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43화 (43/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43화>

당연한 말이지만, 초원 필드에 있는 쿠마스보다 미로 필드에 있는 문지기 쿠마스들이 훨씬 강했다.

공격력, 방어력, 체력, 마법 저항력 등등 모든 면에서 한 차원 높은 개체.

그러나 개인적으로 난 이놈들이 더 쉽다.

일단 도망 못 가니까.

물론 사방이 막혀 있는 공간이라 움직임이 제한된다는 단점도 있다. 그러나 뭔 상관인가. ‘도주’ 패턴이 없는 쿠마스는 커다란 샌드백일 뿐인데.

얼마나 편한가.

그래서 데려왔다.

우리 귀여운 학생, 진유리를.

“내리쳐라.”

진유리의 ‘부름’에 황금빛 섬광이 내리쳤다.

4클래스 전격계 마법, 콜 라이트닝.

시전 속도를 보나 파괴력을 보나, 어느 하나 손색이 없는 완벽한 콜 라이트닝이다.

하지만…….

“제대로 안 할래, 진유리? 이거 아니잖아. 네 ‘색깔’은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그게 쉽냐고! 이크!”

내려쳐지는 쿠마스의 팔에 양쪽으로 찢어지는 우리.

땅이 울컥 흔들리며 바위 파편이 튄다. 꽤 위험천만한 순간이지만 나와 진유리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수업을 이어 나갔다.

“네 마나를 쓰는데 네 색깔이 안 들어가는 게 말이 돼?”

“알아. 안다고. 익숙하지 않아서 실수한 거라구!”

“한 번만 다시 설명해 준다. 너는 계속 마법 쓰면서 들어.”

술식-마나-발현.

이게 마법이 발현되는 과정이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에게 여기서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술식’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술식을 구성하는 건, 마법의 뼈대를 구축하는 단계니까.

영창, 주문, 진법, 수인, 마법진 등, 막말로 이런 ‘술식’만 제대로 갖춰진다면 마법은 발현된다.

어떤 식으로든 말이다.

그래서 이 세계의 몇몇 학파들은 효율을 강조하며 술식 이후의 과정을 싸악 무시하기도 한다.

나쁜 방법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병신 같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모든 마법사가 나와 같은 재능을 타고날 수는 없으니까.

고만고만한 재능을 가진 마법사들이라면 심화 과정 다 재껴두고 오로지 ‘술식’만 파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아니, 낫다. 확실히 나을 것이다.

인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교육하지만 모두 알잖나. 타고난 한계가 있다는 것을.

하지만 말이다. 지금 말한 건 어디까지나 ‘평범한’ 초인일 때다.

내 앞에 있는 진유리는 전혀 해당 사항 없단 말이다.

“술식? 중요하다. 완벽한 술식이 갖춰져야 완벽한 마법이 발현되니까. 근데 네가, 용의 눈으로 마법을 읽는 네가 술식이 틀릴 일이 있을까? 없어. 넌 보이잖아. 안 그래?”

그렇다.

1+1=2

누구나 다 아는 계산.

극단적으로 말해 진유리에게 마법은 이런 식이다.

용의 눈을 가진 진유리는 마법의 식이 명확하게 보인다. 심지어 답도 흐릿하게나마 접근 가능한데.

술식을 틀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자, 술식이 완성된 지금 ‘마법’은 완성됐다. 뭐, 공부에 끝이 없다는 것처럼 파고 파면 더 공부할 게 남아 있겠지만, 일단은 완성됐다 치자. 그러면 끝인가? 더 이상 마법은 없나?”

일부러 틀리는 게 아니면 그럴 일은 없다.

“아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제 ‘너의 마법’을 완성해야지.”

모든 사람은 고유의 마나를 품는다. 난 이를 ‘색깔’이라고 부른다.

이 색깔을 마법에 입히는 것. 그러므로 그저 마법이 아닌 온전히 ‘나의 마법’을 완성하는 것.

