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술 명가의 마왕님-40화 (40/247)

<검술 명가의 마왕님 40화>

염연히 말하면 사냥과 공략은 다른 의미다.

사냥은 마석과 부산물을 목적으로 게이트 내의 몬스터를 죽이는…… 말 그대로 수렵, 혹은 사냥일 뿐이다.

그렇다면 공략은? 공략도 게이트 내의 몬스터를 잡는 건 같지 않나?

맞다. 맞는데, 목적이 다르다.

공략은 게이트를 ‘클리어’하려는 행위다.

게이트 내의 보스를 찾아 죽여, 게이트를 클리어, 닫아 버리는 거다.

이렇게 클리어되면 게이트는 색을 잃고 연결이 끊기게 된다.

여기서 다시 두 종류로 갈린다.

역류 가능성이 있는 퍼플 게이트나, 터지기 전 시한 폭탄인 레드 게이트의 경우 클리어되면 서서히 사라져 존재를 감춘다.

반대로 출입의 제한이 없는, 우리가 흔히 사냥터로 부르는 ‘블루 게이트’의 경우, 클리어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색이 돌아오며 게이트가 재가동하게 되는 원리다.

그럼에도 클리어 시 한동안 사냥터가 닫히면 명백한 손해.

이로 인해 블루 게이트는 특별한 이유 없이는 ‘클리어’하지 않는 게 불문율로 여겨졌고, 심지어 국가에서 관리할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내 손에는 이 블루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는 열쇠, ‘아카데미 학장 천수만’이 대문짝만하게 박힌 인증서가 들려 있었다.

“……공략대 17명. 지도 교수 3명. 안전 요원 8명. 총 28명. 맞습니까?”

“네.”

게이트 관리자가 서류와 나를 번갈아 보며 ‘흐음…….’ 신음을 흘렸다.

“도저히 모르겠네. 대체 상부에서는 무슨 배짱으로 허가를 내준 거야. 이러다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에이 씨!”

중간 관리자의 설움이 진득하게 느껴지는 혼잣말이다.

오랜 경험상 이럴 때는 닥치고 있어야 한다. 괜히 말 꺼냈다가는 본전도 못 건지거든.

“하…… 저기 학생.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여기 5레벨 게이트인 건 알죠?”

“잘 압니다.”

“그럼 5레벨 게이트 공략 인원도 알겠죠. 네, 알아야죠. 아카데미생이니까요. 20명이에요. 최소 20명은 돼야 공략 허가가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학생 공략대는…….”

게이트 관리병의 시선이 내 뒤쪽을 살핀다.

“15…… 16…… 17명. 학생까지 포함해 17명. 정말 이 숫자로 게이트 공략하겠다는 겁니까? 진심으로요?”

“네, 진심으로요.”

“후우, 잠깐만요. 지도 교수란 분들하고 한 번만 이야기하고 올게요.”

본래라면 기말고사에서 교수와 안전 요원은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게 불문율이지만 우리의 관리자님, 얼마나 불안한지 기어코 불문율을 어기고 교수한테까지 달려갔다.

나도 굳이 잡지 않는다. 불안하다잖냐.

대신 남는 시간에 손짓으로 진유리를 불러 상황을 살폈다.

“상태는 어때?”

“누구? 날 말하는 거야, 쟤들 말하는 거야?”

“당연히 조원들이지.”

“음, 난 좋아. 기대가 돼서 어제 잠도 설쳤지 뭐야. 그런데 또 이게 기분이 좋아. 기분 좋은 몽롱함이랄까? 오히려 집중력이 살아나는 기분이야.”

“……너 내 말 듣고 있냐. 조원들 상태 말하라고.”

“흥, 여전히 무뚝뚝하다니까…… 쟤들은 예상대로지 뭐.”

진유리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하는데, 정말 얄미워 한 대 때려 주고 싶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조 분위기는 한마디로 폭망이었다.

그럴 수밖에.

아카데미 역사상 1조는 그 해 기수를 대표하는 조였다. 모든 면에서 주목받는 게 당연했고 선망의 대상처럼 여겨지기도 했던 그들이었다.

아마 장밋빛 미래를 꿈꿨겠지.

그런 꿈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생겼다.

진유리의 변덕 때문에.

“혹시나 해서 묻는데.”

“혹시나 하면 묻지 마. 무조건 해체할 거니까. 해체 못 하게 하면 자퇴할 거야.

“……미치겠다.”

결국 진유리는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조장에서 물러나기로 결심했다.

이건 예상한 바다. 원래 이 녀석은 누굴 이끌 그릇이 아니었으니까.

한준우랑 비슷하다. 진유리는 홀로 빛나는 존재였고, 그 빛이 너무도 찬란해 주위를 병풍으로 만드는 여자였다.

이런 이유를 아는 나로서는 그녀가 조를 해체한다는 것이 크게 놀랍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타이밍이 똥이잖아!

왜 하필 시험 앞두고 말하는 건데?

그렇게 내가 이번 기말고사는 끝나고 좋게 좋게 말하라 그렇게 말했는데, 눈앞에 이 대책 없는 애는 말을 듣지 않았다.

