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51화>
무대 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으면 여기까지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이 소란의 주인공인 김연희가 마지막으로 복장을 점검하고 있었다.
“기자들은, 많이 왔어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호……! 기대할 정도예요?”
“깜짝 놀라실 겁니다. 회견장 자리가 부족할 정도니까요. 국내 방송국은 전부 참석했고 외국 방송국에, 심지어 에이전트까지 업계 관계자들은 모두 모였습니다.”
“유난이다 정말~ 아들이 엄마한테 선물 준 것뿐인데 뭘 그리 관심이 많은지. 안 그래요, 비서실장님?”
“대표님…… 혹여나 회견장에서 그런 소리는 하지 마십시오. 큰일 납니다. 세상에 어느 자식이 선물로 ‘인공 정령석’을 만들어 줍니까.”
“훗. 하긴, 우리 기혁이가 뜬금없긴 해…… 끙…….”
“불편하십니까?”
“어우, 실장님. 미안해요. 나 살쪘나 봐. 작년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비서실장이 “괜찮습니다…….”라고 말을 흐리더니, 무전을 돌렸다.
잠시 뒤, 말끔히 차려입은 비서진들이 들어와 다시 옷을 준비했다.
“죄송해요. 번거롭게.”
“요즘 대표님 외식이 잦긴 했습니다.”
“하긴, 어지간히도 먹었죠. 그러면서 옷이 맞길 바라는 걸 보면 나도 참, 양심도 없다니까.”
“그래도 보기 좋습니다. 많이 행복해 보이십니다.”
비서실장의 말에 김연희가 빙그레 웃었다.
그래, 맞는 말이다.
지난 1년. 김연희의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데 뭉치고,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었던 시간. 거기에 선물처럼 우리 곁으로 찾아온 봄이란 이름의 천사.
조용했던 집에 매일 같이 활기가 넘쳤다.
홀로 외롭게 식사를 해결했던 식탁은 식구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쓸데없이 넓기만 하다고 생각했던 거실은 대식가인 검호 가문의 야식을 감당하기에는 턱도 없을 만큼 비좁았다.
화목한 가족. 김연희가 그토록 바라 왔던 가족의 모습이 드디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엄마로서 더 노력해야지.
이 행복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애들 입이 몇인데, 안 굶기려면 오늘도 열심히 일해야겠죠. 자, 가 볼까요.”
“모시겠습니다.”
김연희가 가슴을 활짝 펴고는 무대에 올라섰다.
차르르르르-!
천둥처럼 울리는 셔터 소리, 빗발치는 플래시 세례.
분명히 방송국당 1명의 인원으로 제한된 기자 회견인데 이 넓은 회견장이 발 디딜 틈도 없다.
이토록 뜨거운 관심이라니…… 김연희는 새삼스레 막둥이가 자랑스러웠다. 오랜 방황에서 무사히 엄마 품으로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이렇게 엄청난 선물까지 해 주고.
괜히 가슴이 벅차는 김연희였다.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다. 너무 행복해서, 그럴수록 더 어깨에 힘을 줬다.
아들에게 선물받은 무대다.
엄마로서 완벽하고 싶다. 아니, 완벽해야만 한다.
절대로.
“옵티멈 대표 김연희입니다. 지금부터 ‘인공 정령석’에 대한 설명회를 시작하겠습니다.”
* * *
혁신이란 무엇인가. 옵티멈이 답을 내다!
‘인공 정령석’이 낳은 변화의 바람. 과연 어디까지?
업계 관계자 “아티팩트에서 정령석은 필수불가결한 재료.” 시장 변화 확신.
너도 나도 ‘인공 정령석’. 세계의 관심 한국으로 몰리다!
대통령 초청 “초인 산업은 한국의 미래!” 규제 완화 예고?
김연희 대표 “라이선스를 팔 생각은 없다.” 제련 업계 긴장!
