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8화>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
나쁜 소식은 구출한 인질에 봄이가 없다는 것.
그래서 지금 내 기분은 나쁘다는 말도 모자랄 정도로.
최악이다.
푸쉭!
검이 심장을 뚫는다.
검이 꽂혀 푸르르 경련을 일으키는 적.
난 확인 사살할 새도 없이 손에 든 검을 냅다 던지며 동시에 마법을 전개했다.
날아간 검은, 문을 열고 도망치려는 적의 등에 꽂힌다. 라이트닝 쇼크는 책상 비상 버튼을 누르려던 적에게 작렬했다.
이제 남은 건.
“너뿐이네.”
이 통제실에서 유일하게 내 일격을 막은 놈이다. 대신 대가로 손을 뺏겼지만.
잘려진 팔뚝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놈이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진화만이 유일한 답이리라.”
자신을 제물로 흑마법을 펼쳤다.
그래, 흑마법.
개인적으로 싫어하지만 객관적으로 내가 가장 자신 있는 분야.
곧바로 마나의 흐름에 간섭해 캐스팅을 역설계한다.
순식간에 마법이 완성되며 공간이 찢어진다.
나에게 대항해 뭐라도 해 봤다는 것인가. 놈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번졌다.
그런데, 어쩌나.
거기 들어 있는 놈, 네가 생각했던 놈이 아닐 건데.
공간에서 촉수가 뻗어 나와 녀석의 머리를 덥석 움켜쥐었다.
“이, 이…… 커흡.”
심연 허무충. 나랑 구면인 놈이다. 녀석도 이쪽을 기억하는지, 찌릿한 기파로 의사를 전했다.
기억, 거래?
나는 엄지를 치켜세웠다.
순식간에 쿨 거래가 이뤄졌다.
아까도 말했지만, 현재 내 기분은 매우 나쁨이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만나는 쓰레기들은 최악의 형벌을 마주하리라.
난 산 채로 기억이 뽑히는 녀석을 뒤로한 채 모니터를 확인했다.
연구실 곳곳에 설치된 CCTV에서 올라온 영상들이 가득했고, 나는 다음 목표를 확인했다.
가장 많은 인원이 있고, 가장 무방비한 곳.
“숙소.”
곧바로 문을 나섰다.
……
…
아까 나쁜 소식과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던가.
나쁜 소식은 말했으니, 이제 좋은 소식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봄이는 살아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기억들을 교차 검증해 본 바, 여기서 하는 실험은 ‘호문클로스F’라는 명칭의 실험이다.
‘혈족’의 피를 추출해 혈족이 아닌 자를 강제 ‘계승’시키는 실험.
오랜 세월 미지의 영역으로 일컬어졌던 ‘혈족 계승’이란 힘의 비밀을 파헤치겠다는 것이고, 당연히 극도로 낮은 확률의 실험이었다.
그런데 이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지 모르고, 얼마가 될지 모를 실험체의 소모가 예견된 실험을 앞둔 녀석들의 상황이 꼬였다.
아니, 꼬였다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심하게 뒤틀렸다.
본단이란 놈들과의 트러블, 받지 못한 지원, 부족한 설비와 인력.
거기에 이건 나도 조금 전에 알았는데, 우리 누나의 백호단과 진룡의 용아병을 비롯해 경찰 병력 전부가 총동원돼 대규모 토벌이 진행되는 중이란다.
“누나는 그렇다 치고, 진룡이라…… 유리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나.”
고 맹랑한 것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는 몰라도 용아병은 이보다 적극적일 수 없을 정도로 빌런들을 쓸어 담고 있단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들이 시간에 쫓기고 있다는 것.
시간이 없다.
만약 지원만 충분하다면 무작정 될 때까지 아이들을 소모시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뽑기를 뽑는 것처럼 낮은 확률로나마 성공작을 뽑는 시도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지원도, 장비도, 인력도, 모든 것이 부족하다. 발전기 문제로 실험실 전력이 나갈까 봐 전전긍긍한다는데 말 다한 셈이지.