결심이 선 날로 바로 선언해 버린 것.

“무책임한 건 아는데, 우리 이번 학기 끝나고 흩어지기로 해. 아니야, 너희가 잘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어. 내가 잘못했지. 그냥 이건 시작부터 잘못된 거야. 서로의 발전에 방해만 되는 관계는 좋지 않잖아. 깨끗하게 흩어지는 게 모두에게 나아.”

차갑다.

한겨울 얼음장보다 차갑다.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냐고?

바로 내 옆에서 보란 듯이 말했으니까!

괜히 내가 미안할 지경이다. 어쨌든 원인 제공자는 나였으니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어머, 그렇게 내가 보고 싶은 거야? 시간을 돌려서 하루라도 더 빨리?”

“진짜 혼난다.”

“풋, 귀여워. 여간 귀여운 게 아니라니까.”

날 보며 입맛을 다시는 진유리. 이제는 상대하기도 지친다.

그래서 고개를 돌리니, 저쪽은 분위기가 더 처참하네.

하아…… 어쩔 거야 이 상황.

“답이 없다, 답이 없어. 저런 애들을 데리고 공략하라고? 하, 하, 하…….”

“뭐가 문제야. 메리랑 준우도 있잖아. 정 안 되면 저번처럼 너랑 나, 둘만으로도.”

“손 치워. 손목 부러트리기 전에.”

“어, 방금 부러트린다는 말. 심쿵이야. 남성미! 또 그게 네 매력이거든.”

슬그머니 엉겨 붙는 진유리.

개수작을 뿌리치고 몸을 돌리는데, 역시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다.

농담 않고 1조원들 전부가 날 보고 있네.

마치 연인을 뺏긴 남정네처럼 눈빛에는 질투가 그득하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냐.”

한숨이 나왔다.

아까 뭐가 문제냐고 물었나.

이 모든 게 문제다.

이 구성! 이 멤버! 이 상황!

이 시간에도 눈치도 없이 내 품에 손을 넣는 진유리도, 또 이를 질투 어린 눈으로 보는 쟤들도.

다! 몽땅 문제라고!

“……다 꺼져 줬으면 좋겠다.”

*   *   *

약간의 소란이 있었지만 박기혁과 일행들은 게이트로 돌입했고, 본격적인 기말고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했던가. 역시는 역시나 역시였다.

박기혁의 우려대로 박살 난 1조의 분위기가 발목을 잡게 되는데.

경험 많은 교수들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실망스럽네요. 전부 따로 놀아요.”

“아마 의욕이 없어서일 겁니다.”

“네? 무슨 말이에요? 왜 의욕이 없나요?”

“음, 아직 못 들으셨나 보네요. 1조장 진유리가 이번 학기를 끝으로 조장을 그만둔다고 했답니다.”

“자, 잠깐만요. 조를 그만둬요? 그러면 1조는요?”

“모르죠. 규정상 조장이 그만두는 경우 해체 수순을 밟는 게 맞기는 한데…… 1조라 어떻게 될지, 봐야 알겠습니다.”

1조장이라면 명실공히 그 해의 얼굴 아닌가.

그런데 이걸 때려치우겠다고? 진심으로?

질문한 교수는 자신의 지적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상황에 판단을 포기.

함께 온 다른 교수는 ‘레이드 원리 이해’의 노해춘 교수에게 물었다.

이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학장을 포함해 아카데미에서 가장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노해춘이다.

만약 노해춘이 조금만 권력욕이 있었다면 학장 자리에는 천수만이 아닌 그가 앉아 있을 거란 말이 나올 만큼,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도 명쾌한 답을 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별다른 대화도 안 해 본 제가 무엇을 알겠습니까. 금시초문입니다. 다만 이렇게 될 수도 있다 생각은 했습니다. 진유리 학생은…… 진룡이잖습니까.”

“진룡이 왜…….”

“역사적으로 진룡은 좋은 조장이 된 적이 없습니다. 이건 비단 역사적이 아니라 제가 가르친 진룡들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지요.”

진룡 혈족은 ‘용의 피’를 계승받아 여러 가지 혈족 능력들을 각성한다.

그리고 그 대표적인 능력이 바로 ‘용의 눈’.

이 용의 눈은 어떠한 마법이라도 그게 마법이라면 해석할 수 있다.

그야말로 완벽에 가까운 마법사.

이건 크다.

완벽(完璧)

이미 완벽하기에 도움 따위 필요 없다. 도움이 필요 없으니 주위에 무관심할 수밖에.

“고고한 용 같은 겁니다. 그들은 스스로가 완벽한 존재라 생각하기에 주위에 딱히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진룡이 맡은 조가 제대로 돌아가겠습니까? 답은 이미 나온 겁니다. 보이는 대로죠.”

“지금은 달라졌지만 전 세대의 검호도 그랬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전 세대, 현 진룡 가주 진도하와 현 검호 가주 박건이 아카데미 재학 중이던 때만 해도 진룡과 검호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아니, 아웃사이더란 표현은 옳지 못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 세상에 자신들이 유일하다는 것처럼 본인들의 존재감을 만방에 뿜어댔다.

