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44화>
때는 바야흐로 박기혁의 공략대가 게이트를 클리어하기 일주일 전. 행복 보육원 아이들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술래잡기할 사람 여기 여기 붙어라!”
“나나나.”
“나도오오!”
“숨바꼭질하면 안 돼? 술래잡기 질려!”
“그럴까?”
“그럴 거면 경찰과 도둑 해. 그게 더 재미있어.”
“그것도 좋을지도…….”
아이들이 왔다 갔다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이, 봄이는 언제나처럼 그네에 홀로 앉아 언니 오빠들이 뛰어노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삼촌이 선물해 준 ‘사랑 만땅 곰돌이’를 안은 채.
“삼쵼 보고 싶다.”
언제 오나, 열 밤씩 세 번 자면 온다 했는데.
손가락으로 어설프게 숫자를 세어 보는 봄이.
“하나 둘 ……다섯. 하나 둘…… 다섯.”
틀렸어…… 열이 안 돼…….
봄이가 애꿎은 손가락을 원망스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그 귀여운 모습을 상급생 언니들이 보고 있었는데.
“봄이 뭐 해? 왜 혼자 있어?”
“애들이랑 놀지. 애들이 안 놀아 줘? 언니가 혼내 줘야겠네.”
“봄이 언니들이랑 놀까? 초콜릿 사러 갈래?”
“밀크 초꼬?”
“응, 밀크 초코.”
“……두 개 머거도 대?”
“양치만 잘하면, 되지 않을까?”
“가고 시퍼.”
봄이가 양쪽으로 언니들의 손을 잡고 보육원 문을 나섰다.
그날, 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 * *
“오빠아아앙!”
“저희 때문이에요. 어떡해요. 봄이 어떡해요. 으아앙!”
“봄이 잘못되면 어떡해요, 오빠. 흐흑!”
“괜찮다. 울지 말고. 내가 왔잖아. 다 괜찮을 거다.”
“으아아앙!”
우는 아이들을 살살 달래며 그때의 상황을 들어 봤다.
초콜릿을 사러 근처 편의점으로 간 아이들.
편의점과 보육원의 거리는 고작해야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
당연히 알바도 아는 얼굴이었다.
항상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원장님 말씀대로 알바 오빠에게 인사를 하고서 과자 몇 개와 봄이가 좋아하는 밀크 초콜릿 두 개를 사고 나왔다.
그런데.
잠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잠들었고, 일어나니까.
봄이는 사라졌다.
“……잠들었다는 게 무슨 말이야. 진짜로 잠든 거야?”
“네, 저희도 편의점 알바 오빠도 전부 잠들었어요.”
여기 오면서 보고받은 정보대로다.
이건 마법, 즉 초인이 개입한 납치 사건이다.
다만 알고 있음에도 여기 온 건, 하나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왜 봄이만 데려갔을까?
냉정하게 말해, 납치로 돈을 요구하거나 인신매매를 하려 했다면.
‘얘들도 같이 사라져야 했단 말이야.’
그런데 납치범들은 이 아이들은 놔뒀다. 손끝도 대지 않았다.
그게 의문이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전부 중학생 이상.
“나이였네.”
나이였다. 납치범들은 어린 아동이 필요한 거다.
대체 아동이 왜 필요할까.
몰라서 되묻는 게 아니다.
나쁜 생각…… 아니, 나쁘다는 말도 모자랄 최악의 상황이 그러져서다. 아동을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들이…….
그런데 설상가상, 때맞춰 울리는 폰에서 나쁜 소식이 전해지는데.
- 도련님, 인천 일대로 대규모 연쇄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는 정황을 확보했습니다. 대상은 3세에서 10세 사이의 아동이며, 현재 관할 지부에서 필사적으로 은폐 중입니다만, 규모가 상상 이상이라 조만간 발표가 날 것 같습니다.
“후우…….”
왜 안 좋은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난 급히 애들을 정리하고 보육원 문을 나섰다.
문 앞에 선 내 눈에 ‘행복 보육원’이란 명패가 보인다. 그리고 그 옆으로 ‘옵티멈 에이전트 공식 후원’이란 명패도.
“안일했어.”
세계 5대 에이전트이자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전트 옵티멈.
그런 단체가 공식적으로 대문짝만하게 후원하는데 어느 미친놈이 건들까 생각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네?
이건 명백히 내 책임이다. 저 ‘옵티멈 공식 후원’이라는 말에 안심했던 게 문제였다.
“화나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평화에 젖어 주의를 잃어버린 과거의 나 자신에게.
- 도련님, 현재 보육원 일대의 블랙박스와 CCTV 모두 확인해 봤지만 어떠한 정황도 잡히지 않았습니다. 고위급 ‘안티 필드’를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로서는…….
증거가 없다?
