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술 명가의 마왕님 37화>
“어때?”
진유리는 방금 트롤 무리를 갈가리 찢어 버린 것치곤 지나칠 정도로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묻는다.
이 상황에 ‘멋진데.’, ‘대단했어.’라는 맘에도 없는 칭찬을 바라는 게 보통인데, 진유리는 아니다.
이미 물었다는 시점에서 뭔가 불만이 있는 거다.
쟤는 자신이 만족했으면 굳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을걸.
“참신하긴 한데, 많이 어설프다.”
“어설퍼? 뭐가?”
의문을 표하는데도 표정이 밝다.
얘도 참 독특하다니까.
“콘셉트는 괜찮아. 전장을 설정해 놓고 마법으로 모든 변수를 컨트롤한다. 그런데 너무 비효율적이야.”
“구체적으로 어디가?”
“전부. 모조리 다.”
방금 1조가 사냥한 트롤은 총 일곱 마리.
그런데 여기에 들어간 마법 종류는 30종류가 넘는다. 이러고도 효율을 찾는 게 웃기지 않나?
“시간 벌겠다 어스 월 깔고, 미끼 역으로 골렘만 세 기.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이스 포그야. 그나마 너희들이 펼친 것 중에는 제일 볼만한 연계 마법이었는데, 이걸 고작 발 묶는 용도로 써?”
“흐으응.”
“안전장치로 지뢰형 플레어도 깔았더라? 여기에 마지막 폭격 종류까지 합치면 벌써 몇 개야. 너희들이 무슨 대마법사야? 마나가 남아돌아?”
“확실히…….”
“더 구체적으로 까 줄까? 저기에 트롤이 11마리? 아니다. 12마리가 있어도 결과는 똑같았을걸. 느끼는 바 없냐?”
“아……!”
“이제야 정신이 들지? 그나마 다행이네. ‘좋은 거 아니야?’라고 물었으면 실망할 뻔했다.”
방금 전 1조가 펼친 화력이라면 트롤 7마리가 아니라 12마리라도 압살할 수 있다.
비슷한 결과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게 왜 문제야? 라고 물으면 이건 굉장히 일차원적인 질문이다.
마나가 무한한 건 자연에서의 이야기다. 우리가, 인간이 품을 수 있는 마나는 유한하다.
“당장에는 압도적이지만 전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끝이 뻔해. 더 갈 것도 없다. 인간한테는 통하지도 않을걸.”
그때, 너무 통렬한 비판을 해서일까.
“후우, 도저히 못 들어 주겠네요.”
뒤에 있던 1조원들이 앞으로 나왔다.
“어설프다. 비효율적이다. 당신이 뭔데 우리를 단정 짓는 거지?”
“인정해요. 처음 보는 자리라 힘을 과하게 준 건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늘 이렇게 과하지는 않아요.”
“함부로 떠들지 마. 뭐 엄청난 문제라고. 네가 말한 문제들 당장이라도 고칠 수 있어.”
“인간한테는 통하지 않는다고? 허, 그걸 니가 어떻게 알아. 봤어? 봤냐고? 그리고 우리가 인간하고 몬스터 구분도 못 하는 줄 알아. 우리도 생각이 있으니까 이렇게 한 거야.”
나름 1조라는 건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너도나도 이 악물고는 한마디씩 던지는데, 아주 살벌하다.
“너. 그래, 너. 딱 보니까 네가 진유리 다음인 것 같은데, 내가 널 뭐라고 불러야 하지?”
“주나연이에요.”
“나연이라 부를게. 나연이가 했던 말도 맞아. 늘 이렇게 힘을 주는 건 아니겠지. 다를 거야. 어깨 위에 달린 게 장식품이 아닌 이상 달라야지.”
“……무례한!”
“또 하나. 너희들 말이 맞는 게 있어. 아까 뭐라 했더라. 당장 고칠 수 있다고. 맞아. 동의한다. 솔직히 내가 말한 문제는 단편적인 문제야.”
“그러…….”
“쉿, 말끝까지 들어. 그런데 이 당장이라도 고칠 수 있는 문제를 왜 꼬집었냐? 다 너희 때문이다. 나도 인간인지라 초면에 독한 말은 좀 그랬거든.”
근데 이렇게 판을 깔아 주네? 이건 못 참지.
“좋아, 너희들이 그렇게 듣고 싶다면. 사양 안 한다. 너희 조의 진짜 문제가 뭔지 알아? 어이, 진유리. 네가 말해 봐. 넌 알잖아.”
“…….”
“얌마, 네가 그렇게 닥치고 있으니까 발전이 없는 거지.”
“뭐죠. 뭔데 유리를 괴롭히는 거죠. 대체 문제가 뭔데 가만히 있는 유리까지 들먹이는 건가요.”
“응, 쟤가 문제거든. 1조의 가장 큰 문제는 진유리가 ‘조장’을 맡고 있는 거니까.”