이에 기가 죽은 아이들이 접근을 못한 것이고.

“하지만 교수님, 검호는 다르잖아요. 그러니까, 좋은 조장이 없다는 거요.”

“맞습니다. 산군이 있잖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달라졌다 말한 겁니다. 산군 박수혁의 등장은 그 변화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어머니, 김연희가 쏘아 올린 거죠.”

“김연희?”

“갑자기 옵티멈 대표가 여기서 나와요?”

“네, 김연희. 제 오랜 교수 생활을 통틀어 가장 명석한 제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오해한다.

김연희는 운이 좋아, 남자 잘 만나 성공한 거라고.

하지만 노해춘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반대지.

“막연히 경외의 대상이었던 검호를 세상으로 불러들였으니까요. 그 결과를 보십시오. 사람들은 더 이상 검호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존경하지요.”

“산군 말씀하셨습니까? 박수혁 군이야말로 김연희 양이 만든 최고의 작품이죠. 본인은 아니라고 하지만, 저는 똑똑히 봤습니다. 박수혁 군에게서 김연희 양의 모습을요.”

“명석한 두뇌, 상냥한 인품. 이건 기존의 검호들은 가지지 못한 장점입니다. 박수혁 군은 그걸 물려받았습니다. 모두 그의 어머니가 가진 것들이죠.”

검호는 달라졌다.

지금의 검호는 더 이상 독선적이지 않다. 완벽함에도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모자람을 인정할 줄 안다.

이성을 각성한 맹수,

김연희의 손에 검호는 세상을 배운 것이다.

“개인적으로 박기혁 군에게 기대가 큽니다. 그가 어떻게 이 난관을 타파할까. 팀워크가 무너진 이 팀을 어떤 방식으로 끌고 갈지 말입니다.”

노해춘 교수의 눈이 기대에 반짝이고, 잠시 뒤 박기혁은 이런 노해춘의 기대에 보답하듯 본격적으로 나서는데.

다만 전혀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안 되겠다. 모두 대가리 박아.”

*   *   *

팩트 하나.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 나는 성격이 나빴다.

아니, 나쁘다는 말도 모자랐다. 일상생활이나 제대로 될까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난 완전히 비틀려 있었다.

영감은 이런 나를 걱정해, 어떻게든 내 성격을 뜯어고치려 했지만…… 그게 성공했으면 마왕이라 불렸겠는가.

왜 갑자기 옛날 회상이냐고?

문득 그때 영감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다.

“혹시 결혼 생각 없냐? 네 그 삐뚤어진 성격이 사달을 낼까 봐 그런 게다. 그래도 네놈, 책임감은 있으니 식구가 생기면 좀 나아질 건데. 쯧.”

영감, 이번에도 당신이 옳았어.

박기혁으로 눈을 뜨며 가족이 생겼다. 인생이란 시련을 홀로 견뎌 내던 내게 처음으로 가족이란 것이 생긴 것이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이 한마디가 비뚤어진 내 성격에 안전핀이 돼 줬다.

그런데 말이야.

“착하게 살려는데 네놈들이 날 건드네? 야. 엉덩이 들어. 좋은 말할 때 각 세워라.”

내 앞으로 쪼로록 머리를 박고 있는 아이들.

“나 다리 아파 힝.”

“엄살 피우지 마, 진유리. 너 마나 쓰고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칫, 눈치는 빨라.”

물론 준우도 박고 있고, 메리도 박고 있다.

“젠장.”

“우리까지 왜 이래야 해요. 우리가 뭐 잘못했다고요!”

“조용해. 니들도 똑같아. 아무리 기말고사라도 동료인데, 어떻게 말 한 번 안 걸어?”

예외는 없다. 이것들은 다 글러먹었다.

“얘들아, 내가 뭐랬니. 상황이 꼬였지만 잘해 보자 부탁했지? 응? 대답 안 하지?”

‘네…….’라며 대답이 기어가듯 들려온다.

낮은 데시벨. 불만이라는 거네?

만지작거리던 돌을 던졌고.

콰아앙-!!

나무가 터져 나갔다.

“……!!”

꿀꺽-!

“두 번 말 안 한다. 대답 똑바로 해.”

네에-!!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야 마음에 드네. 역시 말귀를 못 알아먹는 녀석들은 매가 약이라니까.

“확실히 말할게. 난 말이다. 너희 기분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고, 알 생각도 없다.”

배려? 사과? 난 그딴 거 모른다.

차라리 도전이면 몰라도.

“일단 같은 조로 묶였고, 내가 너희를 통솔한다. 아무리 평가가 안 되는 시험이라도 난 잘하고 싶다. 어머니한테 부끄럽지 않게.”

그러니까.

“협조해라.”

말로 하는 건 여기까지다.

“한 번만 더 개판 치면 다리 하나씩 부러뜨리고 이야기할 거니까. 기상.”

빠릿하게 일어나는 아이들.

진즉 이랬으면 얼마나 좋냐.

“잘하자.”

우리의 공략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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