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46화 (46/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46화>

서울 변두리의 어느 산.

시내도, 정류장도, 흔한 편의점도 없는 한적한 곳임에도, 이 나라에서 이 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진룡산.

대대로 진룡 일족이 터를 잡은 그들의 보금자리였으니까

그리고 이 진룡산의 정상, 가주가 기거하는 저택 한복판에서 한 여자가 드러누워 있다.

“봄이 찾아내!!”

“걔를 어떻게 찾아내!”

“아, 몰라! 찾아내에에!!”

그래, 진유리.

진룡가의 차녀이자, 박기혁이 보증하는 이 시대의 찐 또라이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 하나.

사실 박기혁이 본 진유리는 본래 성격의 1할도 안 된다는 거.

역대 진룡의 혈통을 가장 짙게 받은 진유리.

그러나 복과 화는 같이 온다고 했던가…….

뛰어난 재능을 가졌지만 진룡의 혈통 중에서도 극소수만 나타난다는 마나 드레인 현상 탓에, 어렸을 때부터 생사를 넘나들었던 그녀였다.

덕분에 부모의 사랑…… 아니, 이 산에 사는 모든 일족의 사랑을 독차지했고.

이 진룡산에서 진유리를 컨트롤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붙여진, 암암리에 불리는 별명.

진룡가의 망나니.

지금도 봐라.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엄마 앞에서 드러누워, 필살 ‘빼애액!’을 시전하는 꼴을.

유해련은 이런 대책 없는 딸을 보며 ‘내가 잘못 키웠나.’ 만감이 교차하는 중이었다.

“한동안 잠잠하더니, 또 왜 이래.”

“아, 몰라아아아!!”

“진유리, 교양 없이 계속 이럴래.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언제까지 이럴 거야!”

“몰라 몰라아!! 봄이 찾아내에!!”

“하아…… 얘는 대체.”

유해련도 대충 사정은 안다. 김연희에게 들었으니까.

어젯밤, 한 통의 전화를 받고부터 이 꼴인 진유리다.

통화 중 “기혁이가?”라는 말이 들린 것으로 보아 박기혁과 연관이 있으리라 생각한 유해련은 김연희에게 전화했고.

“기혁이가 행방불명이야.”

“우리가 담당하던 보육원에 봄이란 아이가 있는데, 기혁이가 정을 많이 준 아이더라고. 그런데, 하…… 실종됐어. 맞아. 이번 집단 납치극, 그놈들한테 당한 것 같아.”

“아마도 기혁이는 걔들을 쫓고 있을 거야. 하아…….”

집단 납치극으로 나라가 뒤숭숭하단 건 안다.

정부와 경찰은 의문의 빌런 단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진화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극비 정보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나설 이유는 없다.

우리는 용이니까.

용은 사사로운 일로 속세에 관여하지 않는다.

환란이나 이 땅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그때야 비로소 용은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쳐 이 땅을 수호한다.

이게 진룡, 이 나라를 지키는 ‘수호 가문’의 역할이었다.

그런데…… 그녀의 망나니 딸은 생각이 다른가 보다.

“수호 가문이라며!! 수호. 지킨다. 보호한다. 이게 뭐가 지키는 거야! 지킨다며!!”

“유리야, 몇 번을 말하니. 우리는 국가의 위기나…….”

“뻥 치지마! 우리 일족 중에 한 명 없어졌으면 당장 개입했을 거면서! 왜, 틀려?”

“그…… 그건…….”

유해련이 말을 흐렸다.

맞는 말이니까.

“맨날 제 식구만 챙기고 밖에 일은 ‘환란’이니, ‘대의’니, ‘균형’이니, 이딴 꼰대 소리나 하니까 우리가 왕따 당하는 거야!”

“얘는, 말조심해. 누가 우리를 왕따 시킨다고.”

“다! 모두 다! 전부 우리 싫어한다고!”

“…….”

약간의 과장은 있을지언정 진유리의 말이 아예 틀린 건 아니다.

확실히 진룡은 검호와 더불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문에 이름을 올렸지만, 지나친 폐쇄성 때문에 점점 그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었다.