제련업 진출에 대한 물음에 김연희 대표. “이미 충분히 바쁘다. 더 바쁘기는 싫다.” 제련 업계 한숨 돌리다.
옵티멈 “정부와 공장 부지 협의.” 일자리 시장에 활력 불어넣나.
코스피 외국 자본 투자로 연일 고공행진.
옵티멈의 한마디에 울고 웃는 나라. 이대로 괜찮은가.
……
…
“……인공 정령석! 이건 단순한 발명품이 아닙니다! 이건 혁신의 신호탄입니다! 업계를 넘어 세계 시장 경제를 뒤집을 초특급 핵폭탄이란 말입니다!!”
“하…… 하…… 저기, 전문가님. 흥분하지 마시고.”
“가만있어 보세요. 네? 제련 업계만 영향을 받는다? 겨우 이 정도로 생각하면 천만의 말씀입니다. 아주 미시적인 관점이란 거죠.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여태껏 정령석을 어떻게 구했습니까, 사회자님?”
“그, 그야 사냥을 통해서겠죠.”
“맞습니다! 사냥! 여태껏 우리는 사냥을 통해 정령석을 얻었습니다. 낮은 드랍률 탓에 기껏해야 소량을 구할 수밖에 없었죠.”
“가격이 비싸지겠군요.”
“수요와 공급의 원칙이죠. 해마다 초인들은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들 전부 무기가 필요하고, 무기에는 전부 다 싶을 정도로 정령석이 필요하죠. 그런데 지금 어떤가요. 정령석은 항상 부족합니다.”
“아티팩트를 만들 때 화 속성 정령석이 필요하단 말은 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게 화 속성일 뿐입니다. 조금이지만 수 속성 정령석도 필요합니다. 스태프나 완드 같은 목제 아티팩트를 만들 때는 토 속성 정령석도 필요하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아티팩트에는 정령석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런 높아진 수요가 정령석의 가치를 높이고, 헌터들이 정령석을 사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공 정령석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흠…… 굳이 사냥으로 정령석을 얻을 필요가 없겠군요.”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이제 우리는 낮은 확률로, 더럽게 비싼 정령석을 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가격이 떨어지면? 헌터들이 정령석을 구하러 다닐 이유가 없어지게 됩니다. 오! 대체 몇 개의 게이트가 비주류 게이트로 될지 예상이 안 되는군요. 예를 들면 ‘화산숭이 용암지대’ 같은 곳은 망하는 거죠.”
“전문가님은 인공 정령석의 출현이 사냥 패턴마저 바꿀 거란 말씀입니까?
“사냥 패턴 ‘마저’가 아닙니다. 사냥 패턴‘도’예요. 정령석이 풀리고, 가격이 떨어지고, 떨어진 가격으로 장인들은 무기를 마구 찍어 낼 겁니다. 자연히 아티팩트 가격은 떨어지겠죠. 그런 가운데 무기의 질은 상승될 겁니다.”
“…….”
“그렇게 만들어진 아티팩트가 초보 헌터들의 손에 쥐여집니다. 오! 조금 사는 집 같으면 6급 이상의 중급 아티팩트를 손에 쥐는 것도 꿈이 아니겠군요. 그렇게 무장을 갖춘 헌터들이 1레벨 게이트도 들어갑니다. 고블린의 작고 귀여운 단검이 6급 아티팩트를 뚫을 수 있을까요?”
“…….”
“여기서 덧붙이자면 우리가 아는 골렘, 워 아머 같은 사역마, 혹은 소환물로 보이는 것들의 핵심 재료도 ‘정령석’입니다. 이제껏 비싸서 사용하지 못한 소환물들의 가격도 낮아진다는 소리죠. 이로써 사냥은 한층 더 쉬워질 겁니다.”
“허…….”
“이제 짐작되십니까. 인공 정령석 저거, 생태계를 파괴할 겁니다. 이제까지 갖춰 왔던 기존의 초인 생태계를 송두리째 말입니다.”
