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5화>
온 나라가 발칵 뒤집어졌다.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집단 납치극이 벌어지고 있다!
인천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납치단. 이제는 서울까지 위험.
현재까지 집계된 실종 아동 수만 147명으로 추정. 집계되지 않은 숫자를 더하면…….
1세에서 10세 사이의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각별히 유의하시길 바랍니…….
교육부 “당분간 전국 초등학교 원격 수업 진행.”
인천에서 시작된 의문의 납치 범죄.
목적도, 흔적도 남기지 않는 완전 범죄에 수사 당국은 ‘초인 범죄’로 규명하며 빌런의 소행이라고 발표.
군부대 및 각 에이전트에 협조 공문이 떨어졌다.
그리고 때마침 독일에서 세미나를 마친 김연희가 한국 땅을 밟았고, 공항 입구에서 비서가 건네준 공문을 확인하게 됐다.
“시간 없잖아요. 보고부터 받죠.”
“인천에서 시작된 집단 납치극이 서울까지 번졌습니다. 경찰은 ‘초인 범죄’라며 빌런의 소행이라 발표했고, 협조 요청을 해 왔습니다.”
“아는 거예요. 다른 건 없어요? 가령 납치범의 정체?”
“……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다만 몇 달 전쯤 ‘진화단’으로 추정되는 세력이 움직였다는 보고가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공교롭게도 이 보고가 처음 올라온 장소가 도련님이 들어갔던 게이트입니다.”
“……설마 ‘갈퀴 손 오크 부락’?”
“네, 그리고 현재 도련님은…….”
“잠깐만요. 제가 말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아 주세요.”
아동을 대상으로 한 무분별한 납치극.
진화단으로 추정되는 빌런의 등장.
김연희는 본능적으로 이 두 사건이 연관됐다는 것을 확신했다.
“공교롭네요.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비서실장님, 이번 세미나 주제가 뭐였는지 아세요?”
“……잘 모르겠습니다.”
“인체 연성.”
“……!!”
“암암리에 ‘인체 연성 보고서’라는 게 돌아다녔다더군요. 그런데 안에 있는 내용을 확인해 보니, 생각 이상으로 구체적이었죠. ‘연맹’에서는 이게 진화단이 뿌린 정보라고 판단했어요.”
“헙!!”
연맹이라면 5대 에이전트가 모인 공동체다.
고작 다섯 에이전트가 모인 집단이지만 이 다섯이 모두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세계 최강의 에이전트들. 때문에 ‘세계 초인 기구’와도 비견될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다.
그런 ‘연맹’에서 나온 소리라면 절대 흘려들을 수 없다.
“거기서도 진화단, 여기서도 진화단. 뭔가 있는 것 같죠?”
“……최선을 다해 알아오겠습니다.”
“최선은 필요 없어요. 결과를 가져오세요.”
“알겠습니다.”
“이건 다시 회의하기로 하고, 아까 제가 끊었던 거 말해 보세요. 기혁이가 뭘요.”
“아…… 그게 현재 도련님 또한 행방불명입니다.”
“……!! 그걸 먼저 말했어야죠!! 자세하게 말해 봐요. 무슨 일이에요.”
“그게…….”
행복 보육원, 박봄이란 이름의 여아가 납치됐다.
박기혁은 박봄을 찾아 나섰고, 곧이어 연락이 끊겼다.
김연희는 이 보고를 듣고선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 했다.
방금 세계구급 빌런 단체로 알려진 진화단을 언급할 때도 동요하지 않던 김연희건만, 박기혁이 관련된 일에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그리고 김연희는 끝내 결정을 내리는데…….
“민지야, 엄마 부탁 좀 하자. 니 동생 좀 찾아 줘.”
백호단 출전.
* * *
도로 위를 미끄러지는 차 안.
“어머니 오셨네.”
패드로 보던 신문에서 보고 싶은 얼굴이 보였다.
절로 웃음이 번진다. 세미나 갔다고 하시더니, 무사히 갔다 오셨나 보다.
그때 운전석에서 운전 중이던 떡대가 힐끗 옆을 보더니 꿀꺽 침을 삼켰다.
“……옵티멈 대표가 어머니? 정말 당신이…….”
“쉿.”
어디서 쓰레기 따위가 함부로 이름을 올리려 해.
입을 잠구라는 제스처를 취한 후, 손가락으로 허공을 찔렀다.
허공에서 아수라가 모습을 드러낸다.
입맛을 다시는 녀석. 악행으로 걸레짝이 된 영혼, 딱 녀석의 취향인가 보다. 어지간히 탐이 나는지 나를 애처로운 강아지처럼 바라봤다.
“기다려. 곧 맛있는 거 줄 테니까. 얘는 안 돼. 곱게 죽여 주기로 약속했거든.”
“헙!”
떡대의 바지가 축축해졌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역시 쓰레기답게 간담이 콩알만 하다. 난 비웃으며 창문을 열었다.
빠르게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슬슬 윤곽이 보이네.’
점조직.
목표나 이상, 이득을 추구하는 방향은 같으나, 인원 구성을 소수로 해 자잘하게 쪼개 놓은 조직 체계.