한때는 검호도 진룡 못지않게 폐쇄적이었지만, 그녀의 잘난 친구가 떡두꺼비 같은 자식을 셋이나 낳으면서 검호를 완전히 바꿔 버렸지.

망할 년, 능력도 좋아.

“그래서 엄마한테 어쩌라는 거야? 진심으로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봄이 찾아내.”

“……기혁이가 그렇게 좋아?”

“좋아, 좋으니까 봄이 찾아내.”

“후우, 이래서 딸자식 키워 봤자 소용없다더니.”

그래도…….

‘얘가 틀린 건 아니야.’

용은 신령해야 한다. 함부로 몸을 일으켜선 안 된다.

이런 구태의연한 전통에 사로잡혀 진룡이 어떻게 됐나.

서서히 잊히고 있지 않나.

지금도 이러할진대 10년 뒤에는, 20년 뒤에는…… 이 원수 같은 딸이 자식을 낳을 때쯤, 사람들의 머리에서 진룡이란 두 글자가 완전히 잊힐지도 모른다.

언제까지 변하지 않을 순 없다.

우리도 변해야 한다.

“좋아, 엄마가 힘써 볼게. 대신.”

그리고 이 망나니도 변해야 한다.

“……밖에서 이러지 마라. 특히 기혁이 앞에서는.”

그날 저녁, 진룡산 아래로 한 무리의 인파가 내려갔다.

진룡의 첨병. 진룡의 사냥꾼이라 불리는 전투 집단.

용아병(龍牙兵).

출전.

*   *   *

같은 시간, 진룡의 용아병이 산 아래로 내려오던 때.

박민지와 백호단은 강원도에 있던 진화단 점조직을 급습하고 있었다.

은빛나가 쓰러져 있던 조직의 보스 뺨을 때렸다.

짝, 짝- 짝짝!

“흐응~ 일어나지 않네. 물 좀 주라. 얼음도 좀 얼려서.”

곧이어 마법으로 급히 만들어진 살얼음이 낀 물세례가 부어지고.

푸쉭.

“푸합!!”

보스가 깨어났다.

이거 뭐야. 여긴 어디야? 너희들은 누구야? 몰래 카메라야?

횡설수설 정신을 못 차리는 보스

그런 보스를 보며 눈웃음을 짓던 은빛나는.

짝!

뺨을 때리고.

짝!!

또 때리고.

짝…… 짝…… 짝……!

계속 때렸다. ‘살려 달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

“살려 주세요.”

“흐응~ 그럴까아? 어머, 피 봐. 많이 아팠지이.”

맥이 빠질 정도로 애교 섞인 말투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무시받을 정도로.

하지만 백호단 모두가 안다. 그들이 아는 은빛나는, 부단장은 지독할 만큼 냉철한 인간이다.

특히 빌런이란 족속에게는.

“이제부터 누나가 물을 거야. 넌 답하면 돼. 아, 혹시 새파랗게 어린 여자애가 누나라고 부르라 해서 불만인 건 아니지? 설마, 그 정도로 눈치가 없을까. 그럼 첫 번째 질문. 이름.”

“김철수.”

순간, 은빛나의 손이 날아든다.

짝-!!

“와…… 왕호정입니다!!”

“맞아. 왕호정. 고향은.”

“강원ㄷ…… 연변입니다! 연변! 저는 조선족입니다.”

“맞았어.”

이후로도 심문이 이어진다. 아니, 심문이랄 것도 없다.

은빛나가 물으면 남자가 답한다. 이미 입수한 정보를 확인하는 행위였다.

진짜는 이제부터.

“언제부터 ‘진화단’으로 활동했어?”

“네? 무슨 말입니까. 진화단이라뇨. 저희는 흑사회인데요?”

“거짓말하지 마. 이거 봐. ‘인체 연성 보고서’. 너희가 사람 잡아다 연구한 거 다 알아. 그런데 발뺌이니?”