……
…
“그런데 말입니다. 재미난 소문을 들었는데요. 이 인공 정령석이 사실 옵티멈 대표 김연희 씨의 막내가 만들어 냈다는데, 전문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택도 없는 소리죠. 김연희 씨의 막내라면, 박기혁 군 아닙니까? 이제 겨우 20살이 된 학생이 인공 정령석을 만들어 냈다고요? 하…… 농담도 잘하시군요.”
“하, 하.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
* * *
한편 ‘인공 정령석’ 때문에 세상이 발칵 뒤집히고 있는 그 시각. 정작 이 인공 정령석을 만들어 낸 박기혁은 그딴 주목에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눈앞에 더 재미있는 게 있으니까.
검.
싸움.
그리고 호적수.
“후웁!!”
대검이 내려쳐졌다.
무서운 광풍과 함께 빛의 궤적이 내리친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유성 같아, 그 이름도 ‘별똥별’인 검호류 쾌검술이었다.
쐐액-! 쇄애액! 쐐액!!
순식간에 일곱 개의 별똥별이 대지를 강타했다.
일곱 줄기 섬광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가운데 박기혁의 형, 산군 박수혁이 섬광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느리단다.”
쾌검술의 기본은 ‘빠름’이다.
강함과 빠름은 엄연히 다른 법.
박수혁은 사랑하는 동생에게 이 사실을 똑똑히 알려 줄 생각이다.
박수혁의 검이 움직였다.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흐느적, 흐느적…….
검이 공기의 저항을 무시하는 것처럼 유려하게 흐른다.
곧이어 수십 개의 섬광이 내리쳤다.
빛의 폭우가 내려치듯 일대를 집어삼키는 박수혁의 별똥별. 눈 깜짝할 새 빛의 궤적에 포위당하고 마는 박기혁.
똑같은 별똥별인데, 분명히 똑같은 기술인데.
완전히 다르다.
박기혁의 별똥별이 빛의 철퇴와 같다면, 박수혁의 별똥별은 빛의 감옥 같았다.
“크흑.”
벗어날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다.
빈틈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완벽한’ 검술.
결점 따윈 없는 완벽함.
쾌검을 가장 쾌검처럼, 패도를 가장 패도처럼.
기술의 핵심을 보는 ‘즉시’ 이해하는 것을 넘어, ‘정확’하게 구현까지 한다.
진룡이 가진 ‘용의 눈’ 검술판이라고나 할까. 아니, 완벽하게 구현까지 한다는 점에서는 용의 눈보다 더 괴랄한 능력이다.
완벽이란 이름에 이보다 걸맞은 사람이 있을까.
완벽(完璧).
이게 산의 왕이라 불리는 산군 박수혁이었다.
‘매번 생각하지만 정말 괴물이라니까.’
괴물.
극찬이다.
박기혁이 뱉을 수 있는 최고의 극찬.
이 세계에서 눈을 뜨고 가장 찬란한 재능이 눈앞에 있다. 솔직히 포텐셜만 따지면 성녀와 비견될 정도.
이런 사람이 내 형이다. 내 가족이다.
그리고, 내 상대다.
빛이 만든 감옥 속에서 박기혁은 활짝 웃었다.
그렇게 웃음이 빛의 궤적에 삼켜지는 순간.
검호류 강검술
산사태
쿠웅-
대지가 울컥 부풀어 오르더니.
콰아앙-!!
터져 나갔다.
강검(强劍).
오직 힘. 모든 걸 짓뭉개는 힘이야말로.
강검의 근본.
그리고 힘은 거인의 육체를 지닌 박기혁이 가장 자신할 수 있는 무기였다.
“……!!”
박수혁이 급히 뒤로 물러났다.
저 말도 안 되는 괴력과 정면으로 붙는 건 어리석은 짓. 자신의 동생이지만 정말 인간 같지 않다, 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그 모습에 박기혁이 함박 웃었다.
