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7화>
전투에 돌입하면 항상 머리는 차가워야 한다.
영감에게 배웠고, 이제는 나의 철칙이 된 말이다.
차가운 이성으로 전장 전체를 분석하고, 냉철하게 자신의 처지를 판단해야만 한다.
이 전투에서 핵심은 무엇인가.
적을 사살하는 것?
아니다. 인질을 구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하는데.
인질의 나이는 아동이다. 걸음이나 겨우 걸을 미취학 아동부터 초등학생까지. 설령 내가 이들을 구출한다 해도 과연 이 아이들이 자력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부정적이다. 이런 인질이 최소 수십, 최대 기백이 넘는다.
나 혼자는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숫자란 것이다.
결국 다시 돌아와 인질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이 안의 적을 몽땅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것도 최대한 은밀하게.
“웁!”
담배 피우러 나온 놈의 입을 틀어막았다.
버둥거리는 녀석, 나중에는 마나까지 써 가며 필사적으로 내 손을 벗어나려 했지만.
네까짓 게 감당하기에는 내가 너무 세.
곧바로 기절해 축 늘어지는 놈.
하지만 여유는 없다.
방금 전 놈이 걸어왔던 길목에서 새로운 인기척이 들렸으니까.
바로 몸을 숨겼다.
“응? 인재 먼저 가지 않았냐? 어디 갔대.”
“급똥 싸러 간 거 아니야? 방귀 존나 끼더만.”
“하긴, 아까 속이 안 좋다고는 하더라.”
두 놈이 서로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준다.
다행히 전혀 이쪽을 눈치채지 못했다. 난 잠자코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답답~ 하다. 분위기 X창이야.”
“내 말이.”
“후우~ 본단에서는 한국 지사 철수하라 하고, 지부장은 연구에 미쳐 막 나가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 너 아는 거 좀 없어?”
“음, 이건 소문인데.”
놈이 두리번두리번 주위를 살피더니, “어디 가서 말하지 마.”라며 잔뜩 운을 띄웠다.
“본단에서 지부장이 맡았던 ‘프로젝트’를 다른 지부에 넘기려 했대.”
“헐…… 설마 ‘호문클로스F’를? 와! 선 넘었네! 인간적으로 그건 아니지. 그거 우리 지부장이 하나부터 열까지 컨트롤한 거잖아.”
“그치,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산 참사’ 기획한 것도 우리 지부장이었잖아. ‘혈족’ 샘플 구한다고. 그런데 지금 와서 일본 지부에 넘긴다니, 빡이 돌아 안 돌아.”
“뭐엇? 일본 지부? 넘긴다는 지부가 일본 지부야? 시바! 안 되지, 절대 안 돼!!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되는데, 프로젝트를? 이건 못 참지.”
“어이구, 애국자 납셨네.”
“오바였나?”
무엇이 재미있는지 키득대는 두 놈.
말하는 걸 보니 꽤 정보가 두둑해 보이는 게, 나머지는 직접 알아보자.
나의 손이 두 녀석의 목덜미를 잡아채 끌어온다.
“허억!”
“뭐얏!”
소리치며 반항해 보지만 이미 이곳은 안티 필드가 펼쳐져 있는 공간.
안과 밖이 철저히 격리됐다는 말이고, 다시 말해 무슨 짓을 해도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최대한 빨리.”
아수라와 바포메트가 고개를 끄덕이며 겁에 질린 놈들을 덮쳤다.
조금 뒤.
정보를 모두 캐낸 내가 하얀 가운과 마스크를 쓴 채로 흡연 구역을 나왔다.
‘일이 잘 풀렸어.’
아직 이렇다 할 정보가 없는 상황.
꼼짝없이 맨땅에 헤딩할 생각이었다. 하나씩 낚다 보면 뭔가 나오겠지, 란 생각으로.
그런데 일이 잘 풀렸다.
방금 먹은 놈 중에 시설 관리팀이 있더라.
녀석이 아주 괜찮은 정보를 알고 있었고, 지금 난 그걸 활용하러 가는 중이다.
카메라 앞을 유유히 걸어갔다.
어차피 안티 필드를 비롯해 차단 마법, 은폐 마법, 갖가지 마법으로 뒤덮인 몸이다.
카메라 따위는 무용지물. 사실상 나보다 고위급 마법사가 없다면 들킬 일은 없다.
돌고 돌아 대학교 대강당으로 보이는 건물에 들어섰다. 역시 예상대로 보초를 서는 적들이 보인다.
처리할까? 아니다. 오히려 ‘단순 고장’으로 보이려는데 쟤들이 쓰러지면 곤란하다.
난 보초를 피해 내부로 침입했다.
그리고 지하에 들어섰을 때, 내 앞에 있는 건.
발전기.
이 연구소의 전력을 책임지고 있는 대용량 발전기였다.
‘이게…… 지금 오락가락한단 말이지.’
내 손이 발전기에 박혀 있는 마석으로 향했고.
주저 없이 부숴 버렸다.
삐이이잉-!!
* * *
빼액- 빼액- 빼액…….
