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9화>
끼익- 덜커덩.
너덜거리던 연구실 문이 끝내 부서지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양쪽으로 실험관들이 보였다.
그 속에 담겨진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늦었다.
“미안하다. 늦어서.”
아이들의 영혼을 향해 사과했다. 아이들의 영혼은 되레 나를 향해 웃어 줬다. 괜찮다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비춰 주며 내 주위를 맴돌았다.
아직 때가 묻지 않는 아이들.
아마 이들은 죽음이 무엇인지 모를 거다. 그래서 저렇게 순수하게 웃을 수 있는 거겠지.
미안했다. 조금만 더 빨랐다면.
가슴이 아려 왔다.
“아저씨가…… 좋은 데 보내 줄게. 잠깐만 기다려 줄래?”
꺄르르-
고개를 끄덕이더니 힘차게 날아다니는 아이들. 난 저들끼리 놀고 있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몇 걸음 걸었을까.
드디어 만났다.
“봄아.”
스윽-
실험관의 시린 냉기가 내 손끝을 타고 전해 온다.
푸른 용액에 빠져 호흡기에 의지해 잔뜩 웅크리고 있는 봄이.
바스러지기 직전.
이건 위험하다.
후, 불면 날아갈 것처럼 위태로웠다.
단순히 표현이 아니다. 지금 봄이의 몸은 ‘혈족’의 각축장이다. 다양한 혈족의 힘이 봄이의 몸에 안착하려고 서로 싸우고 있었다.
아직 채 꽃피지 않은 봄이의 그릇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다.
살려야 한다.
어떻게 해서든 살릴 것이다.
“왼팔.”
왼편 허공에서 아수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물 다 꺼내.”
지금부터 펼칠 마법은 고작 제물 몇 개로 감당될 규모가 아니었다.
“아포칼립스.”
마법진이 떠오른다.
봄이를 중심으로 펼쳐진 육망성 마법진.
마왕의 진리 ‘멸망’을 담은 아포칼립스다.
그렇다면 이 멸망의 반대는.
“얼라이브.”
아포칼립스(멸망:滅亡)
리버스(Reverse)
얼라이브(탄생:誕生)
육망성 마법진이 역으로 뒤집히고.
칠흑의 별이, 순백을 닮았을 때.
나의 세계가 반전했다.
……
…
뚝뚝, 뚝뚝, 뚝뚝…….
사방이 가시덩굴로 둘러싸인 공간.
가시를 타고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툭툭.
여기저기서 떨어지던 물방울이 내 머리에 닿는다. 그 순간, 봄이가 가진 슬픔이 내 감정에 물감처럼 번졌다.
가시는 경계.
물방울은 눈물.
그렇다. 여기는 봄이의 내면세계였다.
고작 5살짜리 아이가 벌써부터 무엇이 그리 무섭고, 무엇이 그리 슬퍼, 세상을 이토록 경계하고 슬퍼할까.
난 안쓰러운 표정으로 가시덩쿨을 뚫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지 마! 다가오지 마!
봄이의 자아가 가시를 세웠다. 가시덩쿨이 나를 더욱 에워쌌다.
난 그저 웃었다.
괜찮다며, 다 괜찮다며 나한테 풀어놔도 된다고, 반항하지 않은 채 봄이의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살갗이 찢어지고, 피가 흐르고, 가시들이 나를 상처 입혔지만.
계속해서 전진해 나간다.
봄이의 나쁜 감정들이 나를 향해 날을 세우고, 거부해도.
계속해서 전진해 나갔다.
그렇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을 즈음.
드디어 봄이를 만나게 된다.
가시덩쿨 안, 엘프가 탈 것만 같은 그네를 타고 있는 봄이.
불러 본다.
“봄아.”
“…….”
반응하지 않는다.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다시 불러 본다.
“봄아, 삼촌 왔어.”
“…….”
역시 반응이 없다.
식은땀이 주르륵 흐른다.
큰일 났다. 일이 심각해졌다.
지금 봄이는 자신을 가둔 것이다.
무섭고, 두려우며, 싫은 것투성이인 바깥세상을 피해, 내면세계에 스스로를 가둔 봄이.
이대로라면 죽는다.
상처 입은 인간은 살릴 수 있다. 팔을 잃어도, 다리를 잃어도, 장기가 손상되도, 나는 살릴 수 있다.
죽음과 생명은 거울의 반대편. 장담컨대, 내가 못 살리는 인간은 성녀가 와도 못 살린다.
하지만 삶의 의지를 잃은 인간을 살리는 마법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성녀도, 나도, 신이 아닌 이상 스스로를 버린 인간을 살릴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조심스레 발을 내딛는다.