흔히 뒤가 구린 녀석들이 보여 주는 체계로, 잡혀도 되는 꼬리들을 이리저리 뿌려 놓아 지휘부를 감춘다.
나름 뒷골목에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체계다.
머리 좋은 쓰레기들을 통해 오랜 발전을 거듭했고, 특히나 정보 체계가 발달한 이 지구에서는 컨트롤 타워가 정보를 철저히 제한할 수 있기에 이론적으로는 위쪽에 닿을 수 없다.
그래, 이론적.
어디까지나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이론은 깨지라고 있는 거지.’
난 오줌을 지린 쓰레기를 흘겨보며 피식 웃었다.
체계는 완벽할지언정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좋은 예가 여기 있네.
원래 뒤가 구린 쓰레기들은 지 살길은 기가 막히게 찾는 법이다.
이론적으로는 정보를 제한하겠지. 그런데 밑에 있는 쓰레기 입장에서는 불안하거든. 얘들이 악취가 나서 그렇지 눈치는 빨라. 지들도 후, 불면 죽는 파리 목숨이란 걸 아는 거지.
이런 자기 성찰을 끝낸 쓰레기들은 반드시 지 살길을 찾는다.
위에서 내려 준 정보 쪼가리를 이리저리 기워, 동아줄을 만들고, 이걸 구명줄이랍시고 들고 있다.
물론 진짜 상황이 닥치면 구명줄이 썩은 줄이라는 걸 깨닫겠지만.
거기까지는 내가 알 바인가.
난 어떻게든 위로 연결된 줄만 챙기면 되는데.
바로 지금처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이 차가 멈춘 곳에 네가 말한 ‘흔적’이 없지? 그러면 아까 본 내 왼팔이 나올 거야.”
움찔!
“우리 왼팔이가 얼굴이 세 개라 그런가 기운이 넘쳐. 아까 네 동료 어떻게 됐는지 봤지?”
“히익!!”
“씹고 뜯고 맛보고, 영혼이 조각날 때까지 가지고 놀걸. 그렇게 되고 싶어?”
“사, 살…….”
“살려 줘?”
“……죽여 주세요.”
이제야 주제 파악이 됐나 보다.
난 웃으며.
“네가 하기에 달렸지.”
부아아앙-!
미터기가 가파르게 올랐다.
거센 바람에 내 머리칼이 휘날리고 있었다.
* * *
진화단은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이뤄졌다.
각 나라의 지사인 ‘메인 연구팀’ 밑으로 여러 개의 하부 연구팀이 있고, 그 하부 연구팀에 또 하부 연구팀을 두는, 마치 개미집을 연상케 하는 조직도.
언제라도 꼬리를 자를 수 있게 만들어진 조직도였고, 실제로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단체임에도 꼬리가 잘릴지언정 진화단의 본체에 닿은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그 극히 드문 경우가 지금 여기에 벌어지고 있었다.
박기혁.
그가 진화단의 실체에 손을 뻗고 있었다.
푸쉭-!
뿜어지는 피 분수. 두 동강이 난 정체불명의 ‘괴물’.
그리고 쓰러지는 괴물을 밟고서 웃고 있는 박기혁.
“키메라네? 너희들 재미있는 거 만들었다?”
“죽여!!”
사방에서 괴물들이 뛰어든다.
인간의 몸통, 오크의 팔, 늑대의 다리…… 다양한 몬스터의 신체를 조합해 놓은 괴물들이 땅을 열고 모습을 드러내 박기혁을 향해 적의를 드러냈다.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건.
“나와.”
죽음의 군세.
어둠을 뚫고 나온 스켈레톤 군대가 괴물 군단을 향해 달려갔다.
“킥, 고작 스켈레톤이라고?”
“쓸어 버려!”
키메라 대 스켈레톤.
진화단은 키메라의 압승을 확신했다.
자신들이 완성해 낸 연구물이 고작 스켈레톤 따위에게 질 거라 믿지 않았다.
하지만.
양쪽에서 뱉어 내는 군세가 드디어 맞닥뜨리고, 그들의 앞에 놓인 현실은.
처참했다.
콰앙-!
키메라의 발톱이 스켈레톤의 방패에 막혔고.
파직!
곧이어 들이닥친 스켈레톤의 도끼가 키메라의 척추를 끊어 냈다.
키에에엑-!!
부서진 스켈레톤들이 허공에서 재구성되어 키메라의 신체를 물었고.
푸스스스.
찢겼다.
능지처참(陵遲處斬).
사방에서 사지를 물어뜯어 찢어 버렸다.
그들은 몰랐다.
이 키메라가 그들이 오랜 세월 공들인 연구물이라면, 이 스켈레톤은 마왕과 함께 온갖 수라장을 전전했던 진짜 ‘전사’란 사실을.
순식간에 쓸려 나가는 진화단의 키메라 군단.
하나, 그래도 진화단이던가.
“다들 자리 지켜.”
명색이 세계구급 빌런 단체. 실력자가 없을 리 없다.
‘진화 318단’이 본격적으로 저항에 나섰다.
먹구름이 뭉치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그 불길한 빗방울에 스켈레톤이 녹아 갔다.
