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50화>
온 나라를 충격에 빠트렸던 집단 납치극이 종결됐다.
하나, 단순히 ‘사건이 종결됐다.’라고 마무리되기에는 피해 규모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부상 178명, 사망 8명. 총 186명의 어마어마한 사상자를 남긴 전대미문의 사건이 남긴 상처.
오열하는 유족들, 매년 증가하는 납치 사건. 이대로 괜찮을까.
현재 한국의 날씨는 “우울.” 사건은 종결됐으나, 슬픔은 여전하다.
더군다나 피해 인원이 전부 아이들.
우리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아이들이며, 보살펴 줘야 할 우리의 미래들이었다.
그래서일까, 각계각층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는데.
한류 스타 차기우 “잊지 않을게.”
SNS를 통해 전해지는 “잊지 않을게.” 물결.
옵티멈 대표 김연희 “빌런 범죄에 무거운 책임 느껴.” 의료비 전액 지원.
대한초인협회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범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슬픔이 커질수록, 누군가는 책임 소재를 말할 수밖에 없고.
<단독> 최악의 납치극 ‘징조’가 있었다? 인천의 모 관계자 인터뷰.
<특종>첫 납치 피해자, 무려 11일 전 신고한 것으로 밝혀져. 초기 대응 문제 있었나.
“나는 모른다.” 인천 시장 급히 자리를 떠.
경찰청 대변인 “경찰은 어떠한 정보도 숨기지 않았다.” 초기 대응 질문에 “진상 조사 중.”
그러던 와중에 터진 충격적인 소식.
<충격 속보>집단 납치 벌인 일당. 진화단으로 밝혀져!
“……충격적인 소식입니다. 최근 일어난,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집단 납치극이 진화단의 소행으로 드러나며…….”
진화단(進化:Evolution).
진화만이 구원이라 믿는, 세계 3대 빌런 집단.
이들이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이제 납치가 문제가 아니다.
진화단이 한국에, 우리 옆집에 있을 수 있다는 공포에 전국민이 패닉에 빠졌다.
어째서 진화단이 한국에 있었는데 아무도 몰랐나. 이토록 활개를 칠 동안 정부는 대체 뭘 했는가.
올해 가장 안전한 나라 1위에 오른 대한민국, 그러나 현실은?
한국, 이대로 괜찮은가.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모든 관계 부처가 납작 몸을 숙였다.
교육청과 국토 교통부. ‘폐교, 범죄의 온상이 될 우려 있다.’ 재개발 예고.
공항 즉각적인 인력 증대, ‘입국 심사에 만전을 기해야.’ 관리 감독에 힘쓴다.
“……수사당국은 악명 높기로 유명한 진화단이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으며, 추가된 연루자가 있는지 조사…….”
유족 빈소 방문한 ‘경찰청장’ 유족 대표단의 항의에 ‘묵묵부답’
그렇게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이가 불편한 이 상황에, 오히려 주가가 오르는 곳이 있었는데.
옵티멈과 진룡가.
이번 사건을 종결시킨 장본인들이었다.
용아병 병사 “찬양받을 일이 아니다.” 발언 남기고 사라져.
진룡가 안주인 유해련 “진룡은 수호 가문. 수호 가문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
백호단 부단장 은빛나 “우리는 뒷정리만 했을 뿐.” 의미심장한 말 남겨.
특히나 옵티멈의 백호단은 가장 먼저 범행 현장을 급습, 격렬한 전투 끝에 진화단 한국 지부를 전멸시켰다는 공으로 한층 주목받게 된다.
이렇듯 옵티멈은 왜 그들이 세계 5대 에이전트라 불리는지 다시 한번 온 국민에게 각인시키며 명성을 떨쳐 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순간, 가장 기뻐해야 할 옵티멈 대표는 정작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 * *
“후우…….”
김연희가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으로 아들을 바라본다.
박봄을 안은 채 방실방실 웃고 있는 박기혁. 무엇이 그리 좋은지 둘 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남은 피가 바짝바짝 마르는데…….”
지난 며칠, 불안에 제대로 잠도 못 잤던 김연희.
아들이 단신으로 진화단 지부에 쳐들어갔는데, 세상 어느 엄마가 멀쩡할까.