관리실 안에 시끄러운 경보음이 울렸다. 대충 봐도 문제가 발생했다는 신호. 그럼에도 관리팀 단원들의 반응은 너무도 평온했는데.
“보나 마나 발전기겠지? 역시, 출력 저하…… 내 그럴 줄 알았다.”
“또야? 오늘만 네 번째야.”
“그러게 처음부터 무리였다니까. 여길 어떻게 발전기 하나로 돌려!”
벌써 오늘만 해도 네 번째 발생한 발전기 고장 문제.
엄밀히 말해 발전기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연구만큼은 진심인 진화단인데 고작 장비 따위를 아낄까.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현재 놓인 상황이 문제였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실행된 대규모 실험.
이걸 본단과의 마찰로 한국 지부 단독으로 진행 중이다.
원래라면 동일 모델의 발전기 세 대가 필요한 실험을, 고작 한 대로 굴리니 트러블이 예견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 결과 원래 3일 전부터 실행됐어야 할 실험이 하루가 밀렸고, 그나마도 거의 네 시간에 한 번 꼴로 발전기가 퍼지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이 탓에 실험의 원활한 진행도 힘든 상황.
단원은 한숨을 쉬며 모니터 한쪽을 확인했다.
실험관에 담겨진 아이들. 푸른 생체액 속에서 꾸륵꾸륵 공기방울이 올라왔다.
“실험체를 구했는데, 생명 유지 장치를 감당할 전력도 버겁다는 게 말이나 되냐……. 저러고 진행 자체가 안 되는구만.”
“야, 내가 진짜 생각 많이 해 봤는데, 이 상태로 실험 속행하는 거는 무리거든.”
“너만 머리 있는 거 아니다. 여기 있는 사람 전부 다 알아.”
“그러면 말려야지!”
“새꺄, 모르면 아가리 여물어.”
말릴 수 있으면 진즉 말렸다. 그는 여기서 가장 오랫동안 진화단 활동을 해 왔다. 당연히 지부장, 김 사장과도 안면이 있다.
본명 김도전.
한때 아카데미를 차석으로 들어갔을 정도로 우수했던 남자.
그러나 규정을 위반하고 벌인 실험으로 인해 불명예 퇴학당한 뒤, ‘매드 사이언티스트’란 네임드 빌런으로 활동. 진화단 한국 지부장이 된 남자였다.
그가 본 김도전의 ‘혈족’에 대한 증오는 진짜다. 이런 김도전이 강제로 ‘혈족 계승’을 발현하는 ‘호문클로스F’ 프로젝트를 포기할 리 없다.
목숨을 걸고 진행할 것이다.
거슬리는 게 있다면 치울 것이다.
그게 설령 같은 진화단원일지라도…….
“살고 싶으면 그냥 닥쳐. 이미 우리한테 길은 없어. 이 실험 무조건 성공해야 돼. 아니면 모두 죽는 거야.”
“젠장…… 1차로 들어간 실험으로 성공하길 빌어야겠네.”
“후우~ 수리 팀이나 보내자. 누가 말할래?”
“인간적으로 난 빼 주라. 아까 욕 오지게 들었다.”
“나도야.”
“……알았다. 내가 할게.”
잠시 뒤, 단원은 수화기에서 들리는 쌍욕을 들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오늘만 몇 번째야! 우리 잠도 못 잤다고.”
“알지. 잘 알지. 그런데 어쩌냐, 이미 실험이 진행됐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이 실험은 끝내야 할 거 아냐.”
“야! XX! 니가 아우!! XX! 이럴 거면 수리 팀 인원 늘려! 개XX!”
딱!!
부서질 듯 수화기를 내려놓는 소리와 함께 모니터로 수리 팀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단원은 한숨을 쉬며 문을 개방했다.
구시렁구시렁 불만을 토해 내며 몰려가는 수리 팀.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문을 통해 불청객이 들어왔다는 것을.
* * *
문이 닫히고,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난 ‘인비저블’을 해체했다.
“후우.”
……식겁했네.
인비저블(Invisible).
단일 대상을 투명화시키는 마법이다.
5서클 마법으로 일단 서클 자체는 평범해 효용성이 높을 것 같지만, 사실 비주류 마법으로 분류된다.
마나 소모가 터무니없거든.
덕분에 나도 저장해 놨던 ‘도시락’ 하나를 써야만 했다.
‘어쨌든.’
진입은 성공했고.
복도를 바라봤다. 처음 보는 복도임에도 익숙하다. 뭔가 문장이 어색한데 사실이다.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파헤친 기억으로는 익혔으니까.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 머리에 새긴다. 강제로 끄집어낸 기억이라 약간의 불순물이 있지만, 지금은 그딴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메스꺼움을 가볍게 삼키며 머리에 지도를 띄웠다.
3D 모형처럼 보이는 건물의 입체도가 떠오르고…….
난 달린다.
‘가자.’
목표를 향해.
정보를 차단하는 ‘안티 필드(Anti Field)’.
소리를 차단하는 ‘사일런트(Silent)’.
무게를 조절하는 ‘페덜(Feather)’.