에시드 레인(Acid Rain).
산성비를 내려 적을 광역 타격하는 원소계 마법.
한편 박기혁에게는 두 명의 실력자가 붙었는데.
“너구나. 우리 꼬리 밟고 있던 놈이.”
“츄릅. 맛있겠다. 맛있게 생겼다.”
톱날 같은 거치도를 든 남자와, 쿠마스를 연상케 하는 초고도 비만 체형을 풀 플레이트 아머로 가린 남자.
“삐쭉이하고 퉁실이인가.”
“삐쭉이? 나보고 한 말이야?”
“……하, 이래서 분리수거를 잘해야 하는 거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려두니까 봐, 말을 하잖아.”
“이 새끼가. 야, 쳐!”
“먹는드아아아!”
풀 플레이트를 입은 남자가 박기혁을 덮쳤다.
검으로 응수하는 박기혁.
하지만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맛있겠다. 먹는다. 츄릅, 츄릅.”
진심으로 박기혁을 ‘음식’으로 생각하는 놈답게 박기혁의 매서운 검격 앞에서도 군침을 질질 흘리며 손을 뻗을 뿐이었다.
“허, 갈 때까지 갔네. 자기 몸을 키메라로 삼은 거냐?”
“아직 말할 정신은 있나 봐.”
“……!”
깡-!!
뒤에서 날아든 거치도.
이상했다. 분명히 저기 비릿하게 웃는 남자가 있는데.
여기에 거치도?
그런데 자세히 보니 남자의 팔이 없다.
그랬다. 남자는 염력을 사용하는 조작계 초인. 자신의 신체를 날리는 극단적인 검술을 사용하는 검사였다.
하지만 박기혁이 놀란 부분은 이런 것 따위가 아니다.
온갖 수라장을 거친 마왕이다. 팔이 둥둥 떠 있는 게 대수겠나. 펄떡펄떡 뛰는 심장이 도망가는 꼴도 본 몸이다.
그런데 지금 그가 놀란 이유는, 이 기묘하고도 익숙한 감각 때문이다.
“야…… 너 무희랑 무슨 관계냐?”
“어? 어어어? 너 무희 알아? 어쩐지 반응이 빠르더라.”
“무희 맛있었어. 별미.”
“그런데 이상하다. 걔들 우리가 모조리 ‘확보’했는데, 어떻게 알까나.”
“……!”
이제껏 미궁에 빠져 있던 부산 참사의 전말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검과 검, 주먹과 검.
철과 철이 부딪히는 파열음 속에서 이뤄지는 치열한 공방.
“부산, 맛있었어. 혈족 맛집. 추릅추릅. 또 먹고 싶다.”
“오! 혹시 너 부산 사람? 자갈치 가 봤냐? 오이소, 보이소, 사이소. 킥킥.”
조금 전 움찔하던 박기혁을 본 두 녀석은 집요하게 ‘부산’을 들먹이며 박기혁을 자극했다.
과연 자극이 효과가 있었을까. 팽팽하던 대치가 조금씩 밀렸다.
그리고 기어코.
푸쉭-
박기혁의 가슴에 검상이 새겨지는데.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며 회심의 웃음을 짓는 두 녀석들.
하지만 정작 박기혁은.
“……생각 끝났다.”
충격 받은 게 아니다.
동요한 게 아니다.
단지, 생각했을 뿐이다.
“너희를 어떻게 치울지.”
마나가 폭발하며 박기혁의 뒤로 육망성 마법진이 떠올랐다.
긴장하는 두 녀석.
곧이어 마법이 들이닥치리라 예상한 녀석들이 박기혁을 중심으로 경계에 들어갔는데.
정작 떠오른 마법진은 작아졌다.
작아지고, 작아지고, 더욱 작아져…….
대검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대검의 검면으로 육망성 마법진이 어지럽게 드러난 순간.
“일단 한 대씩 맞자.”
검호류 쾌검술
별똥별
사선을 가르는 두 줄기의 빛.
샥- 샥- 소리마저 느려질 정도로 가공한 쾌검술.
그렇게 별똥별이 떨어진 자리에는
“끄어어억-!!”
허리가 잘린 녀석과.
“아파! 아파!”
두 다리를 잃은 녀석이 쓰러져 있었다.
“엄살 피우지 마.”
하지만 그들에게 불행은 이제 시작이었는데.
박기혁이 육망성이 담긴 대검으로 허공을 갈랐다.
흑마법 소환
허무 심연충
虛無 深淵蟲
촉수들이 갈라진 허공을 비집고 나왔다.
허무 세계 밑바닥 심연에서 사는 벌레.
일평생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생명의 부스러기로 연명하는 이 허무 심연충이 생명이 가득한 인간을 손에 쥐면.
절대 놓지 않는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평생 허무 심연충에게 뜯겨 먹히다, 나중에 먹을 것조차 남지 않으면 끝내 심연충이 되고 만다.
“정보만 빼내면 이 쓰레기들은 네 거야. 어때, 거래 콜?”
심연충의 촉수가 녀석들의 머리를 덮친다.
쿨 거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