역시나 발이 앞으로 가지 못한다. 보이지 않는 벽, 봄이의 내면이 막아서고 있는 것이다.
강제로 이걸 부순다면 봄이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인형이 되고 만다.
잠깐 고민하던 난.
끝내 자리에 앉았다.
보이지 않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앉아, 답이 없는 봄이를 묵묵히 기다렸다.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하염없이 기다렸다.
네 옆에는 언제나 내가 있다고, 넌 혼자가 아니라고.
내 진심을 확인시켜 주기 위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믿고 있으니까.
언젠간 내게 닫힌 마음을 열며, 귀엽게 웃어 주리라 믿고 있으니까.
난 그 모습을 상상하며 계속해서 기다렸다.
* * *
박봄은 버려진 아이가 아니다.
“봄아, 엄마 아빠 금방 다녀올게.”
“엄마 뽀뽀.”
“빠빠.”
박봄의 부모님은 초인, 꽤 유명한 헌터였다. 그날도 돈을 벌기 위해 사냥을 나선 부부.
하지만 웃으며 나간 두 사람은 봄이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불의의 사고였다.
사냥을 끝내고 돌아오는 도중 발생한 레드 게이트.
하필이면 도심 한복판이었고, 하필이면 근처에 봄이 또래의 아이들이 다니던 어린이집이 있던 게 화근이었다.
두 사람은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졌고, 둘의 기지 덕분에 아이들은 살았지만, 정작 한 아이의 부모인 두 사람은 끝내 목숨을 잃고 만다.
그렇게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박봄.
하지만 부모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잃은 아이에게 세상은 너무도 가혹했다.
“형님, 내가 쟤를 왜 키워요. 그렇게 좋으면 형님이 키우세요! 보험금은 형님이 더 많이 받았잖아요.”
“이봐, 시누. 말은 똑바로 하자. 나만 받았어? 너도 받았잖아.”
“됐고요. 전 못 키워요. 보육원으로 보내든지 형님이 키우든지 알아서 하세요.”
친척, 외가, 가족이라 여겼던 이들 모두가 돌변했다.
평소 헌터 부부의 덕을 톡톡히 보던 이들이었건만 부부가 죽자, 무서울 정도로 냉정하게 박봄을 내쳤던 것이다.
그때부터였다.
박봄이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건.
다행히 헌터 부부의 선행이 알려지며 옵티멈 산하 보육원으로 가게 됐지만, 거기서도 하루하루 아무런 목적도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똑같았다.
웃음이 메마른 아이.
예쁜 인형 같은 아이.
이게 타인에게 비친 박봄의 모습이었다.
그런 박봄이 처음으로 먼저 손을 내민 사람이 박기혁이다.
“응? 나 주는 거야?”
“포도맛. 봄이 제일 조아하는 고야.”
“우와, 감동! 삼촌이 뭐 해 줄까? 목마 태워 줘?”
“……응.”
커다란 몸집, 따뜻한 손. 무엇보다 자신을 향해 웃어 주는 미소가 좋았다.
정확히는 아빠 같았다.
더 정확히는 박봄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그래, 그래서 좋아했었다.
박기혁을.
박봄의 시선이 저기 앉아 있는 사내에게 향했다. 가시에 긁힌 상처로 만신창이가 된 모습이었다.
뚝.
박봄이 타고 있던 그네가 멈췄다.
“…….”
폴짝, 뛰어내린 박봄이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벽에 기대어 자신을 기다리는 박기혁에게 다가갔다.
“……왔니?”
“…….”
박봄도 벽에 쪼그려 앉는다.
벽 하나를 사이로 등을 맞대는 두 사람.
“무서워써.”
“미안해.”
“혼자 있고 시퍼.”
“기다려 줄게.”
“모두 나 시러해.”
“누가 널 싫어해. 봄이 다 좋아해.”
두서없는 대화가 오고 간다. 박봄의 내면 깊숙이 각인된 상처였고, 그 상처가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온 것이다.
이를 아는 박기혁은 진심을 담아 답해 줬다.
또 오랜 시간이 지난다. 박봄이 묻고 박기혁이 답하는, 서로를 알아 가는 시간.
그런 가운데 내면세계를 뒤덮고 있던 가시덩쿨이 점차 사라져 간다.
점점.
“봄이는 초콜릿 조아해.”
“알아. 밀크 초콜릿이지.”
점점……
“주사 시러. 아파써.”
“이제 주사 없어. 주사 놔 준 사람 다 혼내 줬어.”
점점……
가시덩쿨이 자취를 감춰 가더니, 이제 마지막, 박봄의 가슴에 박힌 하나만 남았다.
“봄이 버리지 마.”
“버리지 않아.”
“봄이 지켜 줄고야?”
“지켜 줄게.”