그나마 다행인 건 진화단이 3대 빌런 중에서 무력만큼은 최하위란 점이고, 아시아에서만큼은 힘을 내지 못한다는 확신이 있어서였다.
예상대로 사건이 종결되고 아들은 무사히 돌아왔다.
그런 아들의 품에는 저 아이, 봄이가 안겨 있었다.
그리고 뱉은 충격적인 한마디.
“엄마, 저 봄이 책임지기로 했어요.”
책임?
이때까진 별생각 없었다. 그냥 후견인으로 아이를 지원하겠다. 이 정도로 이해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완전히 착각이었다.
진지하게 입양 절차를 알아보는 아들. 김연희는 그제야 깨달았다.
아들이 말한 책임의 의미를.
이에 김연희는? 당연히 반대했지!
“안 돼! 네 나이가 몇인데! 18살이야. 무슨 애를 입양해!”
“예? 알아보니까, 초인 자격증만 있으면 된다는데요?”
“알아, 아는데. 내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파티, 팀, 그룹, 클랜, 공략대 등등.
초인들이 집단을 이루며 생긴 문화가 있다.
설령 여기서 내가 죽더라도 내 동료가 남겨진 이를 보살펴 주리란 믿음. 이 믿음이 있기에 등을 맞길 수 있고, 웃으며 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옵티멈이 행복 보육원에 아낌없이 후원하는 것도 이 이유가 크다.
실제로 작년 한 해만 초인 사고는 487건, 사망자는 3000명이 훌쩍 넘는다. 당연히 여기에는 옵티멈 소속 초인들도 있었고, 그들의 자녀를 양육할 궁여지책이 이 행복 보육원이었다.
이런 동료의 뒤를 봐주는 문화 덕에 초인들의 입양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게 됐고, 관련 제도도 대폭 완화된 것이다.
봄이의 경우엔 조금 일이 꼬였던 거지만.
하지만 말이다.
굳이 내 아들이!
고작 18살, 고통에 살다가 이제 화려하게 꽃피는 내 아들이!
이 입양의 당사자가 되는 건 말이 완전히 다르다.
김연희는 엄마로서 아들이 제 나이 때의 또래답게 성장하길 바란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많은 이를 만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길 바란다.
아직 며느리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그녀도 엄마이다 보니 좋은 집안에 참한 여자를 만나길 바랐단 말이다.
그런데, 대뜸 아이를 책임지겠다니?
이걸 허락할 부모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어?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래? 네가 무슨 애를 입양해.”
“약속했어요. 아빠가 돼 주기로.”
“그래도…….”
“사실 떨어질 수도 없어요. 제 ‘존재’를 나눠 줘서요.”
“무슨 말이야? 존재는 뭐고? 천천히 말해 봐.”
“그게요…….”
당장이라도 부서질 위태로운 상황에서 박기혁은 ‘얼라이브’로 붕괴를 막았다.
그런데, 남은 게 있었으니, 아직도 봄이 안에 남겨진 혈족들.
당장에야 박기혁의 눈치를 보며 잠잠하다지만 녀석들이 날뛰는 순간, 봄이는 언제 다시 부서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해했어. 그래, 잘 알겠어. 그래도 입양은 다시 생각해 봐. 차라리 후견인은 어떻겠니? 떨어지는 게 그러면 같이 살아도 돼.”
“약속했다니까요, 엄마.”
“그러면 이러자. 엄마가 입양할게. 동생으로. 어때?”
“엄마…… 약속.
“젠장! 약속! 약속! 이럴 때 보면 지 아빠야! 그놈의 약속이 뭐라고!”
망할 검호!
이건 검호의 본성 같은 거다.
한 번 뱉은 말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지키는 거.
아니, 말이야. 사람이 말이야. 거짓말도 좀 해도 되잖아. 그런데 이놈의 집구석은 그게 안 통한다. 융통성이란 건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하긴, 건이도 저랬으니까 날 만났지.”
박건과 김연희. 아카데미에서 처음으로 만난 두 사람.
한쪽은 검호 가문의 자제, 한쪽은 평범한 입학생.
솔직히 집안도, 위치도, 능력도, 어느 하나 비교가 되지 않는 두 사람이다.