“……!!”
충격받은 얼굴. 진유리도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는지 놀란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얘들이 착각하는 게 있는데. 여기 와서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며 많이 유해진 거지, 난 태생이 친절과 거리가 먼 놈이다.
“원래는 귀찮게 더 말 안 하는데 한동안 같이 행동해야 하니 친절하게 설명도 해 줄게, 한 번만 들려준다. 잘 들어라.”
1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유리다.
문제는 진유리가 조장이라는 어울리지도 않은 옷을 입으며 시작된다.
1조의 콘셉트는 마법 군단이다.
탱커도, 근접 딜러도, 다른 직군 없이 오직 마법사 직군만으로 이루어진 전투 집단.
그런데 이게 가능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거든.
바로 팀워크와 조율.
마법으로 모든 변수에 대응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그런데 개인도 아니고 집단으로? 하나의 유기체처럼 마법을 쏴 댄다?
탱커가 있는 정통의 포지셔닝보다 훨씬 더 많은 심력을 요하는 일이다. 정통의 포지셔닝은 탱커가 시간이라도 벌어 주지, 쟤들은 한 번 삐끗하면 바로 위험 거리다.
조율도 예시를 들면 쉽다.
적이 온다 치자. 아이스 스피어 두 발로 처리할 수 있는 적이다. 그런데 사람마다 아이스 스피어의 파괴력은 다르다. 누구는 평균 이상일 수가 있고, 누구는 평균 이하일 수도 있다.
이걸 최대한 근사치로 맞추는 게 조율이다.
이를테면 조율은 낭비를 줄이는 거다.
여기서 눈치 빠른 사람은 알겠지. 좀 전의 전투에 낭비가 심했던 이유는 이 조율이 잘못된 거다.
그리고 저 1조에서 조율자는.
“……진유리, 너지.”
“…….”
진유리는 여러모로 특별하다.
용의 눈이란 것도, 마법에 접근하는 방식도.
하지만 무엇보다 진유리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마나 드레인(Mana Drain).
그녀는 자연 마나를 별도의 과정 없이, 그것도 숨 쉬듯 빨아들인다.
막말로 마나 귀한 줄 모르는 축복받은 인간이란 말이다.
근데 이런 애가 조율이 가능할까? 평생 돈 걱정 안 하며 펑펑 쓴 사람이, 일주일 생활비를 빠듯하게 쪼개 쓴다?
애초에 말이 안 되는 거다.
“……근데 마땅히 다른 대안은 또 없다? 너희 중에 진유리의 마법을 조율할 수 있는 능력자가 있을 리 없잖아.”
“…….”
“그런데 뭐? 당장 바꿀 수 있어? 고칠 수 있어?”
“…….”
“명검이 검집에 처박혀 썩고 있다고. 너, 너, 너, 너희 때문에. 그런데 너희는 자기들이 썩 괜찮다고 서로서로 핥아 주고 있냐? 이래서 진유리, 네가 문제란 거야. 이런 눈치 없는 애들을 뽑았으니까.”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됐는데.”
“어떻게 해야 되긴.”
내 시선이 진유리 뒤에 있는 아이들을 훑고는 그녀에게 돌아왔다.
“쟤들 전부 ‘도구’로 써야지.”
“……!!”
조율이란 건 비슷한 실력이야 되는 거다.
이렇게 격차가 너무 나면 조율이 아니라, 한쪽이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려야 했다.
마치 의지가 없이 사용되는 도구처럼.
도구란 말에 참아 왔던 화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자신들을 무시하지 말라며, 고작 도구라 무시받을 만큼 나약하지 않다며, 아주 단체로 지랄이다.
“……또 문제를 찾았네. 너희는 진심으로 자신들이 나름 유망주라 자신하고 있나 보네? 맙소사…….”
아, 됐다.
……더 이상은 입 아파서 못하겠다.
이 정도면 나도 많이 착해진 거지. 안 그래?
고블린한테 마법 개론을 설명하는 거랑 다를 게 뭐 있겠나. 차라리 우리 봄이가 더 이해력이 더 뛰어나겠네. 봄이는 삼촌 말이라면 깜빡 죽으니까.
그냥 보여 줘야겠다.
마법 군단? 이 몸이 전직 일인 군단이란다.
진유리란 명검은 어떻게 쓰는지 보여 주지.
“나와, 진유리.”
* * *
진유리는 신기했다.
어떻게 단방에 내 생각이 읽혔지?
“나한테만 말해 봐. 이거 네가 꾸민 상황이지?”
맞다.
솔직히 진유리는 조장이란 자리가 거추장스러웠다. 그럼에도 맡은 것은 순전히 가문 어른들의 의사였다. 진룡의 핏줄이라면 당연히 1등, 첫 번째가 돼야 한다면서.
아마 평생의 라이벌인 검호와 얽혀서 더 조장에 집착했던 것일 수도 있다.