“아니…… 아닙니다!! 그건 그냥…… 장기 팔기 전에 잠깐 호기심에! 애초에 그 보고서 엄청 많이 돌아다니던 겁니다. 빌런 조직이라면 다 가지고 있다고요! 믿어 주십시오!!”

다급하게 말을 뱉어 내는 보스. 그러면서도 혹시 손이 날아올까 잔뜩 경직된 모습이다. 하지만 은빛나는 손을 날리는 대신, 뒤에 서 있던 동료를 보는데.

“심박수, 체온, 긴장 상태, 모두 사실이라 말하고 있어요.”

“흐으응~ 이번에도 ‘뻐꾸기’인가…….”

진화단은 점조직을 특이한 방식으로 만들기로 유명했다.

이미 기존에 활동하는 조직 아래로 들어가 서서히 장악하는, 그래서 종국에는 무늬만 다른 조직이고 알맹이는 진화단의 점조직이 되는 기묘한 방식.

이를 ‘뻐꾸기’라 불렀다.

“그래도 아는 게 있을지 모르니까. 유노야~ ‘벗겨 봐’.”

벗긴다.

백호단의 전문 용어로 ‘정신 조작’을 이용한 심문이었다.

당연하게도 강제로 정신을 조작하기 때문에 그 후유증은 상상 이상.

“어디까지 ‘벗길까요’.”

“음…….”

은빛나가 턱에 손가락을 대고 귀엽게 고민하더니.

“숨만 붙여 주라. 경찰한테 넘길 거니까, 자기 입으로 이름 정도만 부르면 되겠지.”

“알겠습니다.”

질질 끌려 사라지는 보스를 뒤로한 채, 은빛나와 백호단이 창고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 단장님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10분쯤 됐습니다.”

“흠~ 5분만 있다 진입하자.”

그때쯤이면 충분히 화가 풀렸겠지.

은빛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문 앞을 가로막았다.

……

한편 문 안에선 백색의 검기가 휘몰아치는데.

“피해에!!”

“살려…… 커헉-.”

“현웅 씨이!! 이 괴물년이-!”

발악하는 놈, 역겨운 동료애를 보여 주는 놈, 그 와중에 지만 살겠다고 동료를 버리는 놈.

지랄 났다.

박민지는 인상을 쓰며 다시 검기를 흩뿌렸다. 진화단원들이 반항, 아니, 발악해 봤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전력의 차이가 극명하다.

이쪽은 만반의 준비를 갖춘 백호다. 차기 수호자 후보 1순위로 꼽히며 단일 전투력만큼은 오빠, 산군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백호 박민지란 말이다.

고작 진화단 점조직이 막을 레벨이 아니란 것이다.

어두운 창고, 백색의 검기가 비추는 곳마다 절단됐다.

잘리고 썰리고…… 박민지는 해충을 박멸하듯 확실하게 눈앞의 진화단을 삭제시켜 갔다.

이제 일어서 있는 사람은 채 다섯도 되지 않는 상황.

그때 처음으로 검기가 막혔다.

“죽일 거야. 너만이라도 죽일 거야.”

여자 단원이었다. 아까 역겨운 동료애를 보여 줬던 여자. 그런데 동료애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사랑’이었나 보다.

피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복수를 위해.

자신을 던졌다.

흑마법 소환

켈베로스(Cerberus)

크헝! 아우웅-!

여자의 신체를 제물 삼아 켈베로스가 등장했다.

그리고 녀석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근처의 인간들을 먹는 거다.

죽은 자도, 산 자도.

“자, 잠깐.”

“개새끼야! 같은 편ㅇ…… 안 돼에에에!”

세 개의 머리가 사이좋게 인간을 뜯어먹었다. 뼛조각도 남기지 않고 말끔하게.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박민지는.

“역겹네.”

자기들끼리 울고, 찌르고, 먹고, 발버둥 치고…… 지랄도 이런 지랄이 없다.

그래도 할 건 해야 한다. 눈앞의 켈베로스는 위험하다.

본디 제물을 취했을 때가 가장 강한 순간.