이게 술식-마나-발현에서 ‘마나’의 과정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네 안에 잠들어 있던 ‘너의 마나’를 불러와라.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걔는 원래부터 네게 있었고, 언제나 네 곁에 함께했다.”

“함께…….”

“너의 마나다. 가둔 것도 너고, 잊은 것도 너야. 다정하게 말을 걸거나 살살 달래는 방법도 있다는데, 난 그런 거 모른다. 그냥 꺼내. 끄집어내서 마주 봐. 다음은 그때 생각해.”

“…….”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는지 진유리의 눈이 반개한다.

반쯤 감기는 속눈썹, 탁해지는 동공, 흐릿해지는 초점.

출렁이던 붉은 마나가 고요해졌다.

깨달음의 순간(돈오:頓悟).

벌써?

웃음이 나왔다.

이래서 재능 있는 애들이 좋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니까.

난 빙그레 웃으며 멈춰 있는 진유리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이라도 스승이다. 제자의 성장을 지켜 줘야겠지.

순간.

내 눈에 육망성이 그려지고.

허공을 채우는 수십 개의 마법진.

마법진 속 육망성에 검은 불꽃이 스며들더니.

앱솔루트 실드

Absolute Shield

5클래스 방어계 마법, 앱솔루트 실드.

배리어의 상위 호환으로 그만큼의 방어력을 자랑하지만, 마나 소모가 심해 배리어와 실드에 밀리는 비운의 마법.

그러나 여기에 내 색깔을 더하면.

앱솔루트 실드(改)

철옹성(鐵甕城)

절대 뚫리지 않는 성벽이 된다.

마법진이 빠른 속도로 허공을 유영한다.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세가 마법진에 의해 무효화돼 갔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팔은 반사되듯 튕겨나가 애꿎은 천장만 쳐 댔다.

몇 번이나 같은 짓거리를 반복하다 보니 쿠마스도 소용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

자신의 지적 능력이 금붕어보다는 높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처럼 이번에는 육탄 돌격으로 공격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용없다.

쿠당탕탕-!

돌진해 오던 속도의 두 배로 튕겨나가 벽에 처박혔다.

이 짓은 서너 번 더 하고서야 깨달은 모양. 지적 능력이 닭으로 격상됐다.

이밖에도 실드를 향해 점프를 한다든지, 독침을 브레스 비스무리하게 뿌린다든지, 하다하다 나중에는 지진 패턴을 연속으로 쏘기까지.

다양한 몸 개그를 보여 주며 날 즐겁게 해 주던 쿠마스.

그런데 미안, 재미있긴 한데 이제 슬슬 끝낼 때가 온 것 같다.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

“비켜.”

잽싸게 실드를 거두고.

체인 라이트닝

Chain Lightning

번개가 일렁이더니.

체인 라이트닝(改)

핏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붉게 물드는 순간.

“라이트닝 브레스.”

용의 뇌전이 작열했다.

“용이라…… ‘진룡’이니 당연한 건가.”

과연 혈족 계승.

‘혈통’은 속일 수 없나 보네.

“하여튼 재미있다니까.”

진룡이 용이면 검호는 호랑이겠지?

난 손안에 든 대검을 만지작거리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   *   *

20일.

게이트의 모든 것이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고, 이제 공략대에게 쿠마스는 더 이상 까다로운 몬스터가 아니었다.

“기분 탓인가, 나도 슬슬 공격이 보이는 것 같은데?”

“어, 너두? 나두.”

“이참에 우리도 접근해 볼까? 헤이스트 쓰면 가능할 것 같은데.”

“하긴, 요즘은 원거리 딜러도 거리를 좁히는 게 유행이라잖아. 거리가 좁아지면 파괴력도 강해지니까.”

“될 것 같아. 이번 전투 끝나고 메르헴한테 물어보자.”

여유가 생기자, 시야가 넓어진다. 시야가 넓어지며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고, 이제껏 자신들이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해 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쿠마스는 좋은 개체다.