진유리는 그렇게 1조장이 되어 역대급 기수라는 이번 기수에서도 제일 첫 번째로 발표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다.
그런데 막상 조장이 됐는데, 자신의 콘셉트를 살려 조원까지 모았는데.
별로였다.
생각보다 훨씬 더.
그리고 이런 결과를 박기혁보다도 훨씬 먼저 예측한 이가 있었는데.
바로 위그드라실이었다.
“입학시험 때도 말했지만, 유리 양은 이끄는 자가 아니랍니다. 본디 용은 고독한 법이거든요.”
“아하, 그러고 보니 유리 양이랑 비슷한 경우가 있었네요. 당신도 들어 봤을 거예요. 백호, 박민지 양이 당신이랑 비슷한 색이었어요.”
백호 박민지.
검호 가문의 둘째로, 차기 수호자를 꼽을 때 첫손에 꼽히는 인물.
하지만 검을 들었을 때 압도적인 무력을 자랑하는 그녀가 지휘관으로서는 빵점이란 것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자신의 칭호를 딴 ‘백호단’을 운용하지만 실질적으로 백호단을 이끄는 건 백호의 책사라 불리는 은빛나라는 것도.
진유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조장은 나에게 맞지 않구나. 나도 민지 언니와 빛나 언니처럼 나를 이끌어 줄 친구가 필요하구나.
그리고 적어도, 그 친구가 현재 자신의 조에는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나니 편했다. 그렇다고 진유리가 당장 조를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 1학기가 끝나면 이 맞지도 않은 조장을 때려치우겠다 마음먹은 채 아카데미 생활을 이어 나갔다.
그런데 놈이 나타났다.
여기 박기혁이란 남자가.
찌릿-
마나 선이 흔들린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보통의 초인들에게 마나는 공기와 같다. 항상 곁에 있지만 볼 수 없는 것.
하지만 진유리는 다르다.
‘용의 눈’을 가진 진유리에게 마나는 실체다.
보인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마나 선을 잡아채 당겼다.
순간.
구름을 뚫고 내려치는 번개.
마치 상위 전격 마법인 콜 라이트닝 같지만, 놀랍게도 저 마법은 마법의 기본이라 불리는 ‘매직 미사일’이다.
내려친 검붉은 매직 미사일이 트롤의 정수리를 뚫고 폭발했다.
매직 미사일로 트롤을 즉사시킨다?
말도 안 되는 현실에 지켜보는 이조차 턱을 떨어트리는데.
정작 진유리는 그딴 감상을 할 시간이 없었다.
“늦었다.”
“미안.”
“정신 차려라. 다시 조준.”
“준비됐어.”
허공에 마나 선이 얽혔다. 박기혁을 닮은 검고 난폭한 마나선.
입체의 공간.
진유리가 보는 마나의 세계는 언제나 이런 마나 선들로 가득하다. 나무에서도, 돌에서도…… 하다못해 공기에서도 수천 가닥의 마나 선들이 뒤엉켜 있는 입체의 공간이 진유리가 보는 세계다.
하지만 이 헤아릴 수 없는 마나의 세계에서 박기혁의 마나만큼은 뚜렷했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칠흑.
그 칠흑의 빛이 아름다울 정도로 현란하게 춤추고.
쾅!
압축한 매직 미사일이 대포처럼 쏘아졌다. 복부를 가격당한 트롤의 등이 굽을 정도. 하지만 트롤은 기어코 몸을 일으키며 전진했다. 자신의 재생력을 믿고, 뒤따르는 동족을 믿고 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의 앞에 기다리는 적은.
진유리라는 명검을 든 박기혁.
“수치 외웠냐.”
“응.”
“잊지 말고. 그대로 간다.”
마법진이 증식한다.
이제는 박기혁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육망성 마법진.
허공까지 집어 삼킨 마법진에서 붉은 스파크가 점멸했다. 마치 은하수 속의 별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붉은 별들이 반짝이며 존재를 밝히는 순간.
“당겨.”
진유리가 팽팽했던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매직 미사일이.
강화, 압축, 탄성, 회전. 파쇄를 거친 매직 미사일이.
박기혁과 진유리의 마나로 거듭난.
검고 붉은 매직 미사일이.
트롤을 찢었다.
트롤 무리가 찢겨 나가고 있었다.
미사일 폭격 중 진유리가 신경 써야 할 건 오직 하나.
마나를 당기는 것.
다른 건 전부 박기혁이 담당한다.
‘이거였어!’
그녀에게 필요한 건 부하가 아니다.
동등한 레벨의 동료가 필요하다.
그녀에게 서로가 서로를 보완할 수 있고, 때로는 그녀를 무기로 다룰 수 있는 진정한 동료.
무기로 사용되는 이 상황에, 진유리는 역설적으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진유리가 환하게 웃으며 수십 개의 마나 선을 한 번에 당겼다.
콰아앙-!!