이곳의 대가리인 김 사장이란 놈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거다.
자신에게 남은 기회가 얼마 없다는 것을.
길어야 한 번 더 가능하겠지.
고로 얼마 없는 기회를 애지중지 사용해야 할 테고, 지금 실험실에 들어가 있는 봄이가 속한 1차 아이들은 나름 케어받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니, 케어받고 있을 거다.
전생에 실험이란 실험은 질리게 해 본 내가 보증한다.
실적을 내야만 하는 연구자가 저 정도로 몰리게 되면 결과에 집착하게 된다. 오직 결과만이 나를 증명할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한다.”
스켈레톤이 마지막 남은 녀석의 목에 칼을 꽂는다. 이로써 숙소도 모두 정리.
“절반은 제물용으로 빼놓고 나머지는.”
육망성이 그려진 검으로 허공을 그었다. 찢어진 균열에서 촉수들이 반갑게 인사한다.
“다음은 시설 관리.”
칼을 뽑아 든 채 복도를 달렸다.
조금 남았다.
아주 조금.
* * *
폐교의 구석, 산등성이에 놓인 허름한 폐건물.
척 보기에도 스산한 분위기. 누구도 발길을 붙이지 않을 것 같은 이 폐건물에 이번 사건의 원흉이 있었다.
틱틱.
실험관 앞에 서 하얀 가운을 입은 김 사장, 아니, 김도전이 바쁘게 연구원들과 함께 세팅하고 있다.
“1밀리그램을 빼고…….”
“여기는 더해야 한다고 했지.”
“마법진은 이렇…….”
“염동 용액, 충분해.”
안경 안으로 짙게 깔린 다크서클.
며칠간 잠도 잊은 채 연구 중인 김도전과 연구원들. 피곤이 짓누른다. 하나 그럼에도 그들의 눈은 무섭도록 또렷했다. 들끓는 광기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김도전이 직접 ‘혈청들’을 넣으며 세팅은 끝.
이제 버튼만 누르면 된다.
녹음기를 켜는 김도전.
“실험 호문클루스F. 실험체 9호. ‘혈청 C군’ 주입. 세 번째 시도에서 거부반응으로 인해 4초간 심정지. 응급조치로 회생. 네 번째 트라이 시도.”
‘시도’란 말에 버튼을 눌렀다.
그래프 속 수치들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개량기의 바늘도 춤을 췄다. 실험관 속 푸른 용액이 푸른 기포를 뿜어내더니, 서서히 붉은색으로 변했다.
“제발, 제바알.”
“하나만! 하나만 올라!”
“버텨 줘!!”
기도? 아니, 절규…… 광기였다.
김도전은 알까. 지금 그들의 모습이 자신이 그토록 비웃던 버러지들의 모습이란 걸.
도박장, 딜러의 손에 들린 불확실한 카드 한 장에 삶을 내던지고 인생을 내던지던 버러지들.
김도전과 연구원의 눈이 꼭 그 버러지들의 눈과 흡사했다.
그래프가 목표치를 넘자 환희에 몸을 떨고, 다시 내려가자, 절망에 몸부림친다.
1초에 수십 번씩 오락가락하는 광기 어린 모습.
그래, 이게 진화단이다.
진화라는 연구에 미친 자들.
그들의 눈에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 따위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래프는 김도전과 진화단원들의 인생을 저울질하듯 변덕스럽게 움직이다 끝내 버티지 못하고.
삐이이이이―
침묵한다.
“아, 안 돼.”
“안 돼. 안 된다고오오!!”
“마지막이었다고.”
연구원들이 좌절했다. 1차 실험군 중 마지막 실험체였는데.
하지만 김도전은 언제 흥분했냐는 듯이 냉철했다.
“있는 혈청 몇 개지?”
“무희, 악묘, 숙수…… 이렇게 굵직한 걸 제외하고 16종 있습니다.”
“다 집어넣어.”
“……!!”
“지부장님, 그러면 실험체가 못 버틸…….”
“괜찮아. 어차피 이래나 저래나 폐기될 건데 자료나 모아. 2회 차에 쓰게.”
