 부분이 아닌 영혼, 정확히는 ‘존재’에 각인된 문제였으니까.

내 머리를 꼬옥 끌어안는 아가를 말없이 꼭 끌어안아 줬다.

*   *   *

이건 과거, 그러니까 봄이가 진화단에 납치되어 푸른 용액 속에서 죽음의 문을 두드리던 당시의 이야기다.

지금 와서 말하는 건데, 당시 상황은 정말 최악이었다.

진화단의 실험은 ‘혈족 계승’을 강제로 이루는 것이다.

굳이 예를 든다면 장기 이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타인의 장기를 이식하듯, 혈족이란 힘을 대상에게 이식한다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 증거로 당시 봄이의 몸에 들어 있던 혈족의 종류는 ‘무희’, ‘악묘’, ‘숙수’를 포함해 16종류.

무려 16종류의 혈족을 아직 그릇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이 조막만 한 아이의 몸에 쑤셔 박은 거다.

무식한 짓이다.

내가 말했던가, 이 ‘혈족 계승’이란 건 이치를 벗어나는 힘이라고.

검 한 자루만 들면 본능적으로 검술을 뿜어내는 검호나 마법의 핵심, ‘진리’를 아무 대가 없이 엿보는 진룡이나.

이게 정상적인 힘으로 보이는가?

절대 아니다.

이런 이치를 벗어나는 힘을 고작 피 몇 방울로 온전하게 이식한다?

터무니없는 소리.

일단 교환 비율부터 말이 되지 않잖나.

하지만 사정이야 어쨌든 봄이 몸에 혈족들이 이식됐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16종류!

거기까지면 다행이게?

이식된 혈족들이 저마다 봄이의 몸을 차지하려고 전쟁까지 벌여 댔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린 봄이의 신체가 버틸 리 만무하다.

‘얼라이브’를 통해 가까스로 신체의 붕괴를 봉합했지만 근본적인 저 다수의 혈족들을 해결하지 않는 이상, 봄이의 몸은 폭우 아래 모래성처럼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나눠 준 것이다.

나의 일부를.

몰아치는 폭우 속에서 모래성이 부서지지 않도록, 봄이가 부서지지 않도록 내가 봄이의 버팀목이 되어 줬다.

그래.

봄이는 진정한 의미로 나 ‘박기혁’의 존재를 이어받은 나의 분신이었다.

*   *   *

한 손에 봄이를 안은 채 동아리실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쿠우웅-!

육중한 굉음과 함께 동아리 ‘출구 없는 지옥’의 문이 열리고, 늘 그렇듯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왔냐. 봄이도 어서 오고.”

이건 한창 랙에서 스쿼트 중인 준우.

“왔네요, 기혁. 연락이 없기에 우리끼리 점심시켰는데 더 시켜야겠네요. 잠시만요.”

내 답은 듣지도 않은 채 폰부터 드는 메리.

그리고 칠렐레팔렐레 탭 댄스를 추듯 날아오는 저 문제의 여인은.

“뽀마!!”

진유리.

이 구역의 미친년이다.

“아쁘아. 봄이 인사해야 해. 내려죠.”

“응.”

폴짝, 뛰어내린 봄이가 배꼽에 손을 올리고는.

“다녀와뜹니다.”

“허업!!”

“……!!”

“……!!”

시공이 멈춘다.

모두가 경악한다.

이게 정녕 이 세상 귀여움이란 말인가.

매일 보는 귀여움이지만 짜릿해, 늘 새로워.

그리고 이런 내 생각에 200퍼센트 동의하는 진유리는 이미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수, 숨이 안 쉬어져. 나 기절한다~.”

아주 쌩쇼를 한다 생각하지만, 그만큼 치명적인 귀여움이라 생각하자.

그 와중에 우리 착한 봄이는 바닥에서 부들거리고 있는 이 미친 언니가 걱정인 모양.

총총 뛰어가 진유리를 부여잡고는 촉촉한 눈망울로.

“딸기 언니. 아프지 마.”

……게임 끝이다. 저걸 누가 버텨.

준우는 어깨에 바벨을 든 채 기우뚱거리더니 옆으로 쓰러지고, 메리도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나? 나는 이미 누운 지 오래지.

“선물 이모! 가수 삼쵼!! 아쁘아!!”

참고로 선물 이모는 메리다. 나갈 때마다 선물을 한 보따리 사 줘서. 가수 삼촌은 준우. 티비에서 보던 ‘아기 고래’ 율동을 잘 춰서다.

한바탕 소란이 수습된 후,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준우랑 메리는 스파링 코트에 들어섰고.

“잊지 마요. 점심 내기예요.”

“생선까스 잘 먹겠습니다.”

진유리는 항상 그러했듯 봄이랑 놀고 있다. 종목은 인형 놀이. 요즘 둘이 꽂힌 놀이였다.

“언니가 봄이 주려고 새로운 인형 가져왔지…… 짠!! 슈퍼 히어로 에디션! 여기 너 좋아하는 대검도 있다. 어때?”

“우와아아! 머쪄! 언니 최고오!!”