우선 표적이 크고, 중형 몬스터치고는 속도가 빠르지 않다. 게다가 특별한 즉사 패턴도 없고, 마법조차 쓰지 않는다.

박기혁의 표현을 빌리면, 이보다 훌륭한 ‘샌드백’은 찾기 힘들 정도였다.

“야! 얼른 봐! 성공했어. 더블 캐스팅!”

“아쿠아 볼이랑 라이트닝 쇼크? 맞네, 더블 캐스팅. 대단한데?”

“온다…… 피하고. 또 오면…… 피하고…….”

“얌마, 피하기만 하면 뭐 해? 마법을 쏴야지!”

“가만있어 봐! 조금만…… 조금만 더 가서…… 이렇게 사정거리에 닿으면! 매그넘 스톤!!”

이처럼 공략대가 다양한 시도로 경험치를 채워 갈 때, 당연한 말이지만 한준우와 메르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수없이 많은 게이트를 드나들었던 둘이다.

경험이면 경험, 전투력이면 전투력, 팀워크면 팀워크.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두 사람은 단연 공략대에서 돋보였다.

“내가 ‘사망 알레르기’ 주술로 마나 막 걷어 내면요.”

“내가 ‘진혼제’로 뚫는다.”

“타이밍 제대로 맞춰요. 정확히 얼굴이 드러나고 3초예요. 늦어도 안 되고, 빨라도 안 돼요. 3초, 기억해요.”

“걱정 말고, 너나 잘해라. 열린다.”

“1…… 2…… 3! 지금!”

공략대원들이 단순히 쿠마스에게 익숙해졌다면, 한준우와 메르헴은 쿠마스를 가지고 놀기 시작.

필드에 있는 모든 쿠마스를 없애겠다는 기세로 사냥에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그 시각.

박기혁과 진유리는 정신없이 미로 필드를 누비며 공략대가 벌어 온 열쇠로 문을 따고 있었는데.

“또 색깔 빠진다. 항상 신경 쓰라 했지. 복창해라. 나는 용이다.”

“나는 용이다.”

“더 크게.”

“나는 용이다!!”

“얼씨구? 소리 좀 질렀다고 다리가 보인다? 마법사는 하체가 죽으면 뭐다?”

“죽는 거다! 으잌!”

“멀었다, 멀었어. 벌써 앓는 소리나 들리고. 인마, 메리는 중장비 들고도 그 속도로 다녀.”

“비교하지 마앗! 비교가 제일 나빠!”

“어허! 또 색깔 빠진다. 신경 안 쓸래?”

수련을 병행해야 하기에 진유리가 신나게 마법을 쏘다 지쳐 쓰러지면 박기혁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전투가 진행됐지만.

빨랐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정리됐다. 밖에서 일반 쿠마스를 잡는 다른 공략대보다도 훨씬 말이다.

초원 필드에서는 한준우와 메르헴을 선두로 둔 공략대가.

미로 필드에서는 박기혁과 진유리라는 올해 최강의 두 초인이.

이쯤 되자 게이트 안에 있는 누구도 이 게이트가 클리어되리란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학생들을 평가해야 할 교수들도.

“올해가 역대급 기수라고 말이 많더니만, 농담이 아니네. 평균적으로 실력이 높아.”

“그쵸? 저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째 가면 갈수록 실력이 높아지는 것 같아요. 교수님은 어떻게 보세요?”

“허허. 교육법은 항상 발전하는 법입니다. 당연히 실력도 발전해야겠죠. 그럼에도…… 이번 기수가 특별한 건 부정할 수 없군요.”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를 대비해야 할 안전 요원도.

“오우, 봤어? 방금 연계기. X나 쩌는데?”

“주술로 쿠마스의 방어 체계를 무너트리고, 일격필살 찌르기로 마무리. 완전 찢어 버렸네.”