정보가 없다?
뚝-.
나를 가로막던 마지막 안전핀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내 방식대로 한다.”
* * *
안티 필드(Anti Field).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거나, 본인을 정체를 감추려고 고안된 차단 마법이다.
엄밀히 말해, 감각계 마법의 한 종류.
시각, 청각, 촉각, 미각, 후각. 인간이 가진 감각을 비틀어 정보를 아예 삭제시키는 거다.
자, 그러면 여기서 문제.
그렇다면 안티 필드는 정말 찾을 수 없나?
설마…….
정보가 없더라도, 흔적은 남아 있거든.
마법은 일종의 거래다. 세계와 내가 맺는 거래. 여기서 마나는 재화 혹은 돈이고, 마법은 거래 상품 정도 되겠지.
이제 역으로 추적하면 된다.
어느 마법이 쓰여졌다. 거래가 이뤄지고 상품이 팔린 거다.
아주 은밀하고, 남들은 알 수 없게 비밀스러운 경로로 팔려진 상품.
하지만 결국 ‘팔렸다’면, 주고받은 돈이 있을 것이다.
그래, 마나.
모든 마법은 마나에 흔적을 남긴다. 남길 수밖에 없다.
세계의 질서가 그러하다.
“……찾았다.”
편의점 앞 벤치. 캔 커피 한 뭉텅이를 사서 앉은 지 2시간 만에 지난 일주일 치의 마나를 모조리 읽어 냈고.
드디어 찾았다.
안티 필드와 슬립 마법.
“그렇다면 이제.”
아공간 주머니에서 마석 한 알을 꺼냈다.
쿠마스를 잡고 나온 중급 마석.
마나의 질은 탁하지만 중형 몬스터의 마석답게 그 크기가 커, 중장비나 발전소에 들어가는 녀석.
이 녀석이 제물이다.
까득. 까드드득-!
마석이 검게 물들더니 바들바들 떨고, 나중에는 살려 달라고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몸부림치더니.
파지직-
녹아 버렸다.
석유처럼 검은 액체가 된 마석.
곧이어 검은 액체가 내 손으로 흡수되고.
잠시 뒤.
눈이 어둠에 물든다.
새까맣게, 더욱 새까맣게.
빛마저 집어삼키는 블랙홀처럼 새까맣게 변한 눈.
‘이제 보여 줘. 네 흔적을.’
세계가 반전한다.
편의점과 공원이 있던 세계에서 칠흑 같은 어둠으로.
그리고 다시 편의점과 공원이 보이는 시야로.
이곳은 과거의, 일주일 전의 공간이다.
시간을 건드는 모든 행위는 세계의 질서를 무너트리는 행위. 당연하게도 난 세계의 저항을 마주해야만 했다.
노이즈처럼 시야가 지지직- 거렸다.
귀로는 경고음처럼 이명이 들렸고, 몸은 압착기에 짓눌리듯 압박이 들어왔다.
이를 악문다.
‘새끼야, 잠깐만이다. 잠깐만, 잠깐만 본다고!’
젖 먹던 힘을 짜내 견디는 사이, 편의점 문을 열고 아이들이 나온다.
노이즈가 껴서 존재가 흐릿한데, 우리 봄이의 귀여움은 세계의 질서도 뚫고 나오네.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오는 난 미친놈인가.
하지만 곧이어, 웃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마법의 흐름이 요동치더니, 아이들이 쓰러졌다. 때맞춰 차가 멈추고 평상복을 입은 남자가 나왔다.
그리고 봄이를 안고는 차를 타고 사라지는데……
여기까지!
“우웩!”
현실로 돌아온 내가 검은 피를 토해 냈다.
“커헉, 컥…… 우웨애액!”
젠장, 세계 이 자식 더럽게 비싸게 구네. 우리 이렇지 않았잖아. 얌마, 우리가 어? 예전에는 어?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어?!
“저기, 여기서 토하시…… 헉! 피? 피예요? 이거 피 맞아요?!”
“어떡해! 피래! 엄마, 저 사람 피 토하고 있어.”
“넌 보지 마. 저기요, 괜찮아요. 누가 119 좀 불러 줘요!”
백주 대낮에 다 큰 성인 남자가 피를 토했으니 사람이 몰릴 수밖에.
난 괜찮다며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편의점 알바한테 청소비를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히 나 때문에 고생이 많네.
어쨌든 찾을 건 찾았다.
난 폰을 들었다.
“비서실장님, 차 한 대 수배해 주세요. 검정 세단이에요. 번호는 0286.”
* * *
옛날, 내가 제국에서 한창 마왕으로 불릴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나는 마왕의 이름으로 ‘인체 실험 규제 법안’을 발표했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애들은 건들지 말자.
살아 있는 인간으로 실험은 하지 말자.