“역시 이거지!”
기술보다는 힘이다!
‘강검’이라는 어울리는 옷을 입은 박기혁의 대검이 거침없이 휘몰아친다.
모래가 비산하고 흙은 주위로 밀려 나갔다. 산사태로 산이 깎여 나가는 것처럼 층층이 솟아오른 흙더미가 파도처럼 주위를 덮쳤다.
박수혁의 별똥별이 남긴 빛의 감옥 따윈 이 혼란에 휘말려 자취를 감춘 지 오래.
아니, 감췄다는 표현이 무색하다. 이제 위험한 건 오히려 박수혁이었으니까. 현재 박기혁의 ‘산사태’는 박수혁의 턱끝까지 몰아치고 있었다.
충돌하는 검격, 날붙이와 날붙이가 부딪치는 파열음 속에서 형제는 웃고 있었다.
“더 강해졌구나.”
“덕분이지.”
챙-!
“그래도 힘에만 의존하면 안 돼.”
“약점을 보완하기보단 장점을 살리자는 주의거든.”
챙!!
“그러다 큰코다친다.”
“일단 다치고 생각하려고.”
“그래? 하하. 그럼.”
박수혁이 시원하게 웃더니.
“다쳐 봐야겠네.”
검호류 강검술
용오름
힘 대 힘.
네가 힘이라면 나도 힘이다.
박수혁의 강검술, 용오름이 펼쳐졌다.
대기가 휘몰아치길 잠시, 돌풍이 일대를 초토화시켰다.
파괴적인 위력이 마치 고위 바람 마법 ‘토네이도’를 보는 것 같지만,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
용오름은 엄연히 검술이고, 이 돌풍의 격류 하나하나가 검기란 것이다.
여타의 검술이랑 규모가 다르다.
이걸 검술이라 부를 수 있는 수준인가.
박기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질릴 정도야. 마법사들은 뭘 먹고살라고.”
감상은 잠깐.
바로 대검을 새로 잡고는 같은 ‘용오름’으로 응수하는 박기혁.
하늘 끝까지 솟아오른 두 줄기 용오름이 똬리를 튼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화창한 태양…… 그리고 솟아오른 태양을 향해 솟구치는 두 줄기의 용오름이, 마치 용 두 마리가 나란히 승천하는 것 같은 신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아래의 상황은 전혀 달랐는데.
그야말로 풍비박산(風飛雹散).
검기로 이뤄진 돌풍에 나무가 부서지고, 돌은 으깨졌다. 그나마 바위 정도는 돼야 형체를 유지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이 재난과 같은 소란 속에서.
마침내 두 마리 검호가 눈을 뜨는데…….
박수혁의 머리칼이 길게 늘어지며 변색된다.
부와 명예, 신성, 영광, 이상.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가치를 지닌 색이며, 왕을 상징하는 색.
황금.
박수혁의 본능 ‘군왕(群王)’의 색이었다.
그에 비해 박기혁의 본능은 ‘파괴(破壞)’. 신체 곳곳에서 검은 마법진이 줄무늬처럼 새겨지더니 송곳니가 길게 돋아나고 있었다.
“안 봐준다.”
“언제는 봐줬어?”
“그건 그렇지.”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다.
검호의 본능이 깨어났고 둘의 손에는 검이 들려 있다.
다음은?
격돌!
검호류 군왕
태평성대(太平聖代)
VS
검호류 파괴
메테오(Meteor)
군왕의 기술인가.
파괴의 힘인가.
기술과 힘.
힘과 기술.
오늘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명제가 맞붙고 있었다.
* * *
……그렇게 맞붙는 것까진 좋았는데.
“근데 기혁아, 너 봄이 데리러 언제 가?”
“컥……!! 지, 지금 몇 시야?”
“1시.”
“젠장!!”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