공통점이라면 부모가 없다는 것.
이걸 공통점이라고 해도 될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두 사람이 진지하게 대화한 계기가 된 것은 분명했다.
그렇게 가까워진 두 사람.
진지하게 교제를 시작했고, 박건은 약속했다.
“졸업하면 결혼하자.”
“혹시 해서 묻는 건데, 우리 오늘 사귄 거 알지?”
“그게 중요해?”
“……굉장하네.”
당시에만 해도 그냥 그러려니 했지.
왜 있잖나. 20살 남자애들의 설레발. 손만 잡아도 자식 낳고, 입이라도 맞추는 날에는 손자까지 보는 거.
솔직히 스쳐 가는 인연일 줄 알았다. 언감생심 만나기에는 서로의 격차가 너무 나던 사이 아니었나.
하지만 박건은 약속을 지켰다.
진짜 졸업에 맞춰, 정확히 결혼식을 올렸다.
“……수혁이도 그때 가졌지.”
하여튼 이놈의 집구석이 지가 뱉은 말을 어길 리 없다. 고로 아들의 입에서 ‘책임’이란 말이 나온 이상, 하늘이 두 쪽 나도 책임질 거다.
그게 검호니까. 그게 이 망할 종자니까.
“일단 다른 가족 의견도 들어 봐야 한다고 둘러댔는데…….”
박민지는 벌써 아웃이다. ‘이모~.’ 한 방에 흐물흐물 녹더니, 방금 전에는 봄이 좋아한다는 아이스크림 사 온단다.
딸내미라고 하나 있는 게 엄마 속도 모르고, 하아…….
미국에 있는 남정네들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얘들은 더해.
박건, 그 정의 바보는 오히려 칭찬을 했으면 했지 절대 반대할 것 같지 않을 것이고, 지 아빠를 빼다 박았다는 박수혁은 말해야 입 아프다.
“끄응…….”
김연희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박봄을 본다.
꺄르르, 웃고 있는 봄이. 보고만 있어도 주위를 환하게 비추는 웃음이었다.
“귀엽긴 하네…….”
그녀의 얼굴에 어느새 미소가 번진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데.
아무래도, 이번에도 질 것 같은 김연희였다.
* * *
인천 국제 공항.
일반 게이트가 아닌, 전용기 전용 게이트 앞.
우리 가족 모두가 모여 있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봄이가 한창 닫혀 있던 게이트랑 눈싸움하더니, 지루한지 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난 웃으며 단숨에 품에 안는다.
“아빠, 누구 기다료?”
“삼촌하고 할아버지 기다려.”
“삼촌? 하라버지? 그게 머야?”
“삼촌은 아빠의 형이고. 할아버지는 아빠의 아빠야.”
“헥!”
그 순간 소스라치게 놀라는 봄이.
내가 뭐 잘못했나 둘러보니, 애가 퍼렇게 질려서는.
“아빠 아빠? 아빠가 또 이써?!”
“……!!”
맙소사.
귀엽다. 귀여워도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내 딸이지만 이 세상 귀여움이 아니다.
누나도 “풋!” 웃음을 참지 못하더니, 어느새 눈이 하트로 가득 찼다.
아직 봄이 문제로 냉전 중이신 우리 김연희 대표님은 서류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으셨지만…….
어머님, 이미 들키셨습니다. 떨리는 입꼬리 어쩌실 겁니까.
“커흠. 5시 30분 도착이니까 곧바로 저녁 먹으면 되겠다. 민지야, 뭐 먹을래?”
“아무거나.”
“좋아, 박민지. 넌 물 말아 먹어. 기혁이는?”
“전 중식이요.”
“중식, 괜찮지. 전에 거기 말하는 거지. 엠파이어 호텔?”
“네.”
“그러면…….”
어머니가 봄이랑 눈을 마주친다.
일순간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큼. 아가야, 넌 뭐 먹고 싶니?”
“아가 아닌데…… 봄인데…….”
“앙살은…… 그래, 박봄 양. 뭐 드시고 싶습니까?”
봄이는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짜장면…….”
“짜장면? 너 짜장면 먹어 봤어?”
“아니요.”
“……그런데 왜 짜장면이야.”