그 외에도 수십 개의 마법이 둘러졌다.
혹시나 모를 변수를 차단하기 위해, 모든 가능성을 통제하기 위해.
인질의, 아이들의 생명을 위해.
절대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당연히 소모되는 마나도 상상 이상.
하지만 내게는 이제껏 많이 저장해 놨던 ‘도시락’이 있다.
‘하나씩 먹어.’
아수라와 바포메트가 자신의 공간을 열었다.
절규하는 영혼들.
여기에 오기까지 거쳐 왔던 쓰레기들이다.
죽여 달라고, 제발 나부터 죽여 달라며, 팔이 찢어져라 손을 뻗어 댔다.
아수라와 바포메트가 그중 둘을 찍어 씹어 먹었다.
영혼이 제물이 되어 소멸됨에도 웃고 있는 두 영혼.
어지간히 고통스러웠나 보다.
‘뭐, 내 알 바인가.’
가치도 없는 쓰레기들이다.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를 완벽하게 분리수거까지 해 줬으니. 이만하면 환경청에서 상이라도 줘야 되는 거 아닌가.
피식 웃으며 계단을 내려갔다.
차오르는 마나. 역시나 영혼이 가진 불순물에 메스껍다. 이 기분이 싫어서 되도록 ‘제물’을 사용하지 않았다.
‘이번에 돌아가면 ‘다리’부터 만들어야겠어.’
마나 홀을 좀 넓히면 이거보단 낫겠지.
악마 시체를 어떻게 구해야 하나 고민하며 달리던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벽에 몸을 숨긴 채.
‘매직 아이’를 전개, 또 다른 시야가 개방됐다.
“…….”
“…….”
두 놈이 지키고 있는 문.
저 문 뒤에 아이들이 있다.
‘근데…….’
문을 지키는 저 두 놈. 흐트러짐 없는 모습만 봐도 이제껏 만난 쓰레기와는 확연히 다르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고, 확실히 기도부터가 범상치 않다.
‘골치 아프네.’
꽤 강하다.
대략 준우 정도? 메리보다는 무조건 위다.
이런 두 녀석을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야 한다. 이건 아무리 나라도 긴장해야만 한다.
아공간에서 검을 꺼냈다.
매번 쓰던 대검이 아닌 장검이다. 아무래도 한정된 공간에서 대검은 여러모로 불리하다.
장검을 꽉 쥐었다. 검을 쥔 손에 땀이 흥건하다.
오랜만이네, 긴장감.
‘좋아, 진심으로 간다.’
마법 전개.
안티 필드
Anti Felid
안티 필드가 복도를 거쳐 두 사람을 집어 삼키는 순간.
그 순간에 맞춰 나도 도약했다.
“ㅁㅜ…….”
“ㅈㅓ!”
곧바로.
타임 프리즈
Time Freeze
찰나의 순간.
나를 감싸던 시간의 흐름이 멈췄다.
이어서.
디스펠
Dispel
혹시나 모를 변수까지 제거하고, 찰나의 순간 멈췄던 흐름이 돌아왔을 때.
이미 두 녀석은 내 공격 범위 안이었다.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검광이 두 줄기의 별이 되어 떨어졌다.
광채가 아릅답게 번쩍이길 잠시.
빛이 남긴 여운을 따라 두 구의 머리가 데구루루 굴러가고 있었다.
“아오, 간만에 긴장했더니 목이 다 결리네.”
안티 필드, 타임 프리즈, 디스펠, 별똥별로 이어지는 일격필살의 연계기.
이 한 번의 연계기에 들어간 도시락이 ‘여섯 개’다, 여섯 개!
저번에 중간고사 때 펼친 아포칼립스보다도 소비량이 크단 말이다.
그래도 완벽하게 정리했다.
클린으로 피를 지우고, 아수라와 바포메트를 불러 시체와 아직 남아 있는 두 쓰레기의 혼도 회수했다.
이어서 회수한 기억을 통해 비밀번호를 누르는데.
삐삐삐-
철컥.
문이 열리고 내 시야를 가득 채운 건.
지하 강당을 가득 채운 원통형 유리로 된 실험관들과, 푸른빛 용액에 담겨진 아이들이었다.
“다행이다.”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놓인다.
충분히 끔찍한 광경이지만 겨우 이걸로 끔찍하다고 하기에는 내가 겪은 수라장이 너무 많았다.
솔직히 난 최악에 최악까지 생각했었다.
인간이 자신의 이득을 위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잘 아니까.
그런데 이렇게 편안하게 자고 있으니, 고맙기까지 하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여길 지키고 대가리를 잡으면 끝.
“바포메트.”
바포메트의 머리가 나를 본다.
“현신.”
벌어진 공간을 바포메트의 팔이 비집고 나오더니.
찢었다.
공간을 찢었다.
허무 세계와 현계를 잊는 이 관문을 강제로 찢어 버린 바포메트.
뿔을 치켜들며 세계를 비웃는다.
오른팔
바포메트
현신(現身)
오른팔이여, 너의 주인.
마왕으로서 명한다.
“지켜라.”
바포메트가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