“아, 알겠습니다.”
연구원들이 9호 실험체를 향해 달라붙었다.
몸을 돌리는 김도전. 그의 심복이 뒤를 따른다.
“생각보다 좋아.”
“이대로 2차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꿈이 아닐 것 같습니다.”
사실 김도전이 본단과 척을 지면서까지 ‘호문클루스F’ 실험을 강행한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어느 정도 실험이 성공했으니까. 온전치 않은 결과라도 결과를 냈으니까.
무슨 말이냐 하면, 보관하던 ‘혈청’을 통해 ‘혈족 계승’을 이뤄 냈다는 말이다.
얼마 전 박기혁이 처음 보는 적에게서 무희의 향기를 느낀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이 아니다.
일부나마 진짜 ‘무희’의 힘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온전치 못한 성공인 이유는 적합성에 따라 계승의 가부가 결정되고, 혈족 능력도 본래의 능력에 3할도 못 미쳤다.
지금 하는 실험은 이 적합성을 최적화하고, 능력을 더욱 개화시키는 작업이며.
마지막으로 이게 가장 중요한데.
다혈족(多血族) 계승.
두 가지 이상의 혈족 계승을 한 개체에 넣는 것이다.
김도전이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물자, 곁에 있던 심복이 불을 내민다.
“밖에 상황은 어때.”
“생각보다 안 좋습니다. 솔직히…….”
“편히 말해. 우리 사이에.”
“솔직히…… 지금 이룬 성과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걸로 본단과 딜을 한다면.”
“키킥. 본단? 그 개자식들이랑은 거래 안 해. 아니, 못 해.”
“……?”
“후우~ 얌마. 걔들이 왜 뜬금없이 프로젝트를 일본에 넘기려고 했겠냐.”
“……설마.”
“설마가 맞아. 어떤 경로인 줄은 모르겠지만 그 자식들, 내가 이룬 성과, 얼핏 눈치챈 거야. 그래서 지 식구한테 주려 했던 거고.”
“정치입니까?”
“똥치지.”
툭툭.
김도전이 심복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좀 미쳐 보여도 나름 상황 파악은 하고 있어. ‘뒷구멍’도 파 놨고. 너무 걱정 마라.”
“알겠습니다.”
“일어선 김에 너는 2차 실험군들 데려와. 1차가 9개였지? 2차는 12개 정도면 되겠다.”
“네, 12개 확인했습니다.”
두 사람이 헤어진다.
김도전은 다시 실험실로, 심복은 자신과 비슷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을 데리고 밖으로 향하는데.
문이…… 열린다?
밖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인데, 열려?
급히 전투태세를 갖추는 심복과 무리.
끼익- 기괴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그 틈으로 남자, 박기혁이 눈웃음 짓고 있었다.
“어디 가?”
“……!!”
끼이이익!
문틈으로 촉수가 들이닥쳤다.
* * *
박기혁이 평생을 전장을 돌아다니며 얻은 깨달음이 있다.
악당은 인간이 아니다.
쓰레기.
그들은 공기마저도 아까운 쓰레기일 뿐이다.
막 쓰레기 하나를 처리한 박기혁. 친절하게 촉수에게 던져 준다.
분리수거까지 완벽.
이제 이 공간에 쓰레기는 하나만 남았다.
“개새끼야!!”
김도전의 창이 날아왔다. 그가 자랑하는 ‘독기’가 초록빛으로 영롱하게 빛났다.
깡-!
창과 대검이 교차하고.
두 사람이 대치한다.
“다 왔다. 이제 곧 성공이었다. 네놈이 망친 거다! 네놈만 아니었으면!”
“지랄.”
박기혁이 김도전을 보며 비웃었다.
“다 오긴, 한참 남았더만.”
“네, 네놈이 뭘 안다고!!”
“니보다 많이 알아요. 딱 보니까 최적화만 남았지. 원래 최적화가 제일 어려운 법이야. 병신이 뭘 알고 지껄여.”