“계속?”
“평생!”
“그럼…….”
박봄이 입술을 삐죽이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힘겹게.
“삼촌이 봄이 아빠인 거야?”
버리지 않고, 지켜 주고, 계속 함께한다.
이 아이의 머리에서 이런 존재는 아빠뿐이리라.
그 순진무구한 물음에.
“삼촌이 봄이 아빠 해도 될까?”
이렇게 되물었고, 봄이는 신난다는 듯 펄쩍 뛰며.
“응! 좋아!”
“그래, 이제부터 삼촌이 봄이 아빠야.”
“정말?”
“정말.”
박기혁은 미소 지었다. 박봄도 미소 지었다.
“봄아.”
“아빠!”
벽이 사라지고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
박봄의 가슴에 한 송이 꽃이 피어 있었다.
그렇게 박기혁은 아빠가 되었다.
봄꽃처럼 화사한 봄이의 아빠가.
* * *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허공에서 사람들이 떨어졌다.
쿵! 쿵! 쿵……!
운동장에 먼지가 일어났다.
낙하산도 없이 뛰어내린 사람들.
백호단. 옵티멈을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었다.
“전부 산개.”
은빛나의 명령에 백호단 전체가 수색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선두에는 백호단의 단장, 박민지가 있었다.
‘어디 있니.’
무서운 속도로 폐교를 누비는 박민지.
언제라도 적을 베어 낼 수 있게 그녀의 손에는 검이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다.
식당을 지나, 기숙사, 본관까지…… 박민지는 한 차례도 멈추지 않고 박기혁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본관 지하로 들어섰을 때, 그녀는 박기혁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는데.
“……너는.”
본 적 있다.
염소를 닮은 머리에, 기괴하게 꺾인 뿔.
바포메트.
왜 머리만 있어야 할 사역마의 신체가 다 붙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생의 사역마였다.
- 주인의 혈족인가. 아쉽다.
무엇이 아쉬운 것일까는 쉽게 알 수 있었다. 바포메트의 발 아래로 시체 더미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으니까.
- 주인의 혈족이여, 불쾌한가.
불쾌하냐고?
“전혀.”
적을 제거하는 데 의문을 갖지 않는 그녀다. 더욱이 그게 빌런이라면?
세상을 위해 죽어 마땅하다.
- 역시 주인의 혈족. 마음에 든다. 들어가 볼 텐가.
“거기에 기혁이 있어?”
- 주인은 없다. 다만…….
바포메트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더니 비릿하게 웃는다.
- 인간의 추함이 있지.
추함이라고?
박민지가 바포메트를 지나쳐 문을 열었고, 그 순간 그녀는 인간의 추함이란 말을 정확히 이해했다.
길게 놓인 실험관과 호흡기에 의지해 잠들어 있는 아이들.
박민지가 심호흡을 하며 통신기를 들었다.
“빛나야, 의료진 불러. 최대한 많이.”
- 무슨 일인데.
“……사진으로 보낼게.”
박민지는 차마 입에 담기도 힘들어, 사진을 찍어 전송했다.
- 아무리 난폭한 지성체도 동족에게는 자비로운 법인데, 인간들은 오히려 동족에게 더욱 잔인하다. 재미있지 않나.
“같은 인간이라 하지 마. 역겨우니까. 네 밑에 깔린 놈들은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야.”
- 역시 주인의 혈족이다. 주인이랑 비슷한 말을 하는군.
“기혁이는 어디 있는데.”
- 근처에 있다. 가르쳐 줄까.
“부탁해…….”
하다하다 대악마에게 부탁이라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은 동생을 찾는 게 먼저다.
- 난 이곳을 지켜야 하니.
특유의 비릿한 웃음을 머금은 바포메트가 낫으로 발밑에 있는 시체의 손목을 잘랐다.
곧이어 떠오른 손.
손이 움직였다.
- 따라가라, 주인의 혈족이여.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시궁창에 처박은 실로 악마다운 방식이었다.
그렇게 박민지는 날아가는 손을 따라 달려갔다.
문을 나서 산등성이를 가리키는 손. 연구실이 있던 자리였다.
박민지는 자신의 본능이 왜 신속인지 증명하듯 단숨에 연구실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마침내 그토록 찾았던 동생을 보게 되는데.
“기혁아?”
“누나.”
화르륵.
타오르는 불길 앞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박기혁.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죄와 마지막 가는 길이나마 평온하라는 안식의 의미를 가진.
진혼제(鎭魂祭).
아이들을 위한 마지막 인사였다.
이로써, 모든 사건이 종결됐다.
……
…
“그런데 네 품의 아이는?”
“봄이, 내 딸이야.”
“……!”
“축하해 누나. 조카가 생긴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