“왜냐묜요.”
봄이가 나를 빤히 보며 배시시 웃더니.
“아빠가 좋아하니까!”
“허억!”
이게 심쿵?
심장에 9클래스 대마법이 직격으로 꽂혔다. 저기요, 따님. 딜 미터기는 터집니다!
더 무서운 건 이 마법은 범위 마법이란 것이다.
옆자리에 있던 누나도 심장을 부여잡고.
“헙!”
어머니도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저, 우와…….”
아이가 주는 기쁨이 이 정도일 줄이야.
방실방실, 웃는 봄이.
존재만으로도 분위기가 바뀐다. 정말 이름 그대로 봄이는 봄처럼 화사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렇게 봄이의 재롱에 우리 가족이 해롱해롱하던 사이.
어느새 시간은 5시 30분. 비행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 들려오고…….
게이트 문이 열린다.
그리고 난, 드디어 이 세상에 눈을 뜬 지 처음으로 가족 전부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음, 아버지 박건의 첫인상은.
“후웁! 푸하! 사나이 박건 돌아왔노라. 푸하하하하!”
……보시다시피 독특했다.
나만큼이나 커다란 몸집에, 남자다운 외모, 입만 닫으면 진중하기 그지없는 겉모습이지만.
“푸하하하하! 마누라, 나 여기 있어!”
이 웃음 한 방이 모든 이미지를 바꿨다.
“몇 번을 말해. 밖에서 경박하게 웃지 말라고!”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운다. 그것이 사나이!”
“제발 쪼옴!”
“푸하하하하하. 한번 안아 보자고, 내 마누라.”
그래도 듣다 보니 묘하게 매력 있는 웃음이다. 뭐랄까, 마치 소년 같다고나 할까. 봄이랑은 또 다른 방법으로 주위를 밝히는 아버지였다.
반면 형, 박수혁은 조금 달랐다.
“다녀왔습니다. 민지도 왔네. 오랜만이야.”
“고생했어.”
어머니는 매번 형이 아버지랑 똑같다고 말했는데, 적어도 겉모습은 아니었다.
아버지나 나처럼 몹집이 큰 건 아니다. 오히려 왜소한 편.
말하고 나니 웃기네, 180이 넘는 키에 적당히 근육으로 탄탄한 몸을 왜소하다고 말하다니.
하지만 이게 진실인걸.
외모도 그렇다. 아버지보다는 어머니를 닮은 선이 예쁜 전형적인 미남. 길 가는 일반인을 잡고 나와 형 중 누가 잘생겼냐고 하면 백이면 백, 형을 꼽을 정도로 호불호가 없는 잘생김이었다.
하지만 이런 건 둘째치고서라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사실이 있었으니.
‘이 남자…….’
강하다.
상상 이상의 강함이다.
“아빠? 아파?”
“아니야.”
“긍데 떨려.”
“그건…….”
싸우고 싶어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이 흥분을 참지 못할 만큼.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본능’이 깨어날 만큼 박수혁은, 내 형은 강자였다.
이런 내 모습에 아버지가 웃었고.
“푸하하하! 막내가 못 본 사이에 사나이가 다 됐구만.”
어머니는 머리를 집는다.
“하여튼 이놈의 집구석…… 칼 뽑지 마. 절대 안 돼.”
누나는.
“나부터야…… 차례 기다려.”
보시다시피 이렇다.
그러는 사이 형이 내 앞에 섰다.
“기억을 잃었다더니, 괜찮아 보이네.”
“다시 태어났다고 보면 돼.”
대화가 끊겼다. 그런데 전혀 불편하지 않다.
이런 게 가족이란 건가.
마치 무언의 대화를 하듯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거냐.”
“미안했어.”
“미안하다고 하지 마라. 네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어쨌든…….”
손을 맞잡는다.
“돌아온 걸 축하한다, 동생아.”
우리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놀랍도록 닮은 미소가.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 * *
대구 폐교.
경찰 병력들이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는 가운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남자가 있었다.
“안타깝습니다. 조금만 더 버텨 주시지.”
순백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성호를 긋고는 등을 돌렸다.
숲으로 사라지는 남자의 주머니에서 역십자 넥클리스가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