“남자가 한준우, 여자애가 메르헴. 저 둘은 현역으로 바로 뛰어도 되겠다.”

“올, 형님 후하네. 이 형님 웬만하면 평가 짠데. 마음에 들었수? 영입각 인정?”

“김칫국 마시지 마. 쟤들 우리 ‘도련님’ 조거든. 대표님이 집중 관리 중이고, 이미 옵티멈 소속이나 다름없어.”

“에잇, 퉤퉤퉤!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뭐야!”

그렇게 총 113개째의 문을 열었을 때, 마침내 박기혁과 공략대는 마주할 수 있었다.

일반 문보다 두 배 이상 더 큰.

보스 룸을.

“지겹다. 빨리 끝내고 밥이나 먹자.”

게이트 진입 23일 3시간 18분.

Boss.

네임드, 쿠마스 바바 조우.

*   *   *

각양각색, 제각각 다른 힘을 품은 마법들이 쏟아진다.

중앙에서 보스 ‘바바’가 몸부림치고, 준우와 메리는 찰떡같은 호흡으로 보스 바바의 움직임을 컨트롤해 나갔다.

조금은 정체된 흐름.

우리도, 보스 바바도 최선을 다해 공세를 펼치지만 전황을 바꿀 만한 치명타는 나오지 않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난, 이 정체된 흐름을 한 방에 날릴 치명타를 위해, 진유리와 함께 섰다.

“할 수 있겠어?”

“응, 할 수 있어. 꼭 하고 싶습니다!”

“……한 번만 할 거야. 실패하면 너도 쟤들이랑 섞여서 마법지원이나 해.”

“알겠음. 준비됐음.”

“마법은? 네가 잘하는 전격계?”

“아니, 헬 블레이즈. 나 그거 하고 싶어.”

“순 제멋대로구만. 준비해.”

‘준비해’란 한마디에 진유리의 눈빛이 변했다.

방금까지 시시덕거리는 진유리는 없다. 여기 앞에 있는 건 진룡 가문에서도 역대 가장 짙은 ‘용의 피’를 이은 진유리만 있을 뿐이다.

육망성 마법진이 펼쳐진다.

나와 진유리를 중심으로.

‘접촉은 됐고 이제 공명.’

고오오-

진유리의 진홍빛 마나와 나의 칠흑빛 마나가 섞이며 소용돌이치고, 우리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던 마법진이 휘몰아쳤다.

접촉 이상 무. 공명도 이상 무.

준비는 끝.

“타깃 설정이나, 마나 조절 같은 귀찮은 거 신경 쓰지 말고, 넌 발현만 생각해.”

“…….”

돌아오는 답은 없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말.

힘껏 앙다문 입술이 제법 귀여웠다.

그러고 보니 내 기억이 틀린 게 아니라면 다른 이와 연계 마법을 펼친 게, 성녀가 마지막이었던 걸로 아는데.

‘참 나, 이게 이렇게 이어지냐.’

좋아, 놀아 보자.

요동치던 마법진 안으로 또 다른 마법진이 늘어난다.

‘타깃 설정’으로 하나.

‘속성 조화’로 하나.

‘마나 조절’로 또 하나.

원 안에 원들이 차곡차곡 늘어갈수록 마나가 더욱 촘촘히 연결됐고, 모든 원이 완성됐을 때.

우리의 눈이 보스를 향하는 순간.

연계 마법

헬 블레이즈 & 헬 블레이즈

본 드래곤의 숨결

공간이 깨진다.

드러나는 본 드래곤의 머리.

본 드래곤의 턱이 보스의 신체를 물어뜯고…….

그 순간.

화염이 치솟는다.

시리도록 차가운 푸른빛의 업화가.

게이트 진입 23일 6시간 27분.

게이트 ‘배불뚝이 미로’ 클리어.

*   *   *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한 공략대.

오늘만큼은 서로에게 가진 감정 따윈 잊은 채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들려온 비보.

“다시 말해 봐. 봄이가 없어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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