“씹어 먹는다. 넌 내가 씹어 먹는다.”
김도전의 창격이 날아온다. 동시에 그의 뒤로 균열이 생기는데.
소환 키메라
비홀더
농구공만 한 눈알, 비홀더 십여 구가 등장하고.
비홀더들의 동공이 박기혁을 포착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날아다니며 마법을 쏘기 시작했다.
기본 마법인 ‘에로우’ 계열 마법부터 수토풍화 원소계 마법, ‘슬로우’나 ‘스턴’ 같은 움직임을 강제하는 제어계 마법.
무규칙, 무작위로 360도 사방에서 마법이 쏟아졌다.
여기에 김도전의 독기를 품은 창까지 합세하자, 절대 뚫릴 것 같지 않은 박기혁의 몸에 상처가 늘어 갔다.
“크흑…….”
신음을 흘리는 박기혁.
몰아치는 김도전의 공세에 점점 밀려난다.
밀려나고 밀려나.
툭.
기어코 벽에 막혔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
“……!”
당황하는 박기혁. 위기를 느껴서일까, 다급히 검술을 펼쳤다.
하얀색 섬광이 V자로 쇄도했다.
쾌검술 ‘별똥별’.
비홀더 두 마리가 섬광에 터졌다.
하지만.
“네가 고양이란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별똥별이 내려치는 찰나의 순간, 비홀더 두 마리가 허공에서 폭발하는 그 찰나의 순간에.
창날이 비집고 들어왔다.
푸욱!
“컥.”
어깨에 창이 박힌 박기혁. 곧바로 창에 담긴 독기가 전신에 퍼져 갔다.
“푸핫!! 온갖 사선을 넘나든 나다. 노력도 없이 부모 잘 만난, 너희 혈족 따위가 감히 나를 이길 수 있는 줄 아냐! 푸하하!”
어지럽게 움직이던 비홀더가 박기혁을 조준하고.
분해 광선
Disintegrator
비홀더들이 일제히 분해 광선을 쐈다. 박기혁이 육망성 마법진으로 방어해 보지만 분해 광선의 힘은 상상 이상.
파직, 파지지직-
끝내 마법진이 부서지며 벽을 뚫고 튕겨져 나갔다.
그 모습에 김도전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승리의 웃음?
아니다. 전리품! 이 나라를 대표하는 혈족, 검호의 혈청이 눈앞에 있어서다.
“흐흐.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김도전이 웃으며 플라이 마법을 전개, 박기혁이 튕겨져 나간 곳으로 단숨에 날아갔다.
역시나 예상대로 박기혁은 나무에 박혀, 정신을 잃은 상태.
검호다. 검호의 피다.
김도전이 꿀꺽 군침을 삼키며 창날을 들어 박기혁의 머리를 찍었다.
순간.
덥석!
머리에 닿기 전 멈춰진 창.
창을 막은 건 손이었다. 정신을 잃은 줄만 알았던 박기혁의 손.
“설렜냐?”
“……!!”
아직 실험실에 있는 아이들과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고 당하는 척을 한 것이다.
박기혁이 모아 둔 제물을 사용해 단숨에 몸을 회복했다.
“시간 없다. 빨리 끝내자.”
아공간에서 대검을 꺼내 잡았다.
그리고 검호의 피에 새겨진 본능을 깨웠다.
박기혁의 본능은.
파괴(破壞).
부순다.
무너트린다.
없애 버린다.
송곳니가 길어지고, 솜털이 바짝 서며, 눈은 호랑이의 눈처럼 갈라지더니.
마지막으로, 호랑이의 갈기처럼 마법진이 전신을 뒤덮었다.
검호류 파괴
“……블랙홀.”
하늘을 벨 듯 올려 벤 대검이, 검은 섬광을 남겨 둔 채 먼지처럼 흩어지고.
빨려 들어간다.
흙도, 나무도, 쓰레기도, 빛마저도.
모두 블랙홀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전투는 끝났다.
* * *
……하지만 난 아직이다.
아직 네겐 봄이가 남아 있었다.
“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