“히히히. 최고면 뽀뽀해 줘.”

“백 번 해 줄고야! 쪽쪽쪽.”

마지막으로 난 봄이 옆에 앉아 어린이집 알림장을 읽었다.

“으응? 내일 모레 소풍? 도시락을 어떻게…….”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1년 동안 지겹도록 봐 왔던 장면.

나눠 준 존재가 무사히 안착할 때까지 봄이는 나와 떨어질 수 없었고, 결국 아카데미도 함께 다녀야 했다.

이에 교수들이 말이 많았다는데, 간단히 해결됐다.

천수만과의 독대로.

“제가 1학년이에요. 졸업까지 3년 남았네. 3년, 3년…… 참 길어요. 그렇죠?”

“…….”

남은 3년. 내가 천사가 될지 악마가 될지는 너의 손에 달렸다.

어쩔래?

천수만은 당연히 나를 제어하는 쪽을 선택했고, 봄이와 함께 수업 듣는 것을 허용해 준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언제나 함께였다. 수업 시간도, 밥 먹을 때도, 잘 때도…… 심지어 게이트행도.

그런 아이가 이제 유치원에 간다고 하니, 봄이의 유치원 가방을 만지작거리며 괜히 감상에 젖었다.

하지만 감상도 잠깐.

우리 꼬맹이들이 감상에 젖을 시간을 주지 않네.

“흠- 나는 악룡. 인간들이 사는 곳에 왔다. 나약함의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군. 내 손으로 무너뜨려야겠다.”

“안대엣!!”

“아니?! 너는!”

“나능야 정의를 지키능 캡띤 타이거! 널 부수게따!”

“푸하하핫. 애송이! 네게는 무리다!”

“이익! 아니다! 정의능 이긴드아! 받아랏!!”

악룡? 캡틴 타이거? 그나저나 저 시나리오는 누가 썼대? 꽤 탄탄하잖아.

슬쩍 보니, 인형들도 실감나게 싸우고 있다.

그냥 하는 표현이 아니라 진짜처럼 ‘실감 나게’.

얍! 얍!

탱-! 탱-!

검을 든 인형들이 격렬하게 부딪치고 있다. 어떠한 보조 장치도 없이 오직 마나로만 움직이는 인형.

진룡가의 ‘교육용 인형’이었다.

태어나면서부터 마나를 지닌 채 태어나는 진룡 가문.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마나를 자연스레 제어하기 위해 교육을 받는데, 이 인형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인형을 통해 마나 제어를 익힌다.

흥미와 실력, 두 가지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훌륭한 방식이다.

‘잘 만들었다니까.’

말이 인형이지, 구동 방식 자체가 골렘이나 워 아머처럼 우리가 사용하는 사역마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게 유아용 놀이기구라니, 알면 알수록 신기한 가문이다.

한편으론 이런 진룡의 놀이기구를 자연스럽게 다루는 우리 봄이가 대단하기도 하고.

“애송이! 아직 멀었구나. 쓰러져라!”

“아냐! 타이거능 쓰러지지 아나!”

“흥, 넌 이미 쓰려져 있다!”

“아니얏! 봄이, 아니, 캡틴 타이거에게는 필살기가 있어!”

그렇게 외치며 봄이가 내 쪽을 본다. 마치 봉인 해제를 허락 받는 용사의 눈빛이다.

음, 그걸 보여 줄 생각인가?

난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봄이의 눈이 반개하더니 쓰러졌던 캡틴 타이거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뻗는데…… 검이 날아온다?

“더블 캐스팅이잖아?”

놀란 진유리가 멍하니 말을 뱉어 냈다.

더블 캐스팅(Double Casting)

풀어 보자면 독립된 두 가지의 마법을 동시에 구동하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꽤 높은 수준을 요하는 기술이다.

이쯤 되자 나도 알림장을 덮어 두고 인형극에 집중한다.

캡틴 타이거가 검을 들었다. 검도 그냥 검이 아니라 대검.

항상 내가 쓰는 게 대검이라, 어느새 봄이의 머릿속에는 ‘아빠=대검’이라는 공식이 박혔고, 봄이의 최애 검도 대검이 되었다.

봄이가 외쳤다.

“필. 쌀. 기!”

캡틴 타이거가 기수식을 취한다.

하늘을 찌를 듯 곧추선 대검.

“……뭐야 저거.”

익숙할 거다. 사냥하면서 많이 봤으니까.

곧이어 진유리의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봄이가 목 놓아 외쳤다.

“거. 모. 류!”

요즘 내가 가장 자주 쓰고.

“강. 검. 술!”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검술.

“산. 사. 때!”

산사태.

콰직!!

대검이 내려쳐지고.

악룡이 무너졌다.

아니, 악룡만이 아니라 인형극의 무대가 폭삭 주저앉았다.

“정의가 승리했다아아!”

방방 뛰는 봄이.

“지금 내가 뭘 본 거야…….”

진유리도 황당하다는 듯 부서진 무대와 봄이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빠, 해내써! 봄이가 해내써!”

“어이쿠, 내 새끼.”

뭐가 이상한가.

검호가 검호 했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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