할 거면 죽은 놈으로 고통 없이 해 주자.
여기 지구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잖아.
그런데 말이다, 당시 제국에서는 이 당연한 게 파격이었고 거센 저항에 부딪쳤다.
마법의 진보를 위해 인체 실험은 필요악이다.
가장 인간을 많이 짼(?)곳이 칠흑 마탑 아닌가. 이제 와서 이런 법안을 내면 다른 마탑은 어쩌란 말인가.
마왕이 성장의 사다리를 부러트리려 한다.
뭐, 그럴 줄 알았기에 별로 당황하진 않았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게 나쁜 건 아니잖나. 내가 독재자도 아니고 내 말에 안 따른다고 목을 따 버리진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설득할 생각이었지.
그런데 어떤 공작 놈이 선을 넘었다.
나를 규탄하는 것도 모자라, 내게 경고하려고 주위 사람들을 건드렸다.
그래, 내가 후원하던 고아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아이들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됐게?
“다 죽였어. 모조리 지옥에 처박아 넣었지.”
걸음을 옮기는데 “살려 줘.”란 말이 들린다.
내게 머리카락을 잡힌 채 끌려가는 쓰레기인데, 쓰레기가 말을 하네?
신기하긴 한데, 거북하다.
허공이 찢어지며 스켈레톤이 상체만 나와 쓰레기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끄아아아악-!”
“이제 좀 낫네.”
질질 끌어다 창고 한편에 던져 버렸다. 차곡차곡 모아 놓은 쓰레기들이 저마다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살려 달라 외치지는 않는다.
살려 달라 말했던 놈들은 사지 중 하나가 반드시 잘려 나갔으니까.
딱, 손가락을 튕기자 뼈로 만든 ‘왕좌’가 솟아올랐고.
난 뼈의 왕좌에 여유롭게 앉았다.
“열일곱. 열일곱의 쓰레기들이 모였다. 이제 발언을 허락한다. 아는 거 다 꺼내 봐. 들어 보고 쓸 만하다 싶으면, ‘죽여 줄게.’ 응?”
죽여 준다는 말에 쓰레기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면 살려 줄 줄 알았나?
이곳에 발을 들이며 쓰레기들을 마주했을 때 ‘살려 준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얼마나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면 영혼이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하더라.
“……다, 당신이 뭘 알고 싶어 하는지 모르지만…… 우, 우린 많은 것을 압니다. 돈이든 정보든 다 드릴 테니 살려만…….”
“쓰레기는 쓰레기야. 인간 말을 못 알아먹잖아. 그래, 너 아는 거 많다고 했냐? 얼마나 아는 거 많은지 보자.”
순간, 말을 하던 쓰레기의 위로 공간을 깨트리며 모습을 드러낸 바포메트.
그리고.
으적! 으적! 까득까득.
산 채로 쓰레기를 뜯어먹었다.
존재가 사라질수록 쓰레기의 기억이 뚜렷해지고, 난 바포메트를 거쳐 들어온 쓰레기의 기억에서 취할 것만 취하고 나머지는 버렸다.
사설 카지노, 김 사장, 진화단?
진화단이라면 인류가 진화해야 세계 멸망을 막을 수 있다며 마구잡이로 사람 째는 세계구급 미친놈들 아닌가?
“너희들, 진화단이었냐?”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거 모릅니다!”
아직 삶의 희망을 놓지 못한 쓰레기들이 격렬히 부인한다.
원래 나쁜 놈들이 눈치가 빠른 법. 이 판국에 진화단하고까지 엮이면 틀림없이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다.
김칫국 거하게 마시는 거지.
지금 이 상황에서 그냥 곱게 ‘죽는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르는 거다.
“쓰레기들, 아직 상황 파악 안 되나 본데, 너희는 어떻게든 나한테 죽여 달라고 매달려야 해. 안 그러면.”
바포메트가 이 어수룩한 쓰레기들을 비웃으며 허공을 열었다.
그리고 그 허공에는.
끼에에에에엑-!
아까 먹혔던 남자의 영혼이 절규하고 있었다.
“저렇게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평생 내 오른팔의 장난감이 되는 거야.”
죽음이 끝이다?
그건 어설픈 징벌이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은 없다?
있다. 분명히 있다.
신체가 조각조각 나 끝내 소멸되고, 그것도 모자라 영혼을 가둬 두고 괴롭힌다.
끝까지.
마지막 한 방울까지 존재를 짜내며 살려 달라고 빌 때까지.
그때쯤 되면 죽음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안식이며, 축복이다.
나 마왕의 징벌에서 죽음은 없다.
고통보다 더한 고통. 영원 같은 고통뿐.
“마지막 기회야. 죽고 싶으면 꺼내 봐.”
쓰레기들이 앞다투어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