그 증거로 이제껏 보이는 족족 베어 냈던 백색의 검기가 켈베로스의 거죽조차 베지 못했다.

“하는 수 없지.”

박민지가 호흡을 정돈하며 눈을 감았다.

진룡이 ‘용의 눈’을 비롯한 ‘특질’을 이었다면, 검호의 피를 이은 이들은 모두 ‘본능’을 지닌다.

이 본능은 단순히 검을 잘 쓴다는 정도가 아니다.

자신의 내면 깊숙이 각인돼 있는 ‘혼의 본능’이다.

하얗게 센 머리칼, 길어지는 송곳니.

그리고 호랑이의 눈.

박민지의 본능, ‘신속’이 깨어났다.

검호류 신속

보름달 부수기

본능을 각성한 검호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검.

압도적인 속도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신속의 검이 켈베로스를 분해하고 있었다.

조각조각.

흔적도 없이.

*   *   *

백호단과 용아병이 가담했다!

이 믿기지 않는 소식에 모두가 전율했다.

백호단이 무엇인가. 옵티멈을 대표하는 무력 집단이다. 용아병은 또 어떻고. 진룡의 수색대라 불리는 무력 집단이다.

그리고 두 집단은 이런 소문을 증명하듯, 믿기지 않는 속도로 빌런들을 처리해 나갔다.

특히나 주목받은 건 용아병.

백호단은 이런저런 이야기로 접해 봤지만 용아병은 전혀 알려진 게 없었으니까.

“진룡의 명예가 달린 일이다. 최대한 빨리 목표를 구출한다.”

“자비는 없다. 가로막는 적은 모두 소멸시킨다.”

용아병은 파죽지세로 빌런 조직들을 쓸어버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상대가 빌런이라고, 적이라고 규정되는 순간 대규모 마법 폭격이 가해졌고, 적은 세상에서 지워졌다.

빌런들이 뒷골목에서나 왕 노릇하지, 한쪽에서는 백호단이, 다른 한쪽에서는 용아병이 날뛰는데 어떻게 막겠나.

본의 아니게 범죄와의 전쟁이 펼쳐졌다.

아니, 이 정도면 전쟁이 아니라 청소였다.

두 집단이 얼마나 독했는지, 빌런 조직들이 오히려 자신들은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며 자수를 하는 우스운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편 일반인들이 이런 두 집단의 행보에 찬사를 보냈다면, 역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수사 당국, 경찰이었다.

“우리는 경찰이에요. 저 공은 우리가 얻었어야 할 공이란 겁니다. 그런데 왜, 저들이 모든 공을 다 가져가는 겁니까.”

“당장 찾아내세요! 다 잡아 처넣으란 말입니다!”

안 그래도 ‘공권력 무용론’에 시달리는 경찰이었다.

에이전트가 강세를 보이며 강한 초인들을 육성, 영입해 나가자 굳이 경찰이 필요한가 의문에 시달리는 처지인데, 이렇게 성과까지 뒤처지니 흥분하지 않고 배기겠나.

이렇게 되자, 본의 아니게 경쟁하듯 진화단을 토벌하는 그림이 그려졌다.

이 정도 인원이, 이 정도 규모의 병력이 일시에 움직이면 제아무리 점조직이라고 해도 위험했다.

꼬리를 끊어 내기 전에 꼬리가 다 잘려 나가면, 결국 몸통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이제껏 한발 뒤에서 숨어 있던 진화단이 결단을 내리는데.

“흔적을 지워라. 자료 및 모든 정보를 삭제하고 탈출해라.”

단 한 통의 통보.

아무도 모르게 마법 신호로 전해진 암호였고, 실제로 진화단 외에 그 누구도 이런 연락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단 한 명을 제외하면…….

“찾았다.”

*   *   *

“찾았다.”

대구의 모처, 한때 대학교였던 걸로 보이는 폐교 앞에 섰다.

3일 하고도 절반. 81시간 만에 찾은 곳.

이곳이 진화단의 본거지다.

“조금만 기다려.”

삼촌이 갈 테니까.

난, 어둠 속으로 몸을 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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